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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3. 13. 달날. 날씨: 어제 봄비가 온 뒤라 기온이 뚝 떨어져서 찬 기운이 돌지만 하늘이 맑다.
[봄을 찾는 푸른샘 외계인들과 함께]
푸른샘 하루 선생으로 사는 날이다. 박경실 선생님이 하루 쉬는 날이라 대신 모둠 선생 노릇을 하니 아침부터 몸이 바쁘다. 우리 푸른샘 외계인들이 미리 알고 있어서 서로 어색하지 않다. 칠판에 하루 흐름을 써 놓고, 다 함께 아침열기 채비를 하는데 바로 선생을 찾는 어린이들이 있다. “전정일 선생님은 외계인이래요!”를 한마디 던지는 친밀함과 귀여움으로 무장한 우리 푸른샘 외계인들답다. 다 함께 아침열기를 마친 뒤 장염으로 며칠 학교를 못 나온 소율이가 병원 들렸다 온다고 해서 천천히 기다린 뒤에 푸른샘 아침열기를 간단히 했다, 하루 흐름을 알려주고 어린이마다 얼굴과 기운을 확인하는 아침열기는 노래와 시, 즐거운 놀이가 함께 간다. 손뼉치기를 가르쳐주었더니 33번도 박자를 넣어서 칠 수 있다. 외계인들은 아는 숫자는 어마어마하다. 누구는 천까지 알고, 누구는 백까지도 알고, 누구는 만도 안단다. 노래도 벌써 많이 배워놓아서 목소리도 크게 잘 부른다.
산책은 텃밭으로 갔다. 세 군데 텃밭을 모두 둘러보고 농사 일을 가늠하는 시간이다. 우리 푸른샘에게는 어느 곳인지 알려주는 뜻도 있고, 냉이를 캐려는 마음도 있다. 바로 현관에서 내려오자마자 옆쪽에 있는 꽃밭에서 올라오는 왕수선화도 가르쳐주고, 학교 숲 속 놀이터 텃밭을 잠깐 들렸다 바로 열리는어린이집에서 빌려준 텃밭으로 갔다. 텃밭에는 열리는 어린이들과 선생님들이 일을 하고 있는 게 보였다. 우리는 우리가 농사지을 이랑과 고랑을 확인하는데 윤우가 여기에서 놀고 싶다고 해서 그러자 했다. 아이들이 자유롭게 텃밭 이곳저곳을 둘러보는 동안 나는 사놓은 거름을 날라서 우리 텃밭 곳곳에 놔두었다. 다음에 텃밭 뒤집기 할 때 한 눈에 들어오도록 미리 해놓는 게다. 고맙게도 지난해보다 더 땅을 내주어서 거름을 한참 날랐다. 우리 외계인들은 선생이 하는 일은 모두 관심이 많다. 선생이 거름포대를 나르니 해보고 싶다고 해서 같이 나르기도 했다. 뭐든 스스로 해보고 싶고 재미나게 하는 어린이들은 프레네 말처럼 일이 본성이다. 올해는 제법 긴 고랑밭이라 농사지을 게 늘어나니 좋다. 모둠마다 심을 땅도 필요하고, 학교에서 크게 농사지어야 할 작물까지 심어야 하니 텃밭 계획을 잘 세우고, 거리 정도에 따라 일을 야무지게 할 수 있도록 교사들이 애를 쓸게 보인다.
예전 농사지은 밭에 가보니 냉이가 올라와 있다. 부추는 조금 뒷면 자를 수 있겠다. “냉이 캐자” 어린이들은 선생이 찾아서 보여주는 냉이를 잘 기억해 금세 찾아낸다. 여기저기서 “선생님 이거 냉이에요?”를 묻는다. 선생이 앉아있을 때면 늘 뒤에서 쓱 다가와 팔로 안는 시화는 많이 캐보았다고 아주 금세 여러 개를 찾는다. 윤우는 선생이 하는 걸 보고 나뭇가지를 도구로 써서 캔다. 냉이 냄새를 맡게 해주니 모두 좋아했다. 학교 옆 세 번째 밭으로 가는 길에 소율이를 만났다. 오랜만에 보니 더 반가운데 안색이 환하지는 않은 걸 보니 몸이 완전히 회복되지는 못했다. 같이 세 번째 밭으로 가서 마늘이 올라오는 걸 알려주었다. 왕수선화 올라오는 것처럼 마늘도 잘 올라오고 있다. 아직 밀은 올라오지 않았다. 지난해 겨울농사로 심고 뿌려둔 것들이다. 밀도 곧 올라오리라 본다. 햇볕이 잘 들지는 않는 밭이지만 어린이농부들과 정성을 들이면 어느 정도는 거둘 것이라 웃거름도 주고 풀을 잡고 앞으로 할 일이 보인다.
