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 "실거주 입증 책임은 집주인에게"…첫 판결 나왔다
임차인 A씨에게 큰 고민거리가 생겼는데요. 살던 전셋집의 계약 갱신을 둘러싸고 임대인과 갈등이 생겼기 때문입니다.
임대인 B씨의 전세보증금 인상 요구를 A씨가 거부하자 B씨는 자신이 직접 그 집에 들어가 살겠다면서 A씨와의 계약 갱신을 거부합니다.
◇최소 2개월 전까지 통보해야
임대인은 전세 계약기간이 끝나기 6개월부터 2개월 전까지 기존 계약을 갱신 거절이나 임대료 인상과 같은 계약조건의 변경을 임차인에게 알려야 합니다. 이 기간 내 임대인이 계약 갱신 거절이나 임대료 인상을 알리지 않았다면 주택임대차 보호법에 따라 임대계약이 자동으로 갱신된 것으로 봅니다. 이같은 묵시적 갱신의 경우 임대차계약조건은 이전과 동일하게 유지됩니다.
A씨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B씨가 최소 2개월 전까지 임대료 변경이나 계약갱신 거절 의사를 밝히지 않았다면 기존 계약을 그대로 유지할 수 있습니다. 이런 경우 임대인의 실거주 여부는 계약 갱신과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주택임대차보호법이 기본적으로 임차인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한 법이기 때문입니다.
아울러 주택임대차보호법 제6조의3에 따르면 임대인은 정당한 사유 없이 임차인의 계약갱신 요구를 거절할 수 없는데요. 쉽게 말해 법으로 정해진 사유가 있을 때만 계약 갱신을 거부할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대표적인 정당한 갱신 거절 사유에는 △무단 전대차나 차임 연체 등 임차인에게 귀책사유가 있을 때 △임대인이 임차인에게 상당한 보상을 하기로 합의했을 때 △철거나 재건축 등의 사정으로 임대차를 계속하기 어려울 때 △집주인이나 그 직계존·비속이 실거주할 예정일 때 등이 있습니다.
주택임대차보호법
제6조(계약의 갱신) ① 임대인이 임대차기간이 끝나기 6개월 전부터 2개월 전까지의 기간에 임차인에게 갱신거절(更新拒絶)의 통지를 하지 아니하거나 계약조건을 변경하지 아니하면 갱신하지 아니한다는 뜻의 통지를 하지 아니한 경우에는 그 기간이 끝난 때에 전 임대차와 동일한 조건으로 다시 임대차한 것으로 본다. 임차인이 임대차기간이 끝나기 2개월 전까지 통지하지 아니한 경우에도 또한 같다.
② 제1항의 경우 임대차의 존속기간은 2년으로 본다.
제6조의3(계약갱신 요구 등) ① 제6조에도 불구하고 임대인은 임차인이 제6조제1항 전단의 기간 이내에 계약갱신을 요구할 경우 정당한 사유 없이 거절하지 못한다. 다만,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경우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
1. 임차인이 2기의 차임액에 해당하는 금액에 이르도록 차임을 연체한 사실이 있는 경우
2. 임차인이 거짓이나 그 밖의 부정한 방법으로 임차한 경우
3. 서로 합의하여 임대인이 임차인에게 상당한 보상을 제공한 경우
4. 임차인이 임대인의 동의 없이 목적 주택의 전부 또는 일부를 전대(轉貸)한 경우
5. 임차인이 임차한 주택의 전부 또는 일부를 고의나 중대한 과실로 파손한 경우
6. 임차한 주택의 전부 또는 일부가 멸실되어 임대차의 목적을 달성하지 못할 경우
7. 임대인이 다음 각 목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사유로 목적 주택의 전부 또는 대부분을 철거하거나 재건축하기 위하여 목적 주택의 점유를 회복할 필요가 있는 경우
가. 임대차계약 체결 당시 공사시기 및 소요기간 등을 포함한 철거 또는 재건축 계획을 임차인에게 구체적으로 고지하고 그 계획에 따르는 경우
나. 건물이 노후ㆍ훼손 또는 일부 멸실되는 등 안전사고의 우려가 있는 경우
다. 다른 법령에 따라 철거 또는 재건축이 이루어지는 경우
8. 임대인(임대인의 직계존속ㆍ직계비속을 포함한다)이 목적 주택에 실제 거주하려는 경우
9. 그 밖에 임차인이 임차인으로서의 의무를 현저히 위반하거나 임대차를 계속하기 어려운 중대한 사유가 있는 경우
◇실거주 이유로 계약 갱신 거절…입증 책임은 누구에게?
문제는 법 규정을 교묘히 이용하는 꼼수들입니다. 갱신 거절 사유 중 하나인 '실거주' 여부를 둘러싸고 임대인과 임차인이 갈등을 겪는 경우가 많은데요.
