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김대중 편집인의 IPI 연설 내용 가운데서 거론된 노무현 민주당 대선 후보 등 관련 당사자들은 일단 발언 내용에 대해 한결같이 비판적인 입장을 드러냈다.
노 후보 진영의 유종필 공보특보는 <오마이뉴스>와의 전화통화에서 "아직 노 후보는 이 사실을 모르고 있다. 그러나 당사자가 하지도 않은 '언론사 국유화' 발언을 마치 한 것처럼 기정 사실화하다니 역시 조선일보식 행태이다. 왜곡보도를 일삼는 조선일보답다"고 말했다.
전날 노 후보의 관훈토론회에 참석했다가 기자협회에 들러 이 같은 사실을 인지했다는 남영진 언론특보도 "진위 확인도 없이 국제단체 회의석상에서 그런 말을 하다니 납득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언론계는 <조선일보>와의 친소 관계에 따라 미묘한 입장차를 드러냈다.
우선 언론개혁을 지지하고 조중동에 대해 비판적인 입장을 견지해온 <한겨레>, <경향신문>은 "조중동이 좌파적인 신문들로부터 공격을 받고 있다"는 김 편집인의 발언에 대해 민감한 반응을 보였다. 이 두 신문사는 16일자 신문에 'IPI 발언 파문'에 대한 기사를 게재, 자사의 입장을 밝힐 예정이다.
강기석 <경향신문> 편집국장은 "보도가 사실이라면 신문사 편집인으로서의 자격이 의심되는 발언"이라고 강한 톤으로 비판했다. 강 국장은 이어 "우리는 스스로를 '좌파적 신문'이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다. 진보와 개혁을 표방하는 우리 신문의 보도 방향은 유럽의 좌파와 같은 카테고리에 들어가지 않는다"며 "명시적으로 자신을 좌파라고 표방한 신문사들이 없는 상황에서 어처구니없는 발언"이라고 의미를 평가 절하했다.
강 국장은 또 "좌파적 언론이라는 규정은 스스로의 이념적 스펙트럼을 분명히 드러낸 진보정당의 기관지에나 어울린다"고 덧붙였다.
최성민 <한겨레> 여론매체부장은 한결 강도 높은 비판을 퍼부었다. 최 부장은 "정부에서 언론사 세무조사를 해서 '없는 비리'를 만들어냈나? 세무조사 이후 언론사들이 정부에 비판적인 기사를 못 쓴 적이 있었는가?"라고 반문하고 "불순한 이념논쟁을 노린 음모적인 발언"이라고 논평했다.
최 부장은 특히 "동아일보 이현락 편집인이 사임한 것도 자기 회사에서 비리사건을 먼저 보도한 후 (비리 사실이) 들통났기 때문이 아닌가? 외국에 나가서 왜곡발언이나 하고 다니는 것은 국익 훼손이다"며 "<조선>에는 당장 유리할 지 몰라도 한국의 언론인과 국가의 명예에 먹칠을 하는 발언"이라고 우려를 표명했다.
반면, 조중동은 자사 내지 업계내의 영향력 있는 언론인의 발언에 대해 가타부타 평가를 내리는 데 주저하는 분위기다.
"이현락 전 편집인이 스캔들에 연루됐다는 정부 주장 때문에 사임했다"는 부분에 대해 동아일보의 관계자는 "동아일보를 언급한 연설문 텍스트를 보지 않았고 이 전 편집인 자신의 입장표명이 없는 상황에서 함부로 평가할 수 없다"고 말을 아꼈다.
조선일보 직원들은 하나같이 "김 편집인이 한 말이니 그가 스스로 입장을 밝혀야 하지 않느냐"며 사견으로라도 발언내용에 대해 긍정 또는 부정을 표시하는 것조차 꺼려했고, 김 편집인 자신 또한 "IPI 연설에 대한 취재에 응할 생각이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언론단체들은 김 편집인의 평소 소신과 전세계 신문사주들의 모임이라는 IPI의 성격을 감안, 발언에 큰 의미를 두지 않았다.
전국언론노동조합연맹 김용백 위원장은 "발언 자체가 왜곡된 부분이 많고 '좌파적 신문'이 어떤 것인지에 대해 명시하지도 않았지만, 김 편집인의 평소 소신을 반영한 발언으로 본다. 언론사 사주들의 모임인 IPI는 사주들의 입장을 대변해왔고, 작년에도 언론개혁에 찬물을 끼얹는 행동을 해왔다. 이런 발언이 나올 때마다 일일이 대응해야 하는 지 고민이다"고 말했다.