텃밭 둘러보기를 마치고 학교로 들어와 냉이를 같이 씻었다. 역시 서로 씻어보려는 우리 외계인들은 일놀이를 즐기는 어린이농부 소질이 보인다. 어린이들이 쉬는 동안 나는 냉이를 칼로 잘게 잘라서 냉이지짐 할 채비를 했다. 김은지 선생님이 어린이들과 쉬는 동안 채비를 마치고 지짐판에 달궈질 때쯤 어린이를 부엌으로 불렀다. 딱 냉이지짐 한 판 양이라 부치는 모습도 보고 선생이 보여주는 뒤집기도 구경하며 먹을 채비를 하는 게다. “우와” 소리는 선생이 뒤집기를 여러 번 하도록 더 부추기게 하는 힘이 있다. 어린이나 어른이나 응원하는 소리는 힘을 나게 한다. 큰 접시에 내려놓은 냉이지짐 한 판에 침이 고인다. 우리가 같이 먹을 거니 몇 개로 잘라야 하냐고 물어보니 숫자를 많이 알고 있다.
“나는 천도 알아요.”
“나는 백도 알아요.”
“아니 벌써 그걸 알다니요. 지금은 10까지만 알아도 되는데요.”
가위로 반으로 잘라가며 또 숫자를 물어보고, 또 반으로 잘라가며 물어보고, 열여섯 조각이 되었다.
“우리끼리만 먹으면 돼지가 되니까 우리 형님들이랑 나눠먹어요. 그런데 양이 너무 적으니 이번에는 옹달생 형님들과 나눠먹으면 되겠어요.”
착한 외계인들은 나눠먹는 것에 인색하지 않다. 배달을 가겠다며 세 어린이가 손을 번쩍 들었다. 모두가 돌아와서 다 함께 한 조각씩 맛을 보았는데 정말 맛있게 먹는다. 딱 한 판만 했으니 아쉽긴 하다.
“맛있어요. 더 먹고 싶어요.”
“다음번에는 냉이가 더 컸을 테니 그때 또 해먹어요. 아 쑥도 올라오니까 쑥지짐도 해먹어요.”
조금 쉬었다 교실에 모여서 선생이 골라온 책을 읽는 시간이다. 선생 옆에 서로 앉겠다는 어린이들이 많은 게 외계인 교실이다. 권정생 선생님이 쓴 “학교 놀이”와 “오소리네꽃밭”을 들려주었다. 오소리네꽃밭 읽을 때와 학교 놀이 읽을 때 어린이들 자세가 다르다. 집중해서 듣는 데는 적당한 시간이 필요하다. "학교 놀이“ 읽을 때는 모두 편하게 눕거나 기대거나 선생 뒤에 와서 같이 보거나 저마다 편하게 들었다. 사실 오소리네꽃밭을 읽을 때는 우면산 꽃을 또 찾으러 가거나, 마을에 꽃밭을 만들면 좋은 활동이다. 책과 활동이 이어지는 교육활동이 자연스럽도록 해야 한다. 오늘은 ”학교 놀이“ 책처럼 돌아가며 선생님이 되어 무언가를 말해보는데 방점을 찍고 그렇게 해보았다. 책 속의 병아리들처럼 스스로 선생님이 되어 제안을 하고 다 함께 해보는 활동이다. 나중에는 책을 읽고 연극놀이를 해도 좋다. 책 읽기 시간에는 독서감상문을 쓰기도 하고, 이처럼 다양한 움직임과 실천을 함께 가져가면 좋다. 윤우는 물구나무를 서보자 해서 교실이 한바탕 물구나무서는 외계인들이 되고, 엉덩이로 동무와 세 번 박수치고, 앞으로 구르고, 뒤로 구르고, 껑충 뛰고, 옆으로 구르고, 춤을 추고, 하늘로 뛰어오르고, 모두가 돌아가며 같이 했다, 하늘로 뛰어오를 때는 선생이 번쩍 들어서 천장을 닿게 해주니 더 신이 났다. 한바탕 떠들썩한 책 읽기 놀이를 마치니 어느새 점심시간이다.
