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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천에 쉬운 산은 없더라 – 청화산,시루봉,장군봉
1. 청화산 정상 주변, 이때는 안개비가 옷이 젖게 내렸다
청화산이 내외 선유동을 두고, 앞에는 용유동(龍遊洞)을 임하여서, 앞뒤 수석의 기절함은 속리산보다 훌륭하다.
산의 높고 큰 것은 비록 속리산에 미치지 못하다, 속리산 같은 험한 곳은 없다. 흙으로 된 봉우리에 둘린 돌이 모두
밝고 깨끗하여 살기가 적다. 모양이 단정하고 좋으며 빼어난 기운이 나타나서 가리운 곳이 없으니, 거의 복지이다.
(이익성 옮김)
(靑華旣背負內外仙遊前臨龍遊前後水石之奇絶勝俗離山之高大雖不及俗離無俗離之險絶土峰帶石皆明穎少殺形容
端平善而秀氣迸露不掩殆福地也)
―― 청화산인 이중환(靑華山人 李重煥, 1690~1752), 『擇里志』 복거총론(卜居總論) 산수(山水),
▶ 산행일시 : 2023년 7월 8일(토), 흐림, 안개, 안개비, 비
▶ 산행코스 : 늘재,청화산,조항산 갈림길,936m봉,도석재,819m봉,연엽산 갈림길,시루봉,717m봉,장군봉,
쌍룡계곡(용유계곡) 회란석
▶ 산행거리 : 도상 9.0km(이정표 거리 9.6km)
▶ 산행시간 : 5시간 45분
▶ 교 통 편 : 대성산악회(27명) 버스 타고 가고 옴
▶ 구간별 시간
07 : 17 – 복정역 1번 출구
08 : 30 – 옥산휴게소( ~ 08 : 50)
10 : 00 – 늘재, 산행시작
11 : 12 - 헬기장
11 : 16 – 청화산(靑華山, 987.7m)
11 : 28 – 조항산 갈림길(962m), 왼쪽은 조항산(3.7km), 오른쪽은 시루봉(3.1km), 점심( ~ 12 : 05)
12 : 34 – 도석재
12 : 45 – 819.1m봉
13 : 27 – 시루봉(△876.8m)
14 : 08 – 716.7m봉
14 : 15 – 비치재
14 : 38 – 장군봉(645.9m)
15 : 45 – 쌍룡계곡(용유계곡) 회란석, 산행종료, 휴식 및 하산주( ~ 16 : 55)
17 : 30 – 속리산휴게소( ~ 17 : 40)
19 : 30 - 복정역
2. 청화산 지도
3. 늘재 가는 길 차창 밖 풍경, 속리산휴게소 지날 무렵이니 구병산 연릉이다.
6. 늘재, 청화산 쪽 백두대간 표지석, 그 뒤는 블루베리 농원이다.
7. 청화산 오르는 도중 전망 좋을 바위에서 바라본 속리산 쪽
8. 물레나물(Hypericum ascyron L.), 청화산 정상 직전 헬기장에서
9. 청화산 정상, 꼬꼬 님
▶ 청화산(靑華山, 987.7m)
늘재. 해발고도 380m로 한강과 낙동강의 분수령이다. 늘재(늘티, 늘고개)는 고갯길이 가파르지 않고 평평하게 늘어
진 고개라는 뜻이다. 늘재를 흔히 ‘눌재’라고도 한다. 국토정보플랫폼은 눌재(楡峙)라고 하며, ‘고개 위에 느릅나무
가 있었으므로 눌재라 불리고 있다.’라고 한다. 청화산 쪽으로 장대한 ‘白頭大幹’ 표지석이 있다. 속리산 쪽은 어찌
된 일인지 산행표지기나 등로 안내 등이 보이지 않고 조용하다.
고갯마루 옆 산기슭 풀숲에 오석의 발원문 비석이 보여 다가가 들여다본다. 늘재 입구에 백두대간 성황당이 있다
하니 그에 올리는 발원인가 보다.
