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마고우 (竹馬故友)
윤 영 애
엊그제 초등학교 동창 여자친구 10명 모임(들국화)을 했다. 우린 동창회는 안 나가고 친한 친구끼리 모임을 한다.
30여년 전부터 두 달에 한 번씩 만나서 맛있는 거 먹고 카페에서 수다 삼매경을 하다 보면 두세 시간이 쏜살같이 지나간다. 청주에 사는 친구가 7명이고, 3명은 경기도에 산다. 짝수 달에 모이지만 이번엔 홀수 달인 3월에 만났다.
10인 10색인 친구들의 모임이라 만나면 이야깃거리가 무궁무진하다. 초등학교 시절 6년 동안 함께 하다가 뒤늦게 아쉬움을 달래려고 다시 만났어도 어린시절 추억이 새록새록 하다.
뒤늦게 신학공부를 해서 개척 교회 목사가 된 친구!
사업하다가 요양 보호사를 하는 친구들!
서울에서 직장생활 하다가 양평에서 전원생활 하는 친구!
너무 가난해서 초등학교만 졸업하고 우리 엄마 중매로 결혼했는데, 공부에 한이 맺혀 중, 고등학교를 검정고시로 공부하고, 고희가 다된 나이에 대학 졸업을 한 대단한 친구!
손주들 봐 주러 격주로 서울을 오르내리는 친구!
왕비마마 대접 받으면서 건강 염려증이 심한 친구!
부모님 가업을 이어 받아 가게를 하는 친구!
그리고 만 중생을 구제하고 있는 나!
이런 친구들의 만남이니 대화가 끊이질 않는다. 성격이 밝고 순수해서 그런지 얼굴에 그늘이 묻어나지 않고 항상 즐겁고 행복한 시간이다. 어린시절 작은 발걸음으로 학교를 오 가느라 다들 힘들었어도 결석하지 않고 열심히 학교생활을 했다. 동서남북으로 떨어져 살던 우리들은 하교시간이 되어 느릿느릿 집에 가다 보면 해는 어느새 서쪽 하늘로 기울어지고 있었다. 그래도 그 시절이 그립고 아름다운 것은 천진난만하고 근심 걱정이 없었기 때문 아닐까?
세월은 유수 같다더니 순식간에 고희를 바라보는 날이 가까워졌다. 무궁무진한 꿈을 꿨던 시절의 아련함이 삶의 원동력이 되어 지금의 인생길이 행복한 것 같다. 순수하고 애틋한 우정이 오래가는 것도 서로의 믿음과 이해가 바탕이 되어서 건강한 만남을 갖고 커가는 자식들 소식도 서로 공유할 수 있어 기쁘다.
두 달에 한번 만나는 것도 바빠서 못 나오는 친구들도 있지만 그래도 가끔씩 얼굴을 보여 주려고 애를 쓴다. 난 죽마고우란 말을 좋아하지만 어제의 친한 친구가 오늘의 적이 된다는 말도 있다. 서로의 시기와 질투 때문에 등을 돌리고 척을 지는 일도 비일비재(非一非再) 하다. 별거 아닌 것에 맘 상해서 평생 보지 않고 사는 사람도 있다. 어지럽고 답답한 세상에 허물없이 마음을 터 놓을 수 있는 것만도 복이라고 생각하며 미소를 짓는다. 짧은 만남의 여운이 길게 남아서 가끔은 전화로 한참 동안 수다를 떨기도 한다. 대나무로 만든 말을 타고 놀던 오랜 친구라는 죽마고우!
언제 들어도 다정하고 친근감이 감도는 익숙한 단어지만. 어떤 때는 대수롭지 않은 것 같기도 하다. 사회에서 만난 친구들은 서로 속내를 감추며 조심하지만, 코 흘리개 친구들은 형제자매가 몇이며 숟가락이 몇 개인 것도 속속들이 알게 되니 말이다. 애경사도 함께하고 나들이도 함께 했다. 친구 한 명이 비행기 오래 타는 걸 무서워해서 외국여행을 함께 가본 적이 없다. 대신 제주도,울릉도,독도 등 우리나라에서 미식투어를 함께 하고 기념사진도 많이 찍어서 그나마 다행이다. 독도는 5대가 덕을 쌓아야 밟아 본다는 가이드 사장님의 멘트가 10여년이 지난 지금도 귓전에 맴돈다. 묵호항에서 버스 한 대의 관광객이 여객선을 함께 타고 울릉도에 도착했는데, 바로 독도로 간다면서 우리팀하고 다른팀만(합이 12명) 갈 수 있다고 하니까 난리법석이 났다. 마침 독도행 여객선 한 대가 고장나서 다 못 간다고 했다. 우린 행운이었지만 다른 팀들이 너무 안쓰러웠다. 그렇게 울릉도 독도 여행을 즐겁고 무사하게 추억 보따리를 가득안고 집으로 왔다. 초등학교 후배가 여행사를 한 덕분에 좋은 잠자리와 맛있는 음식 그리고 멋진 가이드님을 만나는 행운을 누렸다. 그때부터 여행 날짜를 나보고 잡으라고 해서 어디든 내가 일정을 짜야만 했다. 환갑 여행이든 제주도 여행이든 날을 잘 잡아서 좋았다고 지금도 고맙게 생각해주니까 뿌듯하다.
언제까지 이 모임을 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지금 생각 같아선 팔순에도 만나고 있을 것 같다. 봄 꽃이 만발하는 4월엔 꽃구경 하느라 정신없이 만남의 시간이 지나가겠지! 짧은 봄날이지만 반가운 친구들의 멋진 모습을 기대하면서 올해의 봄을 만끽할 것이다. 들국화처럼 순수하고 은은한 향기를 품고사는 죽마고우가 있어서 내 인생은 행복하다. “건강한 만남을 위하여 친구들아, 파이팅 하자!”
2024년 3월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