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금선 작가의 연재실화소설 - 배 타는 사람들
장편소설 <나의 첫 번째 男子> 저자인 중국동포 장금선 작가는 현재 한국과 중국을 오가는 배를 타고 다니면서 글을 쓰고 있다. 그의 실화소설을 <동포세계신문>에 연재한 다. 이 소설은 보따리상들의 삶을 몸소 겪으며 쓴 글이기에 더욱 실감난다.
제23화 점점 커지는 보따리(上)
8월 추석을 며칠 앞두고 나는 중국에서 내려 흑룡강 집으로 갔다. 작년 추석에 큰 아들이 남동생과 여동생을 데리고 아버지 산소를 더 높은 산 위쪽으로 이전하였다. 하여 금년 추석에는 기어히 새 산소에 가봐야 했다. 거의 두 달을 휴식하고 산동 석도로 돌아오니 모든 상황이 변했다. 본래 작은 배낭 하나에도 짐을 채우지 못하고 오르내리던 상인들이 지금 커다란 여행가방을 끌고 다녔다. 나도 상단의 조선족 남자애와 같이 시장에서 80원을 주고 커다란 트렁크 하나를 샀다. 질량은 형편 없지만 언젠가 쓰다가 던져 버리고 갈 예산이므로 싼 것으로 골랐다.
검역실에서 곡물을 바치고 터미널에서 나오니 나는 국제시장에 왔나? 하고
놀랐다. 언제나 조용하고 한가한 터미널 차양막 안은 곡물마대에 떨어진 알들을 주어 먹고 사는 비둘기떼들의 보금자리이다. 그런데 지금은 터미널 넓다란 차양막 안에는 화물과 사람들로 꽉 차 있고 무엇 때문에 고함 치는지 알 수 없는 사람들의 아우성 소리가 끊임없이 들려왔다. 가까이 가보니 상단마다 한 자리 한 자리씩 차지하고 물건을 담은 빡스를 산더미 처럼 쌓여놓고 있는데 빡스 주위에는 자기 트렁크에 담을 물건을 기다리기에 조급한 상인들이 장성처럼 꽉 박아서서 물건을 빨리 달라고 밀고 닥치며 조른다. 이 난장판에 불청객이 들어닥쳤다.
화물을 꽉 박아 실은 화물차가 사람 틈을 헤집고 들어 서노라 끊임없이 크랙션을 누르는 소리가 온 마당에 울리고 팀장은 상인들에게 물러나라고 소리치느라 목이 불이 날 지경이다.
상단마다 이름이 다른 것처럼 물건을 나누어 주는 방식도 각이각색이다. 상인들이 가방을 마당에 차례로 줄을 세워놓고 짐을 나누어 주는 상단이 있는가 하면 사람들을 줄을 세워놓고 한 사람 한 사람 물건을 나누어 주는 상단도 있다. 그런데 웬일인가?! <해연점> 사장은 화물을 상인들에게 나누어 주지 않고 큰 밀차에 산처럼 싣고 간다. 어디로 가져가는 것일까?
알고 보니 화물을 배 위에까지 올려 와서는 뒤 갑판쪽의 식탁칸에서 나누어 주었다. 이러면 힘들게 배위로 가방을 끌어 올리지 않고 배위에서 내리기만 하면 된다. 나는 성일이가 한 손으로 가방을 들고 두 번씩 배 위에서 오르내리는 것을 보기가 민망하고 마음이 불안하였다. 내릴 때는 나 절로도 끌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는 <해연점>으로 가기로 마음을 고쳐 먹었다.
물건이 많아 대공비가 호주머니에 들어가는 돈이 많아지자 배 위에 내렸던 상인들이 육속 오르기 시작하였다. 일반적으로 한국에서나 중국에서나 상선할 때는 번호를 그리 중시하지 않고 줄을 서는 대로 오른다. 나는 줄을 서기 싫어서 걸상에 앉아 텔리비젼을 보다가 꼬랑지에 올랐다. 앉아서 멀쩡히 줄을 서서 세관문을 나가는 사람들을 헤어보니 489명으로 불었다.
한국에서 중국으로 가져가는 물건의 종류는 본래 신과 옷 커피 등이 였는데 지금은 벼라별 물건이 다 들어 있었다. 화장품도 얼굴, 머리, 몸에 쓰는 각이각색이고, 식품에도 사탕, 과자, 김, 라면, 썩은장 등이 있는가 하면 전기솥, 전기장판, 전기담요, 아이들 장남감, 그리고 이름 모를 크고 작은 전자품의 부속품들이 있었다. 많은 물건들은 보고도 무엇인지 알 수 없는 괴상하게 생긴 것들도 있다. 하지만 우리가 관심하는 건 한 공근의 대공비를 얼마 주는가 하는 것이다.
물건이 많아 상인들이 돈을 많이 버는 것 같지만 실지 돈을 버는 사람은 각 상단의 사장들이다. 예를 든다면, 신 한 결레에 대공비가 본래는 3천원이라면 중간에서 층층이 빨아먹고 맨 마지막 상인들에게는 신 한 결레의 대공비가 천원밖에 주지 않는다. 이런 현상을 사회주의 나라에서는 착취라고 한다. 하지만 상인들은 알면서도 쓴 황련을 먹은 벙어리처럼 아무 말도 못한다. 상단마다 사장의 양심에 따라 착취하는 돈 숫자는 서로 틀린다.
“또 곡물값이 떨어진데!”
이런 말이 돌아서 얼마 안되면 진짜로 곡물값이 내려간다. 그러나 떨어지는 돈 숫자는 모두 같지않다. 2~3천이 내려가는 상단도 있고 7~8천이 내려가는 상단도 있다. 그날도 목욕을 하고 오니 상단에서 한국으로 가져갈 기본의 술, 담배를 내 자리에 놓았다.
“아이쿠! 이건 무슨 술인데 이렇게 켜요!”
언제나 술병을 메고 다니는 작은 가방에 눕혀서 넣었는데 오늘 술병은 얼마나 큰지 겨우 가방에 세워 넣었다.
“너무 좋아서. 그 술을 가져가면 한 병에 대공비 만3천을 준다오.”
“그래요!”
대공비가 많다니 시끄럽지도 않고 무겁지도 않았다. 그러나 이튿날 저녁 우리 상단 <해연점>에서는 5천원 대공비를 주었다. 서로 묻고 보니 <해태점>에선 과연 대공비 만3천을 주었고 만원을 주는 상담도 7~8천원을 주는 상단도 있었다. 이 불공평한 일을 상인들은 어디에도 가서 신고할 수 없었다. 있을 수 있으면 있고 있기 싫으면 가면 되는 것이 배 타는 사람들의 자유인 것같지만 안타깝고 처참한 일이였다. 그것은 세상의 까마귀는 모두 검다고 상인들의 돈을 핥아 먹는 사장님의 수단과 방법이 틀릴 뿐 엉덩이 살을 떼지 않으면 허벅다리의 고기를 떠내는 것이다. 많은 상인들이 공평을 얻으려고 여기 상단에서 저기 상단으로 돌아다녀도 결국 “산 좋고 물 좋은 곳은 없다” 고 한탄한다.
<다음호에 계속>
@동포세계신문(友好网報) 제354호 2016년 7월 1일 발행 동포세계신문 제354호 지면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