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대학친구들의 밴드에 이런 글이 소개되어 있었습니다.
이 글은
머니투데이의 '이승형 기자'가 '김기춘'에게 보낸 편지입니다.
전문을 그대로 옮겨 봅니다.
김기춘 전 중앙정보부 대공수사국장님, 안녕하십니까.
저는 머니투데이 이승형 부장이라고 합니다.
기자 생활 20년을 넘겼지만 안타깝게도 지금껏 김 전 국장님을 직접 볼 기회는 없었습니다.
어쩔 수 없이 이렇게 불쑥 첫 인사드리는 결례를 용서하시기 바랍니다.
대통령 비서실장까지 지내신 분께 국장이라는 호칭을 쓰는 점에 대해 양해 말씀도 드립니다.
이 글을 끝까지 읽어 보시면 그 이유를 아실 것입니다.
어쨌든 고희(古稀)를 훌쩍 넘긴 나이에도 그리 왕성하게 대외 활동을 하시는 걸 보니 진정 ‘100세 시대’라는 말을 실감하게 됩니다.
김 전 국장님을 볼 때마다 쉰 살을 목전에 둔 저로서는 부럽고,
또 한편으로는 은퇴 이후 노년생활에 대한 큰 희망을 갖게 됩니다.
이 글을 쓰기 전 송구스럽게도 김 전 국장님의 이력을 오랜만에 한 번 살펴봤습니다.
절로 감탄이 나오는 대단한 프로필이었습니다. 약관(弱冠)의 나이에 사시에 급제하신 뒤 공안검사로 요직을 두루 거치시고 검찰총장, 법무부장관에 이어 3선의 국회의원까지.
그리고 마침내 박근혜 정부 비서실장이란 중책을 맡으셨죠.
중간 중간 교수, 변호사,
재단 이사장이란 직함도 가지셨습니다. 무슨 연유에서인지 20년 전에는 한국야구위원회 총재까지 역임하셨군요. 나라에서 주는 훈장도 받으셨어요. 누가 봐도 이런 경력이면
‘성공한 삶’ ‘출세한 인생’이 아니겠습니까. 같은 남자로서 질투마저 느낍니다.
비서실장을 관두신 요즘에도 TV에서 종종 뵙니다.
얼마 전 개봉한 영화에도 등장하셨더군요. 다큐멘터리 영화 ‘자백’ 말입니다.
혹시 안 보셨다면 잠시 설명을 드리겠습니다.
이 영화는 중앙정보부-국가안전기획부-국가정보원으로 이어지는 국내 최고의 정보기관이 멀쩡한 사람들을 간첩으로 둔갑시키는 과정을 그린 논픽션 무비입니다.
저는 이 영화를 보며 지난 50여년간 이토록 많은 간첩 조작이 있었다는 점에 놀랐습니다.
각종 고문과 감금, 협박과 회유의 결과로 ‘빨갱이’ 낙인이 찍힌 이들은 어부, 교수, 공무원, 유학생 등 평범한 우리 이웃들이었습니다. 영화는 정권의 폭력에 의해 한 개인의 인생이 어떻게 송두리째 파괴되는지,
그 가족들의 삶이 어떻게 무너지는지 보여줍니다.
국장님께 한번 여쭙겠습니다.
박정희 유신체제가 절정을 향해 치닫던 1976~77년 일어났던 이른바 ‘재일동포 유학생 간첩사건’을 아십니까.
국장님은 당시 이 사건을 담당한 책임자였습니다. 중앙정보부 대공수사국장이라는 직함으로 말이죠.
수사 결과 발표도 국장님이 하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기실 1970년대는 재일동포 유학생들의 간첩 사건이 유난히 많았던 시기였습니다. 고국의 말을 배워보겠다고 건너 온 스무 살 남짓한 학생들은 노련한 조작 기술자들에겐 어린 양들처럼 요리하기 쉬운 대상이었겠죠.
국장님, 하나 더 여쭙니다.
고문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정신과 의사인 정혜신 박사에 따르면 “고문을 경험하는 건 지옥을 경험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폭언은 물론이고 물고문과 전기고문, 성폭행과 무자비한 구타.
그 육체적인 고통과 정신적인 충격은 어떤 형용사로도 표현할 수 없는,
잔혹 그 자체.
정 박사는 고문을 당한 사람의 시간은 수십 년 전 남산의 컴컴한 지하 대공분실에서 멈춰 있다고 합니다.
그의 삶은 단 한 발자국도 앞으로 나아가질 못한다고 합니다.

영화 ‘자백’에는 고문에 의한 허위자백으로 간첩으로 몰려 억울한 옥살이를 한 재일교포 김승효씨가 나옵니다. 국장님이 사시에 합격했던 바로 그 똑같은 나이에 남산에 끌려가 지옥을 경험했던 그 청년이 지금은 백발이 성성한 노인이 됐습니다.
그의 눈은 초점이 없었고,
말도 어눌했습니다. 서울대에 다녔던 그 똑똑했던 학생이 그 날 이후 고문 후유증에 넋이 반 쯤 나간 상태로 지금껏 살아왔던 것입니다.
아니, 살아온 게 아니라 죽어온 것입니다.
그가 마치 어린아이처럼
“한국은 무서운 나라”
라고 웅얼거리는 모습에 저는 눈물을 참느라 혼났습니다.
그런데 국장님은 부인하시더군요.
