ㅡ1987년 ‘박종철’이란 이름은 국가폭력의 잔혹한 실체를 드러낸 상징이었다. “책상을 ‘탁’ 치니 ‘억’ 하고 죽었다”는 그 기만의 언어는 권력이 인간의 생명을 얼마나 가볍게 다루는지를 보여줬다. 그러나 우리는 그 비극을 교훈으로 삼았고, 다시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으리라 믿었지만, 믿음이 배신당했다. 친중매국노·친북주사파 등 반국가매국세력의 권력농단에 의해 40년이 지난 오늘 또다른 박종철이 만들어졌다.
이번엔 물고문이 아니라 심리적 고문과 정치적 국가폭력이었다. 공직자로서의 양심과 명예를 지키려던 한 사람이 무리한 조사와 압박 속에서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그는 이재명정권의 체면과 누군가의 정치적 계산을 위해 희생양으로 몰린 사람이었다. 인간의 존엄이 깔아뭉개지고, 법치의 이름 아래 양심이 처형당한 순간, 대한민국은 다시 한번 1987년으로 되돌아갔다.
박종철의 죽음은 권력의 폭력이 물리적으로 인간을 파괴했지만, 정희철의 죽음은 권력이 인간의 정신과 존재 자체를 말살한 사건이다. 고문실의 쇠파이프 대신 특검이라는 이름의 국가조직이 조사라는 이름의 권력행위와 법이라는 이름의 명분으로 한 사람을 죽음으로 몰았다. 그렇기에 이것은 더 끔찍하다. 더 은밀하고, 더 치밀하고, 더 완벽하게 정당화된 국가폭력이다.
이 나라의 공권력은 언제부터 이렇게 비인간적으로 변했는가? 진실을 밝히겠다는 명분 아래 사람을 죄인으로 만들고, 정권의 이해에 따라 수사와 보복이 뒤섞인다. “우린 법에 따라 했다”고 말하지만, 그 법이 인간의 생명을 앗아갔다면 그것은 이미 법이 아니라 칼이다. 법의 이름을 빌린 정치보복, 정의를 가장한 인권유린이야말로 민주주의를 내부에서 썩게 만드는 가장 교묘한 독이다.
국가권력은 인간의 생명을 도구로 써선 안된다. 그러나 지금, 권력은 여전히 국민 위에 군림하면서 사과하지 않는다. 책임을 회피하며, 오히려 절차상 문제 없다는 말로 모든 비극을 봉인한다. 이것이야말로 냉혹한 현대판 고문이다.
손끝의 폭력이 아니라 침묵과 회피로 사람을 죽이는 폭력이다. 정치권력은 두려움을 통해 통제한다. 진실을 말하는 사람은 제거되고, 권력의 이익에 부합하는 사람만이 살아남는다. 정희철의 죽음은 권력이 인간을 어떻게 대하는가를 보여주는 거울이며, 우리 사회가 여전히 박종철 시대의 유령을 벗어나지 못했음을 증언하는 비극이다.
우리가 이 죽음을 개인의 불행으로 치부한다면, 다음 희생자는 또 생긴다. 진실을 밝히려는 공직자, 양심을 지키려는 내부고발자, 정의를 말한 시민들, 그 누구도 안전하지 않다. 그렇기에 이 죽음은 곧 우리 모두의 경고다. “국가폭력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절규다.
이제 국민이 나서야 한다. 권력이 만든 거짓의 벽을 무너뜨리고, 인간의 존엄을 지켜야 한다. 우리는 다시는 “탁” 치니 “억” 하는 사회로 돌아갈 수 없다. 정권이 바뀌고 이름이 달라져도, 국민의 생명 위에 군림하는 권력은 언제나 독재다. 민주주의는 제도에 있지 않다. 그것은 인간의 생명을 존중하는 최소한의 양심에서 시작된다.
정희철의 이름을 기억하는 것은 한 사람의 비극이 아니라, 현 시대 인권의 거울이기 때문이다. 그의 죽음을 덮는 것은 또 하나의 폭력이다. 그의 죽음에서 눈을 돌리는 것은 또 한 번의 공범이 되는 일이다. 권력은 인간 위에 있지 않기에, 자유민주주의체제수호 애국세력과 이 땅의 모든 양심이 다시 외쳐야 한다. “다시는 박종철이, 다시는 정희철이 이 나라에서 나오지 않게 하라.
"정희철을 살려내라! 살인 정권, 파쇼 독재 타도하자!
자유민주주의체제수호 애국국민은 친중매국노·친북주사파 등 반국가매국세력이 설치는 무능과 배신의 정권을 끝장내고, 역사의 심판을 시작할 때이다. 헌정수호! 재판재개! 파쇼독재 타도!
트루스데일리에 실린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