“동방에 떠오르는 태양
백두대간 줄기찬 기상이 한반도를 이루고 그 중심부 청화산 정기 고여 삼파수가 흐르고 우복 고을에 당이 있어 천지
신명 이시어 간절히 고하오니 우리 칠천만 동포의 소원 평화 통일 이루어 살기 좋은 금수강산 축복받는 나라건설
행운에 날개 달아 꿈과 희망 용기를 키워주시고 오가는 길손에 아무 탈 없이 사랑과 정이 어울려 화합 단결 한민족
하나가 되어 한없는 저력과 기량으로 새로운 문화예술 갈고 닦아서(…)”
청화산 들머리 산자락에 블루베리 농원이 있어 이제 한창 수확 중이다. 블루베리가 포도알 만큼 굵다. 한두 알씩 맛
보고 나서 수대로 주문한다. 문득 우리 손주들이 즐겨 먹던 모습이 생각나서 나도 주문한다. 1kg에 25,000원이다.
‘아침놀 저녁비’라고 했다. 오늘 이른 아침에 예봉산 뒤쪽으로 노을이 보기 드문 장관이었다. 그래서 우산도 준비했
다. 산행 중에 비가 오면 내가 쓰려는 게 아니라 사진 찍을 때 카메라에 씌우기 위해서다. 청화산 가는 길 시작부터
날이 잔뜩 흐리다.
길 좋다. 이 산중에 야자매트까지 깔았다. 완만한 오르막이지만 금세 땀이 줄줄 흐른다. 길게 줄지어 쫓기듯 간다.
25분쯤 지나 속리산 쪽으로 전망 좋을 바위가 나온다. 당연히 들른다. 짙은 운무에 가렸다. 운무는 점점 아래로 내려
오고 있다. 늘재 올 때 차창 밖으로 보았던 풍경을 조금은 기대했는데 가망이 없다. 핸드레일 붙드는 바윗길이 심심
찮게 나온다. 비에 젖어 미끄럽다. 바윗길이 끝나면 그 뒤로 전망대가 있기 마련이다. 만천만지한 운무라 아무 볼 것
이 없다.
그래서 오르막이 더 팍팍하다. 등로 바위틈에 자주꿩의다리를 자주 본다. 이에 파적(破寂)한다. 한철이다. 자주꿩의
다리는 서울 근교에서 처음 발견됐다고 한다. 그래서 영어명을 ‘Seoul meadow rue’라고 하나 보다. 자주꿩의다리
는 해외에는 없고 한국에만 있는 종으로 알려져 있었는데 일본 나가사키현에서도 발견됐다고 한다. 하지만 일본에
서는 개체수가 적어 준멸종위기종으로 지정돼 있다고 한다.
학명은 ‘Thalictrum uchiyamai Nakai’이다. 종소명 우치야마이(uchiyamai)는 도쿄대 식물원 직원으로 1900년
과 1902년 두 차례의 탐사 결과로 금강초롱, 단양쑥부쟁이, 남산제비꽃 등 한반도 특산종들을 처음 채집한 우치야
마 토미지로(內山富次郞)의 이름을 딴 것이다. 자주꿩의다리의 일본명은 ‘무라사키가라마츠(ムラサキカラマツ, 紫
唐松)’이다. 우리나라 자주꿩의다리 이름은 일본명을 그대로 번역한 것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별칭은 ‘조센가라마
츠(チョウセンカラマツ, 朝鮮唐松)이다. 나가사키에서 발견되기 전에는 한반도에만 있는 식물로 알고 있었기 때문
에 이런 별칭이 붙었을 것이다.(우듬지 블로그에서)
한 피치 오를 때마다 전망바위가 나오지만 역시 무망일 것이라 고개도 돌리지 않는다. 그래도 되똑한 암봉을 길게
오른쪽 사면으로 돌아 오르고는 배낭 벗어놓고 엉금엉금 릿지 타고 가본다. 내가 서 있는 곳조차 안개 속이니 괜한
발품을 들였다. 가파름이 수그러들고 헬기장이 나온다. 그 가장자리에서 물레나물을 본다. 산악인 김장호(金長好,
1929~1999)는 청화산의 이 헬기장에서 본 물레나물을 동자꽃으로 잘못 알았다. 그도 한여름 장마철에 청화산을 올
랐다. 월간 산(1996년 9월호)에 실린 「名山行脚」 ‘한반도의 빛나는 꽃 청화산, 후미진 산골짜기에 감춘 비경’이라는
제하의 글 중 일부다.
