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막강한 공룡의 등골이 악산의 풍모를 완성했다. 소청에서 희운각으로 내려서는 길에 본 신선대(오른쪽)와 범봉(가운데), 1275m봉(왼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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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3명째다. 공룡능선 러셀을 위해 힘 좋은 산꾼을 여럿 섭외했는데, 동행을 약속했던 이들이 출발을 목전에 두고 이런저런 이유로 빠졌다. 공룡능선은 산불방지 입산금지 기간을 제외하곤 연중 개방되는 법정등산로이지만, 눈이 많을 때는 출입을 막는다. 지난해 12월부터 통제되어 지금까지 길이 막혀 있다. 관리공단 본부에 특별허가를 신청해 산행에 나섰다. 산행 인원은 다섯 명. 사람이 더 많으면 수월하겠지만 힘 좋은 베테랑들로 채워져 두려움은 없다. 오히려 그들의 포기가 오기를 불러 공룡을 더 포기할 수 없게 했다.
설악산 토박이인 남설악구조대의 이원석(45), 이승철(41)씨와 원주 치악산구조대의 김시우 고문이 2박3일치 식량과 장비를 둘러멨다. 용대리에서 점심을 먹고 오후에 출발해 수렴동대피소에서 1박, 소청을 넘어 희운각대피소에서 1박 후, 공룡을 넘어 오세암 지나 백담사로 내려올 계획이다.
고요하다 못해 쓸쓸한 분위기의 백담사 입구. 가게의 절반이 문을 닫았다. 아랑곳하지 않고 설악은 능숙한 솜씨로 산경을 그려낸다. 장편소설의 시작처럼 자잘한 설명 없이 거대한 이야기의 서두가 될 계곡 하나를 던져 준다. 차량 출입을 제한하는 차단기가 이중으로 있는 삼엄한 백담분소를 지나 백담계곡으로 들었다. 며칠 동안 산행 계획을 조율하느라 머리가 복잡했지만, 백담의 품에 들자 다 사라졌다. 설악을 걷고 있다는 것만 남아 미소 짓게 했다.
몸을 풀 여유 없이 빠르게 걸었다. 겨울엔 백담사 셔틀버스가 다니지 않아 7km 길을 걸어가야 한다. 반면 백담계곡은 멈춰 있다. 산등성이를 압도할 정도로 너른 골짜기는 흰 눈을 덮고 있다. 참선에 잠긴 내공을 알 수 없는 경지의 고승처럼 눈을 감고 있다. 백담이 보여 주는 겸손과 절제의 경지에, 속인의 마음속 찌든 때가 조금씩 지워진다. 설악에게 바치는 산꾼의 고백성사가 시작된 것이다.
- ▲ 1 바위가 터널을 이룬 구곡담계곡 데크길. 2 용대리에서 백담사로 이어진 백담계곡 길. 겨울에는 셔틀버스가 다니지 않아 1시간 30분 정도를 더 걸어야 한다.
- 백담사 일주문을 지나자 백담은 하류보다 더 넓은 계곡을 보여 주었다. 자갈이 끝없이 펼쳐지고 자갈로 쌓은 돌탑도 헤아릴 수 없이 늘어서 있다. 뒤로 첩첩산중 장엄한 산국의 전설이 이제 막 시작되려 하고 있다. 눈은 이토록 풍경을 흑과 백으로 단순화하였음에도 절제의 미학이 가진 극치의 풍경을 그려냈다. 삶과 죽음의 대비처럼 선명한 겨울산은 아름다우며 혹독하다. 속에 무자비한 잔인함을 갖고 있어 산을 얕보는 자를 용서치 않는다.
백담탐방안내소를 지나자 기다리던 산길이다. 눈 덮인 길과 눈이 없는 데크길이 번갈아 나온다. 평년에 비해 눈이 많이 오지 않아 아이젠을 하지 않아도 무리가 없다. 소나무와 잎갈나무가 번갈아 나오며 냉랭한 계곡의 기운을 부드럽게 풀어 주었다.
영시암은 텅 빈 것 마냥 조용했다. 숙종 15년(1689)에 유학자였던 김창흡은 아버지 김수항이 숙청으로 죽임을 당하자 속세와 연을 끊기 위해 이곳을 찾았다. 그는 영원히 바깥세상으로 나가지 않을 것을 맹세한다는 뜻으로 영시(永矢)라는 이름을 붙여 살았다고 한다. 그러나 그의 주방일을 하던 하녀가 호랑이에게 물려 죽자, 이곳을 떠나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다. 지금도 주민들은 영시암 인근 계곡을 호식동(虎食洞)이라 부른다.
