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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여산송씨방 원문보기 글쓴이: 산수유
정년 나이 1951년생 직장인들에게 평균수명 80세 시대 예고는 더 공포다.아직 가 보지 못한 길인데다 조언을 들을 선배도 마땅치 않아 이런저런 추정만 할 뿐, 달리 구체적으로 대응하기 힘들다. 한 발 한 발 몸을 사리며 모르는 길을 디뎌 갈 뿐이다. 퇴직 후의 삶을 자기 나름대로 멋지게 그려 가는 선배들의 경험담을 들으며 우리의 2막을 설계해 보자. 비결1ㅣ 계획하고 준비하라, 3막이 기다린다 - 주명룡 대한은퇴자협회 회장 정년을 앞둔 중년남자의 어깨는 무겁다. 무섭게 치고 올라오는 후배들, 업무 추진력이 전보다 떨어진 것 같다. 노후 재정이 든든하지 않아 결혼적령기 자녀들이 결혼한다고 나설까봐 눈치가 보인다. 한 번 피곤해지면 쉬 풀리지도 않고, 지하철 에서는 자리를 양보하는 젊은이도 있다. 무엇을 위해 바삐 달려왔는가! 종종 허탈감이 들기도 한다. 한국의 남자나이 55세의 정체성은 이렇게 시작된다. “에이, 손자들의 재롱이나 보고 취미활동이나 여행을 다니면서 남은 인생을 보내야지….” 오늘도, 내년도, 10년 후에도? 한국인의 평균수명 80세, 그렇다면 25년을 이렇게 살아야 한다. 그렇게 몇 년 살다 간다면 모를까, 55세의 나이에 남은 삶은 너무 길다. 어떻게 보낼 것인가? 가슴을 짓누르는 무거운 돌멩이들을 조금 걷어 내 보자. 새로운 출발! 당신을 기다리는 황금의 시절(golden years)이다. 정년은 분명 인생의 큰 사건이지만, 차분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강제 또는 조기퇴직이 아닌 한 정년은 어느 정도는 예상된 일이며, 이제라도 제2 인생을 여는 전환점으로 삼는 준비를 해야 한다. 2002년 대한은퇴자협회 창립을 위해 내한했던 테스 켄자 미국은퇴자협회장은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당신은 늙지도 않았고, 늙었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간혹 어떤 분들은 정년이면 이제 됐다, 그동안 열심히 일했으니 이제는 쉬어야지 한다. 하지만 은퇴 후 30~40년을 ‘휴가상태’로 보낸다면 얼마나 무료할 것인가? 정년은 결코 인생의 퇴출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정년은 직장에서 해방돼 나 스스로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시기다. 미국의 베이비부머들은 정년을 ‘행복한 은퇴(happy retirement)’라고 하며, 정년 후의 생을 ‘여분의 삶(extra period)’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동안 하지 못했던 일들을 한다. 제2, 제3의 인생의 길을 걷는 것이다. 필자가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며 미국으로 떠난 것은 1981년이었다. 한국에서의 생활도 나쁘지는 않았지만 큰 나라에 대한 동경과 도전이 안락함을 뿌리칠 수 있었다. 그러나 낯선 땅, 미국생활은 결코 만만하지 않았다. 한국보다 수십 배의 어려움에 부닥쳤다. 그러나 도전을 선택한 열정과 의지가 나를 한국인 최초로 맥도널드 체인의 운영자로, 한인회장으로, 그리고 클린턴과 함께 미국 이민자에게 주어지는 최고 영예의 상인 ‘Ellis Island상’을 수상하게 하는 원동력이 되었다. 그런 미국생활을 2001년에 접었다. 막 노령화사회를 맞이한 한국은 나에게 또 다른 열정을 일으키게 하는 도전의 대상이었던 것이다. 미국사회의 선진 은퇴문화를 알리고 싶었고, 한국의 노령화문제를 해결하는 데 디딤돌이 되어야겠다는 소명이 꿈틀거렸다. 