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업의 시대
최 경 선
쓰지 못하는 우산*이 있습니다
여기저기
공실이 점령군처럼 주둔하고 있는 골목
자고 일어나면 점포 임대 현수막이
투항하는 자세로 펄럭입니다
한때 네온사인 화려했던 자랑거리는 걱정거리가 되고
우산심벌이라 하지요
북적이던 사람들은 시나브로 줄어들고
폐업이 탈출구가 되어버린 어느 자영업자는
부러진 의자와 함께 어디론가 수거되어버렸습니다
어떤 이는 찢어진 우산을 쓰고
또 다른 이는 자루 빠진 우산을
어느 날엔
우산과 함께 통째로 날아가 버린 사람도 있지요
줄다리기를 하는지 자꾸만 뒷걸음치는 발길들
속을 게워낸 점포 몇 개는
거미줄에 걸린 하루살이처럼 속절없이 흔들리고 있네요
아웃도어 매장 점주는 비 오는 날을 싫어하지요
여름을 좋아하던 까무잡잡한 피부의 카페 사장은
돌아오지 못할 휴양지로 떠났는지 커피 머신만 덩그러니 남아
외국인들로 북새통을 이루던 금은방 주인이
낡은 파리채로 적막만 탁, 탁, 내리치고 있습니다
녹슨 간판을 붙잡고 소소리바람이 덜컹거릴 때
쇼윈도우는 자꾸만 창백해져 가고
어둠살 내린 골목마다 고양이들이 갸르릉 폐허를 핥습니다
지금은 우산을 잃어버린 시대
소낙비를 맞으며 가로수들이 우의처럼 추적추적 젖습니다
* 노란우산공제.
달을 마시다
최경선
찻잔 속에 풍덩 달이 빠진다
가끔씩 신에게 어디론가 데려가 달라고 부탁했다
별이 빛나는 밤하늘로
붉은 지붕들이 히비스커스처럼 피어나는 지중해 해안가로
달의 여신 히비스에게 바친다는 꽃을
나에게 헌화한다
달리의 시계처럼
허물어지며 천천히 녹아내리는 시간의 궤적
하와이 여인들은
꽃을 왼쪽 귀에 꽂았다가 오른쪽 귀에 꽂기도 하지
그건 누구를 하루 동안 마음속에 품는다는 것
창 너머로 어제 불던 바람이 지나간다
나는 잠시 찻잔을 내려놓고
오늘의 무표정을 바라본다 혹은 무료함으로
채워도 채워지지 않는 이 허전함은
테이아,
수십억 년 전 지구와 충돌한 별의 잔해처럼
너는 찰나가 되어 떠나갔지 은하 저 쪽으로
하품을 물며
길고양이 한 마리 출렁거리는 달빛 속으로 걸어간다
꽃이 사라진 찻잔에 밤이 담긴다
최경선
1. 신경주대학 사회복지학 재학중, 신라문학대상, 애지신인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