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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하수와 백합
 
 
 
카페 게시글
시 해석 및 시 맛있게 읽기 스크랩 내가 가장 예뻤을 때/ 이바라기 노리코
은하수 추천 0 조회 78 18.09.03 20:31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내가 가장 예뻤을 때/ 이바라기 노리코


내가 가장 예뻤을 때

거리는 와르르 무너져 내리고

생각지 못한 곳에서

파란하늘 같은 게 보이기도 했다

내가 가장 예뻤을 때

주위 사람들이 많이 죽었다

공장에서 바다에서 이름도 없는 섬에서

나는 멋을 부릴 기회를 잃어버렸다


내가 가장 예뻤을 때

아무도 다정한 선물을 주지 않았다

남자들은 거수경례밖에 몰랐고

청결한 눈짓만 남기고 모두 떠나버렸다


내가 가장 예뻤을 때

내 머리는 텅 비어 있었고

내 마음은 무디었으며

손발만이 밤색으로 빛났다

내가 가장 예뻤을 때

우리나라는 전쟁에서 졌다

그런 어이없는 일이 있을까

블라우스 소매를 걷어붙이고 비굴한 거리를 쏘다녔다

내가 가장 예뻤을 때

라디오에선 재즈가 넘쳤다

담배연기를 처음 마셨을 때처럼 현기증이 났다

나는 이국의 음악을 마음껏 즐겼다


내가 가장 예뻤을 때

나는 아주 불행했고

나는 아주 바보였고

나는 무척 쓸쓸했다

그래서 결심했다 가능한 한 오래 살기로

나이 들어서 너무도 아름다운 그림을 그린

블란서의 루오 할아버지처럼

 

- 시집 내가 가장 예뻤을 때(스타북스, 2017)

.........................................................

 

 아시안게임 축구와 야구 결승전이 열렸던 지난 91일은 95년 전 관동대지진이 발생한 날이다. 세 차례 연속으로 일어난 진도 8.2 규모의 지진은 당시 20만 채 이상의 목재 건물을 불태우고 20여만 명의 사상자를 내며 널리 퍼져나갔다. 민심은 흉흉해졌고 서로를 믿지 못하는 불신풍조가 만연했다. 이때 내무성이 각 경찰서에 하달한 공문에는 "재난을 틈타 이득을 취하려는 무리들이 있다. 조선인들이 방화와 폭탄에 의한 테러, 강도 등을 획책하고 있으니 주의하라"라는 내용도 있었다. 반정부 운동가들을 제압하기 위한 포석도 깔렸다. 여기에 유언비어들까지 더해져 신문에 보도되었고 "조선인들이 폭도로 돌변해 우물에 독을 풀고 방화약탈을 일삼으며 일본인들을 습격하고 있다."라는 헛소문이 각지에 나돌았다.


  당시에는 지진으로 인하여 물 공급이 끊긴 상태였고, 목조 건물이 대부분인 특성상 일본인들은 화재를 굉장히 두려워하였으므로, 이러한 소문은 진위여부를 떠나 그들에게 조선인에 대한 강렬한 적개심을 유발하였다. 이에 곳곳에서 민간인들이 자경단을 조직해 불시검문을 하면서 조선인으로 확인되면 가차 없이 살해하는 만행을 저지르기 시작했다. 이들은 죽창이나 일본도, 일부는 총기로 무장하였다. 이러하니 조선식 복장만 하고 다녀도 바로 살해당하였다. 신분을 숨기고자 일본식 복장을 한 조선인들을 식별해내기 위해서 조선인에게 어려운 일본어 발음을 시켜보아 말이 좀 어눌하면 바로 칼로 베어버리는 일도 잦았다. 자경단의 광기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잔악했으며 치안당국은 고의로 이를 방관했다.


  이바라기 노리코는 이런 야만의 시대에 태어나 전쟁에서 일본이 패망하여 황폐한 시기 내가 가장 예뻤을’ 10대와 20대를 보낸 전후 일본을 대표하는 여성시인이다. 한국인 못지않게 한글을 사랑하였고, 윤동주의 시에 흠뻑 빠졌으며 그의 시를 일본 교과서에 3편이나 실을 수 있도록 힘쓴 대표적인 지한파 시인으로 잘 알려져 있다. 관동대지진 때의 조선인 살해를 다룬 <장 폴 사르트르에게>란 시도 발표한 바 있다. 일본문단에서는 전후 여성 시인 가운데서 가장 폭넓은 사회의식과 건전한 비평 정신을 보여준 시인으로 평가 받는다. 특히, 일본의 우경화를 신랄하게 비판한 만년의 시집 <기대지 말고>는 일본 사회의 반민주적인 현실에 대한 대중들의 관심을 환기시키며 기록적인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그는 32살이 되어서야 내가 가장 예뻤을 때 나는 아주 불행했다며 전쟁의 참혹함을 돌아보며 일본이 저지른 무모함에 탄식했다. 뒤늦게 그 청춘을 보상받기 위해서라도 가능한 한 오래 살기로결심한다. 와르르 무너져 내린 집안의 천정을 올려다보면서 보았던 파란 하늘에서 희망을 기억해낸다. 그리고 뒤늦게 명성을 얻은 화가 루오를 떠올린다. 노리코는 루오처럼 말년에라도 폐허와 역경을 이겨내고 우뚝 일어설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내다보았다. 그는 세련된 생각으로 세상에 존재하는 편견과 박해에 당당히 맞서 싸웠다. 이바라기 노리코 같은 사람이 일본에 절반만 있더라도 한국인의 뇌리에 남아있는 지난 역사의 치욕과 원한이 얼마간 지워졌으리라. 김학범 감독이 선수들에게 말한 일장기가 태극기 위에 올라가는 걸 눈 뜨고는 못 본다식의 비장함과 부담감을 조금이라도 덜어낼 수 있었을 것을.

     .


권순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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