“그러나 눌재에서 올라오는 좁은 확실한 산길을 만나고부터는 안도의 숨을 내어쉰다. 더구나 능선마루에 올라서서
부터는 비탈도 부드러워질뿐더러 무엇보다 발아래 흙을 밟는 감촉이 반갑기 짝이 없다. 동쪽으로 방향을 바꾸어 한
10분 올라치면 거기 타작마당 같은 널찍한 헬기장이 허공 아래 벌어지고, 숲을 헤쳐 몇 발 안 가 또 정상이 놓인다.
바위가 엉겨든 속에다가 문경군청 등산회에서 세운 정상표지 말뚝이 박힌 뒤로 나뭇가지마다에 이 지점을 통과한
백두대간 종주팀들의 기념표지 헝겊들이 그들 환호성처럼 바람결에 펄럭이고 있다.
그러나 그 자리에서는 전혀 전망이 트이지 않는다. 바위에 올려서 보더라도 숲이 사방을 가렸으니, 이 산 너머 사행
선으로 구불거려 보일 조항산 대야산 쪽의 조망도 온전히 막힌 꼴이다. 다시 발길을 돌려 헬기장으로 되돌아 나와도
전망은 역시 남쪽과 서쪽으로만 제한된다. 그 중 장관인 것은 공중에 여태 장마철 수증기가 가시지 않아 흐릿은 하
다지만, 문장대에서부터 출렁이는 입석대 비로봉 천황봉이 소리치면 금세 메아리가 되돌아올 것만 같은 그야말로
지호지간에 놓여 있다.
남동쪽으로는 이 산줄기에 잇닿은 시루봉(876.1m)이 머리에 떡시루를 이고 여기 발아래 동자꽃 너머에서 환하게
웃고 있고, 도장산(827.9m)이 또 그보다는 더 남쪽으로, 도를 간직한 그 이름처럼 의젓하게 솟아 보인다.”
청화산 정상은 김장호가 위에서 말한 그대로다. 다만, 정상표지 말뚝은 없고 조그마한 정상표지석이 바위에 올려
있다. 김장호는 헬기장에서 동자꽃 너머로 시루봉이 보이는 사진을 올렸는데, 동자꽃이 아니라 물레나물이다. 내가
본 그 자리에 있는 물레나물이다. 우리는 조항산 갈림길에서 휴식 겸해 점심을 먹자 하고 더 간다. 평탄한 숲속길이
다. 자욱한 안개 속을 간다. 안개 속 풍경도 볼만하다. 원근농담의 수림이 신비롭다.
10. 자주꿩의다리(Thalictrum uchiyamae Nakai)
영어명은 Seoul meadow rue이다.
12. 청화산 정상 주변
14. 시루봉 암릉
16. 돌양지꽃(Potentilla dickinsii Franch. & Sav.)과 바위채송화(Sedum polytrichoides Hemsl.)
돌양지꽃 영어명은 Korean cinquefoil이다. 우리나라 고유종이다.전 국의 표고 500m 이상의 산지에서 자란다.
▶ 시루봉(△876.8m)
Y자 조항산 갈림길. 왼쪽이 여러 산행표지기들이 안내하는 백두대간 조항산(3.7km)으로 간다. 흔히 백두대간을
종주하거나 조항산을 가는 등산객들이 오른쪽 시루봉(3.1km) 쪽으로 잘못 가곤 하는 악명 높은 갈림길이다. 널찍
한 공터다. 둘러앉아 점심밥 먹는다. 모처럼 많은 일행이 모였다. 저마다 냉탁주 꺼내 놓고 권주하니 금방 얼근해진
다. 만복이 되어 일어난다.
안개비가 내린다. 땀 식히려고 일부러 풀숲 털어 비 맞는다. 안개비는 이내 부슬비로 바뀐다. 일행들은 가다말고
우장 갖추지만 나는 그냥 간다. 어차피 안팎으로 젖는다. 시원해서 좋다. 봉봉을 오르내린다. 936m봉을 길게 내리
고 ┣자 청솔암골 갈림길 안부인 도석재 지나 819m봉이다. 거대한 암봉이다. 등로는 오른쪽 사면으로 돌아간다.
얌전히 따라간다. 골로 가듯 떨어지다 바짝 오른다. 능선마루에 올라 819m봉 암봉에서 오가는 길이 있는지 살펴보
았으나 아무 인적이 없다. 한결 마음이 놓인다. 남들 다 가는데 나만 못가면 억울한 노릇이다.
