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감상] 시래기 -이상인.
시래기
ㅡ이상인.
몸통들은 다 팔려가고
입다가 벗어놓은 헤지고 찢긴 겉옷만
즐비하게 널려 있다.
주섬주섬 주워 모아 한 아름 안고
집으로 돌아오는 신호등 근처
주위 사람들이 나를 시래기 쳐다보듯 한다.
끈으로 엮어 뒷 베란다에 매달고
시들시들 마르길 기다린다.
김장배추로 맛있는 김치가 되지 못한 것들
대롱대롱 매달려
문 열면 파리한 모습으로
삶을 서걱댄다.
몇 달 동안의 바람과 햇살이 스며서 만든
가쁜 숨결, 푹 우러나온 시래기국
밥 한 그릇 거뜬히 말아먹고 나니
그동안 그네들이 즐겁게 맞았던 빗방울들이
내 콧잔등에 송송 맺힌다
[프로필]
이상인 : 전남 담양, 한국문학 등단, 시집 [해변 주점] [연둣빛 치어둘]외 다수
[시감상]
사는 일에 지쳐 고단한 모습으로 귀가할 때면 떠오르는 단어가 파김치, 시래기 같은 단어들이다. 시인의 말처럼, 몸통 다 내어주고 남은 허접스러운 것이 아니라 몇 달 동안의 바람과 햇살이 스며서 만든 시래기에 된장을 풀어 만든 시래깃국에 밥 한 사발 뚝딱 하면 그렇게 든든할 수 없다. 부모의 모습이다. 이 시대를 사는 젊은 청춘들의 모습이다. 비록 지금은 피곤함에 절거나 또 다른 이유로 시래기처럼 보일지 몰라도 세월 지나 풍상에 단련되고 인고의 시간을 견뎌낸 후, 저녁 밥상 위에 맛깔난 시래깃국으로 행복을 듬뿍 선물할 것이다. [글/ 김부회 시인, 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