므두셀라 증후군*
임효빈
체크무늬 자켓을 입고 출근한 그날은
책장에서 지나간 한 권의 책을 뽑아 든 것과 같았다
서늘한 잿빛 구름 사이로 화살처럼 빛살이 내리꽂히던 목요일이었던가. 너의 심장을 닫고 싶은 것이야 네가 골라준 체크무늬였다. 오래 닫아둔 옷장 문을 열었을 때 걸려있던 기억이 옷들 사이에서 불쑥 튀어나왔다 뜯어진 박음질처럼 밑도 끝도 없는 풀림과 엉킴이었다 구석에서 자란 이야기가 깊은 숨을 뱉으며 머리를 들 때쯤 옷장 앞에서 펼쳐진 이몽異夢
출근 버스 창에 비친 체크무늬 자켓의 나를 봤어 두 개의 단추가 꺾인 해바라기 목처럼 대롱거렸지 사람들의 한숨은 거리를 좁혀오고 입체적이지 않는 어깨가 어깨를, 다른 어깨를 불러왔어 뜻 모를 고백들이 바닥에 떨어지며 조각으로 편집된 지난 냄새 같아 눈을 감았지 롤러코스터처럼 몇 번의 커브를 돌고나서야 지상에 내려선 나는 단추가 없어진 걸 알았어 그제야 내게 맞는 옷으로 몸에 붙었다
재채기를 참을 수 없었다
* 나쁜 기억은 빨리 잊어버리고 좋은 기억만 남기려는 심리 현상
절반의
나는 잘 지낸다는 말을 버리기로 했습니다
발밑에 있어도 줍지 않을 결심이 필요합니다
구름 뒤에서 어지러운 건 내 일이 아닙니다
나무들의 일이에요
하고 싶은 말을 쓰거나 뱉어내는 일도 내 몫은 없습니다
그런 것들이 많은 구름이에요
내 속은 시끄럽지 않습니다
한 송이 장미가 나를 지켜보는 중입니다
저 장미가 흔들리는 건 잎 속의 검은 입* 때문입니다
계절에 집중하지 못하고 지나가는 가시들의 눈에
나는 매몰찹니다
그리워할까요 장미는
꽃잎이 부풀기전 마음부터 부풀게 한
많은 밤을 함께했던 뭇별의 냄새를
한통의 편지가 위안이 된다면 단 번에 한 달 치를 보내겠습니다
장미도 나도 고요한 입술을 기대하지 않을 테니까요
참 텁텁한 맛이거든요
잘 지내는 절반의 마음입니다
* 기형도의 『입속의 검은 잎』 변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