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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잘나가는’ 남자 찾아 얼굴 고치고, 돈 보따리 싸 가기 여전
■ 여자는 남자의 경제력(48.7%), 직업(26.8%), 학력(11.8%) 순 가중치
■ 가짜 학위 난무, 법정다툼도… 공식적 검증작업 사실상 불가능
‘짚신도 짝이 있다’고 한다. 결혼 상대를 두고 하는 말이다. 하지만 오늘 한국사회에서
그 말은 반은 맞고, 반은 틀린 말 같다. 결혼을 통해 신분상승과 인생역전을 꾀하는 헛된 욕망이 꿈틀거리기 때문이다.
중견 물류업체 사장인 윤모(54) 씨는 요즘 밤낮으로 입맛이 쓰다. 두 딸 중 큰딸을 시집 보내는데, 결혼 날짜가 성큼성큼 다가오고 있기 때문이다.
아직도 어리광을 피우고는 하는 딸을 시집 보낸다는 것이 실감나지 않는 터에, 잘난(?) 의사 사윗감에게 이것저것 해줘야 하는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닌 탓이다.
“솔직히 딸 주기도 아까운 판에 돈까지 싸서 보내야 한다니 마음이 불편하지. 그래도 어쩌겠어. 딸 잘되라는 부모 마음까지 접을 수는 없잖아?”
유명 대학 음대에서 피아노를 전공한 뒤 대학원을 나온 딸은 아버지가 보기에 어디에 내놔도 손색 없는 신붓감이다. 굳이 흠을 찾으라면 둘째보다 외모가 조금 처진다는 것밖에 없다.
그런 와중에 결혼이 가까워지면서 상대 쪽에서는 “감 놔라, 대추 놔라” 주문이 늘자 불편한 마음이 생긴 것이다. 아파트니, 자동차니, 지참금이니…. 그 동안 말로만 듣던 ‘열쇠 3개’를 준비해야 한다니, 그는 “애써 눌러 보지만 마음이 자꾸 엇나간다”고 하소연했다.
“지난 겨울 얼굴을 조금 더 예쁘게 고친다고 엄마 손에 이끌려 병원을 들락거린 것도 영 개운치 않았거든. 내 눈에는 맨얼굴도 예쁘기만 한데 무엇을 고쳐야 한다는 건지…. 이렇게까지 해서 딸을 시집을 보내야 하는 것인지 정말 모르겠어.”
더 나은 결혼 상대를 만나고 싶은 것은 인지상정(人之常情)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소위 ‘잘나가는’ 남편이나 사윗감을 찾기 위해 얼굴을 고치고, 돈 보따리를 싸야 하는 세태를 원망하는 부모가 많다.
“결혼 상대를 맺어 주다 보면 ‘정말 이것은 아닌데…’ 하고 되돌아보는 경우가 한두 번이 아니에요. 안타까운 일도 많고, 볼썽 사나운 일도 많거든요. 돈이 많다고 해도 얼굴이 안 받쳐주면 좋은 상대를 만나기 어렵고, 외모가 돼도 다른 조건이 안 되면 눈높이에 맞는 상대를 골라 주기가 너무 힘들어요.”
“딸 가진 것이 죄인가? 지참금이라니…”
서울 강남에 위치한 유명 결혼정보업체 커플 매니저인 김모 씨의 ‘중매쟁이’ 생활은 보람도 있지만 버거워 보인다. 그가 최근 상담해온 여성회원 가운데 명문대 의대를 나온 K씨가 늘 눈에 밟힌다.
남들이 부러워하는 치과의사지만 35세가 되도록 아직 혼처를 못 잡고 있기 때문이다. 부모들도 모두 의사 출신이어서 어린 시절부터 늘 풍족했고, 똑똑한 학창시절에도 남부러울 게 없었지만 배우자를 찾으면서 온갖 수모를 겪고 있는 것이다.