수렴동으로 들어갈수록 골은 작아지지만, 설악의 자존심은 버리지 않아 여전히 힘 있는 무게감을 보여 주었다. 땅거미에 설악이 묻히기 직전, 수렴동대피소에 배낭을 풀었다. 용대리에서 사온 고기에 밥을 먹는다. 꿀맛이란 이런 것이다. 소주도 기울이며 오래 얘기하고 싶지만 바람만 막을 정도의 취사장에서 오래 머물기란 쉽지 않다. 아득히 들리는 대피소 발전기 소리를 들으며 슬며시 잠들었다.
- ▲ 구곡담계곡의 겨울 풍경. 다리나 계단 등의 시설이 잘 되어 있어 기본 체력만 있다면 어렵지 않게 오를 수 있다.
- 일행이 이상한 꿈을 꾸었다. 자다 눈을 떴는데 어떤 사람 두 명이 기자와 일행이 자는 발밑의 선반 위에 앉아 쳐다보고 있었다고 한다. 무서워서 이불을 뒤집어썼다가 슬며시 자신의 발밑 선반 위를 봤는데 역시 어떤 이가 앉아서 쳐다보고 있었다는 얘기다. 통 잠을 못 잤다는데, 믿기 어려워 꿈으로 여기기로 했다. 하지만 산에 다니다보면 이성적으로 설명하기 힘든 일을 겪을 때가 간혹 있다.
출발하는데 날이 흐렸다. 눈 예보가 있어 조바심이 난다. 내일 공룡의 상태가 어떨지 모르기 때문이다. 몸은 소청으로 향하지만 일행의 마음은 내일 산행에 쏠려 있다. 수렴동계곡을 지나 구곡담계곡에 들자 설악의 미모가 본색을 드러냈다. 용의 이빨처럼 뾰족한 암봉이 늘어선 용아장성릉이 왼쪽 하늘을 지배하고 있다.
하늘로 승천하는 두 마리 얼음 용
- ▲ 구곡담계곡에서 본 용아장성릉. 100m 높이의 거벽이 웅장하게 섰다.
- 잠시 숨을 돌리려는데 앙증맞은 곤줄박이가 울어대며 주변을 맴돌았다. 행동식 부스러기를 손위에 올렸더니 금세 날아와 한 조각 물고 갔다. 자연스런 생태계 유지를 위해 자제해야 할 행동이지만, 눈이 쌓여 먹이를 찾기 힘든 요즘 같은 때에는 그냥 지나치기 어렵다.
고도를 높이자 바위계곡의 볼거리인 폭포들이 얼음거인이 되어 하나씩 나타났다. 용아장성릉은 거대한 성벽을 이루며 이곳이 끝이라는 양, 한 세상을 막고 서있다. 용아장성릉은 붉은빛이 감도는 거대한 용의 이빨이다. 계속 오르자 얼음거인의 우두머리격인 쌍용폭포다. 두 마리의 용이 하늘로 승천하는 모양이라 붙은 이름이다. 우폭의 힘이 압도적인데 상단 높이까지 보태면 100m 높이는 될 듯했다.
바위에 뿌리를 내린 놀라운 주목을 지나자, 쓰러진 거목이 설악에 허리 굽혀 절을 하고 지나가라 명령했다. 실처럼 가는 빙폭을 지나자 몸풀기는 끝났다며 설악이 대가를 요구했다. 거친 급경사 오르막을 거쳐야 하는 것이다. 숨이 턱까지 차오르지만 고도를 높일수록 드러나는 설악의 명 풍경에 마음은 지치지 않았다.
- ▲ 공룡의 크럭스인 1275m봉으로 가는 길. 멀리 대청봉과 중청이 보이고 등뒤로 공룡의 괴물 같은 암봉들이 솟았다.
- 봉정암은 워낙 건물이 많아 암자가 아니라 마을이라 불러도 어색하지 않다. 부처의 진신사리를 모신 5대 적멸보궁 중 하나이기에 신도들이 끊이지 않으며, 2,500명이 한꺼번에 묵을 수 있다. 암자는 해발 1,244m에 봉황이 알을 품은 듯한 형국의 산세에 정좌하고 있다.
108법당 뒤로 난 산길에 몸을 던진다. 새하얀 오르막이 코가 닿을 듯 가파른 숙제를 준다. 오르막길에서 문득 뒤돌아보니 금방이라도 움직일 것 같은 공룡 같은 암봉들이 봉정암을 둘러싸고 있다. 예사롭지 않은 명당이다. 그 옛날 이곳에 진신사리를 봉안한 자장율사는 보통 사람이 아니었던 것이 분명하다.