이 영화를 만든 최승호PD가 국장님의 당시 친필메모, 그러니까 간첩 조작을 증명하는 증거를 보여주며 아느냐고 물어봐도 “모른다” “기억에 없다”로 일관하시더군요. '이들이 대법원의 무죄판결을 받았으니 이제는 말을 해달라'는 최PD의 요청에도 묵묵부답이더군요, 깜짝 놀랐습니다. 증거를 들이대도 눈 하나 깜짝 안 하고 ‘모르쇠’로 당당하던 그 모습. 놀라웠습니다.
며칠 전엔 TV에도 나오셨더군요.
박정희 동상을 광화문에 세우기 위해 모인 모임에 등장하셨지요.
일단 저는 그 동상에는 반대합니다.
자신에게 반대하는 사람들을 불법적으로 탄압하고 핍박한 것 그 사실 하나 만으로도 박 전 대통령은 그런 자격 없습니다.
어쨌든 그날 국장님은 또 부인을 하셨더군요. “최순실을 아느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보고받은 적 없고, 알지 못한다.
만난 적도 없다.
통화한 적도 없다”고 답했습니다.
그런데 이상합니다.
그 이후 계속해서 언론 보도를 통해 “최순실 사무실에서 김기춘을 봤다” “비서실장 시절 최순실에 대해 보고했다”는 증언이 나오고 있습니다.
한 조간신문에 따르면 김종 전 문체부 차관은 심지어 “김기춘 실장의 소개로 최순실을 만났다”고 검찰에 진술했다고 합니다.
또 종편방송에서는 최씨가 다니던 차움의원에서 김기춘 실장이 줄기세포 시술까지 받았다고 보도했습니다. 어떻습니까.
이래도 모르십니까.
하긴 몰라도 문제요, 알아도 문제입니다. 최순실씨를 몰랐다면 일을 제대로 안한 것이고,
알았다 해도 일을 못한 겁니다.
그런 ‘무지’ ‘방임’ ‘공조’의 결과로 모시던 분이 국민들로부터 ‘하야’ ‘퇴진’소리를 듣고 있는 거 아니겠습니까.
영화 ‘자백’의 제목이 왜 ‘자백’인줄 아시는지요.
그 영화 포스터에는 이런 글귀가 있습니다. ‘이제 우리가 그들에게 들어야 할 자백’.
국장님, 마지막으로 여쭙니다.
솔직히 모든 사실을 털어놓으실 생각 없으신가요.
나라의 녹을 먹었던 공인답게, 남자답게, 인간답게, 허심탄회하게 있는 그대로 말씀하실 생각 없으신가요.
국민들 앞에서, 후배 검사들 앞에서 당당하게 자백할 생각 없으신가요.
국민들은 이제 지긋지긋 합니다. 권력만 바라보는 해바라기 ‘정치검사들’, 약자에겐 강하고 강자에겐 약한 정치인들, 지겹습니다. 내부자들, 부당거래 여기서 제발 끝냅시다. 청산합시다. 역사 속으로 보내버립시다.

김기춘 전 중앙정보부 대공수사국장님. 역사를 정면으로 바라보세요.
외면하지 마세요.
‘침묵’을 깨주세요.
이제라도 촛불을 들고 국민들 앞에서 고해성사를 할 수 있기를 간절히, 간절히 바랍니다.
편지는 여기까지였습니다.
친구들의 댓글이 여러개 이어졌습니다.
나도 댓글을 달았습니다.
김기춘은 사법고시로 고위공직을 차지했다.
그리고 지금까지 한평생 호의호식하며 권력자들 편에 서서 달콤한 꿀을 빨아먹었다.
그러면서 그렇게 늙어갔다.
그 썩고 냄새나는 음파와 파장들이 적어도 그의 자식들이나 삼 세, 사 세들에게 씻을 수 없는 '업보'로 나타날 것이다.
김기춘은 관 속에 들어가는 그 순간까지 '이승형 기자'의 간절한 요청대로 입을 열거나 과오를 자백하지 않을 것이다.
절대로 그런 일은 없을 것이다.
'선민의식'으로 똘똘 뭉친 인간들에게 그런 '결기'와 '용단'을 요구하는 것 자체가 인간이 무엇이고, 어떤 존재인지를 모르는
순진한 질문이자 요청일 뿐이다.
'천민'들과 신이 선택한 '선민'들은 서울이란 공간에서 같은 공기를 호흡하고 있을 뿐,
생각과 삶과 근본은 천양지차라고 여기며 사는 인간들이다.
박근혜랑 똑 같다.
그래서 수백만 춧불이 대문 앞까지 달려가 '하야'를 목놓아 외쳐도 그건 세경 받는 일꾼들의 천박한 외침 정도일 뿐이었던 거다.
그러니까 파란 기와집에서 같이 밥 먹어가며 함께 국정을 농단했던 거였다.
'국가'와 '국민'에 대한 복종이나 충성이 아니라 패거리 '보스'에 대한 충성에 진력했던, 그래서 거기까지가 그들의 한계였던 거였다.
그런 '한계의 인간들'이 모든 권력을 틀어쥐면서 백성들의 소망과 미래를 무참하게 짓밟았던 거였다.
DNA가 비슷한 놈들이었기에 가능했던 일이었다.
우리라도 바로 살자.
'무지렁뱅이'에 불과할지라도 자식들을 위해, 앞으로 태어날 삼 세들, 사 세들을 위해 우리들이라도 제대로 생각하며 똑바로 걷자.
이참에 당연히 '레짐 체인지'를 이끌어 내야겠지만 작금의 세태에 내가 이 땅의 기성세대이고, 한 명의 어른이라는 게 때로는 부끄럽고 절망스럽다.
특히 내 자식들에게 그렇다.
11월 말일이다.
잘 마무리 하고 금년 마지막 달인 12월을 감사와 열정으로 시작해 보자.
사랑한다.
내 친구들.
파이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