11월16일, 그 도전을 안고 첫발을 디뎠던 한국의 잿빛 하늘을 오늘도 잊을 수 없다. 그때 나이가 55세였다. 그리고 5년째 대한은퇴자협회를 이끌면서 우리 사회의 장·노년문제 해결에 앞장서고 있다. 아직 뿌리가 약한 한국의 비정부기구(NGO) 환경이 조금은 더디고 힘들게도 하지만 여전히 열정을 바칠 목표가 있기에 나는 행복하다. 맥아더가 한 말이 생각난다. “사람은 오래 살아서 늙는 것이 아니라 꿈을 잃어버릴 때 늙는다. 젊음은 특정한 한때가 아니다. 의지와 상상력, 비겁함을 모르는 용기, 편안함을 거부하는 모험심이 이루어 내는 정신상태다.” 비결2 ㅣ 작은 돈이라도 벌고 씀씀이 줄여라 지난달 민지환(70) 씨는 살고 있는 아파트 로 역모기지론 신청을 했다. 국립연구소 연구원으로 정년퇴임하면서 받은 퇴직금 으로 구입한 아파트였다. 퇴직 이후 10년간 딸이 운영하는 피아노학원의 차량을 운전해 주면서 부부의 생활비를 충당해 왔다. 그러다 최근 부인이 당뇨로 쓰러져 치료비가 필요해지자 최근 역모기지론을 신청한 것. 아들딸 모두 번듯한 가정을 꾸리고 있지만 생활비나 치료비를 사양했다. 집마저 잡혔으니 상속해 줄 것도 없다. 민지환 씨는 죽는 날까지 자신의 삶은 손수 해결하리라 벼르며 아침저녁 운동도 열심히 한다. 노후를 위해 준비해야 할 것은 돈과 건강과 취미활동, 배우자와의 해로 등 다양하다. 어떤 모습으로 노후를 살 것인가에 따라 항목별 비중은 달라진다. 이미 노후에 진입해 생활하는 어르신들의 경우, 다른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 돈이라고 입을 모은다. 때문에 노후를 보장하는 재테크 가 큰 관심을 모으고 있다. 돈문제에 관한 한 노후보장 설계는 단순하다. 많든 적든 돈을 계속 벌어들이고 씀씀이는 줄일 것, 단 두 가지다. 필요한 돈을 수급하는 문제는 정년 이후에도 재취업 하거나 창업 , 아르바이트 등 몸을 움직여 일하는 것과 투자한 곳에서 나오는 정기적인 수익금, 자녀들로부터 받는 생활비, 생활비로 찾아 쓰는 목돈 등이 있다. 필요한 돈을 확보하는 것보다 더 중요하게 설계해야 할 것은 씀씀이를 줄이는 것이다. 젊은 시절부터 해 오던 소비 패턴을 리모델링해 씀씀이를 대폭 줄여야 한다. 여유 있고 폼나게 살다 소비 수준을 줄이면 자괴감에 시달릴 수 있으나, 가능하면 빠른 시기에 돈 나가는 구멍을 최대한 줄이는 것이 노후 설계의 기본이다. 비결3ㅣ 딱 10년 ‘미칠거리’를 찾을 필요 ‘빨간 펜 우리말 지킴이’. 이는 솔애울 국어순화연구소를 운영하는 이수열 씨의 별칭이다. 초등학교를 졸업한 학력으로 초등학교 교원자격시험과 중등학교 검정시험에 합격해 48년 동안 초중등학교 평교사로 재직하다 1993년 정년퇴임했다. 순전히 독학으로 우리말과 글에 대한 이론적 토대를 갖춘 그는 정년퇴직을 전후한 1990년대 초반부터 국어순화운동을 시작했다. 신문기사를 읽다 잘못된 부분을 빨간 사인펜으로 밑줄 그은 다음 바로잡아 글쓴이들에게 우편으로 보내 주는 그만의 방식은 지금도 해마다 5,000여 건씩 계속되고 있다. 이수열 선생으로부터 빨간 펜 지적을 받아 보지 않은 신문기자나 학자, 교수가 없을 정도라는 것이 주위의 이야기. 정년퇴임을 계기로 이수열 선생은 우리말에 대한 애정으로 시작한 우리말 바로잡기운동에 더욱 박차를 가했다. <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대한민국 헌법>은 헌법에 잘못 표기된 우리말을 바로잡기 위해 쓴 책이고 <우리글 갈고 닦기-국어 교과서 다시 써야 한다>는 국어 교과서의 잘못된 표현을 지적하고 바로잡은 역작으로 평가받는다. 헌법 표현은 아직 그대로지만 교과서는 이수열 선생의 지적대로 많이 바뀌었다. 학교나 신문사로 강연하러 다니고, 스테디셀러 책을 쓰고, 한글학회로부터 우리말 지킴이로 선정되고(2004년), 문화센터에서 강좌를 담당하고…. 이렇게 그의 정년 이후의 삶은 지금도 하루가 다르게 꽃을 피운다. 정년퇴임 후 13년째. 그야말로 ‘한 10년 미칠거리’를 찾은 덕분이다. 