핀란드군이 구소련에 대항하면서 사용했던 다양한 화염병들.
구소련 몰로토프 장관 “굶주린 이웃국가에 빵 투하” 선전
핀란드군, ‘몰로토프 칵테일’ 별명 붙인 화염병으로 항전
화염병의 영어 별명이 몰로토프 칵테일(Molotov cocktail)이다. 과격한 시위 현장에서, 혹은 대전차 화기가 없을 때 유리병에 휘발유 등을 담아 불을 붙여 던지는 무기가 화염병이다. 여기에 제2차 세계대전을 전후해 구소련의 외무장관을 지냈던 뱌체슬로프 몰로토프의 이름이 붙었다. 이유가 무엇일까?
몰로토프 칵테일의 유래에서 대중이나 적군을 선동하는 선전전(propaganda)이 잘못되면 어떤 부작용이 나타나는지 사례를 찾을 수 있다.
1939년 11월 30일, 구소련군이 국경을 넘어 핀란드로 진격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겨울전쟁으로 알려진 핀란드와의 전쟁이 시작된 것이다. 지상에서는 탱크를 앞세워 구소련군이 핀란드 국경을 넘었고, 세 시간 후 구소련 폭격기들이 핀란드의 수도 헬싱키를 집중적으로 폭격했다. 단기간 내에 핀란드의 항복을 유도하기 위해 개전 초기 폭격을 집중, 약 350개의 폭탄을 투하했다. 핀란드 기록에 의하면 폭격 결과 97명이 사망했고 260명의 중상자가 발생했으며 빌딩 55채가 완전히 파괴됐다. 게다가 이때 폭격에서 사용한 폭탄은 한 개의 폭탄 안에 또 다른 소형 폭탄이 들어 있는 집속탄(cluster bomb)이었다.
이런 비인도적인 무기를 사용한 구소련에 대해 국제적인 반발 여론이 거세게 일었다. 미국의 루스벨트 대통령은 핀란드 도시에 대한 무차별적인 폭격 중지를 요청했다. 그러자 이에 대응한 구소련 몰로토프 외무장관의 발언이 물의를 일으켰다. 국영 라디오에 출연해 핀란드 폭격의 진상을 해명한다며 다음과 같이 말했던 것이다.
“소비에트 공군기들은 핀란드의 도시에 폭탄을 떨어뜨리지 않았다. 다만, 굶주린 이웃국가 핀란드 주민들에게 인도적 차원에서 빵을 투하하는 작전을 펼쳤을 뿐이다.”
몰로토프의 라디오 방송 내용이 전해지면서 사람들의 비웃음을 샀다. 아무리 국제사회에 대한 변명이고 또 선전의 일환이라 하더라도 ‘눈 가리고 아옹’하는 정도가 지나쳤기 때문이다.
겨울전쟁이 발발했을 당시 전쟁 준비가 되지 않은 상태에서 징집된 핀란드 국민들이 훈련을 받지 못한 오합지졸이었던 것만큼은 분명하지만, 적어도 핀란드 군대는 물론 국민들도 굶주리는 상황은 아니었다. 핀란드 측의 물자는 풍족한 편이었다.
오히려 구소련군이 굶주림과 물자부족으로 시달렸다. 당시 구소련군은 핀란드의 혹독한 추위에 적응할 수 있는 충분한 방한복을 지급받은 것도 아니었고, 또 식량도 부족했기에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굶주리며 싸웠다. 게다가 핀란드군은 후퇴하면서 적군인 구소련군에게 식량과 쉴 자리를 남겨두지 않으려고 초토화 작전을 펼쳤다. 정작 굶주림에 시달리고 있는 것은 침략군인 구소련 군대였는데 몰로토프는 핀란드 폭격을 하면서 폭탄 대신 빵을 투하했다고 우겼던 것이다.
사람들은 이때 라디오 방송에서 터무니없는 주장을 한 몰로토프를 조롱하면서 구소련군이 떨어뜨린 집속탄을 하늘에서 떨어진 몰로토프의 빵 바구니라고 불렀다. 빵 바구니라는 별명은 커다란 폭탄 안에 또 작은 폭탄이 들어 있는 구조였기 때문이다.
몰로토프의 터무니없는 변명과 선전이 핀란드 국민을 오히려 자극했다. 선전전이 역효과를 본 것이다. 핀란드군은 열악한 환경 속에서 결사적으로 구소련군에 저항했다. 당시 핀란드에는 구소련군의 탱크에 대응할 만한 대전차 화기가 절대적으로 부족했다. 그래서 유리병에다 휘발유를 비롯한 인화성 물질을 넣고 심지에 불을 붙여 취약한 탱크 뒤에 던졌다. 구소련 탱크는 휘발유 엔진으로 불이 잘 붙기로 유명했다.
핀란드 군인들은 이 화염병에 몰로토프 칵테일이란 별명을 붙였다. 몰로토프가 “굶주리는 핀란드 국민을 위해 투하했다는 빵”인 몰로토프 빵에 가장 어울리는 음료수라는 뜻에서 지은 별명이다.
화염병이 처음 제조된 것은 핀란드의 겨울전쟁 때가 아니다. 최초의 화염병은 1936년 스페인 내전 때 독재자 프랑코 총통이 자신과 맞서는 공화군을 지원하는 구소련제 탱크를 저지하기 위해 사용한 것이 처음이라고 한다. 그러고 보면 화염병은 초기 구소련 탱크 공격에 많이 쓰였다. 1939년 만주에서 구소련군과 일본군이 싸운 노몬한전투에서도 일본군이 화염병으로 구소련 탱크를 공격했다.
핀란드 역시 겨울전쟁에서 전차 공격을 방어하는 데 화염병, 몰로토프 칵테일을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약 3개월 동안의 겨울전쟁 중 핀란드 군대에서 제조한 화염병의 숫자가 45만 개를 넘었다고 하니까 전차 공격을 막아내는 데 적지 않은 기여를 한 셈이다.
핀란드 도시를 무자비하게 산탄 폭탄인 집속탄으로 공습하면서 굶주린 이웃국가 주민에게 빵을 투하한 것이라고 거짓선전을 펼쳤던 데 대한 반작용이었던 것이다.
참고로 몰로토프 칵테일은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구소련의 공산 통치에 저항하는 동구권의 시위대에서 많이 사용했다. 그리고 몰로토프는 화염병에 자신의 이름이 사용되는 것을 무척 싫어했다고 전해진다.
<윤덕노 음식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