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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라룽라고개에서 바라본 시샤팡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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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에 ‘시작이 반’이라는 말이 있다. 화폭에 솟아오른 히말라야 14좌 그림산행을 시작한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티베트 히말라야 2좌만 남았다. 마지막 남은 초오유(8,201m)와 시샤팡마(8,027m) 그림산행을 마저 마치기 위해 KBS 다큐 제작팀과 함께 티베트를 찾았다.
티베트 히말라야를 가려면 청두나 베이징을 경유해 칭장고속열차를 이용하거나 현지 항공편으로 라싸로 가야 한다. 우리나라에서 직항노선이 없기 때문이다. 항공편을 이용해 라싸에 곧바로 도착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약간의 고소증세를 느끼게 된다. 티베트 구수도인 라싸가 해발 3,700m에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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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위)카로라고개에서 바라본 암드록초. (아래)초르텐이 있는 카롤라빙하.
- 한 폭의 산수화처럼 아름다운 암드록초
라싸에서 하루를 더 머물고 티베트 제2의 도시인 시가체(3,900m)로 향했다. 초오유 BC를 가기 위해서다. 시가체까지는 라싸에서 280km로 6시간 정도 걸린다. 붓다리버 강줄기가 흐르는 드넓은 분지 중앙에 고속도로가 일직선으로 파죽지세처럼 뻗어 있다. 차창 밖으로는 눈발이 조금씩 날리기 시작한다. 강을 건너 주슈 갈림길에서 우리는 왼편으로 강변을 따라 진행하는데 점점 더 눈발이 세차게 몰아치지기 시작한다.
카로라(Karo La·4,900m)고개를 넘어 티베트의 3대 성호(聖湖) 중 하나인 광활한 암드록초(羊卓湖水:4,488m)를 바라본 후 티베트 제2의 도시인 시가체(3,900m)에 도착해 1박을 했다.
카로라를 넘으며 바라본 산들은 나무 한 그루 풀 한 포기 없는 민둥산으로 속내를 그대로 드러내고 편하게 누워 있다. ‘누드산’들을 바라보며 마치 누드 크로키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산은 흰 눈이 덮여 있어 여인의 앞가슴처럼 선이 곱다.
고갯마루에 올라서니 몸에 중심을 잡기 어려울 정도로 강한 칼바람이 얼굴을 칼로 에이듯 후려친다. 그러나 이곳에서 내려다본 670㎡에 이르는 광활한 암드록초호수는 한 폭의 그림처럼 아름다운 장관을 연출한다. 빙하 녹은 옥빛 물, 군청색 하늘, 그 옥빛 물에 비친 눈 덮인 하얀 설산은 그대로가 산수화다. 여기에다 무엇을 더 어떻게 표현하려고 붓을 들겠는가. 붓을 내려놓고 절경 속으로 빠져드니 세속에 찌든 가슴 옥빛 고운 물로 마음이나 정화하고 가라 한다.
여행은 이래서 좋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고소증에 시달리며 너무 고통스러워 오던 길을 되돌아가고 싶기도 했지만 이런 황홀한 비경 앞에 서면 모든 고통이 한순간에 사라지고 이곳이기 때문에 느낄 수밖에 없는 벅찬 감동과 희열에 행복하다.
고갯마루 광장에는 혹한의 추위에 양모천으로 눈만 보인 채 얼굴과 온몸을 감싼 티베트 여인들이 목걸이와 팔지를 내밀며 싸게 준다고 사라 한다. 남자들은 티베트 개를 몰고 다니며 기념촬영을 하라고 하지만 개 한 마리가 늑대 4마리를 상대한다는 사납기로 이름난 덩치 큰 티베트견의 험상궂은 외모에 선뜻 다가가기가 겁이 났다.
암드록초호숫가로 내려서서 카롤라빙하(Kharola Glacier·7,119m)를 올려본다. 카롤라빙하 정상을 이곳 사람들은 넴칭캉쌍이라고 부른다. 빙하 아래 초르텐이 있는 곳에서 사진 한 컷을 촬영하는데 여인이 달려와 50위안을 내라고 한다.
바람에 제멋대로 펄럭이는 오색 룽다가 잔뜩 휘감긴 철탑이 우뚝 서 있는 말라호수 옆 도로를 따라 달리는 차창 밖의 풍경들은 참으로 평온하다. 군데군데 야크와 양떼들이 고원지대의 넓은 벌판에서 무리지어 마른 풀을 뜯고 있는 모습이 목가적이다. 주위의 산들은 나무 한 그루 없는 민둥산으로 멀리서 보면 밀가루 반죽을 아무렇게나 버려놓은 것처럼 시작도 끝도 없는 산들이 그리다 만 풍경화처럼 두루뭉술하게 솟아올랐다.