비결4ㅣ 메고 다니던 의자를 내려놓아라 택시기사 김기선 씨는 올해로 택시운전 6년차를 맞이했다. 그이 나이 63세. 택시 일을 하기 전에 그는 영풍상호저축은행의 대표이사로 일했다. 외환위기 당시 명퇴 바람이 드세던 금융계의 혹한 속에서도 멀쩡하던 그가 대표이사 자리를 박차고 나와 설계한 택시기사로서의 2막. 그는 왜 하필이면 택시기사를 하는 것일까? 많은 사람이 궁금해 하지만 그의 대답은 간단하다. “아니, 이 좋은 일을 왜들 안 한답니까?” 기왕이면 환갑에 택시기사로 새출발하고 싶었다. 개인택시를 하려면 법인택시를 3년 이상 한 경력이 있어야 했다. 그 시기를 맞추기 위해 그는 조기퇴직을 결행했다. 대표이사 세 번째 임기를 1년 남짓 남겨 둔 시점이었다. 잘나가던 금융계 인사가 하루아침에 택시기사로 전직하자 주위 사람들이 더 안달이었다. 그 실력으로 왜 택시를 모느냐며 자기 회사로 모시겠다고 나서는 사람도 있었다. 스스로 원한 일이며 더없이 행복하게 일하고 있다는 그의 설명을 좀처럼 납득하지 않았다. 그는 누구든 앉아 있던 자리에서 떠나게 되면 의자를 내려놓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평생 그 의자를 등에 지고 다녀서는 다른 어떤 기회도 새롭게 맞이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대학 총장이 퇴직 이후 그 학교의 수위를 해도, 사장이 현직에서 물러난 뒤 자기가 다니던 회사의 운전기사를 해도 놀라지 않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저 직업 하나 바꾼 정도로 이해할 수 있는 분위기가 빨리 조성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환경이 바뀌면 생활이나 자세도 바뀌는 것이 당연한데 아직도 체면치레나 허영심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이 많다는 것이 김기선 씨는 영 안타깝다. 한때 고위직에 있던 사람들이 이미 날개가 떨어진 지 오래됐는데도 계속 예전처럼 대접만 받으려고 하니 누군들 좋아할 리 없지 않겠느냐며 반문한다. 비결5ㅣ 마음의 안식처를 개발해야 글로벌 기업 에서 인사담당 임원 으로 커리어를 쌓아 온 최용식 씨. 그는 최근 다른 기업으로부터 스카우트 제의를 받아 직장을 옮기는 중이다. 그 와중에 아이들 봄방학처럼 짧은 며칠 동안 그는 늘 벼르던 설악산 비박산행을 다녀왔다. 비박산행이란 무박 2일의 뜻이 아니라 등산시 악천후나 사고가 발생해 계획하지 못했던 장소에서 불가피하게 이루어지는 야영을 뜻하는 비박(Bivouac)에서 유래한 등산법. 아기자기한가 싶으면 무섭게, 무서워 경계하노라면 또 자상하게 안아 주는 우리의 겨울산을 섭렵하는 동안 그는 출근하라는 새 직장의 지시를 어기고 말았다. 새 직장에서는 다시 출근 날짜를 명령했지만 출근해야 하는 그날도 그는 산으로 떠났다. 눈 쌓인 산길을 걸으며 동굴에서 촛불에 의지해 잠을 청하는 동안 직장에 다닌 25년 내내 시달려 온 강박관념이 사라지고 그 자리에 평온함이 들어찼다. 졸지에 백수가 되었지만 보는 이마다 하는 얼굴 좋아졌다는 소리가 싫지 않은 최용식 씨다. 그는 이제 어떻게 할 것인지, 자신도 잘 모른다. 우선 비박산행의 경험을 더 쌓은 다음 세계적으로 유명한 산에 도전해 보고 싶은 욕망에 시달리고 있다. 최용식 씨처럼 마음의 안식처를 발견해 노후 대비의 불안감을 해소하는 사람이 늘고 있다. 종교에 귀의하든 취미에 빠지든 어린 시절을 추억하며 아파트단지 한편에 텃밭을 일구든, 방법은 상관없다. 그곳에만 가면, 그것만 생각하면 당신의 상처가 아물고 마음이 안정되고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붙으면 된다. 귀향은 마음의 안식처로 돌아가 평온한 노후를 준비하는 대표적 방법이다. 꼭 고향이 아니라도 상관없다. 