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프라노 양지 독창회 감상소감
어제 2014.05.09(금), 19:30에 세종문화회관 쳄버홀에서 열린 소프라노 양지 독창회에 참석했다: 초대권을 마련해주신 어느 누리꾼 님께 감사드린다.
이 독창회는 한국-이탈리아 수교 130년을 기념하는 취지로 열렸다고 한다: 한국과 이탈리아가 앞으로도 더욱 서로 친밀한 우호관계를 이어 나아가기를 바란다.
피아노 반주를 피아니스트 이수미 님이 맡아주었다.
연주곡목은 제1부에서 한국가곡 4개와 모차르트의 모테트 ‘기뻐하라, 환호하라’(Exsultate, jubilate, K. 165), 도니제티의 오페라 ‘돈 파스콸레’ 중 아리아 ‘그 기사의 눈빛’으로 구성됐고, 제2부에서는 처음에 이탈리아와의 1884년부터의 130년 수교를 고려하여 이탈리아 곡으로 로시니의 오페라 ‘세미라미데’ 중 아리아 ‘나를 유혹한 아름다운 눈빛이여’를 연주하고, 다음으로 한국가곡 5개, 그리고 마지막으로 로시니의 오페라 ‘세빌리아의 이발사’ 중 아리아 ‘방금 들린 목소리’를 불렀다. 앵콜곡으로 찬송가를 하나 부르고 음악회는 막을 내렸다.
먼저 나의 관심을 끈 것은 우리 가곡들 가운데 어떤 것을 선택하는가였다. 처음에 오로지 정덕기 작곡의 네 곡을 연속해서 부른 것이 이채로웠다. 그리고는 2부에서 우리 가곡을 5개 불렀는데 이수인(이병기 작시 ‘별’), 임긍수(안문석 작시 ‘물방울’), 김동진(양명문 작시 ‘신아리랑’), 신귀복(박원자 작시 ‘청자예찬’), 최영섭(한상억 작시 ‘그리운 금강산’) 작곡가님들의 가곡을 하나씩 부른 것도 눈여겨볼 만했다. 특히 누구나 잘 아는 동요이기도 한 이수인 작곡의 ‘별’이라는 노래를 그토록 절묘하게, 자연스러우면서도 단순하게 불러냈을 때 온 청중의 감동어린 탄성을 자아냈다.
어제의 양지 독창회에서 나는 정덕기 작곡가님의 가곡들에 대해 새로운 이해와 관심을 갖게 되었다. 그 첫 번째 곡인 전세원 작시의 ‘눈물 꽃다발’은 요즘 지난 4월 16일 세월호 침몰사건으로 온 사회가 정신적 폐허상황에 처하게 된 데에 대한 깊은 애도의 뜻을 표하고자 한다고 양지 교수님께서 노래부르기 전에 청중에게 설명하고나서 불려졌다. 그 노랫말이 과연 시의적절한 내용으로 이뤄져 있다. 이 노래를 나는 처음으로 들었는데 ‘첫 눈에 반한다’는 말이 꼭 들어맞는 노래였다. 두 번째 노래는 임승천 작시의 ‘능소야, 버들아’인데 민요풍의 경쾌한 분위기를 자아냈고, 세 번째 곡은 이선희 작시의 ‘자장가’로 아기를 잠재우는 엄마의 마음과 태도를 고스란히 잘 표현했다. 넷째 곡인 ‘그대가 보낸 차’는 고려 말 대학자 도은 이숭인(1347-92)의 한시 ‘유군수가 차를 보내왔기에 감사하며’를 박숙희 번역시로 된 노랫말인데 귀양살이에서 받은 그 귀한 차를 선물로 받은 이의 감사와 다시 만나고 싶은 그리움이 진솔하게 잘 표현된 것이다. 정덕기 작곡가님의 곡들은 무엇보다도 자연스럽다. 그 표현의 투명함과 단순함이 돋보인다. 전혀 무리하거나 특별하게 돋보이고자 하지 않는다. 그래서 선율의 구성과 흐름은 노랫말의 뜻을 잘 표현하고 있다. 여기서 다시금 작곡에 있어 노랫말의 선택이 무엇보다 중요함을 알 수 있다. 노랫말이 되는 시는 어느 글쓰기에서나 마찬가지로 그 표현하고자 하는 주제를 명확히 어법에 맞게 표현해야 한다. 시인의 생각이 명확하지 않는 데서 엉성하거나 형용사의 나열에 불과한 모호한 내용의 시가 나온다. 이런 불명확한 시를 작곡하면 그 결과물인 노래도 역시 아름다울 수가 없다.
소프라노 양지 님은 이들 가곡들을 저마다 그 노랫말의 스토리와 분위기에 맞게 잘 표현했다: 높은 음과 낮은 음의 변화와 강한 음과 약한 음의 자리매김과 흐름의 조절을 노랫말의 뜻에 맞게 자연스럽고 우아하게 처리하면서 노랫말의 발음을 명확하게 발성하는 노래부르기의 태도가 시종 일관하여 유지됐다. 음악의 재현예술이라기보다 정신의 창조예술이라고 일컫고 싶다. 양지 님은 노래부르기의 예술을 인간이 끌어올릴 수 있는 최고의 경지로 구현시켰다고 본다.
이러한 경이로운 성악예술의 창조에는 여러 가지 요소들이 함께 어울려질 때 가능하다: 성악가의 지성과 감성, 생각하기와 느끼기와 행동하기가 자연스러움과 깨끗함과 조화로움을 통해 투명하게 드러날 때 가능한 예술이다. 음악은 시간적 예술이기에 노래부르는 그 순간에 이러한 요소들이 한데 어울려 나타나게 되는 진실의 표출이다. 소프라노 양지 님의 음악예술은 아름답고 거룩하다. 그 아름다움에는 우아함과 장엄함도 포함된다. 듣는이의 마음을 완전히 사로잡는 마술적 힘을 지니고 있다. 그야말로 노래, 곧 그 노랫말과 선율을 그 본연의 모습으로 해방시키고 재탄생시키는, 더 할 수 없이 드높은 경지의 환희를 절감하게 하는 성악예술의 본보기를 보여주었다.
어제 저녁에 이처럼 숭고하고 아름답기 그지없는 성악예술을 접하게 해주신 관계자 여러분과 양지 교수님과 반주자 이수미 선생님께 깊이 감사드리며 앞으로도 두 분의 줄기찬 건승을 기원한다.
2014.05.10, 새벽 배동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