조금 더 진행하니 ‘서장자치구에서 상하이 인민광장까지 5,000km’라는 커다란 글씨와 G318번국도 건설완공기념탑이 세워져 있다. 2003년 10월에 완공했다. 이곳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고 5,254m고개를 올라서니 수많은 타르초가 펄럭이는 철제 아치에 ‘歡迎 再來 珠穆朗瑪峰’ ‘國家級 自然保護區’라는 간판이 붙어 있다. 초모랑마(에베레스트) BC가 가까운 모양이다.
도로를 따라 차량으로 조금 내려가니 초모랑마 BC로 가는 갈림길이 나타난다. 오래전부터 티베트에서는 에베레스트 산을 ‘대지의 여신’을 뜻하는 초모랑마(대지의 여신)로, 네팔에서는 ‘세계의 어머니 여신’이라는 사가르마타로 불러왔으며, 중국에서는 초모랑마를 음차해서 주무랑마(珠穆朗瑪)라고 불렀다.
1846년 영국이 인도에서 식민정책을 펴나갈 때 지도를 만드느라 히말라야 봉우리에 대한 측량을 실시했다. 당시 에베레스트 산의 비공식 명칭은 ‘피크(봉우리)15’였다. 영국의 측량국장이었던 앤드루 워는 9년여 간의 측량을 지속한 결과, ‘피크15’가 지상에서 가장 높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워는 전임 측량국장인 조지 에베레스트(Everest)의 공적을 기리기 위해 ‘피크15’를 ‘마운트 에베레스트(Mt. Everest)’라고 명명한 것이 지금 에베레스트라고 부르게 된 것이다.
끝없는 고원의 평원지대를 달리다보니 딩그리(Dingri·4,340m)가 가까워지고 초오유가 신령한 모습을 드러낸다. 티베트는 해발고도 4,000~4,800m의 완만한 구릉 모양의 고원이 펼쳐져 있으며 소택지와 크고 작은 염호(鹽湖)가 발달되어 있다. 그 평원 위에 허리 잘린 히말라야 설산들이 솟아 있다. 지금 내가 달리고 있는 대부분의 곳들이 4,000m 이상이니 그럴 법한 이야기다. 내가 지금 4,000m 위에 있다는 느낌보다는 드넓은 평야지대를 달리고 있는 기분이다. 약간의 고소증만 느끼지 않는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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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BC에서 바라본 시샤팡마.
- 언어가 안 통해도
술과 춤이 있으면 즐겁기 마련
딩그리에 도착해 게스트하우스에 짐을 풀고 곧바로 언덕 위 조망처에 올랐다. 언덕 위에는 오색 룽다가 펄럭이고 통신용 안테나가 설치되어 있다. 이곳에 올라서니 초모랑마(8,848m)와 초오유(8,201m), 시샤팡마(8,027m) 능선이 한눈에 들어왔다.
드넓은 딩그리 평원 끝자락에 솟은 초오유가 손에 잡힐 듯 가깝다. 추위도 잊은 채 네팔에서는 볼 수 없는 피라미드처럼 솟아오른 에베레스트 북면의 위용에 빠져들었다. 잠시 후 에베레스트 첨봉에 붉은 기운이 감돌더니 주위의 설산들도 서서히 낙조가 물들기 시작한다. 촬영팀은 한순간도 놓치지 않으려고 열심이다. 나는 스케치북 위에 비경을 내려놓기에 바쁘고, 티베트에서 생활한 지 오래 되었다는 조선족 가이드 오경표씨는 촬영팀에게 이곳저곳을 설명하느라 열심이다.
딩그리는 조그만 마을로 다른 이름은 ‘올드 딩그리’다. 이 마을에 있던 딩그리 현청(縣廳)이 북쪽 30km 밖으로 이전하면서 딩그리는 작고 휑한 마을로 남았다. 거리에는 주인 없는 개들이 넘쳐났고, 마을을 관통하는 ‘G318’ 국도변에 늘어선 티베트 전통 흙집은 벌거숭이처럼 속살을 드러내고 있었다. 게스트하우스 방은 토굴 같았다.