민주언론운동시민연합 이유경 매체홍보부장도 "IPI라는 단체가 우리 언론의 상황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하고 있음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보수'를 가장한 극우 수구언론의 편집인이 좌우 대립에 대해 말할 자격도 없다"고 말했다.
IPI, 경영진 이해 주로 반영하는 국제단체 권언유착 시절 한국내 언론 탄압에는 '침묵'
IPI는 지난 9일 이사회를 열어 한국을 러시아, 스리랑카, 베네수엘라, 짐바브웨와 함께 언론자유 탄압 감시대상국으로 계속 묶어두기로 결정했다. IPI는 또한 부회장 및 이사 임기가 만료된 방상훈 조선일보 사장에 대해서도 "한국 정부로부터 압력을 받고 있는 한' 부회장 직무를 계속 수행하도록 의결, 정부와 조중동의 대립에 관한 한 조중동의 손을 들어주고 있다.
'한국에서의 언론사 세무조사'에 대한 IPI의 시각은 폐막일 채택된 '법적, 행정적 공격에 대한 결의문'에 합법을 가장한 언론탄압의 사례로 '비판언론을 겨냥한 세무조사', '언론사의 소유지분 제한' 등을 들고 있는 것에서도 드러난다.
세계 100여 개국 언론사의 사주와 주필, 편집국장 등 간부들이 주로 참여하는 IPI는 평기자들이 중심이 된 IFJ(국제기자연맹)에 비해 경영진의 의견을 주로 반영하는 국제언론단체이다. 사주들의 이해를 반영하기에 자유주의적 노선을 추구하고 평등 등의 가치는 상대적으로 등한시 하는 입장을 보여왔다.
IPI는 1961년 민족일보 사건과 75년 동아일보 광고 탄압에 대해서는 한국의 군사정부를 비판하는 성명서를 발표하기도 했으나 80년 전두환 정권 출범 이후 노태우, 김영삼 정부 시절에는 한국의 언론 상황에 대한 별다른 액션을 취하지 않았다. 이 당시 권력과 유착된 IPI 한국위원회는 '독재정권의 언론탄압'을 IPI 본부에 제대로 보고하지 않았으나 1999년 홍석현 당시 중앙일보 사장이 탈세 혐의로 구속된 이후 상황이 바뀌었다.
특히 작년 언론사 세무조사 후 그해 9월 IPI가 한국을 '언론자유탄압 감시대상국'에 포함시킨 이후로는 정부와 첨예한 의견대립을 보이고 있다. 청와대는 IPI의 이번 결정에 대해서도 "프리덤하우스 등이 한국을 언론자유국으로 분류한 상황에서 이해할 수 없는 결정"이라고 강력 반발하고 있다.
<1신: 15일 오후2시14분>
지난 3월19일 "김대중 대통령과 방송이 노무현을 밀어준다"는 취지의 연설을 해 물의를 일으켰던 조선일보 김대중 편집인이 이번에는 해외의 언론인들을 상대로 "좌파적 신문들(left leaning newspapers)이 조중동을 공격한다"는 발언을 해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김 편집인은 또 "동아일보 편집인은 스캔들에 연루됐다는 정부 주장 때문에 사임했다" "이번 대선결과에 따라 민간언론의 존재가 심각한 위협을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기자협회보>(www.jak.or.kr)는 15일 "국제언론인협회(IPI) 총회(슬로베니아 류블랴나)에 참석한 김 편집인이 11일(현지시간) 위와 같은 주장을 펼쳤다"고 보도했다. IPI의 초청을 받아 이번 총회에 참석한 김 편집인은 민간언론의 편집권 독립을 주제로 한 토론의 패널로 참석, 이 같은 연설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 편집인의 연설문은 IPI(www.freemedia.at)의 류블랴나 총회 특집 홈페이지(www.rtvslo.si/ipi/s17.html)에 공개되어 있다.
김 편집인은 연설문에서 "정부는 수년에 걸쳐 언론에 영향을 미치기 위한 전술을 수정해왔다. 예전에는 간단히 인사담당자를 위협하거나 편집자를 대놓고 위협해 논설내용을 바꾸는 물리적인 방법을 썼다면 요즘에는 그 수단과 방법이 매우 교묘해졌다"고 전제하고, "직접적인 위협이나 압력은 없어졌으며 기자를 체포하는 일도 더 이상 없지만 도청, 감시, 비공개 수사는 여전히 행해지고 있다. 가장 관심을 끄는 전술적 변화는 기자나 논설위원을 목표로 삼지 않고 사주의 개인적 약점을 들추는 방법으로 사주를 직접 겨냥했다는 것"이라며 지난해 언론사 세무조사를 예로 들었다.
