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국적 4명과 미국인 둘 참변
부검의 "입술과 손톱 검은자주색
청산가리 외 다른 사인 생각 못해"
경찰 "해당 객실에 침입 흔적 없어
빚 독촉 몰린 여성 독 탔을 가능성"
지난 16일(현지시간) 태국 방콕의 럭셔리 호텔 객실에서 함께 식사를 즐기려던 베트남인 4명과 베트남계 미국 국적 2명이 주검으로 발견됐는데 검시 결과 6구의 주검 혈액에서 모두 청산가리(cyanide, 시안화물) 성분이 검출됐다고 영국 BBC가 18일 현지 경찰 발표를 인용해 전했다. 앞서 경찰은 6명 모두 사용한 것으로 보이는 찻잔들에서도 같은 성분의 흔적을 찾아냈다고 밝혔다.
경찰은 빚 독촉에 시달리던 한 명이 차에 몰래 청산가리를 타 사람들을 살해하고 스스로 도 목숨을 버린 것으로 보고 정확한 경위 등을 파악하기 위해 수사를 벌이고 있다.
시신들을 살펴본 부검의들은 "청산가리를 제외하곤 사망한 이유를 설명할 "다른 원인이 없다"고 말할 수 있다고 했다. 다만 부검의들은 이 치명적인 독극물의 강도를 측정하고 어떤 다른 독극물을 배제하기 위해 추가 검사를 진행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희생자들의 입술과 손톱이 검은자주색으로 변해 산소 결핍을 드러냈고, 내부 장기들도 핏빛처럼 붉어 청산가리 중독을 보여준다고 출라롱코른 대학 검시학과 콘키앗 봉파이사른신 교수는 말했다. 이 대학 의대 학장인 찬차이 시티푼트 박사는 사망자들의 핏속에 청산가리가 얼마나 남아 있는지 확인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관찰이나 내부 장기 검사, 스크리닝 테스트로 혈액 속에 청산가리를 발견해 청산가리 외에는 어떤 다른 원인도 이들의 죽음을 불러올 수 없다는 사실을 확인했다"고 덧붙였다.
의문의 독살이 벌어진 곳은 그랜드 하얏트 에라완 호텔 5층의 한 객실이었다. 하우스키퍼들이 시신들을 발견했다. 수사관들은 시신이 발견된 것이 숨진 지 24시간이 지났을 때라고 했는데 검시의들은 사후 12~24시간인 것으로 봤다. 두 사람이 투자 목적으로 다른 이에게 수천만 태국 바트를 빌렸다고 당국은 전했다. 1000만 바트라면 우리 돈으로 3억 8200만원 가량이다.
시신을 발견한 경위를 둘러싸고 혼선과 의문이 증폭됐다. 초기 현지 보도들은 총격이 있었다고 오보를 냈기 때문이다. 경찰은 나중에 근거 없는 보도라고 일축했다.
스레타 타비신 태국 총리는 전날 문제의 호텔을 찾아 국가 안보와는 관계 없는 "개인 일"이라며 즉각 수사에 착수하라고 지시했다. 과연 어떤 일이 있었는지에 대해 더 명확한 그림이 뒤늦게 그려지기 시작했다. 방콕경찰서의 노파신 푼사왓 부 서장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문제의 투숙객 단체가 지난 주말 각각 체크인을 했으며 방을 모두 다섯 개, 7층에 넷, 5층에 하나를 배정받았다고 전했다. 이들은 원래 15일 체크 아웃할 예정이었으나 하지 못했다.
네 희생자는 베트남 국적으로 티 응우옌 푸옹(46), 그녀의 남편 홍 팜 탄(49), 티 응우옌푸옹 란(47)과 딘 쩐 푸(37)이다. 다른 둘은 미국 시민권자로 쉐린 청(56)과 당 훙 반(55)이다.
미국 국무부는 조의를 표하며 상황을 "예의 주시하고 있다"고 밝혔다. 미 연방수사국(FBI)은 태국 당국과 수사에 협력하고 있다고 스레타 총리는 말했다.