K씨의 부친도 딸의 혼사를 위해 애쓰는 흔적이 역력하다. 딸의 병원이 들어 있는 건물을 딸에게 상속해 주겠다면서 사윗감을 학수고대했지만, 감감무소식에 속이 타 들어간다. K씨는 이제 맞선을 보는 것조차 자신 없어하는 눈치다.
“성격도 좋고, 남들이 부러워하는 직업을 가졌지만 요새 말로 ‘비호감’ 외모라는 것이 문제예요. 몸매를 가꾸기 위해 다이어트를 시도해 보기도 했지만 여의치 않아 요즘은 거의 자신감을 잃은 것 같아요.”
그렇다고 K씨가 원하는 배우자의 조건을 낮출 기미도 없어 보인다. K씨의 결혼 조건을 충족시킬 만한 후보들은 K씨 집안의 넉넉한 재산과 K씨의 능력을 듣고도 고개를 가로저었다고 한다.
‘1,000억 원대 자산가의 데릴사위 공개모집.’
지난 6월, 한 결혼정보업체 홈페이지에 오른 ‘데릴사위’ 모집 공고가 언론의 화제가 됐다.
사연은 이렇다. 어느 날 한 노인이 서울 강남에 위치한 S사를 찾아왔다. 노인은 “아들 노릇을 하면서 집안을 이끌어갈 데릴사위가 필요하다”며 회사 쪽에 “올바른 가정교육을 받은 전문직 종사자나 그에 준하는 똑똑한 남성을 추천해 달라”고 부탁했다는 것.
노인은 보유한 현금이 수백억 원에 달하고 전체 재산이 1,000억 원대에 달한다는 재력가. 홈페이지에 소개된 1,000억 원대 부자의 딸 B씨는 38세로 전문직 직장인이었다.
B씨는 나이가 너무 많고 키가 작지만 인상도 좋고 직장도 좋았다. 높은 연봉 수준에 재산도 벌써 20억 원을 모았는 데도 적당한 상대를 만나지 못했다고 한다.
데릴사위 광고가 인터넷을 통해 알려지자 네티즌들의 반응은 뜨거웠다. 닷새 만에 500명이 넘는 남성 지원자가 몰렸다. 회사 측은 일단 B씨의 요청대로 나이 어린 남성과 비(非)기독교인을 제외하고, 270명의 남성으로부터 지원서를 받았다.
지원자들은 대부분 30~40대 남성들로 의사·변호사 등 전문직을 비롯해 대기업 간부와 공무원 등도 포함돼 있었다. S사는 이들 가운데 결국 차남 출신으로 학벌과 직업이 B씨와 걸맞은 남성들을 중심으로 5명의 후보를 가족에게 소개했고, B씨는 다섯 명의 후보와 만남을 거친 뒤 최종 한 명을 선택해 교제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회사 관계자는 “가족끼리 상견례를 한다거나 결혼 준비가 진행되고 있다는 소식을 듣지는 못했지만 서로 호감을 갖고 만남을 계속하는 것으로 들었다”고 설명했다.
S사 측은 공개 구혼광고를 받아들인 이유에 대해 “아무리 돈이 많은 재력가도 자식 결혼만큼은 뜻대로 안 된다는 메시지를 주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선남선녀들이 서로의 반쪽을 사랑하는 방식은 각기 다를 테지만, 결혼 상대에게 붙이는 조건은 크게 다르지 않다. 이들이 배우자를 꼽는 데 가장 우선적으로 고려하는 것은 무엇일까?
지난해 말 결혼정보회사 ‘비에나러가 미혼 남녀 369명을 상대로 한 설문조사를 보자. ‘결혼하는 데 가장 어려운 점은 무엇이냐’는 질문에 남성 응답자들은 ‘직업 등 경제적 안정’(50.3%)을 최우선으로 꼽았다. 남자의 결혼에서 가장 큰 변수는 ‘능력’과 ‘쩐’인 셈이다. 반면 여성들은 ‘외모 등 선천적 요인’(64.2%)이라고 답했다.