▲ IPI 홈페이지에 공개된 조선일보 김대중 편집인의 연설문(영문)
김 편집인은 이어 "며칠 전 한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고 독립적인 신문 가운데 하나인 동아일보의 편집인(이현락)이 스캔들에 연루됐다는 정부 주장 때문에 사임했으며 그는 비윤리적인 언론인으로 낙인 찍혔다"고 밝혔다. 동아일보 측에 따르면, 이 편집인은 지난 5일 "파크뷰 아파트 특혜 분양과 관련해서 자신의 이름이 오르내리고 있다"는 보고를 받고 다음날 사표를 제출했다. 현재 동아일보의 편집인은 김학준 대표이사 겸 사장이 겸임하고 있다.
김 편집인의 공세는 노무현 민주당 대선 후보에게도 이어졌다. 김 편집인은 "집권 민주당의 차기 대통령 후보 지명자는 한발 더 나아갔다. 그는 어느 한 신문사를 국유화하겠다고 말했으나 나중에는 그런 이야기를 했는지 기억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며 "그는 조선일보가 자신에 대해 왜곡된 보도를 했다면서 조선일보를 상대로 격렬한 투쟁을 하겠다고 수 차례 공언했다. 이는 곧 자신이 차기 대통령에 당선되면 그렇게 하겠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한국은 12월 대선 결과에 따라 민간언론의 존재 자체가 심각한 위협에 직면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김 편집인은 "한국언론은 대개 두 부류로 나뉘어 서로 상대방을 헐뜯는다. 조선일보와 동아일보, 중앙일보는 좌파적인 신문들로부터 공격을 받고 있다. 결론적으로, 민간신문사간의 전선은 정치적 강자들과 이를 비판하는 세력들 사이에 형성되어 있다는 것"이라고 조중동 비판 언론들을 비난했다.
김 편집인은 한편으로는 "일반인들에게 전제적인 민간언론이라는, 잘못된 인식을 심어준 점 역시 스스로 고쳐나가야 한다"며 "한국에서 기자가 되거나 신문사를 경영하려면 절대적으로 깨끗해야 할 뿐 아니라, 비리에 한발짝도 접근해서는 안된다. 특히 정치와 거리를 두어야 한다"고 강조하며 연설을 맺었다.
김 편집인의 발언은 조선일보와 불편한 관계에 있는 노무현 후보 진영과 언론 개혁에 동참하고 있는 시민, 사회단체들의 반발을 일으킬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 12일 폐막한 IPI 총회에는 국내 언론사중 조선일보 방상훈 사장, 중앙일보 이제훈 사장, 동아일보 김학준 사장, 문화일보 김정국 사장, YTN 백인호 사장 등이 참석했다.
다음은 <기자협회보>가 보도한 김 편집인의 IPI 연설문 <전문>이다.
한국은 정부 소유의 KBS를 제외한 거의 모든 언론사가 형식상으로는 민간언론이다. '민간'이라는 말이 소유구조 또는 독자적인 편집권에 관련된 표현일 수 있으나 적어도 언론사 소유구조 차원에서는 그렇다.
소유구조 면에서도 한국언론은 여러 형태가 있다. 가족, 종업원, 정부 또는 재벌이 소유하는 언론사가 있다. 편집권 독립에 관한 한 한국에서 '공영'과 ‘민간'의 차이를 찾는 것은 의미가 없다. '민간'이 반드시 ‘독립’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언론에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정부 의도가 너무 강하기 때문에 정부의 힘이 미치지 않는 민간언론은 없다. 각 언론사의 저항의 정도에 차이가 있을 뿐이다.
물론 한국의 민간언론은 사주, 주주, 광고주와의 이해관계를 극복하는 데 몇 가지 문제점을 안고 있다. 그러나 민간언론의 진짜 장애물은 정치권력이다. 언론사주와 광고주들에게서 받는 압박은 정부 압력에 비하면 거의 미미한 수준이다.
