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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만 바라보아야 합니다!
참고말씀: 창12:1; 민9:18; 삼하24:12; 대하32:31; 사40:31; 합2:3; 마8:25; 막6:46,48; 요6:16,17; 히12:1-3
읽을말씀: 마14:22~33
주제말씀: 마14:29,30
“오라 하시니 베드로가 배에서 내려 물 위로 걸어서 예수께로 가되 바람을 보고 무서워 빠져 가는지라 소리 질러 이르되 주여 나를 구원하소서 하니.”
첫째, 고난당한 우리를 보시고 또 찾아오십니다!
“배가 이미 육지에서 수 리(里)나 떠나서 바람이 거스르므로 물결로 말미암아 고난을 당하더라 밤 사경에 예수께서 바다 위로 걸어서 제자들에게 오시니.”(마15:24,25)
성경은 흔히 인생을 무엇에 비유하곤 합니까? 항해(航海)입니다. 이 같은 항해를 하다보면 종종 무엇을 만나게 됩니까? 풍랑(風浪), 곧 거친 바람과 세찬 물결입니다. 제자들이 배를 타고 건너편으로 가다가 풍랑을 만난 것처럼 말입니다. “배가 이미 육지에서 수 리(里)나 떠나서 바람이 거스르므로 물결로 말미암아 고난을 당하더라.”(24절)
그럴 때마다 우리는 이 풍랑 앞에서 무엇을 느끼게 됩니까? 위기의식(危機意識)입니다. ‘이러다간 꼼짝없이 죽겠구나!’ 하는 그런 생각 말입니다. “...주여 구원하소서 우리가 죽겠나이다.”(마8:25 하) 이 풍랑으로 말미암아 또 무엇에 노출될 수밖에 없습니까? 온갖 고난들입니다. “...바람이 거스르므로 물결로 말미암아 고난을 당하더라.”(24절 하)
그러나보니 누구의 부재(不在)가 아쉬워집니까? 예수님입니다. 제자들이 탄 배에도 누가 아니 계셨습니까? 예수님입니다. “저물매 제자들이 바다에 내려가서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너 가버나움으로 가는데 이미 어두웠고 예수는 아직 그들에게 오시지 아니하셨더니.”(요6:16,17)
어디 계셨던 것입니까? 따로 산에 올라가계셨습니다. 어째서입니까? 기도하시기 위함입니다. “무리를 보내신 후에 기도하러 따로 산에 올라가시니라 저물매 거기 혼자 계시더니.”(23절) / “무리를 작별하신 후에 기도하러 산으로 가시니라.”(막6:46)
왜 처음부터 동행하지 않으신 것입니까? 자신과 제자들을 위해 집중적으로 기도하시는 것과 동시에 잠시 떨어져서 그들의 믿음을 시험하시기(test) 위함일 것입니다. 하나님이 히스기야를 잠시 떠나서 그를 시험하신 것처럼 말입니다. “...하나님이 히스기야를 떠나시고 그의 심중에 있는 것을 다 알고자 하사 시험하셨더라.”(대하32:31 하)
그러나 사람들은 대부분 무엇만을 보고서 절망합니까? 예수님의 부재처럼 느껴지는 상황들입니다. ‘왜 하필 이런 때에 안 계시는 거야? 나 이렇게 버림받은 거야? 정작 내가 필요할 때는 안 보이시는거야!’ 등을 토로하면서 말입니다.
혹 우리도 예수님의 부재처럼 느껴지는 상황들을 보면서 절망하고 있습니까? 원컨대 부재처럼 보이는 이런 상황도 사실은 예수님이 다 보고 계시며, “바람이 거스르므로 제자들이 힘겹게 노 젓는 것을 보시고...”(막6:48 상) 또한 오래지 않아 고난 가운데로 직접 우리를 찾아오신다는 점을 깨닫기를 원합니다. “...밤 사경쯤에 바다 위로 걸어서 그들에게 오사 지나가려고 하시매.”(막6:48 하)
이를 통해 무엇을 깨닫게 됩니까? 예수님의 부재란 있을 수 없다는 점입니다. 생각해보십시오. 한 시도 우리에게서 눈을 떼지 않고 있으실 뿐만 아니라, 또 위급한 상황이 닥치면 친히 찾아오시는데 어떻게 부재하심이 있을 수 있단 말입니까?
그러니 우리는 어찌 해야 합니까? 예수님께서 고난당한 우리를 보시고 또 찾아오신다는 점을 깨닫고, 어떤 상황에도 흔들리거나 낙심하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예수께서 즉시 이르시되 안심하라 나니 두려워하지 말라.”(27절)
둘째, 문제 바라보지 말고 예수님만 바라보아야 합니다!