아이러니컬하게도 결혼 적령기의 남녀들이 배후자를 찾는 데 가장 큰 걸림돌로 여기는 것들은 선호하는 배우자 조건과 일치한다. 한국결혼문화 연구소(소장 이웅진)가 지난해 조사한 ‘배우자 선택시 중시 요인에 대한 분석’에서도 똑같은 결과가 나왔다. 남성은 여자의 ‘외모’를, 여성은 남자의 ‘직업’을 1순위 조건으로 꼽은 것이다.
결혼정보업체 ‘듀오’도 이상적 배우자상을 물었는데, 남녀 회원들은 ‘성격’ 다음으로 ‘여성의 외모’와 남성의 ‘직업·경제력’을 꼽았다.
이처럼 배우자 조건은 결혼을 가로막는 가장 큰 사유가 되기도 한다.
이화여대 천혜정(소비자인간발달학과) 교수는 “기본적으로 결혼은 교환가치를 거래하는 특성을 갖는 사회 제도”라고 설명한다. 이러한 교환의 특성은 자본주의에서 가격을 결정하는 ‘시장’의 역할과 같이 수요와 공급에 따라 그 가치가 결정된다는 것이다.
결혼을 통한 남녀의 ‘교환가캄 거래는 유명 결혼정보업체에서 요구하는 회원 가입 절차에서부터 실감할 수 있다. 결혼정보업체 D사의 가입 절차를 살펴보았다.
D사에 가입하려면 먼저 나이·학력·직장·가족사항 등 기본적인 개인정보와 함께 원하는 상대 배우자의 조건을 기록해야 한다. 여기에는 안경 혹은 콘택트렌즈 착용 여부나 부모·형제와의 동거 여부까지 꼼꼼히 적어야 한다. 상대 조건을 기록하는 항목 또한 직업·학력·종교·나이·신장·거주지·혼인경력·건강상태 등으로 세분돼 있다.
“좋은 신랑감 찾으려면 ‘성형’은 기본 투자”
회원 가입자는 기재한 양식(데이터 폼)을 토대로 이미 회원으로 가입한 이성 가운데 조건이 부합하는 경우가 몇 명이나 되는지 확인과정을 거치기도 한다. 이때 잠재적 파트너가 100명이 넘지 않으면 가입 자체가 허락되지 않는다.
이러한 절차는 자신이 아무리 좋은 조건을 가졌다고 하더라도 눈이 너무 높으면 가입이 어렵고, 반대로 자신의 조건이 이성들의 조건에 부합하지 않으면 회원 가입이 원천적으로 차단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방식은 일본의 대표적 결혼정보회사인 ‘온 앳’ 방식을 고스란히 적용한 것이란다. D사 관계자는 이러한 가입 방식은 “우리 사회의 축소판과도 같다”고 설명한다. 결혼 시장에 나온 선남선녀들의 조건을 통해 거래의 흐름을 한눈에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결혼시장의 특성상 더 좋은 조건의 배우자를 만나기 위해서는 시장의 수요에 걸맞게 자신의 ‘조건’도 좋아야 한다는 것이다. 여성의 경우 외모를 가꾸고, 남성은 전문직과 같은 안정되고 수입이 높은 직종을 선보이려고 하는 것은 이 시장의 조건에 부합한다.
결혼정보업체들이 정한 조건은 남녀 간에 편차가 매우 크다. 남자는 외모에 대한 가중치가 작지만, 여성의 경우 직업이나 학력 가중치가 작게 나타난다.
한 결혼정보업체 홈페이지에 실린 ‘어느 뚱녀의 눈물 어린 결혼 성공기’라는 글은 보는 이들로 하여금 씁쓸한 입맛을 다시게 한다.
L모 씨는 겸손하고 상대방을 배려하는 따뜻한 마음씨와 맑은 목소리를 가진 여성이지만 아직 결혼 상대를 만나지 못했다. 나이가 서른이 넘자 L씨는 결혼을 염두에 두고 결혼정보회사를 찾았다.