경찰은 여섯 희생자 모두 5층의 객실에 모여 점심을 들려 했다고 15일 저녁 설명했다. 이 그룹은 음식과 차를 주문, 오후 2시쯤 객실에 배달됐다. 당시는 쉐린 청만 그 객실에 있었다. 노파신 부 서장에 따르면, 웨이터가 손님들의 차를 준비하겠다고 청했으나 쉐린 청은 손사래를 쳤다. 그 웨이터는 회상하길, 그 여자 손님이 “말도 별로 않고 스트레스를 받은 것처럼 보였다”고 말했다고 당국은 전했다. 그러고 웨이터는 객실을 나갔다.
나머지 손님들은 오후 2시 3분부터 17분까지 각자 문제의 객실에 들어왔다. 여섯 손님 말고는 누구도 그 객실에 들어가지 않았고, 문은 안으로 잠겨 있었다고 경찰은 밝혔다. 아울러 경찰은 어떤 싸움과 강도, 완력으로 침입한 흔적도 없었다고 덧붙였다. 경찰이 공개한 사진들을 보면 그 객실 식탁에 차려진 음식들에 손도 대지 않았고, 일부 음식에 씌운 랩도 뜯겨 있지 않았다. 식사 전에 차를 함께 마시자고 해 한꺼번에 찻잔을 들이켰을 가능성이 있어 보인다.
이 그룹의 예약자 명단에는 일곱 번째 이름도 들어 있었는데 경찰은 희생자 한 명의 막내 여동생으로 확인했다. 그녀는 지난주 태국을 떠나 베트남 해안 도시 다낭으로 돌아가 이 사건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고 경찰은 설명했다.
경찰이 인터뷰한 친척들은 티 응우옌 푸옹과 홍 팜 탄 부부가 도로 공사 업체를 소유하고 있었으며, 쉐린 청에게 일본의 병원 건물 프로젝트에 투자하라고 돈을 줬다고 말했다. 경찰은 다낭의 미용사 쩐도 사기극에 당한 것으로 보고 있다. 그의 어머니 투이는 BBC 베트남 지부 인터뷰를 통해 아들이 지난 12일 태국에 여행을 갔으며 14일 집에 전화를 걸어와 다음날까지 체류 기간을 연장하게 됐다고 알리더라고 털어놓았다. 아울러 그 전화 통화가 가족들이 그의 소식을 들은 마지막이었다며 자신이 14일 다시 전화를 걸었지만 아들이 받지 않더라고 했다.
쉐린 청은 이번 여행에 쩐을 개인 미용사로 데려갔다고 그의 학생 한 명이 BBC 베트남 지부에 털어놓았다. 쩐의 부친 푸는 베트남 매체에 아들이 태국을 여행하는 베트남 여성에게 지난주 고용됐다고 얘기했다.
여섯 구의 시신이 발견된 날은 태국 정부가 비자 면제 대상을 93개국으로 늘려 관광산업을 활성화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한 다음날이었다. 그랜드 하얏트 에라완은 관광객들로 북적이는 도심에 위치해 있는데 최근 몇 년 여러 건의 부유층 상대 범죄가 벌어졌다. 지난해 10월 14세 소년이 이 호텔에서 불과 몇백m 떨어진 샴 파라곤 몰 앞 거리에서 3명에게 총격을 가해 살해한 사건이 일어났다. 또 문제의 호텔은 에라완 사원 맞은 편에 자리하고 있는데, 그 사원에서는 2015년 폭탄 테러가 벌어져 20명이 몰살한 일이 있었다.
청산가리 살인 사건의 여파로 스레타 총리는 여행객들을 위한 안전 조치를 강구할 것이라고 태국인들을 안심시키려고 진력하는 모습이었다고 BBC는 전했다. 관광은 태국 경제를 떠받치는 주축이다. 태국은 배낭 여행의 천국이란 인식이 강하지만 이 나라 관광 당국은 조금 더 부유한 관광객들을 끌어들이기 위해 진력하고 있다. 하지만 이 나라 관광 산업은 코로나 팬데믹 충격파에서 완전히 회복하지 못한 상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