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에는 실용성과 감성이라는 두가지 측면이 공존한다. 실용성에 있어서는 기능적인 면이나 친환경성, 안전성 등의 요소가 중요시된다. 한편, 슈퍼카나 스포츠카와 같은 달리는 즐거움을 추구하는 세계에서는 실용성의 영역이 최소한도로 갖추어야 하는 요소일 뿐이다. 즉, 자동차를 구입하는 이유가 서로 다르다. 연비가 좋기 때문에, 사용하기 편하기 때문에, 또는 안전하기 때문에 슈퍼카를 구입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즐거움의 영역에서 자동차에 요구되는 사항은 압도적인 성능과 개성있는 디자인, 브랜드의 역사와 전통, 미래비전 등이 있다. 하이 엔드 브랜드의 자동차는 단순히 공장에서 생산된 제품이 아니라, 고객과의 긴밀한 관계를 기반으로 오랜 시간을 숙성시켜온 가치를 손에 넣는 것과 같다. 즉 갖고 싶어 할만한 자동차를 시장의 수요보다 적게 생산해 가치를 높이고 있다.
그 가치를 높이는 중요한 요인 중에 하나는 바로 출력이다. 특히 최근에는 기존 내연기관과 전기모터를 결합한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파워트레인을 통해 성능을 높이고 배출가스 규제에도 대응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전기모터의 힘이 더해진 파워트레인은 더 강력한 출력을 발휘하면서도 CO2 배출을 낮춰 규제 뿐만 아니라, 소비자들에게도 환경을 생각하는 브랜드 이미지를 구축해 나가고 있다.
슈퍼카 비즈니스에서의 하이 파워 경쟁이 끝나지 않는 근본적인 이유는 고객이 그것을 요구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물론 '일반도로에서 즐길 수 없는 출력은 무의미하다'고 생각하는 분들도 있을 것이며, 운전의 즐거움은 자동차의 출력만으로 정의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분도 있을 것이다. 이러한 논쟁은 슈퍼카에 그치지 않고 자동차 역사에서 계속 있어왔다. 높은 출력을 추구하는 자동차들의 경쟁을 통해 기술의 발전이 이뤄졌고, 그로 인해 양산차들의 성능도 비약적으로 높아졌다. 그만큼 최신 슈퍼카의 성능이 이전 모델을 밑도는 것은 소비자 입장에서 그리 환영할 만한 일은 아니다.
슈퍼카 브랜드들이 추구하는 전동화와 미드쉽
현재의 출력 경쟁은 소비자를 위한 것 만은 아니다. 제조사에 있어서도 고성능화와 친환경적인 자세를 동시에 어필할 수 있기 때문에 이러한 변화에 빠르게 대응하고 있다. 비록 배터리에 의해 차체가 무거워져도, 그 때문에 카본 파이버를 더 많이 사용해 비용이 증가하더라도 높아진 출력과 친환경성을 내세워 더 높은 가격을 책정할 수 있기 때문에 슈퍼카 제조사에 있어서, 전동화 전환은 피할 수 없다.
이런 이유 때문에 슈퍼카 제조사들은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파워트레인을 통해 기존 내연기관 차량 보다 높은 출력을 확보하게 되었다. 100kg 단위로 늘어나는 배터리의 중량을 극복하기 위해 시스템 최고 출력은 1,000마력을 넘는 수치가 이제 슈퍼카 업계의 기준이 되어 가고 있다. 페라리는 'SF90' 등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모델을 출시했으며, 맥라렌도 출력은 낮지만 경량의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스포츠카 '아투라'를 발표했다. 람보르기니는 앞으로 출시될 신차는 모두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파워트레인을 탑재한다고 발표했다. '아벤타도르'의 후속 모델 또한 1,000마력이 넘는 출력을 보일 것으로 예상된다.
동시에 미드쉽 스포츠카의 시대가 오고 있다. 페라리가 V8 엔진의 미드십 PHEV 모델인 SF90을 V12 엔진을 탑재하는 기존의 FR 모델보다 비싼 가격으로 책정해 판매하고 있는 것이 그 증거다. 애스턴 마틴이나 마세라티 등 스포츠카 브랜드들이 미드십 슈퍼카를 개발하는 이유도 무거운 배터리를 탑재하기 용이한 패키징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출력 경쟁은 계속된다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이후의 슈퍼카는 당연히 순수 전기차이다. 부피가 큰 대배기량 엔진을 탑재하지 않는 만큼, 차량 설계에 있어서도 자유도가 높아진다. 로터스 에바이야와 같은 2,000마력 급의 하이퍼카가 속출할 수도 있다.
비록 일반도로에서의 성능은 시험할 수 없어도, 서킷에서만 즐길 수 있는 종류의 성능이라고 해도 초고출력의 슈퍼카를 운전한다는 상상은 자동차 매니아들을 흥분시킨다. 운전의 즐거움을 추구하는 욕망은 더욱 커지고, 그 세계에 접근하길 원하는 소비자는 늘어가는 만큼 슈퍼카 브랜드들의 출력 경쟁은 당분한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현재의 출력 경쟁을 끝낼 상황은 하나 뿐이다. 페라리가 “이제 출력 경쟁은 그만!”이라고 선언하고, 슈퍼카의 새로운 가치관을 어필하기 시작한다면 변화는 가능할 것이다. 하지만, 모든 사람들이 자율주행차만 타고 이동하는 시대가 아니라면, 그런 미래는 상상하기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