L씨의 담당 매니저는 163cm에 75kg인 L씨에게 “결혼하려면 적어도 25kg은 빼라”고 조언해 주었다. “요즘 남자들은 살찐 여자를 가장 싫어한다”는 충고와 함께였다. 매니저의 말에 공감한 L씨는 악전고투 끝에 두 달 만에 25kg 감량에 성공했다. L씨는 최근 S대 공대 출신인 K씨를 만나 초고속으로 결혼한 뒤 신랑과 함께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다.
때때로 여성들은 자신이 원하는 파트너를 찾기 위해 결혼회사가 원하는 다이어트뿐 아니라 ‘성형수술’까지 감행한다. 이 같은 경우는 더 이상 어색한 일도 아니다. 혼기가 찬 대기업 직장인 이모(29) 씨는 “결혼을 위해 3년 전 성형수술을 했다”고 고백했다.
“대학시절에도 조금 더 예뻤으면 하는 욕망이 없었던 것은 아니에요. 학창시절 연애다운 연애를 못했거든요. 그래도 얼굴에 손을 대지는 않았어요. 그런데 3년 전 처음 맞선을 본 뒤 생각이 달라지더라고요. 이성과의 만남에서 실패가 계속되자 엄마가 ‘아무래도 안되겠다’면서 쌍꺼풀 수술을 권하시더라고요. 얼굴도 예뻐져 좋지만, 원하는 상대를 만나기 위해서라면 이 정도 ‘투자’는 감당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실제로 아름다워지기 위해 성형수술을 하는 여성들에게 ‘결혼’은 중요한 동기 가운데 하나다. 시민단체인 여성민우회가 국내 여고생과 여대생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성형수술의 동기로 ‘결혼’을 꼽은 응답이 3.4%를 차지했다. 결혼과는 거리가 있는 학생들조차 성형수술을 결혼의 전제조건으로 여긴다는 점은 간과할 수 없는 대목이다.
한국여성민우회 정은지 팀장은 “남성에 비해 여성들이 특히 외모에 신경 쓰는 것은 사회적 요구에서 비롯된다”고 설명한다.
“전족이나 코르셋 같은 풍습에서 볼 수 있듯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여성의 외모에 대한 사회적 요구가 많았어요. 이러한 현상은 현대사회에서 더욱 강해졌다고 봅니다. 여자로 태어나 능력만으로는 성공하기도 어렵지만, 외모 때문에 차별받고 싶은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결혼정보업체 ‘닥스’의 홍경희 매칭팀장은 한 발 더 나아가 “이제 성형한 여자의 얼굴은 결혼시장에서 더 이상 장애가 되지 않는다”고 말한다. 남성들의 의식이 여성의 성형에 대해 그만큼 관대해졌다는 것이다.
“한때는 성형수술한 여자는 싫다고 했던 남성이 꽤 있었지요. 하지만 요즘 그런 조건을 말하는 남성은 아주 드물어요. 성형한 여자 얼굴이 결혼의 불리한 조건이었던 시절은 이제 지났다고 봅니다. 오히려 요즘 남성들은 얼굴을 고쳤더라도 얼굴 예쁜 여자가 좋다는 반응이 많더군요.”
홍 팀장은 “회원 가운데는 6개월 만에 전혀 다른 얼굴이 돼서 나타난 여성이 있다”며 “이들은 실제로 미팅 상대자들로부터 더 좋은 반응을 얻었다”고 설명했다.
“요즘 남성들은 원하는 외모를 구체적으로 말하는 경우도 많아요. 송혜교의 얼굴에 옥주현의 팔·다리, 한채영 몸매를 가진 여자…. 뭐 이런 식이죠.”
‘짝퉁 학력’과 ‘짝퉁 직장’ 난무 추세
그렇다면 남성들은 결혼시장에서 어떤 조건들로 평가받을까? 우선 학력·직장·장래성 등이 꼽힌다. 이와 관련한 흥미로운 논문이 있다. ‘상류층 결혼에 관한 조사 연구’(오영숙·2004)에 따르면 ‘남성들에 비해 여성들은 결혼할 상대방이 자신보다 학력이 처지는 것을 가장 기피한다’고 언급했다.