어린이들을 이해하는 데는 어린이들의 놀이 모습과 먹는 모습을 보면 빠르게 기운을 알아차릴 수 있다. 몸이 날래거나 몸을 능숙하게 쓰기 힘든 것도 들어오고, 먹는 속도와 먹는 양을 봐도 어린이가 지닌 문화와 특성을 가늠할 수 있다. 청소 시간에도 그렇다. 한 번 배운 빗자루질과 걸레질을 하는 모습을 보니 어린이들 손끝이 익숙해감을 확인한다. 1층 마루 청소를 같이 하는데 2학년 하진이가 동생들에게 재미나게 쓰는 법도 보여준다.
낮 공부인 몸놀이는 관악산 골짜기 탐험이다. 골짜기 위까지 올라가면 가뭄이더라도 물이 있다. 바깥 활동을 할 때는 형님과 동생이 짝이 되어 손을 잡고 가는 게 규칙이다. 형님들은 귀찮을 수 있지만 함께 안전을 지켜가는 귀한 실천이기도 하고, 형님과 동생 사이 재미난 이야기도 많다. (남)윤우가 “선생님 언제 다 가요?” 네 번 넘게 물어봤다. 제법 걸어서 올라가야 하니 물어보는 게 당연하다. 앞장 서 걷고 천천히 뒤따라 걷다 보며 걷는 속도는 다르지만 끝내는 모두가 다 같이 한 곳에 있다. 아직은 다리가 불편한 김진영 선생님이 남아서 새참 채비를 해주고, 김수정 선생님이 함께 갔다. 나랑 뒤에서 천천히 가는 어린이들이랑 손을 잡고 갔다. 행정 일을 보시는 틈틈이 바깥 활동할 때 큰 힘이 되어주신다.
경칩 때나 3월 이맘때쯤 관악산 용마골 골짜기를 가면 어린이들이 정말 좋아한다. 개구리와 도룡농을 만나고, 개구리알과 도롱뇽알을 실컷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규칙은 선생들이 늘 들려주는 것처럼 알들이 화상입지 않도록 차가운 물 속에서 살짝 만져보거나 물 밖에서도 얼른 느끼고 물 속에 돌려보내야 한다. 어린이들이 내는 소리에 골짜기가 시끌벅적하다.
“와 여기 개구리가 있어.”
“와 여기 도룡뇽이 있어.”
“여기 가재다!”
“나는 개구리를 다섯 마리도 더 봤어요.”
물이 차가워 손을 오래 넣고 있기가 쉽지 않은데도 선생이 한 번 해보자니 너도 나도 와서 물 속에 손을 넣기도 했다. 하진이랑 설아는 정말 오랫동안 골짜기 물속에 손을 넣고 참아낸다. 한바탕 떠들썩하게 골짜기 생명들과 인사를 나눈 뒤에는 바위 곳곳에 앉아 명상을 한다. 산에 가면 어느 곳에서나 가만히 눈을 감고 명상을 하며 소리를 들어보는 시간을 갖는다. 사실 숲 속의 주인들에게 미안할 만큼 우리 어린이들과 선생들은 떠들썩하다. 잠시라도 숲 속의 고요함을 느끼고 바람 소리와 물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게 명상이다. 명상하는 모습을 사진에 담는 찰칵 소리가 싫다는 이야기도 나와서 다음에는 선생들이 좀 조심해서 명상에 방해되지 않도록 해야겠다. 명상하기 앞서 자연의 소리나 숲 속 소리에 귀 기울여보는 이야기도 하지만 명상 뒤에는 저마다 들은 소리와 느낌을 발표를 하곤 한다. 시 쓰기 앞 채비다. 명상을 한 판 한 뒤에 시를 쓰는 활동이 익숙한 형님들을 따라 동생들도 시를 쓴다. 우리 푸른샘 1학년은 불러주면 선생들이 받아써준다. 이번에도 모두 멋진 시다. 어린이는 시인 맞다.
