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림령 ; 등려군과 유영과 양귀비가 떠오른다.
첨밀밀(甜蜜蜜)을 부른 대만의 가수 등려군이 우림령을 노래했는데
송나라의 유영이 작사자이며, 양귀비와의 이별을 아파한 현종에게서 시상을 빌렸지.
당 현종이 안녹산의 난을 당하여 양귀비와 함께 서남쪽, 촉 땅으로 피난 가던 도중에
“난의 원인인 양귀비를 처단치 않으면 움직일 수 없다”는 신하들의 강경론에 밀려
내키지 않는 명을 내려 양귀비를 처형하고 다시 떠나는 현종의 험난한 피난길에
열흘을 쉬지 않는 장맛비 속의 말방울 소리는 절렁거리며 폐부를 찔렀으리니
난이 끝나고 장안에 와서 그 때를 회상하며 지은 곡이 우림령(雨霖鈴)이라 ;
비(雨)는 장마(霖)로 내리는데 말방울 소리(鈴), 조각난 가슴으로 울었노라.
이 유명한 곡의 제목이 우림령인데
송나라의 유영이 이 이름으로 가사를 지었고
등려군이 달콤한 목소리에 애수를 섞어 최근에 노래를 불렀지.
이러한 역사의 우림령이 현악영산회상과 길타령의 아명(雅名)이다.
현악영산회상은 장중하며 느릿하고 길타령은 흥청거리며 빠른데,
이 연주 속에서 처절히 우는 말방울 소리를 들은 이 누구였을까?
소나기로 쏟아지는 소리다발 속에서 맑게 우는 가야금 소리가
홀연 빗속의 말방울 소리로 그의 가슴을 쩔렁거리진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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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에 통달한 동양의 통치자가 둘 있었으니 당의 현종과 조선의 세종이다.
현종은 예상우의(霓裳羽衣)와 우림령(雨霖鈴)을 지었으며
세종은 여민락(與民樂)을 짓고 종묘제례악을 향악으로 재창조하였다.
현종은 한 여인을 위하여 음악에 삶을 태웠고
세종은 만 백성을 위하여 예술에 혼을 실었으니
현종은 순수 예술가이며 세종은 실용 예술가일까?
현종이 지은 곡명이 천년을 지나서도 회자되고
세종이 지은 곡이 육백년을 유행하고 있으니
위대한 예술가의 숨결은 천년도 짧구나!
낮에는 밥벌이 하러 나와 여민락(與民樂) 가락으로 숨 쉬고
밤에는 즐기러 들어와 우림령(雨林鈴) 가락으로 젖는구나.^^
첫댓글 현악 영산회상과 길타령의 아명이
우림령이라니..
그러한 역사적 배경을 모른다면
그 누가 관심을 갖겠습니다.
세종대왕의 청음실력은
석공이 먹줄로 표시한 부분까지 미세하게 못 깎아서.
돌을 기억자로 깎아 만든 악기.
갑자기 이름이 생각 안 남..ㅎㅎ
음이 틀린 부분을 지적하셨다는 이야기가 전해내려오는데..
빠달님의
국악에 대한 해박한 지식 또한
소리여울의 전설이 될 듯 합니다..ㅎ
음악의 천재였지요.
정간보를 만들고, 여민락을 짓고, 당악의 향악화를 시도한.....
세종, 그가 없었다면,,, 우리 글이 없었을 테고, 우리 음악은 당악에 기울었을 테고.
세종을 낳은, 세종의 어머니가 제 선조인 민비閔妃입니다.ㅋ
그 악기 이름. 편경입니다. 생각났습니다. ㅎ
네, 맞습니다.ㅎㅎ
소리가 맑고 투명하지요.
젊을 때 들어보곤 안 들어본 지 오래 되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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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한국어사전 : 우림령 雨林鈴"
인터넷 <다음>에서 우림령을 치면 맨 처음에 위처럼 "우림령 雨林鈴"이라고 뜹니다.
참 기가 막힐 일입니다. 우림雨林의 령鈴이라니요?
우림雨林은 열대지방의 비가 많고 고온다습한 지역의 숲을 말합니다.
그 우림지대에서 말방울 소리가 울렸다고요?
명백한 오류입니다.
림은 장맛비를 뜻하는 淋이나 霖의 표기를 써야 합니다, 둘 다 맞습니다.
허지만 수풀 林으로 표기하면 안 됩니다.
그러니 인터넷을 보고 그것이 정답이라고 우기면 절대 안됩니다. 오류가 너무 많습니다.
삭제된 댓글 입니다.
모든 나의 지식은
님께서 들어 느끼는 귀의 총명함과
손가락이 지어내는 영롱한 음색에 비하면 부끄러워 얼굴이 벌개지지요.;;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