남자에게 학력은 상류층으로 갈수록 여타 조건을 모두 덮고도 남는 ‘파워’를 갖기도 한다. 결혼정보회사 듀오가 지난해 실시한 ‘이상적인 배우자상’ 조사에서도 이러한 경향이 뚜렷하게 나타난다.
‘배우자 선택 시 고려사항’을 묻는 질문에 여성들은 남성들에 비해 경제력은 48.7%, 직업은 26.8%, 학력은 11.8%씩 가중치를 더 둔 것으로 나타났다. 여성들은 남자들을 고르는 데 외모와 같은 외적 요인보다 능력 요인을 가장 중요시하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은 모든 결혼정보업체의 가입 조건에서도 뚜렷이 나타난다. 여성과 달리 직장이 없는 무직 남성들은 회원 가입 자체가 원천봉쇄되기 때문이다. 이 세상에 직장이 없는 남성을 배우자로 원하는 여성은 아무도 없다는 전제가 깔려 있다.
결혼시장에서 남자의 학력이나 직장을 이렇게 따지는 풍토가 만연하다 보니 ‘짝퉁 학력’과 ‘짝퉁 직장’을 내세우는 이들도 나타나게 마련이다. 지난해 8월에는 한 기혼 남성이 결혼 전 아내와 처가 식구들에게 학력을 속였다 들통나 형사 처벌까지 받았다는 웃지 못할 보도가 나오기도 했다. 구체적인 사연은 이렇다.
직장인 나모(31) 씨는 결혼 전 아내와 처가에 서울에 있는 명문대를 다녔다고 속였다가 나중에 아내와 처가 식구들이 “명문대 졸업장 한번 구경해 보자”고 조르는 바람에 40만 원을 들여 ‘위조 졸업장’을 급조해 위기를 모면했다. 그런데 나중에 얄궂게도 경찰의 대학 졸업장 위조업체 검거 때 이름이 나와 가족들에게 망신을 당했을 뿐만 아니라 형사처벌까지 받게 된 것이다.
실제로 결혼을 앞두고 나씨처럼 배우자들에게 학력을 과시할 요량으로 대학 졸업장을 위조한 사람은 의외로 많다. 경찰 자료(2007년 통계)에 따르면 학력 위조의 가장 큰 이유로 ‘취업’(53.8%)을 위한 것이 가장 많았지만, ‘가족이나 배우자에게 보여주기 위해서’(7.6%), ‘자신을 과시하기 위해서’(10.6%) 학력을 위조한 경우도 적지 않게 나타났다.
결혼 상대자에게 학력과 직업을 속여 법정다툼을 벌인 경우도 있다. 1995년 12월 간호사로 일하며 방송통신대에서 법학 공부를 하던 김모(28·여) 씨는 주변 중매쟁이의 소개로 공무원 최모(31) 씨를 만났다. 당시 세종문화회관에 다니는 8급 기능직 공무원이었던 최씨는 김씨에게 자신을 7급 행정직 공무원으로 속였다.
가족의 말만 믿고 두 사람을 소개한 중매쟁이도 그 사실을 몰랐다. 소개받은 지 열흘 만에 약혼식까지 치른 그들은 결국 결혼을 앞두고 사실이 밝혀져 파혼했고, 김씨는 최씨에게 손해배상청구소송을 낸 것이다.
“학력 중시 풍조로 위조 졸업장도 횡행”
학력과 경력 위조에 대한 수요가 많다 보니 전문 위조업체들도 난립하고 있다. 인터넷 검색창에 ‘졸업증명서’라는 키워드를 치면 위조 사이트를 쉽게 찾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가격도 30만~40만원에 불과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배우자들로서는 이를 확인할 길도 별로 없다. 대부분의 대학이 개인정보 보호를 이유로 본인이나 정식 공문을 통한 요청이 아니면 졸업 여부를 확인해 주지 않기 때문이다.
사정이 이 지경이 되자 결혼정보업체들은 예비 배우자들의 학력과 직장을 조회하려는 요구가 필수코스가 됐다. 더구나 최근 사회적으로 학력 위조 파문이 불거지면서 이들 회사는 할 일이 더욱 많아졌다.
