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상관측 사상 가장 긴 열대야라는 금년 여름의 무더위. 한달 이상을 끌어오던 열대야가 드디어 태풍의 영향에 힘입어 어제밤에는 밖에서 들어오는 자연풍만으로 쾌적한 잠을 이룰 수 있었다. 처음에는 에어컨을 켜고 잠자리에 들었으나 중간에 깨보니 기온이 서늘해 기온이 시원해졌음을 확인하고 실로 오랫만에 내방에서 퍈안한 잠을 이룰수 있었다.
근래들어 급격히 비만증세를 보이는 아내는 갈수록 더위를 견디지 못하고 고통을 호소한다. 그래도 나는 견디는 편인 셈이다. 어떻든 이제는 열대야가 사라지고 정상적인 취침생활이 회복되기만을 기대한다. 오늘도 이른 아침부터 소나기가 줄기차게 내리는 덕분에 그래도 시원한 히루를 보내게 된다.
다행히 어제 김장용 배추와 세가지의 무우씨를 파종할 수 있었다. 추가로 구입한 부추와 대파를 옮겨심어야 하는데 아침부터 세차게 비가내려 할수없이 포기하고 철수해야 했다. 내일 이른 아침에 마무리 작업을 할 예정이다.
어제밤 이정훈목사의 목요 사도행전 강해를 들으며 새로운 통찰에 관심을 갖게된다. 행위를 강조하면 안된다는 취지의 강의인데 자칫 오해의 소지가 많았지만 그가 강조하는 요지에는 충분히 이해를 하게되고 공감하게 된다.
행위에 대한 입장은 순서가 문제이다. 왜 행위가 필요한가의 순서이다. 기독교는 구원을 전제로하는 행위가 아니다. 루터의 개혁을 출발시킨 주제였다. 크리스챤의 행위는 구원받은 자에게 나타나는 열매이다. 그런데 이러한 주제를 다루는 분들이 주도면밀하지 못하면 듣는이들을 혼란에 빠트리게 된다. 박보영목사가 믿음의 행동을 강조하는 것은 참된신앙의 증거를 강조하는 논리이지 구원을 위한 실천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한국교회는 지나친 제자훈련과 성경공부의 후유증으로 엉터리 구원론이 대세를 이루는 잘못을 파생시켰다. 구원의 열매를 보여주지 못한다면 구원에 이르지 못한 상태이다. 이것을 예수동행의 기본인 나는 죽고 예수로 사는 삶과 대입한다면 설명이 더욱 쉬워진다. 죽은 자라야지만 부활을 경험할 수 있다. 이론으로만 구원을 주장하는 것은 죽음에 이르지 못한 상태에서 부활을 고집하는 모습 그 자체일 뿐이다. 매 순간에서 나를 죽이고 부활을 경험하는 삶이 온전히 예수와 동행하는 삶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