거친 숨을 토하며 고되게 몸을 밀어 올린 곳은 소청대피소다. 산중 별장처럼 깔끔한 산장의 모습에 절로 기분이 좋아진다. 취사장에서 늦은 점심을 먹었다. 라면이 이렇게 맛있었던가? 꿀맛이었다.
- ▲ 1 눈 쌓인 공룡을 간다. 뒤로 천화대가 솟았고 왼쪽 멀리 울산바위가 드러난다. 2 공룡의 크럭스인 1275m봉을 넘는 길. 가파르고 얼어붙은 빙판길이라 주의를 요한다.
- 소청봉으로 이어진 오름엔 비싼 크리스마스트리처럼 잘생긴 구상나무들이 서 있다. 나무가 드문드문 서 있어 고개만 돌리면 언제든 공룡의 등골을 볼 수 있다. 잠시 올려치자 희운각 하산길과 만나는 소청봉이다. 오른편으로 대청봉과 중청이 거대한 몸집을 과시하고 있다. 중청 위에는 축구공이 두 개 있다. 레이더시설이 마치 축구공처럼 둥글게 생겼다.
아이젠을 꺼내 신었다. 희운각까지 멀진 않지만 급경사를 내려가야 한다. 정면으로 선 굵은 화채능선이 남성미를 뽐내며 늠름하게 흘러간다. 급경사에 미끄러질까봐 아이젠으로 눈을 꾹꾹 디디며 내려선다. 오른편으로는 많은 산악인이 숨을 거뒀던 죽음의 계곡이다.
희운각대피소에 배낭을 풀고 두 번째 저녁으로 김치찌개와 밥, 고기를 먹었다. 산행의 큰 즐거움은 역시 먹는 재미다. 설악산에 꿀이 솟는지 먹는 족족 꿀맛이다. 결전의 공룡이 내일로 다가왔다. 일기예보는 큰 폭으로 기온이 떨어질 거라며 한파주의보를 예고했다. 마지막으로 일행과 산행 일정을 점검하고 잠들었다.
- ▲ 1 간식 부스러기를 먹는 백담계곡의 곤줄박이. 2 봉정암의 윤장대를 밀며 소망을 비는 이원석씨.
- 공룡과의 결전 허무하게 결정 나
디데이(공격 개시일)다. 새벽 5시에 눈을 뜨자, 별이 초롱초롱했다. 기온은 영하 18℃, 공룡의 바람까지 더하면 체감온도는 영하 20℃ 아래로 떨어질 것이다. 배를 채우고 단단히 장비를 정비해 출발했다. 모자에 버프로 얼굴까지 가려보지만 따발총 같은 바람이 무자비하게 공격했다. 빨리 걸어 열을 내는 방법밖에 없다.
강력한 러셀을 할 각오로 공룡의 등골에 올라탔으나, 승부는 허무하게 결정된다. 눈은 적고 러셀은 다 되어 있다. 많은 사람이 지나간 흔적은 아니지만 몇 주간에 걸쳐 적은 인원의 사람들이 지나가 충분히 크러스트 된 발자국이었다. 순간 일행의 얼굴에 팽팽하던 긴장이 확 풀리며 농담이 오갔다.
그것도 잠시, 공룡이 방심하기는 이르다며 얼어붙은 바위라 발 디딤이 까다로운 클라이밍 구간으로 기선제압을 하려들었다. 호흡은 거칠지만 와이어가 설치되어 있어 어려움 없이 돌파했다. 신선대를 우회하여 오른 공룡의 주능선, 이정표와 경관안내판이 있다. 신선대 암봉의 왼쪽 끄트머리 전망대다. 깡패 같은 칼바람이 곳곳에서 덤벼들지만 이 풍경을 놓칠 수 없다. 등 뒤에선 대청봉과 화채봉 사이로 살아 펄떡이는 싱싱한 태양이 솟아오르고, 정면으로는 범봉, 유선대, 1275m봉, 세존봉이 무더기로 솟았다.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푸르러 추위를 더 강력한 이미지로 포장해 덕분에 일출이 돋보였다. 압도적인 태양이 설악에 내리쬐자 공룡이 기지개를 켠다. 누구라도 질투할 만한 상위 1%에 속하는 최상의 날씨였다. 일행들 서로가 쌓은 덕 때문이라 감사의 인사를 건넸다.
