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중후기의 문신입니다. 그의 본관은 창녕(昌寧)이고, 자는 여익(汝益), 호는 이재(頤齋)와 매호(梅湖)입니다. 경상도 예천 출신이며, 우부승지 조계형(曺繼衡)의 증손자입니다.
주요 이력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1588년(선조 21): 사마시에 합격하여 진사가 되었습니다.
1605년: 문과에 급제하여 여러 벼슬을 지냈습니다.
1616년(광해군 8): 함경도 경성(鏡城)의 통판(通判)으로 부임했습니다. (이때 전이성이 '送曹頥齋丈[友仁]通判鏡城'이라는 시를 지어 전송했습니다.)
1621년: 투옥되기도 했습니다.
1624년: 석방되었습니다.
1625년: 사망했습니다.
조우인은 문인으로서도 활동했는데, 문집인 『이재집(頤齋集)』과 가사집인 『이재영언(頤齋詠言)』을 남겼습니다. 특히 『이재영언』에는 그가 경성 통판으로 부임하기 위해 서울 흥인문을 떠나 임지에 다다르기까지의 여정에서 보고 느낀 점이나, 임지에서의 생활, 변방 목민관으로서의 고독감 등을 노래한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그의 가사는 정철의 작품 계통을 잇는 것으로 평가되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