내려가는 길에 뒤쪽에서 소율이랑 손을 잡고 가며 우리도 도란도란, 앞에 가는 혁준이랑 한울이도 도란도란 신이 났다. 선생이 산신령 지팡이라고 들고 간 긴 나뭇가지도 들어보고, 둘이서 끊임없이 이야기를 하고 간다. 지온이랑 한울이가 짝꿍처럼 다녔는데 요즘은 혁준이랑 한울이가 늘 같이 다니고 있다. 몸이 워낙 날래기도 하지만 때로는 두세 번 이야기하고 기다려줘야 하는 모습을 보이지만 선생들 상관없이 즐거워 덩달아 즐거울 때가 많다. 은유랑 윤우가 짝이 되어 내려가는데 도란도란 이야기가 정겹다. 윤우는 내 이름을 바꿔 부르며 신이 나서 내려간다. 다행히 아무 탈 없이 모두가 가는 관악산 바깥활동을 마쳤다. 일상이지만 갈 때마다 신경을 곤두세우고 가는 게 선생이다. 골짜기 탐험을 할 때면 늘 많이 물에 빠져서 운동화가 젖고, 넘어져서 우는 어린이가 있곤 하는데, 오늘은 위쪽으로 바로 가서 빠진 어린이가 준희 말고는 없다. 준희는 젖어도 씩씩하게 잘 걷는다. 그래도 불편했을 거다. 낮은 학년은 젖을 것을 대비해서 미리 여벌옷을 학교에 놔두고 있지만 당장 골짜기에서는 추울 수 있으니 간단하게 채비를 해가는 것도 괜찮다.
마침회를 하며 새참을 먹으며 하루를 되돌아보았다. 밀가루를 먹으면 안 되는 소율이를 위해 만두 속만 담을 그릇 찾으러 내려갔다 오니 앗 해솔이가 슬프다. 동무들이 상황을 아주 잘 설명해주었다. 새참 접시에 놓인 만두에 해솔이 침이 조금 튀어서 묻었는데 어린이에게 싫다는 소리를 듣고 슬퍼서 그렇단다. 해솔이가 마음이 진정될 때까지 기다리며 새참을 먹었다. 우리 해솔이 마음이 진정되니 아무렇지 않다는 듯 만두를 먹었다. 늘 이렇게 속상하지만 금세 풀고, 사과도 잘하고, 싸워도 금세 잘 노는 어린이 세상이다. 한 번 감정이 상하면 길게 가거나 삐지는 어른들 세상과 참 달라서 좋다. 학교를 닫는 마침회니 아침부터 지금까지 하나하나 떠올리며 물어보았다. “아침에 우리가 간 텃밭에서 캔 것은? 먹은 것은 무엇일까요? 세 번째 텃밭에서 본 건? 꽃밭에서 올라오고 있는 것은? 우리가 읽은 책 이름은 무엇일까요? 누가 쓴 책이었나요? 관악산 용마골에서 본 것은?” 대답도 잘하고 기억력도 좋은 외계인들이다. 하루 살면서 고맙거나 형님들이나 서로에게 부탁하고 싶은 이야기도 들었다. 재미난 이야기도 많고 꼭 귀담아 들어야 할 이야기와 꼭 형님들에게 전해야 할 말도 많은 게 푸른샘 어린이들이다. 손뼉도 잘 치고 노래도 다 배웠다며 아침보다 두 곡을 더 불렀다. 박경실 선생님이랑 많이 배워서 “진달래”와 “쑥떡 쑥덕”도 잘 부른다.
함께 길게 살아보니 우리 푸른샘 어린이 세상 속으로 푹 빠졌다. 우리 외계인들 표정과 말투와 기운이 그대로 들어왔다. 서로 외계인임을 비밀로 하며 함께 일하고 놀고 웃고 춤추며 신나게 살았다, 곧 자치기도 하고, 비석치기도 하고, 쑥지짐, 꽃지짐을 해먹어야겠다.
교사마침회 마치고 밤이 되어서야 드디어 글모음 편집 일이 마무리되었다. 모둠마다 편집, 1,2,3차 편집 일까지 선생들이 정말 애쓴 1월, 2월이었다. 4차 마지막 마무리도 일이 제법 나온다. 사진과 글 넣기, 다듬기 마치고 인쇄소에 넘기고 통화를 마치고 한숨 돌렸다. 어서 나와 어린이들과 식구들과 함께 읽을 수 있기를 기다리면 된다.
첫댓글 생생한 글
감사합니다 선생님^^
함께 하루를 보낸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