온기라고는 하나도 없는 게스트하우스 침대에 누우니 뼛속까지 한기가 파고드는 것 같았다. 이렇게 한기를 느끼면 고소증에 시달릴 것이 뻔하기 때문에 미리 두통약을 먹고 버텨 보지만 밤이 깊어지자 점점 두통이 심해지기 시작한다. 새벽녘에는 두통이 너무 심해 잠을 이룰 수 없었다. 아침이 되어 차량에 비치해 둔 산소호흡기로 1시간쯤 호흡을 고르고 나니 조금 나아진 것 같았다. 네팔에서는 하루하루 고소 적응을 하며 고도를 높이는데 티베트는 4,000~5,000m를 차량으로 계속 이동하게 되니 고소적응할 시간이 없어서 더욱 그렇다. 그래서 차량에 아예 대형 산소통을 비치하고 다닌다.
짜파티와 달걀 프라이로 아침식사를 마치고 딩그리 평원 중앙에 솟아 있는 조망 좋은 동산에 올라 나는 초오유를 스케치하고 다큐제작팀은 주위 풍광을 열심히 촬영했다.
촬영을 마치고 평원을 관통하는 신작로 같은 자갈길을 자동차 성능검사라도 하듯 흙먼지를 일으키며 질주해 초오유 BC에 도착했다. 초오유 BC는 현재 차이나 BC라고 부른다. BC에서 바라본 초오유는 가까이 왔다는 것 말고는 조금 전 보았던 모습이나 별반 다를 것이 없었다. 시즌이 끝나는 시기라서인지 BC에는 텐트 한 동 없이 썰렁하게 바람만 불어댔다.
초오유는 에베레스트 산에서 북서쪽으로 30km 정도 떨어진 곳에 솟아 있다. 초오유라는 산 이름의 초오(Cho O)는 산스크리트어로 신성(神性)을 뜻하는 ‘초’와 여성을 뜻하는 ‘오’의 합성어로 여신을 의미한다. 여기에 터키옥(玉)을 뜻하는 ‘유’를 합쳐 초오유는 ‘터키 보석의 여신’ 또는 ‘청록 여신이 거주하는 산’이란 뜻이 된다.
티베트 히말라야는 네팔과 파키스탄과는 달리 BC까지 차량 진입이 가능하기 때문에 트레킹 개념이 없어 원정대 말고는 찾는 트레커가 거의 없다고 한다. 굳이 트레킹을 고집한다고 해도 황량한 벌판을 마냥 걸어야 하기 때문에 별다른 의미가 없어서 그렇다고 한다.
초오유 BC에는 입산 관리를 하는 경비원 한 사람이 지키고, 반대편 높은 곳에 군부대가 있어 촬영을 금하고 있었다. 돌아오는 길에는 KBS 다큐제작팀이 티베트 전통가옥들을 촬영하기 위에 작은 마을에 들렀다. 마을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에서 체격이 우람한 원주민에게 락시 몇 잔을 얻어 마시고는 함께 어깨동무를 하고 이들이 추는 전통춤을 어설프게 따라 추며 한바탕 박장대소했다.
언어가 통하지 않아도 세상 어느 곳을 가나 술과 춤이 있으면 즐겁기 마련이다. 비록 우리 눈에는 이들의 현재 삶이 초라해 보이지만 이들의 진솔하고 해맑은 미소에서 진정한 행복을 느끼게 된다.
딩그리에서 라룽라고개(5,124m)를 넘어 니알람(Nyalam·3,750m)으로 향했다. 니알람으로 가는 길은 소설 속에 나오는 설국 같은 신비함을 느끼게 했다. 끝없이 펼쳐진 드넓은 설원의 그 끝자락에 신기루처럼 솟아오른 시샤팡마, 그 주위를 키가 낮은 설산들이 마법의 성곽처럼 에워싸고 있어 신들의 궁전처럼 느껴졌다.
시샤팡마(Xixabangma)는 티베트어로 ‘초원 위의 산맥(시샤=산맥, 팡마=초원 위)’이라는 뜻으로, 티베트 원주민들은 시샤팡마의 빙하가 북쪽 초원과 호수에 얼음물을 대주기 때문에 이 산을 성봉(聖峰)으로 간주한다. 이 산은 산스크리트어로 ‘성스러운 장소’ 혹은 ‘신의 거주지’라는 의미인 ‘고사인탄(Gosainthan)’이 오랫동안 사용돼 왔지만, 현재는 티베트 명으로 ‘일기 변화가 극심한 산’을 의미하는 ‘시샤팡마’가 통일되어 사용된다.
