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이 익구나 / 노현희
궁궐 한편의 작은 마당은 햇볕이 가득했다. 한낮의 적요 속에 참새 몇 마리가 키 낮은 소나무 아래서 종종거렸다. 처마 안의 그늘은 깊었고, 마당 가장자리에 핀 목단은 너무 붉어 낯설었다. 그 곁에서 한 여인이 서성이고 있었다. 스물 안팎의 앳된 얼굴이었다.
지붕의 그림자가 마당에 짙은 경계선을 긋고 있었다. 그것을 물끄러미 보던 그녀는 그 선을 따라 조심스레 발걸음을 옮겼다. 처마 끝 지점에서 잠시 멈춘 그녀는 다시 외줄을 타듯 되짚어 돌아왔다. 그녀의 몸은 줄 위에서 몇 번이나 기우뚱거렸다.
왕이 내시와 무사를 이끌고 그녀 쪽으로 오고 있었다. 화들짝 놀란 그녀는 재빨리 처마 밑으로 비껴나 허리를 굽혔다. 그녀 앞으로 모양과 색깔이 다른 신발들이 어수선하게 지나갔다. 그 틈으로 왕의 신발이 보였다. 몇 걸음을 옮긴 왕은 걸음을 멈추고 돌아섰다.
“낯이 익구나. 어느 처소 상궁인가?”
“전하, 몇 해 전에 전하의 성은을 입은 ○○ 숙원이옵니다.”
내시의 대답에 그녀는 숙인 고개를 더 깊이 숙였다.
“흠- 흠, 그러했느냐.”
왕은 슬쩍 그녀를 본 후 그 자리를 떠났다. 왕의 낯빛은 별다른 변화가 없었다. 발걸음 소리가 멀어진 한참 후에야 그녀는 허리를 펴고 멀어져가는 왕의 뒷모습을 눈으로 더듬었다. 왕이 사라진 자리에 검은 기와지붕이 날개처럼 펼쳐져 있었다. 하얗게 빛을 뿜어내는 마당에 홀로 선 그녀의 뒷모습이 점점 멀어져 갔다.
텔레비전 화면은 그녀 대신 무언가에 화가 나서 아랫것을 추궁하는 왕비, 성은이 망극하다는 소리를 숨 쉬듯 내뱉는 신하들, 푸념과 웃음이 뒤섞이는 주막의 풍경으로 바뀌고 있었다. 그러다 무언가에 놀라는 주인공 얼굴을 화면 가득 채우며 다음 회를 예고했다. 새삼스러울 게 없는 사극史劇의 모습이었다. 하지만 정작 나는 햇살에 번뜩였던 한마디 말에 붙잡혀 있었다.
“낯이 익구나!”
그 말에 그녀가 어떤 표정이었는지는 생각나지 않았다. 정적에 묻힌 하얀 마당만 떠올랐다. 나는 그녀의 마음이 어디에 가닿았는지 알 수 없다. 자신의 운명을 그대로 받아들였는지, 아니면 행여 임이 찾을지 모른다는 일말의 희망에 부풀었는지 모른다.
남녀 간의 사랑은 열정의 다른 이름이다. 열정이 사라진 자리엔 외로움과 허무가 남는다. 하지만 그 열정은 한 사람의 생애를 송두리째 뒤흔들기도 하고,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기력에 빠지게도 한다. 그걸 사랑의 마력이라 한다. 그런데 누군가에겐 그저 ‘낯익은 얼굴’ 하나로 기억되는 사랑인 모양이었다.
그건 내가 알게 된 가장 폭력적이면서 절망적인 사랑의 언어였다. 낯이 익다는 한마디로 표현된 그 사랑 앞에 어린 그녀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여기저기 균열이 일기 시작하는 바짝 마른 땅과 그 한가운데에 놓여있는 그녀의 모습이 떠올랐다. 왕은 그 균열의 땅을 미처 짐작하지 못하는 듯했다. 아니 왕은 그것을 짐작해야 할 이유가 없어 보였다. 하얗게 쏟아지는 햇살 아래 그녀와 내가 덩그렇게 놓여 있을 뿐이었다.
우리 삶의 균열은 늘 그런 예기치 못했던 것에서 일어났다. 그것은 알 수 없는 두통에 시달리게도 하고, 어떤 것은 저 깊은 곳에서 웅크리고 있다 불쑥 제 존재를 알렸다. 그런 발진은 분명 내 몸에서 일어나고 있지만 언제나 내 것 같지 않았다. 그녀의 사랑도 형태를 달리했을 뿐, 우리 속에 있는 엄연한 실재였다.
나이를 더해도 사는 게 참 어렵다. 내가 믿고 의지한 것들이 얼마나 허약한 것인가를 깨닫는 일만 많아진다. 그것은 참 낯설고도 낯익은 풍경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