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교사 99% “교권침해 당해봤다”… 49%는 악성민원 경험
[무너진 교권]
전국 교사 2390명 대상 설문조사
“학기중엔 결혼하지 말라 하기도”
“교사-학부모간 권력균형 맞춰야”
30대 여교사 A 씨는 학기 초 학부모들과의 상담 과정에서 “올해 결혼 계획이 있으면 방학 때로 미뤄 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교사가 학기 중에 결혼할 경우 아이들의 수업 결손이 우려된다는 이유에서였다. A 씨는 “개인사까지 막무가내로 개입하려는 학부모들의 민원에 교직에 대한 회의가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전국 초등교사의 절반은 이 같은 학부모의 ‘악성 민원’에 시달린다는 설문 결과가 나왔다. 25일 전국초등교사노동조합에 따르면 설문에 응답한 초등교사 중 49.0%가 ‘학부모의 악성 민원을 겪었다’고 답했다. 이는 7월 21∼24일 전국 초등교사 2390명을 대상으로 교권 침해 경험을 조사한 것이다. ‘교권 침해를 당한 적 있다’는 응답은 전체 응답자의 99.2%(2370명)에 달했다.
악성 민원 다음으로는 정당한 생활지도에 대한 불응(44.3%), 학부모의 폭언 및 폭행(40.6%), 학생의 폭언 및 폭행(34.6%) 등이 뒤를 이었다.
교사들은 정당한 학습 및 생활지도도 불가능할 지경이라고 하소연했다. 한 40대 여교사는 “한글 기초가 부족한 아이를 따로 지도했더니 ‘내 아들은 대통령감이니 추가 공부를 시켜 기죽이지 말라’는 학생 아버지의 전화를 받았다”고 했다.
교사들은 학부모 민원으로부터 보호받지 못한다고 느끼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이 유치원 및 초중고 교사 1만4500여 명을 대상으로 이달 22, 23일 진행한 설문에서 28.6%는 ‘학부모 민원 피해 발생 시 어떤 도움도 받지 못했다’고 답했다. 학부모 갑질로부터 교사를 보호할 대책으로는 ‘교권 침해 사안의 교육감 고발 의무 법제화 등 가해자 처벌’을 원하는 응답이 63.9%로 가장 많았다.
박주형 경인교대 교육학과 교수는 “초등 저학년일수록 학부모가 교사와 학교 운영 전반을 장악하려는 경향이 강하다”며 “관련 고시와 학생인권조례 등을 개정해 교사와 학부모 사이의 권력 균형을 맞춰야 한다”고 말했다. 윤미숙 초등교사노조 대변인은 “교사들은 수업 시간에 방과후 학원 버스를 잘 탔는지 확인해 달라는 전화까지 받고 있다”며 “이런 민원이 교권뿐 아니라 내 아이와 반 전체의 학습권까지 침해한다는 사실을 알아 달라”고 말했다.
박성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