겸손과 용서
읽을말씀: 마18:1-35; 골3:12~14
주제말씀: 마18:3,4
“이르시되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돌이켜 어린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어린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는 사람이 천국에서 큰 자니라.”
첫째, 자신을 낮추고 누구라도 실족시키지 말아야 합니다!
“이르시되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돌이켜 어린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어린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는 사람이 천국에서 큰 자니라.”(마18:3,4)
천국에서는 누가 크냐는 제자들의 물음에 예수님은 무엇이라고 답하셨습니까? 어린아이처럼 되지 않으면 천국에 들어갈 수 없으며, 또 누구든지 어린아이처럼 자신을 낮추는 사람이 천국에서 큰 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르시되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돌이켜 어린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어린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는 사람이 천국에서 큰 자니라.”(3,4절)
어째서입니까? 주 안에서 자신을 낮추는 겸손한 사람이 천국에 들어갈 수 있고, 또 그곳에서 크다는 증거를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서 누구라도 실족하게 하지 말라고 하셨습니까? 예수님을 믿는 작은 자 중 하나입니다. “누구든지 나를 믿는 이 작은 자 중 하나를 실족하게 하면...”(6절 상) 그러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이들을 예수님의 이름으로 영접하고, “또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이런 어린 아이 하나를 영접하면 곧 나를 영접함이니.”(5절) 그들을 귀히 여겨야 할 것입니다. “삼가 이 작은 자 중의 하나도 업신여기지 말라 너희에게 말하노니 그들의 천사들이 하늘에서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얼굴을 항상 뵈옵느니라.”(10절)
그러나 만일 실족하게 하는 자들에게는 무엇이 따릅니까? 화(禍), 곧 영원한 지옥 불에 처하게 됩니다. “실족하게 하는 일들이 있음으로 말미암아 세상에 화가 있도다 실족하게 하는 일이 없을 수는 없으나 실족하게 하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도다 만일 네 손이나 네 발이 너를 범죄하게 하거든 찍어 내버리라 장애인이나 다리 저는 자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손과 두 발을 가지고 영원한 불에 던져지는 것보다 나으니라 만일 네 눈이 너를 범죄하게 하거든 빼어 내버리라 한 눈으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둔을 가지고 지옥 불에 던져지는 것보다 나으니라.”(7~9절)
또한 작은 자 중 하나라도 잃는 것은 누구의 뜻이 아닙니까? 하나님입니다. “이와 같이 이 작은 자 중의 하나라도 잃는 것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뜻이 아니니라.”(14절) 그러니 우리는 어찌 해야 합니까? 목자가 잃어버린 양 하나를 찾듯이, 우리도 잃어버린 그들을 찾아서 데리고 와야 할 것입니다. “너희 생각에는 어떠 하냐 만일 어떤 사람이 양 백 마리가 있는데 그 중의 하나가 길을 잃었으면 그 아흔아홉 마리를 산에 두고 가서 길 잃은 양을 찾지 않겠느냐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만일 찾으면 길을 잃지 아니한 아흔아홉 마리보다 이것을 더 기뻐하리라.”(12,13절)
그런 맥락에서 범죄한 형제를 어떻게 하라고 하셨습니까? 개인적으로 먼저 가서 권면하고, 안 되면 2~3 사람이 함께 가서 권면하고, 그래도 안 되면 마지막으로 교회가 그에게 권면하게 해야 합니다.
“네 형제가 죄를 범하거든 가서 너와 그 사람과만 상대하여 권고하라 만일 들으면 네가 네 형제를 얻을 것이요 만일 듣지 않거든 한두 사람을 데리고 가서 두세 증인의 입으로 말마다 확증하게 하라 만일 그들의 말도 듣지 않거든 교회에 말하고 교회의 말도 듣지 않거든 이방인과 세리와 같이 여기라.”(15~17절)
왜 이렇게까지 하라고 하신 것입니까? 범죄한 형제를 버리라는 말씀입니까? 아닙니다. 오히려 우리가 어떻게 해서든지 그가 회개하고 돌아오도록 최선을 다하라고 말씀해주신 것입니다.