최근 미혼 남녀 3,000명을 참가시켜 ‘칠월칠석 3,000명 미팅 대축제’를 기획했던 S사는 학력 위조 파문 때문에 학력 검증이 안 된 참가자 1,400명을 축제에서 제외하는 결정을 내리기도 했다. 또 다른 업체는 국내 모든 대학과 연계해 회원들의 졸업 여부를 확인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기도 했다.
하지만 당사자들이 자신의 경력과 학력을 속일 마음만 있다면 이를 가려내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다. 결혼정보업체들이 일부 대학을 빼놓고는 회원들이 제출한 졸업증명서에 학력 확인을 의존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결혼정보업체 D사 관계자는 “외국 학위의 경우 거짓이면 책임지겠다는 서약서를 쓰기는 하지만, 이를 확실하게 검증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이런 사정은 대부분 결혼정보업체의 공통된 고민이다.
실제로 지난 8월 한국소비자연구원의 결혼정보업체와 관련한 피해 구제 사건 7건 중 3건이 결혼 상대의 자격 미달이나 거짓 정보와 관련된 것이었다.
결혼시장에서 이렇게 학력이나 경력을 위조하는 사례가 많은 이유는 분명하다. 자신의 처지보다 더 좋은 배우자를 만나고 싶은 그릇된 욕망 때문이다. 우리 사회에서 결혼은 신분상승을 꾀하거나 자신을 과시하는 수단이 돼버린 셈이다.
이러한 비뚤어진 욕망이 여성들의 성형수술 유행과 남성들의 학력 위조 같은 사회적 병리현상을 양산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는 ‘조건이 좋을수록 더 좋은 배우자를 만날 수 있다’는 사회적 선입견과 편견이 깊숙이 자리잡고 있다.
“결혼정보업체, 신분상승 욕구 자극”
수요와 공급의 시장 원리에 따른다면 결혼시장에서 자신이 원하는 조건을 낮추면 선택의 폭은 그만큼 넓어진다. 하지만 많은 미혼 남녀들은 여전히 ‘더 좋은 조건의 배우자’를 만나기 위해 불나방처럼 헤매고 있다. 결혼을 여전히 신분상승을 위한 기회라고 여기는 것이다.
‘벤츠 탄 왕자님’은 여성들의 꿈을 자극하는 말이다. 여성들의 이러한 ‘신데렐라 콤플렉스’를 부추기는 결혼 프로그램도 등장했다. 결혼정보회사인 W사는 지난 9월 초 ‘상류층 혼맥 프로그램’을 가동했다. 이 프로그램은 회원 가입 시 가입 기준에 따라 연봉 3억 원 이상, 자신의 재산 30억 원 이상, 부모님 재산 300억 원 이상인 일명 ‘333클럽’ 기준을 충족시키는 회원을 대상으로 했다.
‘나도 상류층을 만날 수 있을까?’로 시작하는 자가 테스트는 몇 가지 항목을 통해 내가 상류층 전용 프로그램을 이용할 수 있는지 여부를 심사한다. 이름·주민등록번호·주소·휴대전화번호를 적는 신상정보 말고도 10가지 테스트 문항을 더 거쳐야 한다.
자신의 배경과 능력·외모·성향·학력·직업·연봉에 외국어 구사 능력뿐만 아니라 부모의 최종 학력과 직장, 재산 등이다. 마지막으로 품위유지비(의류와 잡화)를 묻는 질문도 있다.
이 테스트에서 85점이 나와야 가입 자격이 주어진다. 회사 관계자는 ‘상류층 혼맥 프로그램’에 대해 “일반 여성들이 상류층과도 결혼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기 위한 프로그램”이라고 설명했다.
또 다른 결혼정보업체인 S사는 지난 6월 1,000억 원대 재력가의 ‘데릴사위 모집공고’를 계기로 데릴사위 프로그램을 지속적으로 가동하고 있다. 재력가 60여 명으로부터 데릴사위 모집 신청서를 접수해 남성들의 욕망을 자극하고 있는 것이다.