비보다 땀을 더 흘린다. 암릉과 맞닥뜨린다. 좌우를 더듬어도 길이 보이지 않는다. 직등한다. 긴다. 외길이다. 맞았
다. Y자 갈림길. 왼쪽은 연엽산 가는 길이고 오른쪽이 시루봉 가는 길이다. 장군봉은 어디에 있는가? 연엽산을 지나
서인지, 시루봉을 지나서인지 모르겠다. 오룩스 맵에는 장군봉이 표시되어 있지 않다. 배낭을 벗어놓고 시루봉을
다녀올까 궁리하다 매고 간다. 암릉이 나온다. 머뭇거리기 한참이다. 뒤에 일행들이 온다. 일로직등 일로직진이라고
한다.
암릉 오르고 내리고 손맛 본다. 직벽이지만 바위틈 홀더가 충분하다. 기어오르니 자연스레 눈 맞춤 하게 되는 돌양
지꽃과 바위채송화가 비에 아랑곳하지 않고 우리를 응원한다. 떡시루 엎어놓은 모양이라는 시루봉 정상이다. 정상
표지석 옆에 있는 삼각점은 안내문으로 알아본다. 속리 304. 시루봉 정상은 이 근방 최고의 경점으로 사방 막힘이
없다는데 오늘은 안개로 다 막혔다. 조항산을 넘는 백두대간 장릉이며 대야산, 둔덕산, 도장산, 속리산 연릉 연봉이
그야말로 지호지간이라는데 오늘은 천리만리로 멀다.
시루봉 내리는 가파른 슬랩이 오를 때보다 더 까다롭다. 암벽이 젖거나 이끼가 끼여 미끄럽다. 사고는 연습이 없고,
어떠한 실수도 용납하지 않는다. 한 발 한 발 신중히 내딛는다. 시루 다 내리면 부드러운 숲속길이 이어진다. 산죽
숲이라 어디에도 볼 것이 없으므로 줄달음한다. 그러다 716.7m봉에서 잠시 멈칫하다. 한 피치 길게 내리면 ╋자
갈림길 안부인 비치재다. 국토정보플랫폼 지명사전은 “산 모양이 꿩이 날아가는 형세라 비치재라 칭하였다.”라고
한다. ‘비치’는 ‘飛雉’인가 보다.
17. 시루봉 정상
18. 시루봉 정상 내리는 슬랩
19. 바위채송화
22. 장군봉 가는 길
▶ 장군봉(645.9m), 쌍룡계곡(용유계곡) 회란석
비치재에서 일부 일행은 장군봉 오르기를 포기하고 탈출한다. 비치재 다음의 689.7m봉은 장군봉(645.9m)보다
높지만 이름을 갖지 못했다. 이유인즉슨 정상에 듬직한 바위가 없어서다. 장군봉은 바위절벽이 가로막아 직등하지
못하고 등로는 왼쪽 사면을 길게 돈다. 장군봉을 오르지 않고 이대로 돌아가고 마는가 싶을 정도로 돌고 돈다. 그런
데 기회가 왔다. 앞장서 가던 청산 님과 교주 님이 느닷없이 벌에 쏘였다며 머뭇거린다.
벌떼를 피하려고 어쩔 수 없이 가파른 사면을 오른다. 나무줄기 붙잡고 늑목 운동하듯 오른다. 곧 장군봉이다. 커다
란 바위가 있으나 오를 길이 없고 사방에 키 큰 나무숲이 둘러 아무런 조망이 없다. 등로는 흐릿해졌다. 여러 눈으로
살피며 간다. 번번이 깊은 절벽에 막힌다. 오른쪽 사면을 크게 돌아 암벽 밑을 지나 얇은 능선을 잡는다. 쌍룡계곡
(용유계곡) 지계곡을 만난다. 그간 잦은 비로 계곡물이 제법 불었다. 계곡을 따라 내리다 계곡 건너고 산자락 돌면
대로가 나오고 쌍룡계곡 회란석이다.
쌍룡계곡은 대천이다. 거기서 알탕하기란 유원지라서 거북하다. 뒤돌아 지계곡으로 간다. 옥계와폭 아래 반석이
명당이다. 첨벙하고 뛰어들어 몇 분을 견디지 못하고 튀어나온다. 그래도 개운하기 이를 데 없다. 우리 산행종점은
쌍룡계곡 희란석이다. 쌍룡계곡 대천 앞에 안내문이 있다.