'실거주' 사유의 경우 임대인이 실제로 해당 주택에 거주할 계획이 있다는 사실을 입증하기만 하면 세입자의 계약 갱신 요구를 거절할 수 있는데요. 쉽게 인정받을 수 있다는 점을 노려 실제 거주는 하지 않으면서도 '실거주'를 핑계로 내세워 계약 갱신을 거절하는 임대인이 적지 않습니다.
최근 임대인이 실거주를 이유로 임차인의 계약 갱신 요구를 거절하려면 거주 의사에 대한 증명 책임을 져야 한다는 대법원의 첫 판단이 나왔습니다. 만일 집주인의 설명이 변덕스러워 신뢰가 훼손됐다면 적법한 거절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판단인데요. 이런 상황이라면 세입자의 갱신 요구를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 대법원의 생각입니다.
지난달 26일 대법원 2부(주심 민유숙 대법관)는 아파트 임대인 C씨가 임차인 D씨 부부를 상대로 낸 건물 인도 청구 사건에 대해 C씨 승소로 판결한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중앙지법으로 돌려보냈습니다.
C씨는 2019년 1월21일 임차인 D씨에게 서울 서초구 소재 아파트를 2019년 3월 8일부터 2021년 3월 8일까지 빌려주는 임대차 계약을 맺었습니다. 이후 임대차 계약 만료일을 3개월여 앞둔 2020년 12월 22일 D씨는 C씨에게 계약 갱신을 요구합니다. 그러나 C씨는 10여 일이 지난 이듬해 1월 4일 "코로나 사태로 사업이 어려워져 다른 아파트를 팔고 빌려준 아파트에 들어가 살려고 한다"며 계약 갱신 요구를 거절합니다.
이에 D씨가 주택임대차보호법에 규정된 계약갱신요구권을 행사하겠다는 내용증명을 보내자 C씨는 다시 노부모가 거주하게 될 계획이라고 말을 바꾸곤 집을 비우라는 내용의 소송을 제기합니다.
소송에서 D씨는 C씨가 소송을 제기한 뒤 노부모 거주로 말을 바꿨다는 점을 지적하는데요. D씨가 실거주에 따른 계약갱신 거부 조항을 악용해 거짓으로 부당하게 갱신거절권을 행사했다고 주장했습니다.
◇대법 "실거주 의사, 집주인이 입증해야"
사건 1·2심 재판부는 "C씨는 적법하게 갱신 거절권을 행사했다는 점이 인정되고 실거주 주체가 변경된다고 하더라도 이 갱신 거절이 돌연 부적법하게 된다고 볼 수 없다"며 C씨 승소 판결했습니다.
대법원의 판단은 달랐는데요. 대법원은 하급심의 판단을 뒤집었습니다. 대법원은 "실제 거주 사유로 갱신 요구를 거절하려면 D씨가 이를 증명해야 하는데 통상적으로 수긍할 수 있을 정도라고 인정하기에는 의문의 여지가 있다"며 "이를 충분히 심리하지 않은 원심은 법리를 오해해 판결에 영향을 미친 잘못이 있다"고 판시했습니다.
아울러 대법원은 일단 '실제 거주하려는 의사'가 분명히 있다는 것을 통상적으로 수긍할 수 있을 정도로 입증할 책임이 임대인에게 있다고 밝혔습니다.
이번 대법원 판단은 2020년 7월30일 주택임대차보호법 개정에 따른 계약갱신요구권이 시행된 지 3년여 만에 처음으로 실거주 입증 책임이 누구에게 있는지를 판시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는데요.
현행법은 △임대인의 주거상황 △임대인이나 직계존·비속의 직장이나 학교 등 사회적 환경 △임대인이 실거주의사 가지게 된 경위 △임대인의 실제 거주 의사와 배치, 모순되는 언동의 유무 △이런 언동으로 계약 갱신에 대해 형성된 임차인의 정당한 신뢰가 훼손될 여지가 있는지 등을 제시하고 여러 사정을 종합해 판단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대법원은 C씨가 실거주와 관련, 노부모님의 거주로 말을 바꿨다는 점에 주목했습니다. 또한 C씨는 해당 아파트 외에도 인근에 다른 아파트를 보유하고 있었는데요. 전학이나 이사를 준비하지도 않았다는 점도 지적했습니다.
C씨는 부모님의 거주 의사를 입증하기 위해 지방에 거주하는 부모님이 근처 병원에서 1년에 1∼5차례 통원진료를 받았다는 외래진료확인서를 제출하기도 했는데요. 대법원은 해당 확인서만으로 이를 수긍할 수 있을 정도라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습니다.
대법원 관계자는 "실거주를 이유로 한 임대인의 갱신거절에 대해 임차인이 '실거주 의사가 없음에도 갱신을 거절하는 것'이라고 주장하는 경우 소송에서 임대인에게 실거주 의사가 있는지를 어떻게 판단하는지 문제가 됐고 하급심 재판실무에서 의견이 엇갈렸다"며 "이 판결은 증명책임의 소재, 실거주 의사가 있는지 여부를 판단하는 방법에 관한 법리를 최초로 명시적으로 설시한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네이버법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