눈이 무릎 이상 빠지는 가파른 내리막을 지났다. 러셀이 되어 있고 눈이 쿠션 역할을 해, 내리막길은 재미있다. 길 상태는 금방 변해 이번엔 바위가 드러난 길이다. 얼어붙고 눈 쌓이고 마른 길이 번갈아 나오지만 와이어 같은 안전시설이 적재적소에 있어 산행은 어렵지 않았다. 공룡의 등골엔 바람과 우리뿐이다. 다시 오기 어려울 운 좋은 시간을 충분히 즐긴다. 충분히 바라보고 기억하고, 뜨겁게 걸어 설악이 마음속에서 자연스레 버무려지도록 했다. 그리하여 감동이란 국물이 가득 차올라, 자연과 내가 어우러져 카타르시스의 극치를 만끽했다.
공룡을 처음 온 것도 아닌데, 공룡은 여전히 놀랍다. 매순간 나타나는 설악은 사람에게 격조 높은 쾌락을 준다. 호랑이 ‘범’이 아닌 범선의 돛대를 닮았다는 범봉이 점점 다가오더니 어느새 등 뒤로 지나갔다.
공룡의 크럭스인 1275m봉에 붙는다. 빙벽등반 하나 싶을 정도로 가파른 오르막이 와락 덤벼들었다. 한동안 거친 숨을 몰아쉬며 전력투구하자 공룡의 가장 날카로운 뿔이 솟은 1275m봉이다. 엄밀히 따지면 바위 꼭대기가 아닌 암봉 사이의 고개다. 바람이 덜 부는 사면에서 햇볕을 받으며 간식을 먹는다. 싱싱한 설악의 공기가 한껏 폐를 부풀린다. 몸속의 때까지 씻어내는 듯 상쾌하다.
속세에서 저지른 죄를 고백하듯 오르내림 심한 길을 묵묵히 걷는다. 공룡을 걷는 신성한 고백성사가 이어진다. 마등령은 가까워질 듯 오지 않는다. 오르내림이 심해 0.1km 줄이는 것이 쉽지 않다. 뒤쪽의 대청봉은 이제 먼 산처럼 보일만큼 멀어졌다. 실루엣의 뾰족바위들은 검게 타오르는 불꽃이다. 판타지 영화에서 볼법한 명장면들의 연속이다. 두 개의 암봉이 배처럼 솟은 무명봉을 넘어 나한봉으로 향한다. 공룡은 비싼 경치에 대한 값을 치르라며 벽 같은 오르막을 지치지도 않고 줄기차게 내놓는다. 축복 받은 날씨에 공룡을 걷는 것만으로 감사하며 기쁘게 걷는다.
- ▲ 1 오세암에서 영시암으로 이어진 길. 거대한 전나무가 많은 한적한 숲길이다. 2 희운각대피소에서 본 밤하늘. 별천지란 말이 어울린다.
- 마등령이 1.1km 남은 지점, 울산바위가 아기자기하게 보인다. 56번국도에서 봤을 때는 그렇게 커보였는데, 공룡의 등에서 보니 작은 조각품이었다. 동해 바다와 하늘은 분간하기 힘들 정도로 같은 파랑이다. 반대쪽으로는 귀때기청봉을 우두머리로 하여 서북능선이 코끼리 등짝처럼 듬직했다. 익스트림 등반을 하듯 눈과 얼음이 쌓인 바위지대를 넘자 마등령이 목전이었다. 바위 전망대에서 공룡이 남긴 명풍경을 마지막으로 눈과 카메라에 담았다.
아직 가야 할 길이 16km 정도 남았지만 산행이 끝난 듯한 분위기다. 오늘 산행의 고비인 공룡을 완주했기에 내리막과 완만한 길만 남았기 때문이다. 오세암으로 이어진 길은 가파르지만 계단이 있고 러셀이 되어 있어 쉽다. 오세암은 햇살마저도 너그러운 아늑한 곳에 터를 잡고 있다. 진정 속세 밖에 있는 듯 뿌리 깊은 고요함이 밀도 높게 쌓여 있다. 대웅전 앞에서 다함께 고개를 숙였다. 종교와 상관없이 무사히 길을 열어준 설악에 감사하는 의미다.
