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온난화가 키운 거대한 비구름… “극한호우 더 자주 내릴 것”
잦아진 극한호우 원인은
생명의 위협 느낄 정도로 퍼부어… 긴급재난문자 발송 年 8.5%씩 증가
온난화로 ‘대기의 강’ 현상 심화… 2049년 일일 강수량 146mm 육박
“수자원 통합 관리로 대비해야”
지난해 8월 8일 서울에 ‘극한호우’가 쏟아졌다. 동작구를 중심으로 시간당 140mm가 넘는 폭우가 쏟아지며 인명 피해가 발생했다. 강남 한복판에서 시민이 물에 둥둥 떠 있는 차 지붕에 올라가 있는 사진은 ‘노아의 방주’로 회자됐다. 그날부터 폭우를 설명하며 기상청과 언론은 극한호우라는 단어를 썼다. 이전까지는 극한호우의 정의가 없었지만 ‘우리가 이제껏 경험해보지 못한, 상식을 뛰어넘는’ 수준의 비라는 뜻으로 쓰였다.
기상청은 지난달 15일부터 수도권을 대상으로 ‘극한호우 긴급재난문자’ 발송을 시범 실시했다. 이전에 경험한 적 없던 수준의 비가 다시 올 경우를 대비해 신속한 대피나 재난 대응을 돕기 위해서다. 조건은 ‘1시간 누적 강수량 50mm 이상’과 ‘3시간 누적 강수량 90mm 이상’을 모두 충족할 때다. 기상청 관계자는 “한 가지만 충족할 때가 아니라 두 조건 모두 충족해야 한다”며 “달성하기 상당히 까다로운 조건”이라고 설명했다.
● 일상이 된 기후 재난
극한호우 긴급재난문자는 시범사업 실시 한 달 만에 실제 상황에서 사용됐다. 11일 오후 2시 53분∼3시 53분. 한 시간 사이 서울 동작구 신대방동에는 시간당 76.5mm의 비가 쏟아지면서 재난문자가 발송됐다. 시간당 70mm 이상의 비는 ‘인간이 생명의 위협과 공포를 느끼는 수준’으로 설명된다.
수도권 외 지역에서도 올여름 전국 곳곳에 극한호우가 이어졌다. 14일 전북 군산시와 경북 문경시에는 각각 하루에 내린 비만 372.8mm, 189.8mm를 기록하며 이 지역 역대 최대 하루 강수량을 기록했다. 15일 충북 청주시에는 하루 동안 256.8mm의 비가 오면서 14명의 목숨을 앗아간 지하차도 침수 사고가 발생했다.
기상청 자료에 따르면 극한호우 긴급재난문자 발송 기준에 부합하는 비는 2013년 48건에서 2017년 88건, 2020년 117건, 작년 108건 등 연평균 8.5%씩 늘어나고 있다. 극한호우가 이제 더 이상 예외가 아닌 일상이 된 셈이다.
● 전 세계 동시다발적 위기
극한호우는 한반도에서만 벌어지는 일이 아니다. 17일 미국 펜실베이니아주에는 1시간 반 동안 약 180mm의 극한호우가 쏟아지면서 5명이 숨지고 2명이 실종됐다. 우리와 지리적으로 가까운 일본과 중국 역시 폭우로 인명 피해가 발생했다.
폭우가 더 세진 주요 원인으로는 지구온난화가 꼽힌다. 세계기상기구(WMO)는 올해부터 2027년까지의 5년이 지구 역사상 가장 더운 5년이 될 것으로 5월 전망했다. 최근 학계에서는 다량의 수증기가 마치 ‘물길’과 같은 모양으로 장거리를 이동하는 ‘대기의 강(atmospheric river)’ 개념이 주목받고 있다. 지구온난화로 인해 대기의 강이 더 자주, 큰 규모로 나타날 것이라는 분석이다.
손석우 서울대 지구환경공학부 교수는 “기온이 오르면 대기가 이전보다 더 많은 수증기를 담을 수 있다. 20세기 이후 대기의 강은 점점 더 확장돼 왔다”며 이 같은 경우 강수량이 더 늘어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최근 한국환경연구원은 현재와 같이 탄소배출이 이어지는 경우 2049년까지 연평균 1일 최대 강수량이 평년(1979∼2014년)보다 8.5% 증가한 146.2mm로 늘어난다고 내다봤다. 이어 2079년까지는 165.9mm(23.2% 증가), 2099년까지 182.9mm(36.1% 증가)로 늘어난다는 전망을 내놓은 바 있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극한호우 등 기후 재난이 시작에 불과하다는 점을 지적하며 재난에 대응하는 시스템을 근본적으로 바꿔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주헌 중부대 토목공학 교수(국가물관리위원)는 “올봄 극한가뭄부터 폭우에 이르기까지 기후변화로 예측할 수 없는 재난이 잦아지고 있다. 현재 취약점을 보이는 기존 댐이나 하천을 하천수, 지하수, 해수담수 등 다양한 수자원을 통합 관리하는 ‘워터그리드’ 등으로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강수량에 영향을 덜 받을 수 있도록 물 관리 체계를 극한기후에 맞춰 보완해야 한다는 의미다.
김예윤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