이들 재력가는 대체로 자신의 재산을 관리해 줄 수 있는 전문직 사윗감들을 구하는 경우가 많았지만, 그 밖의 독특한 조건들도 눈에 띄었다.
재산이 50억 원대인 모 금융회사 지점장은 결혼 뒤 자녀의 성을 외가 쪽 성으로 따라줄 사윗감을 구했다. 100억 원대 재력가인 한 여성은 외동딸에게 재산을 물려주는 만큼 마음 놓고 딸을 맡길 수 있는 든든한 사윗감을 원하기도 했다.
“이벤트성 공개 구혼 진실성 의심스럽다”
데릴사위 공개 모집에 이어 지난 9월 초에는 47세 여성 사업가가 자신의 결혼 상대를 찾는 공고가 올라오기도 했다. 20대 중반부터 사업에 전념하느라 혼기를 놓쳤다는 그는 개인 자산만 150억 원대를 보유한 재력가로 외모도 160cm의 아담한 체형과 앳된 얼굴을 하고 있다는 평가다. 이 여성은 37~50세의 대기업이나 전문직 종사자로, 키가 크고 포용력 있는 남성을 원했다.
회사 측은 이러한 공개 구혼 붐에 대해 “개인의 행복 추구 차원에서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설명하지만, 비난 여론도 만만치 않다.
시사평론가 김석수 씨는 상류층 혼맥 프로그램에 대해 “‘가진 자는 가진 자끼리, 못 가진 자는 못 가진 자끼리’ 하는 그릇된 결혼문화를 조장할 위험이 있다”고 비판적 견해를 밝혔다. 우리 사회에서 각종 문제를 양산하는 사회 양극화가 그릇된 결혼제도를 통해 기정사실화할 우려가 있다는 것이다.
네티즌들도 유명 결혼정보업체들의 데릴사위 공개 모집에 부정적인 입장이 대세였다. 아들 없는 부모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는 바는 아니지만, 재산을 미끼로 사윗감을 구하는 것을 볼썽사납다는 것이다.
결혼시장의 동종 업계 관계자들 사이에서는 “이벤트성 공개 구혼의 진실성이 의심스럽다”는 반응도 나왔다.
“일반적으로 재력가들은 자신을 공개하기를 꺼립니다. 오히려 자신이 가진 것을 지키려고 노력하지요. 1,000억 원대 재산을 가진 사람이 데릴사위를 찾는다거나, 상류층과 결혼할 수 있다는 것은 미혼 남녀들의 신분상승 욕구를 자극하는 홍보성 이벤트에 불과합니다.”
일반적으로 상류층은 다른 계층과의 결혼에 배타적 특성이 있다. 그러나 수많은 여성은 한 번쯤 영화 <프리티 우먼>이나 드라마 <파리의 연인>의 주인공이 되기를 꿈꾼다.
하지만 결혼은 ‘인생역전’을 꿈꾸는 로또 판이 아니라 엄연한 현실이다. ‘가짜’와 ‘짝퉁’이 판치는 세상에서 평생을 함께할 동반자를 찾는 일은 더욱 어려워졌다. 이혼율의 증가도 결혼이라는 현실을 경고하고 있다.
닥스의 홍경희 팀장은 결혼시장의 요즘 세태에 대해 이런 충고를 했다.
“상담자 중에는 정말 특이한 조건을 내세우는 분이 많아요. 특정 별자리, 미인대회와 승무원 출신을 선호하는 사람도 있지요. 식물성 여성이라며 청초하고 우아한 여성을 선호하는 남성도 있습니다. 하지만 안정된 결혼생활을 하는 분들은 상대의 조건보다 결혼 자체에 의미를 부여하고 상대를 존중하는 분들이 많더군요.”
천혜정 이화여대 교수는 젊은 남녀 간 이상적인 결혼에 대해 “정서적 안정과 인생의 동반자, 동기를 찾는 일”이라고 정의했다.
첫댓글 아~ 쪽팔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