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그란 가족이 응원합니다
/김수진
또래보다 한 뼘은 작은 여섯 살 아이가 운동장 한가운데 서 있습니다.
아이의 뒤 양옆으론 행사 중임을 알리는 키 큰 풍선 기둥이 옅은 바람에 살짝씩 흔들리고 있어요 아이 앞쪽에는 어른, 아이 백여 명이 자유롭게 앉아 있습니다. 하얀 원피스를 입은 아이의 고사리 같은 손에는 버거워 보이는 큰 마이크가 들려 있어요. 고개 숙인 아이의 발아래엔 동그랗고 납작한 장난감이 있었는데, 아이는 장난감 가까이 가려고 여린 보폭을 이리저리 옮겼어요. 아이가 수줍게 고개를 들었고 마이크에 아이의 날숨이 빨려 들어가니, 순간 주변이 조용해집니다. 이어 음악이 흘렀고, 노래 반주에 얹어진 꼬맹이의 가녀린 목소리에 모두 귀 기울여줘요. 그 마음을 읽은 듯 아이는 조심스레 노래를 읊조립니다. "When I am down and oh my soul so weary (내가 풀이 죽었을 때, 내 영혼이 지쳤을 때) 맨 앞에 앉은 남편은 연방 눈물을 찍어댔어요. 제가 아이의 모습을 영상에 담으며 노랫가락에 맞춰 좌우로 한 손을 흔들자 사람들이 두 손을 올려 박자를 맞춰줬습니다. 아이는 그제야 여유가 생기는지 관중석을 향해 씨익 웃어주고는 목청을 높이더군요. 당연히 음정 박자 제멋대로였지만요.
미국 캘리포니아의 초등학교 부설 유치원에 다니는 작은아이는 이번 학예회에 참여할 실력과 상황이 되지 않았습니다. 뇌에 병이 생겨 말과 행동이 어눌해져서 언어치료와 행동치료, 심리치료를 받고 있었거든요. 학예회는 탤런트 쇼란 이름으로 유치부부터 6학년 대상으로 학교에서 하는 연중행사인데, 이곳은 한국처럼 영특하고 특출난 아이들만 참가하는 것이 아니라 장기나 보여주고 싶은 취미가 있으면 누구든 참여할 수 있는 프로그램입니다. 물론 오디션이란 관문도 있습니다. 전 아이가 부족한 걸 인정하지만, 자신감을 심어주고 싶었고, 이걸 계기로 친구도 만들 수 있을 것 같더라고요. 공립학교 내 일반 유치원에 다니긴 하나 딸아이를 도와주는 보조 선생님과 수업하니 아이들에게 다가가지 못했어요. 늘 외톨이인 딸을 보며 가슴에 돌무덤이 생겼습니다.
탤런트 쇼 공지를 학교 게시판에서 본 날, 아기 때부터 자주 듣던 노래를 틀었어요. 가사는 엉망이었지만 후렴 부분은 제법 따라 하는 것 같으니 연습하면 가능성이 있겠다 싶었죠. 오디션은 1절만 한다니 그날부터 종일 반복해서 노래를 들었어요. 며칠 후 어설프게나마 오디션엔 합격했습니다. 문제는 본 행사일 경우 2절로 가는 간주 부분에 아이가 집중을 못 한다는 거예요. 복용하는 약들이 아이의 몸에서 중심 잡는 기능을 앗아갔고, 말 대신 몸으로 감정표현을 했던 습관들이 남아서 인내심이 부족 했거든요. 고민 끝에 간주 부분에 내레이션을 넣기로 했어요. 즐겁게 놀이하듯 익히게 하느라 전 힘들었지만, 아이는 한 소절 한 소절 외울 때마다 자신감이 생기는지 목소리가 조금씩 단단해지더라고요. 그 과정들을 겪어내며 몰래 흘렸던 눈물이 가슴 어디쯤 빗물이 되어 꽃을 피웠답니다 투정 부리기 무색할 만큼 값진 경험이었어요.
행사 당일, 아이들과 나란히 앉아 대기하는 모습조차 감동이었어요. 아이는 덤덤한 듯한데 제가 더 긴장해서 다른 집 아이들의 공연을 즐길 여유는 없었죠. 가운데 무대에 눈길이 가야 하는 데 풍선 기둥 옆 대기석에만 시선이 꽂혔고 이윽고 제 아이의 차례가 되었습니다 당신이 나를 일으켜 더나은 내가 되었다는 내용의 <유 레이즈 미 업(You Raise Ne Up>이란 제목의 노래였어요 끝까지 부를 것이란 기대는 애초에 하지 않았습니다. 이만큼도 눈물 날 만큼 대견하니까요 무대 중앙 자리를 찾지 못하고 심지어 가만히 서 있기도 힘든 아이를 위해 담당 선생님께서 리허설 때 동그란 장난감을 바닥에 놔줬습니다. 장난감이 있는 곳에 서야 한다, 거기 서서 노래를 불러야 한다. 재차 당부했죠. 덕분에 아이는 자리도 잘 찾았고, 노래를 시작했으며, 관중석을 바라 보고 또박또박 내레이션도 했어요. 심지어 2절까지 마무리했습니다. 운동장에 모인 학생과 부모들 모두 환호했고 입 피리를 불었어요. 눈물을 훔치는 학부모도 있었습니다.