도시에서의 피폐한 삶을 접고 전원으로 돌아가 몸 있는 곳에 마음을 부려놓고 자연을 닮아 욕심 없이 있는 그대로 살아가려는 자세라면 그것 또한 귀향이 아니랴. 비결6ㅣ 무엇이든 평생 배워라 영어·일본어·프랑스어·한국어 등 무려 8개 국어로 번역돼 전체 3억 권이 팔린 <녹정기>의 작가. 소설뿐 아니라 만화·영화 ·TV·컴퓨터 게임까지 다양한 멀티 콘텐츠로 나이를 불문한 독자들과 만나는 원로 작가. 중국 의 세계적 소설가 김용. 몇 년 전에 이미 80세를 훌쩍 넘긴 어르신이다. 그동안의 성과로 보나 연륜으로 보나 대내외적 입지로 보나 소설가로서는 입신의 경지에 오른 그가 지난해 영국으로 유학을 떠났다. “공부를 더 하면 지금보다 나아질 것이고, 평생 염원인 중국사를 저술할 수 있을 것”이라는 것이 유학의 변. 최근 몇 년 동안 과거에 썼던 작품들을 시대 추세에 맞게 고쳐 쓰는 열정과 집념으로 젊은 작가들의 귀감이 되는 한편 중국과 싱가포르의 중·고교 교과과정에 그의 작품이 수록됨으로써 다방면에 걸쳐 중국 최고의 소설가라는 명망을 굳히고 있다. 재즈 가수 윤희정 씨는 두 달에 한 번 여는 ‘윤희정 & 프렌즈’ 공연에 매번 사회 저명인사를 초청한다. 5주 이상 하드 트레이닝을 거쳐야 두 곡을 부를 수 있는 무대가 주어진다. 최근 열린 공연의 초대가수는 50대 후반의 인터콘티넨탈 호텔 사장. 노래라고는 군가와 찬송가밖에 부를 줄 모르던 그는 박자 감각이며 리듬을 익히느라 고생 좀 했다. 소식을 전해 들은 친구들은 용기가 가상하다며 턱시도까지 맞춰 주며 환호했다. 새로운 것을 배우려는 잠재적 욕구가 어느 정도인지 실감할 수 있는 대목이다.
Without you
No I can`t forget this evening,
Or your face as you were leaving. But I guess that`s just the way the story goes. You always smile but in you eyes your sorrow shows. Yes it shows. No I can`t forget tomorrow,
When I think of all my sorrow, When I had you there but then I let you go. And now it`s only fair that I should let you know What you should know I can`t live, if living is without you.
I can`t give, I can`t give any more. Can`t live, if living is without you. Can`t give, I can`t give any more. No I can`t forget this evening,
Or your face as you were leaving. But I guess that`s just the way the story goes. You always smile but in you eyes your sorrow shows. Yes it shows. I can`t live, if living is without you.
I can`t give, I can`t give any more. Can`t live, if living is without you. Can`t give, I can`t give any more. I can`t live, if living is without you.
I can`t give, I can`t give any more. Can`t live, if living is without you. Can`t give, I can`t give any more. Mariah Carey |
첫댓글 좋은 정보 감사합니다. 우리나이 또래의 모든이들이 공감하는 내용이라 정말 많은 도움이 되겠군요.65세이상 고령인구가 제일 많은 때가 10년후...바로 우리세대라고 합니다. 바로 코앞에 와 있는데...정말 답답한 마음뿐이군요.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