그러면서 무엇을 약속해주셨습니까? 두세 사람이 예수님 이름으로 모인 곳에 예수님도 함께 하시되, “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20절) 그들이 예수님 이름으로 합심하여 무엇이든지 구하면 하나님께 이루어 주시고, 무엇이든지 풀면 하나님께서 풀어주실 것입니다.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무엇이든지 너희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진실로 다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의 두 사람이 땅에서 합심하여 무엇이든지 구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그들을 위하여 이루게 하시리라.”(18,19절)
그러므로 우리는 어찌 해야 합니까? 모일 때마다 예수님 이름으로 모이고, 범죄한 이들이 회개하고 돌아오도록 합심하여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둘째, 서로를 불쌍히 여기고 마음으로 용서해야 합니다!
“너희가 각각 마음으로부터 형제를 용서하지 아니하면 나의 하늘 아버지께서도 너희에게 이와 같이 하시리라.”(마18:35)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몇 번이나 용서하라고 하셨습니까? 일곱 번입니까? 아닙니다. 오히려 일곱 번을 일흔 번까지라도 용서하라고 하셨습니다. “그 때에 베드로가 나아와 이르되 주여 형제가 내게 죄를 범하면 몇 번이나 용서하여 주리이까 일곱 번까지 하오리이까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게 이르노니 일곱 번뿐 아니라 일곱 번을 일흔 번까지라도 할지니라.”(21,22절)
이와 관련해서 어떤 비유를 말씀해주셨습니까? 용서할 줄 모르는 종 비유입니다. 이 비유에는 어떤 인물들이 등장합니까? 그 종들과 결산하려는 한 임금과 “그러므로 천국은 그 종들과 결산하려 하던 어떤 임금과 같으니.”(23절) 임금께 1만 달란트 빚진 자, “결산할 때에 만 달란트 빚진 자 하나를 데려오매.”(24절) 그리고 이 사람에게 1백 데나리온 빚진 동료입니다. “그 종이 나가서 자기에게 백 데나리온 빚진 동료 한 사람을 만나...”(28절 상)
비유의 내용은 무엇입니까? 만 달란트 빚진 자가 갚을 것이 없어 임금께 호소했더니 임금이 그를 불쌍히 여겨 탕감해주셨습니다. 하지만 그가 자기에게 백 데나리온 빚진 동료를 불쌍히 여기지 않고 그 빚을 갚도록 옥에 가두어버리자, 이를 알게 된 임금이 화가 나서 그 사람도 똑같이 옥에 가두어버렸다는 내용입니다(23~34절).
이 비유의 결론은 무엇입니까? 주님께서 우리를 불쌍히 여기신 것과 같이, 우리도 각각 형제를 불쌍히 여기며, “내가 너를 불쌍히 여김과 같이 너도 네 동료를 불쌍히 여김이 마땅하지 아니하냐 하고.”(33절) 마음으로 형제를 용서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너희가 각각 마음으로부터 형제를 용서하지 아니하면 나의 하늘 아버지께서도 너희에게 이와 같이 하시리라.”(35절)
사실 우리도 누구에게 해당합니까? 일만 달란트 빚진 자, 곧 천문학적인 빚을 진 자들로써, 우리로서는 도무지 갚을 길이 없는 자였습니다. 하지만 누가 다 탕감해주셨습니까? 하나님입니다. 무엇으로써 그리 하셨습니까? 그리스도의 핏값입니다.
그러니 이제부터는 어떠한 자세로 살아가야 함이 마땅합니까? 하나님께서 우리를 불쌍히 여기신 것처럼 우리도 서로를 불쌍히 여기며 마음으로부터 용서하려는 자세입니다.
지금 우리는 어떻습니까? 우리 자신이 ‘일만 달란트 빚진 자’였음을 깨닫고 있습니까? 우리로서는 도무지 갚을 수 없는 엄청난 채무를 탕감 받은 자임을 깨닫고 있습니까? 이제라도 이 같은 점들을 깨닫고 우리도 긍휼과 자비와 겸손과 온유와 오래 참음으로 옷 입고, 사랑으로 띠 띠우기를 힘써야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하나님이 택하사 거룩하고 사랑 받는 자처럼 긍휼과 자비와 겸손과 온유와 오래 참음을 옵 입고 누가 누구에게 불만이 있거든 서로 용납하여 피차 용서하되 주께서 너희를 용서하신 것 같이 너희도 그리하고 이 모든 것 위에 사랑을 더하라 이는 온전하게 매는 띠니라.”(골3:12~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