더 바랄 것이 없었죠. 6개월 시한부 선고받았던 아이가 2년 넘게 버티고 있고, 의학적으로 설명되지 않을 만큼 호전되고 있었어요. 간질로 인한 발작은 진즉에 멈쳤고, 복용 중인 많은 약 종류를 서서히 줄여보자는 희망적인 진료 계획도 들었거든요 노래가 끝나자, 담당 선생님은 아이에게 달려가 하이파이브를 해줬어요. 헛바닥을 쭉 빼고 쑥스럽게 웃던 아이의 얼굴에 햇살이 별 비처럼 쪼개져 내렸어요. 그날처럼 하얀 원피스를 입고 꽃 머리띠를 한 딸아이의 사랑스러운 모습은 어느 해 가족사진에 담겨 있어요.
우리 가족은 매년 가족사진을 찍거든요. 결혼하면서 남편과 결혼기념일마다 사진을 찍자, 약속했어요. 몇 해 동안 둘만 있던 사진에 불임으로 애태우다가 낳은 첫아이가 들어가 셋이 되니 말할 수 없을 만큼 감격스러웠어요. 젖내 나는 작은 입을 동그랗게 벌리고 배냇짓 하는 아이를 보며 '동그랗게 살아야겠다' 다짐했고, 그런 의미로 동그란 가족이라는 가족 애칭도 만들었어요. 그렇게 특별한 어려움없이 동그란 가족 이야기는 한 해 두 해 쌓여갔습니다.
미국으로 이민 오며 남의 일이라 생각했던 갖가지 사건 사고가 내 일이 되기 전까지 말이에요. 우여곡절이많았지만,그와중에도
사진찍는 건 잊지않았죠. 아이들에게 약속은 지키는 것이라고 가르쳤으니 엄마가 모범을 보여야 하잖아요 물론 쉽진 않았답니다 사진 속 넷은 매년 환하게 웃고 있지만 벽면 가득 채운 사진에서 지난 시간이 고스란히 피어올랐어요 이때는 남편이 소송 건 처리하느라 촬영 시간에 맞춰 겨우 도착했지. 이날은 큰아이가 감기약에 취해 사진 찍다가 졸았지. 이날은 둘째가 징그럽게 보채서 모두 애를 먹었지. 이건 남편이 사진사에게 제안한 포즈였지. 이때는 팬데믹이어서 마스크를 쓰고 찍었지. 맞다. 이날은 망한 직후라서 남편 살이 빠져 있구나. 사연 없는 사진이 없더라고요 그래도 얼마나 다행이에요. 우리 넷 누구도 사라지지 않았잖아요. 벅차게 감사한 일이에요. 올해는 스물여섯 번째 동그란 가족 이야기를 찍어요. 이번 해는 사진에 찍힌 모습 그대로의 저이길 희망해 봅니다.
겨을이지만 유난히 온화했던 며칠 전, 박은실 작가님의 <당신은 오월을 닮았군요> 책이 도착했어요 좋아하는 색깔이 초록인데다 제목도 사랑스러워서 시쳇말로 존멋이었어요 오월다운 오늘 날씨와 딱 어울린다며 한껏 부풀어서 책장을 넘겼죠. 첫 간지에 '동그란 김수진 선생님 가족을 응원합니다.' 친필 사인이 있었어요. 동그란 필체가 어딘지 낯익다고 생각하는 동시에 하릴없이 코가 찡해지는 거예요 안면도 트지 않았지만, 우리 가족을 응원해주는 사람이 또 있구나 하는 생각에 감사하고 든든했던 거죠. 갱년기 탓을 하며 시원하게 한바탕 울음을 쏟아냈네요. 동그란 가족의 이야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어요. 저희 이야기를 들으며 위안받고 힘을 냈다며 응원해주는 사람이 있으니까요. 아이 아팠던 것 말고도 어려움이 많았지만 괜찮아요.
인생은 시련을 이겨내는 과정이라잖아요.
라디오에서 <유 레이즈 미 업> 노래가 흘러나옵니다. 11년이 지난 지금도 아이의 내레이션은 잊을 수 없어요. 그 장면이 자동 재생되는 눈물 버튼으로 기억장치에 박혔지만 어떤 상황이건 힘을 낼 이유가 충분히 됩니다 "저의 이름은 에이미예요. 여섯 살이에요. 지금 저는 아주 똑똑하고 강하지만 아기였을 때 많이 아팠어요. 그때 이 노래가 저를 행복하게 해줬어요. 그래서 여러분에게 들려주고 싶어요. 여러분의 평화를 빌어요.''
여러분도 지금 힘내고 있는 거죠? 치열한 일상 속에서 씩씩하게 삶을 일구는 모든 내일을 동그란 가족이 응원할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