이 산은 8,000m급 봉우리 중에서 유일하게 중국 국경 안에 위치한 관계로 14좌 중 가장 늦은 1964년에야 허륭 대장이 이끄는 중국원정대에 의해 초등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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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위)짜파티를 굽는 사람들. (아래)시샤팡마 남벽 BC.
- 시샤팡마 BC 간판 보는 순간
알 수 없는 눈물 쏟아져
니알람에 도착하니 고도가 많이 낮아져서 발걸음이 산뜻하고 활동에 지장이 없다. 저녁식사 때 반주로 빠이주까지 한 잔 하고 나니 고소에 대한 공포도 사라지고 14좌 중 마지막 하나 남은 시샤팡마를 마음속으로 그려보니 들뜬 기분에 가슴이 벅차오른다.
시샤팡마 BC의 전진기지가 되는 곳이 니알람마을이다. 남면 BC에 진을 치는 원정대와 트레킹팀은 어김없이 이 마을을 거쳐야 한다. 야크에 짐을 싣고 움직이는 캐러밴이 마을 뒤편에서 출발하기 때문이다. 협곡에 이루어진 니알람마을은 인구는 1,000여 명으로 규모는 도시와 마을의 중간쯤이다.
야크 섭외를 위해 하루 더 휴식을 취하고 다음날 아침에 시샤팡마 남벽 BC(5,370m)로 출발했다. 얼마 전 폭설이 내려 BC 트레킹이 불가능하다고 하지만 일단은 시도해 보기로 하고 다음날 지프로 냐낭푸추계곡까지 30여 분을 올랐다. 이곳부터 트레킹이 시작된다.
쾌청한 날씨에 마을 이장 계상(50)이 야크 몰이꾼 3명과 야크 5마리를 몰고 미리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이장이 앞장을 서며 산길로 인솔했다. 한참을 걷다 조망 좋은 곳에서 휴식을 취하며 뒤돌아본다. 역광을 받은 설산과 잡목들 그리고 키 낮은 향나무들이 그림처럼 멋스럽다. 이장 계상은 니알람에서 태어나서 살았다고 한다. 이곳의 주농사는 감자며, 야크나 염소를 키워 생활 한다고 한다. 이장은 야크를 150마리 정도 키우는데 한 마리당 9,000~1만 위안 정도 나간다고 한다.
이쪽으로도 트레킹족들이 많이 오냐고 물었더니 “트레킹족은 거의 없고, 시즌에 원정팀이 5~6개팀 정도로 온다”고 했다. 얼마 전 폭설로 인해 2개 팀이 짐을 BC에 놓고 왔는데 눈 때문에 야크가 들어가지 못해 짐을 못 가져왔다고 이장이 덧붙여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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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위)히말라야 빙벽. (아래)딩그리 평원과 초오유.
- 시샤팡마 남벽에서 흘러내린 빙하 두 개가 합수하는 지점 넓은 초원에서 티베트 첫 캠핑을 시작했다. 고도 4,600m 지점이다. 이장과 함께한 야크몰이꾼들은 마른 나뭇가지들을 주워와 불을 피워 놓고 영하 10℃에서 비닐 한 장으로 밤을 새웠다.
다음날 아침이 되니 이장이 눈 때문에 남벽 BC는 트레킹이 불가능하다고 했다. 니알람으로 돌아가 다음날 새벽에 시샤팡마 북벽 BC로 가기로 가이드와 의견을 모으고 하산했다. 리알람에서 북벽 BC까지는 200km로 약 3시간30분이 소요된다.
다음날 북벽 BC로 가는 길에 라룽라고개(5,124m)에서 초오유의 일출을 보기 위해 이른 새벽에 서둘러 출발했다. 해가 뜨는 순간 초오유의 만년설이 황금빛으로 빛났다. 은백의 세상 모두가 황금빛 세상으로 변했다.
일출의 장관을 마치고 양떼들과 야크떼가 무리를 지어 마른 풀을 뜯고 있는 드넓은 갈색 초원지대를 달려 북벽 BC에 도착했다. 우뚝 선 시샤팡마 BC 간판을 보니 알 수 없는 눈물이 한없이 쏟아졌다. 간판에는 ‘希夏邦瑪峰 大本營, BASE CAMP OF THE Mt, SHISHAPANGMA 海拔 5,764m’라고 쓰여 있다. 이것으로 화폭에 솟아오른 히말라야 14좌 그림산행을 마무리한다.
나는 회귀본능이 강한가보다. 14좌를 처음 시작했던 네팔 카트만두로 다시 돌아가기 위해 니알람을 떠나 국경검소가 있는 장무에서 1박을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