“회란(廻瀾)이란? 회(廻)는 물이 도는 모양이고, 란(瀾)은 물결이 이는 현상이다. 이렇듯 물결 휘돌아 흐르며 쏟아지
는 여울엔, 대상은 현상을 통해 드러나지만 보이는 현상에서 그 본질을 파악할 수 있어야 한다는 의미가 함축돼 있
는 것이다.”
회란을 이해하려면 대상, 현상, 본질 등을 동원해야 하니 어렵다.
이곳 쌍룡계곡(용유계곡)의 회란석은 그 유래를 알기 어렵지만, 아마도 이 회란석보다 더 먼저일 회란석은 황해도
박연폭포 아래에 있다.
계산기정(薊山紀程, 조선 순조 때 선비 이해응(李海應, 1775~1825)이 동지사(冬至使) 사절단의 일원으로 중국
연경(燕京)에 갔을 때의 견문을 기록한 책)에 다음과 같은 내용이 나온다.
영수병(映水屛)
금릉관(金陵館) 남쪽에는 깎아지른 석벽이 개울가에 치솟아 있다. 이것은 박연(朴淵)의 하류이다. 석벽면에는 ‘영수
병(映水屛)’이라고 새겨져 있다. 그 앞에는 귀부(龜趺)의 비석이 민간의 밭 가운데 서 있으니 바로 명(明)의 조사(詔
使) 허국(許國)과 위시량(魏時亮)의 시(詩)가 있는 곳이고, 그 비석 뒷면에는 또 ‘회란석(廻瀾石)’ 세 글자가 커다랗
게 씌어 있다. 부사(副使) 권경암(權絅菴)이 중국 사신의 시대로 차운하기를 청하였다.
岌然山勢盡 높이 솟아 산세가 다하고
蒼壁下臨灘 푸른 석벽 아래로 여울에 다가 있다
過雨嵌成竇 비가 지나 패여서 구멍 이루고
富風打作瀾 바람을 막고 서서 물결 만들다
위 시는 오언율시인데 앞 4구만 취했다.
이곳 회란석도 영수병의 회란석을 설명한 그대로다.
무릇 쉬운 산은 없다. 내 깐에는 지난주 더운 날에 팔공산 종주 17.6km를 별 데미지 없이 버텨냈기에 오늘 산행
기껏 9.6km는 퍽 쉬울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그런 생각, 곧 마음가짐이 애초부터 글렀다. 암봉을 오르고 내리는
난이도는 오히려 팔공산보다 못했다. 그럼에도 산행시작부터 무척 힘들었다. 부디 겸손할 일이다.
25. 장군봉, 나무숲속에 큼직한 바위가 있다. 너무 높아 올라가기 어렵다.
26. 쌍룡계곡(용유계곡) 가는 길
27. 지계곡, 이 근처에서 땀을 씻었다
28. 쌍룡계곡(용유계곡), 맨 오른쪽 위가 회란석(廻瀾石)이다.
32. 속리산휴게소에서 바라본 구병산, 맨 왼쪽은 백운대, 맨 오른쪽은 신선대
33. 속리산휴게소 앞에 솟은 시루봉(417m)
첫댓글 화란석은 장맛비에 잠겼네요...
물살이 거세 곧 잠길 듯 위태하더군요.
염천산행에 고생하는 악우들이 많네요~
산꾼들에게는 고난의 계절입니다. ㅠㅠ
염천에 고생이 많으십니다...쌍룡계곡의 옥반석은 알탕하기에 아주 좋아보입니다...^^
유원지라서 피서 온 사람들이 많습니다.
지킴이가 뭐하는지 살피고 있고.
비오시는 날 땀에 젖느니 비에 젖는게 나을 것 같아 비 맞으며 걷던 추억이 ...
안개속 풍경이 편안해 보입니다.ㅋ
산중에서 비 맞는 것도 정취입니다.
세찬 비는 더욱 좋고요,
상쾌합니다.
더운데 고생하셨습니다.
자주꿩의다리는 처음 보네요
북한산에도 많읍니다
자주꿩의다리를 자주 보셨을 텐데 미처 알아보지 못했을 뿐이겠지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