정부는 수년에 걸쳐 언론에 영향을 미치기 위한 전술을 수정해왔다. 예전에는 간단히 인사담당자를 위협하거나 편집자를 대놓고 위협해 논설내용을 바꿨다. 이런 것은 눈에 보이는 물리적인 방법이었다. 요즘에는 그 수단과 방법이 매우 교묘해졌다. 직접적인 위협이나 ,압력은 없어졌으며 기자를 체포하는 일도 더 이상 없다. 그러나 도청, 감시, 비공개 수사는 여전히 행해지고 있다. 가장 관심을 끄는 전술적 변화는 기자나 논설위원을 목표로 삼지 않고 사주의 개인적 약점을 들추는 방법으로 '사주를 직접 겨냥했다는 것이다.
지난해 세무조사가 이 같은 사례를 보여준다. 한국 민간언론은 작년에 정부로부터 치밀한 세무조사를 받았고 신문사 사주 3명이 천문학적인 추징금 부과와 함께 구속됐다. 이에 대한 재편은 아직도 진행 중이다. 현 정부는 한국 역사상 가장 가혹한 언론탄압을 한 정부로 기록될 것이다.
그리고 며칠 전 한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고 독립적인 신문 가운데 하나인 동아일보의 편집인이 스캔들에 연루됐다는 정부 주장 때문에 사임했으며 그는 비윤리적인 언론인으로 낙인 찍혔다. 더구나 언론탄압 당시 정부조치를 지지했던 상당수 여당 국회의원과 몇몇 진보적인 NGO가 언론사 소유지분을 제한하는 법안을 제출했다. 최대 주주가 30% 이상의 지분을 가질 수 없다는 법률개정이 한 예다. 이 법안은 아직 국회에 계류 중이다.
그리고 집권 민주당의 차기 대통령 후보 지명자는 한발 더 나아갔다. 그는 어느 한 신문사를 국유화하겠다고 말했으나 나중에는 그런 이야기를 했는지 기억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그는 조선일보가 자신에 대해 왜곡된 보도를 했다면서 조선일보를 상대로 격렬한 투쟁을 하겠다고 수 차례 공언했다. 이는 곧 자신이 차기 대통령에 당선되면 그렇게 하겠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같은 압력은 민간 신문사가 집권당에 협력하지 않고 정부의 보건의료. 교육, 북한 문제 등에 대해 줄곧 비판을 해왔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한국의 민간 언론사에는 또 한가지 기이한 현상이 존재하고 있다. 한국언론은 대개 두 부류로 나뉘어 서로 상대방을 헐뜯는다. 이는 정상적인 경쟁의 차원을 넘어서는 것이다. 언론사의 이념적 입장에 관한 싸움이다.
예컨대, 조선일보와 동아일보, 중앙일보는 좌파적인 신문들로부터 공격을 받고 있다. 결론적으로, 민간신문사간의 전선은 정치적 강자들과 이를 비판하는 세력들 사이에 형성되어 있다는 것이다. 소유구조 변화 운운은 비판언론을 침묵시키겠다는 구실일 뿐이다.
지금 한국은 12월 대선을 앞두고 중요한 실험을 하고 있다. 이번 대선 결과에 따라 민간언론의 존재 자체가 심각한 위협에 직면할 수 있으며 민간언론의 형태에 변화가 생길 수도 있다. 이 같은 갈등의 저변에는 이념적 대결도 존재한다. 민간언론이 자체 정화 과정을 거쳐야 한다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투명한 경영과 정확한 보도, 그리고 독자들의 신뢰를 확보해야 한다는 점이다. 일반인들에게 전제적인 민간언론이라는, 잘못된 인식을 심어준 점 역시 스스로 고쳐나가야 한다.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언론은 사설집필에 있어서 시장논리가 아닌 정치적 입장에 따라 영향 받는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다.
이같은 환경 속에서 편집권의 독립을 유지하느냐, 못하느냐가 문제다. 오랜 경험을 통해, 나는 정치권력이 언론자유를 보장해주는 것을 기다리기 보다 언론이 스스로 이를 지키는 편이 낫다고 말할 수 있다. 모든 정치권력은 비판받는 것을 싫어하기 때문이다. 언론자유 수호는 기자, 편집인, 논설위원, 발행인 등 모든 언론 총사자들의 정신에 달려있다.
우리들은 지난해 이 같은 어려움을 극복했다. 한국에서 기자가 되거나. 신문사를 경영하려면 절대적으로 깨끗해야 할 뿐 아니라, 비리에 한발짝도 접근해서는 안된다. 특히 정치와 거리를 두어야 한다.이는 곧 죽음을 의미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