“오라 하시니 베드로가 배에서 내려 물 위로 걸어서 예수께로 가되 바람을 보고 무서워 빠져 가는지라 소리 질러 이르되 주여 나를 구원하소서 하니.”(마14:29,30)
예수님이 제자들을 향해 물 위로 걸어오실 때, 누가 용감하게 예수님께로 마중 나갔습니까? 베드로입니다.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여 만일 주님이시거든 나를 명하사 물 위로 오라 하소서 하니.”(28절)
어떻게 마중 나갈 수 있었습니까? ‘오라’는 예수님의 명령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즉 ‘나를 명하사 물 위로 오라 하소서’라는 베드로와 간구와 ‘오라’는 예수님의 명령이 있었기에, 물 위로 걸어서 예수님께로 향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오라 하시니...”(29절 상)
이를 통해 무엇을 깨닫게 됩니까? 세상의 거친 바람과 파도를 헤쳐 나가려면, 우리의 기도생활 외에도 예수님의 명령이 더 필요하다는 점입니다. 생각해보십시오. ‘오라’는 예수님의 명령이 없었다면, 베드로가 물 위로 걸어서 예수님께로 향하는 게 가능키나 했을까요? 아닙니다. 그가 배에서 내리는 순간부터 물속에 빠졌을 것입니다. “...베드로가 배에서 내려...”(29절 중)
그러니 우리는 간구할 때마다 무엇을 구하고 또 기다려야 합니까? 예수님의 명령입니다. 물론 그 명령은 천편일률적으로 한 가지일 수 없습니다. ‘오라’일 수도 있고, ‘가라’일 수도 있으며, 때로는 ‘기다리라’나 ‘택하라’가 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줄 땅으로 가라.”(창12:1) / “...비록 더딜지라도 기다리라 지체되지 않고 반드시 응하리라.”(합2:3 하) / “...내가 네게 세 가지를 보이노니 너를 위하여 너는 그 중에서 하나를 택하라 내가 그것을 네게 행하리라 하셨다 하라 하시니.”(삼하24:12 하)
아무튼 우리는 이 명령과 함께 움직이되, 이 명령을 따라 나아가기도 하고 멈추기도 해야 할 것입니다. “오라 하시니 베드로가 배에서 내려 물 위로 걸어서 예수께로 가되.”(29절) /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의 명령을 따라 행진하였고 여호와의 명령을 따라 진을 쳤으며...”(민9:18 상)
만일 예수님의 명령이 없는데도 움직이면 어떻게 됩니까? 필패(必敗)입니다. 그리고 이런 것을 또 무엇이라고 일컫습니까? 객기(客氣, 공연히 부리는 호기)나 만용(蠻勇, 사리를 분별하지 않고 함부로 날뛰는 용기)입니다. 우리 중에는 이런 것들이 하나도 없기를 바랍니다.
한편, 왜 예수님께로 잘 걸어가던 베드로는 갑자기 물속에 빠져 갔습니까? 본문은 명시된 바와 같이, 바람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즉 세찬 바람을 쳐다보는 순간 물속에 빠져들기 시작한 것입니다. “바람을 보고 무서워 빠져 가는지라...”(30절 상)
그런데 이 말을 찬찬히 되새겨보면 이전까지는 누구를 바라보았기에 물속에 빠지지 않을 수 있단 말이 됩니까? 예수님입니다. 즉 예수님만 바라보았을 때는 문제없이 물 위를 걸어서 나아갈 수 있었는데, 예수님이 아닌 바람을 바라보는 순간 무서워하게 되었고 또 물속에 빠져갔던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경우도 인생의 문제들만 바라보면 넘어지고 무너지며 자빠지며 빠져갈 수밖에 없지만, 누구만 바라보면 실패할 리가 없습니까? 즉 누구만 바라보면 넘어지지 않고, 누구만 바라보면 무너지지 않으며, 누구만 바라보면 엎드러지거나 자빠지지 않으며, 누구만 바라보면 당당히 서 있을 수 있습니까?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러니 우리 앞에 당한 신앙의 경주를 완주하려면 예수님만 바라보아야 하고,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하며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히12:1,2)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다가 피곤하여 낙심하지 않으려면 우리를 위해 친히 모든 것을 다 짊어지신 예수님만을 생각하며, “너희가 피곤하여 낙심하지 않기 위하여 죄인들이 이같이 자기에게 거역한 일을 참으신 이를 생각하라.”(히12:3)
인생의 여정을 달려가도 기진맥진하지 않고 걸어가도 피곤하지 않으려면 오직 하나님 한분만 앙모해야 합니다. 하나님 한 분만을 응시하고 한 눈 팔지 않아야 할 것입니다.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가 날개 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하지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하지 아니하리로다.”(사40:31)
그러려면 우리에게 무엇이 절실합니까? 믿음입니다. 믿음을 가지되 이 믿음이 한 시도 작아지지 않게 해야 할 것입니다. “예수께서 즉시 손을 내밀어 그를 붙잡으시며 이르시되 믿음이 작은 자여 왜 의심하였느냐 하시고 배에 함께 오르매 바람이 그치는지라.”(31,32절)
혹 지금 우리는 무엇을 바라보고 있습니까? 문제입니까? 아니면 예수님입니까? 혹 문제만을 바라보면서 낭패를 당했다면, 이제부터라도 문제 바라보지 말고 믿음으로 예수님만 바라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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