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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4.경남 양산 통도사 보광전
티끌 속 여래장 묘명 드러나 있어
설법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염화
주련에 실린 격발은 잘못 적힌 듯
보왕찰은 부처님 머무시는 세계
보왕·찰, 부처님·정도의 다른 이름
경남 양산 통도사 보광전.
/ 글씨 구하천보(九河天輔, 1872~1965) 스님.
拈花四十九年後 擊鉢千七百案中
염화사십구년후 격발천칠백안중
一毫頭建寶王刹 微塵裏轉大法輪
일호두건보왕찰 미진리전대법륜
염화미소 49년에/
발우를 들고 천 칠백 공안 중에/
하나의 터럭 끝에 보왕 세계를 건립하고/
미세한 티끌 속에서 대법륜을 굴린다.
불보종찰 통도사 보광전(普光殿)에 걸린 주련으로 구하천보 스님의 필적으로 보인다.
게송의 첫 구절은 부처님 가르침을 언급했으며 이어서
열반 후 부처님 가르침의 본의(本義)를 알고자 치열하게
참선 수행해 한소식을 얻는 과정을 말했고
나머지 두 구절은 여래장의 묘명(妙明)함을 노래하고 있다.
염화는 영축산의 부처님께서 대중을 향하여 연꽃을 들어 보이자
아무도 이를 알아차리지 못하였으나 오직 가섭존자만이 알아차리고
미소를 지었다는 염화미소(拈花微笑)의 고사를 말한다.
선종에서는 불립문자(不立文字), 교외별전(敎外別傳)과
불어 종지를 드러내는 대표적 공안으로 조사선의 진실을 알리고자 후대에 창안된 것이다.
이 글에서 염화는 설법을 상징적으로 나타낸 표현이다.
부처님께서 49년간 법을 설하셨건만 본지(本旨)를 알아차리는 자가 드물어
본월(本月)을 보지 못하고 수월(水月)을 본월로 여기는 자가 많다는 것을 에둘러 지적했다.
부처님의 49년 설법은 보리수 아래서 성불하시고 녹야원으로 가시어
교진여 등 다섯 사람에게 사제법(篩蹄法)을 설하시기 시작해
마지막 사라쌍수 아래에서 수발다라를 제도하신 것을 말한다.
본문에서 후는 입멸 후라는 뜻이다.
격발(擊鉢)을 딱히 번역한다면 바리때를 두드린다는 표현이다.
그러나 이어지는 문장을 해석함에 억지춘향이 돼 버린다.
그러므로 격발(擊發) 또는 경발(擎鉢)을 잘못 적은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든다
격발은 선종에서 뇌정벽력(雷霆霹靂)의 수단을 이용해 학인을
계발(啓發)하는 것을 말한다. 경발(擎鉢)은 발우를 받쳐 든다는 표현이다.
필자는 경(擎)으로 보고 있다. 종사영반의 게송을 보면 확연하게 맞아떨어지기 때문이다.
격발(擊鉢)이든 경발(擎鉢)이든 격발(擊發)이든 모두 수행을 나타낸다.
그리고 혹자는 천칠백루중이라고 했지만, 루(樓)가 아니라 안(案)이 정확하다.
천칠백안중은 선종에서 제시하는 천칠백 공안을 말한다.
실재하는 수(數)가 아니다. 전법의 기연이 무수하다는 뜻이다.
부처님의 말씀이 팔만사천 법문이라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능엄경’ 제4권에서 여래장을 설하시는 말씀 가운데
‘어일모단 현보왕찰(於一毛端 現寶王刹)’,
“하나의 터럭 끝에서 보왕의 세계를 나타낸다”라는 말씀이 있다
여기서 일모를 일호(一毫), 단현을 두건(頭建)으로 변형해 인용했다.
보왕은 최승(最勝), 최상(最上)의 뜻으로 경전 대부분에서는 칠보장엄으로 나타낸다.
보찰(寶刹)에서 보는 접두어로 장엄의 뜻이 있다.
따라서 보왕찰은 부처님이 머물고 계시는 세계다.
까닭에 보왕은 부처님의 다름 이름이고 찰(刹)은 불토의 다른 이름이다.
마지막 구절도 ‘능엄경’을 변형해 인용했다.
원문을 보면 ‘좌미진리 전대법륜(坐微塵裡 轉大法輪)’,
“미세한 티끌 속에 앉아서 대법륜을 굴린다”는 말씀이다.
한 가닥의 작은 털이라는 일호와 미세한 티끌이라는 미진(微塵)은 같은 맥락이다.
이는 ‘능엄경’의 여래장을 설명한 것이다.
묘각의 밝은 지혜는 법계를 원만하게 비춘다.
까닭에 하나가 무량한 것이 되고 무량한 것이 하나가 되며
작은 것 중에 큰 것을 나투고 큰 것 가운데 작은 것을 나툰다고 했다.
도량에서 움직이지 아니하고 시방의 법계 그 어디에나
두루하여 시방의 허공을 머금는다.
따라서 한 터럭 끝에 칠보로 장엄한 불국토를 나투고
작은 티끌 속에 앉아 대법륜을 굴린다고 했다.
이것이 여래장의 묘명이다.
법상 스님 김해 정암사 주지 bbs4657@naver.com
[1654호 / 2022년 10월 26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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