영시암 가는 길, 거대한 전나무 숲이다. 어른 세 명이 양 팔을 뻗어도 닿을락 말락한 전나무들이 숲의 터줏대감이다. 진한 숲내음이 달궈진 근육을 어루만지며 피로를 풀어 주었다. 이틀 전 지났던 영시암이다. 사람은 없고 보온병이 눈에 띄었다. 등산객들을 배려해 뜨거운 물을 마실 수 있게 해놓았다. 모처럼 따뜻한 것이 속을 어루만지며 스며든다. 고백성사의 모든 예식이 끝났다고 설악이 말하는 것만 같다. 속세의 찌든 때가 약간은 지워진 듯, 마음이 순수해진 것만 같다. 어둠이 내리기 전 산을 떠나고자 힘차게 걸었다. 어디선가 곤줄박이새가 날아와 예쁘게 지저귀곤 수렴동 쪽으로 날아갔다.<산행 정보는 백담사 기점 코스가이드 참조>
뷰포인트 ①
봉정암 사리탑 전망대
- 봉정암에서 오세암으로 이어진 갈림길로 200m 가면 사리탑이 있고 오른쪽 편에 전망대가 있다. 좌표 N38˚07´ 46.1´´ E128° 26´47.1´´. 공룡능선과 용아장성릉이 한눈에 보이는 명품 전망대다. 발 아래로 가야동계곡과 절골이 가깝게 내려다보이는 절벽 위다. 백담사에서 산행을 시작해 5시간 넘게 걸어 트인 경치가 처음 드러나는 곳이라, 사진으로 보는 것보다 실제 피부로 느끼는 감동이 더 크다. 봉정암에서 제단처럼 평평하게 단을 쌓아놓아 경치를 감상하고 기념사진을 찍기 좋다.
뷰포인트 ②
소청대피소
- 우리나라의 대피소 중에서 소청보다 더 경치가 화려한 곳은 없다. 새로 지어진 대피소 앞에서는 물론이고 취사장에서 밥을 먹다가도 고개만 들면 이토록 멋진 경치가 펼쳐지는 곳은 드물다. 게다가 공룡능선을 비롯한 백두대간과 용아장성릉, 멀리 동해까지 드러나 풍경만으로 배부른 곳이 바로 소청대피소다. 좌표 N38° 07´36.3´´E128° 27´ 11.9´´.
뷰포인트 ③
신선대
- 희운각에서 공룡능선으로 가다 우회로가 끝나고 처음으로 만나는 주능선 암릉구간이다. 경관안내도와 이정표가 있다. 실제 신선대는 암봉 오른쪽 끝에 있지만 주등산로가 이곳을 우회하도록 하고 있다. 좌표 N38° 08´19.9´´E128° 27´43.0´´. 공룡능선의 화려한 전경이 처음으로 드러나는 가슴속까지 시원한 전망대다.
미니인터뷰_남설악구조대 이원석ㆍ이승철
“고향 산을 찾는 분들에게 도움을 주려고 시작했어요”
- ▲ 이원석(왼쪽)씨와 이승철씨.
- 이원석(45), 이승철(41)씨는 양양 토박이 산꾼이며 남설악구조대원이다. 설악산과 점봉산을 뒷산으로 두고 있어 내 고장을 찾은 손님들에게 봉사한다는 마음으로 구조대 활동을 하고 있다. 119구조대와 국립공원관리공단에서 80% 정도의 사고를 처리하지만, 동시다발적으로 사고가 나거나 비법정길을 잘 아는 토박이 산꾼들의 도움이 필요할 때 민간구조대의 역할이 도움이 된다. 구조대 사무국장인 이원석씨는 “어릴 적부터 설악은 고향의 상징적인 이미지이자 동경의 대상이었다”고 한다. 지난해 총 12번을 출동했다는 그는 “생업이 제일 중요하지만 그 다음이 구조대 봉사”라고 꼽는다. 흘림골에서 경추골절 당한 사람을 구조한 적 있었는데 회복 후 감사의 뜻으로 구조대 행사가 있을 때마다 내려온 이도 있었다고 한다.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곳으로 서북주릉을 꼽는 그는, “서북주릉을 오르면 마음이 뻥 뚫리는 것 같다”며 “설악은 내 삶의 활력소”라 말한다.
이승철씨는 1985년부터 오색에서 살았다. 그의 모친과 부인이 지금도 오색에서 ‘평강공주와 온달장군’이라는 독특한 상호의 식당을 하고 있다. 어릴 적부터 설악에 몇 번 갔지만 산행이 좋아진 건 30대가 되고부터다. 6년 전 구조대에 가입했으며 “고향 산을 찾는 사람들에게 뭔가 도움을 주기 위해 시작하게 되었다”고 한다. 또 “산사람들과 관계의 폭이 넓어지면서 산사람이 좋아서 더 깊게 빠지게 됐다”고 한다.
지금은 “산과 연관된 삶에 충분히 만족하고 있으며 산은 내 인생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가 되었다”고 말한다. 그 역시 서북주릉을 가장 좋아한다. 악산이라고 하지만 그에겐 어느 산보다 편안하고 좋은 산이라 얘기한다. 서울 장수막걸리 속초총판 일을 하는 그는 “사업이 잘 풀리지 않아 힘들지만 설악산에 오면 기분이 좋아진다”고 웃음 짓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