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 소박한 취미 /추대식
세월 탓일까? 여러 만남에서, 대화의 으뜸 주제는 단연 건강이다. 흔히 말하는 무병장수, 100세 시대 얘기다. 병으로 고통을 받으면서까지 오래 살면 불행하다는 것, 두려워하는 문제이기도 하다. 그렇다. 건강한 심신을 위해서라도 평소 주어진 일에 열중하려 한다.
짬짬이 한두 취미를 즐기는 것도 한 방법이 되는 듯하다. 하지만 현실적 제한이 있고 여의치가 않은 것이 현실. 일상에서 경제 활동 못지않게, 심신 건강을 위한 취미 활동, 이를 위해서는 스스로에 대한 마음 여유가 필요한 듯하다. 개미 쳇바퀴처럼 굴러가는 일상 속에서, 짬을 만들어 낼 수 있는 지혜. 이런저런 분주함 속에서 한가함을 만들어 내는 느긋함, 얼마나 멋진 일인가?
골프, 이 운동을 말할 때 흔히 양면성이 있다고 한다. 올림픽 정식 종목으로서의 국민 스포츠이기도 하고, 한 편으로는 다소 부정적인 면이 있는 것도 현실이다. 철없는 자의 갑 질, 라운딩를 빙자한 불법 로비, 심지어 내기 골프 등의 어두운 소식도 있기 때문이다. 현실 적으로 갈등이 생길 수 있는 요소다. 그러나 나로서는 매우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운동이다. 평소 부정적인 사고를 멀리 하고자 하는 탓도 있지만, 나름의 추억이 있기 때문이다.
지난 학창 시절. 처음으로 골프하는 모습을 우연히 목격했을 때의 아련한 기억, 그 장면이 아직도 생생하다. 1970년대 초(初), 나는 고등학생이었다. 그야말로 꿈이 많았던 학창시절이었다. 그 당시 주변 환경은 물자가 부족했고, 소위 춥고 배고픈 시대였다고나 할까. 지금의 수준과는 아예 비교가 되지 않았다. 나 역시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배려 덕분으로 어느 지방 소도시로 유학을 하게 되었지만, 이는 오로지 부모님의 희생과 헌신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자취와 하숙생활을 번갈아 하면서, 나름의 꿈을 키우던 그 시절. 아마 고 2때였을까? 우연히 시내 외곽을 지나다가, 골프라는 낮선 운동 광경을 처음으로 보았다. 파란 잔디 위, 화려한(?) 복장을 한 사람들. 삼삼오오 남녀가 어울려 무언가를 휘두르는 모습. 순간 호기심과 묘한 감정이 마음속에서 일어났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먹고 살기에 바빴던(?) 시절이 아니었던가? 그 속에서의 독특한 모습을 스쳐 지나며 목격한 나. 문화충격이었고 맘속 여운은 길게 남았다.
지방 소도시의 변두리에 위치한 골프장. 담장 안에서 풍기는 여유 넘치는 분위기. 솔직히 그 때 심정은 아! 저 사람들은 무슨 팔자일까? 팔자도 좋은 사람들이구나 정도였다. 세월이 흘러가면서, 이해하는 쪽으로 정리가 되었고, 먼 훗날 나도 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젊은 시절의 현실은 녹록치 않았기에, 오랜 기간 잊고 지냈다. 말이 쉽지 어디 주어진 일에 묻혀 살면서, 시간적 여유를 찾기가 쉬웠겠는가? 그 사이 세월은 빠르게 지나갔다.
그렇게 또 세월이 흘렀고, 이후 퇴직과 함께 제2의 인생을 시작했다. 무엇보다 일정한 시간의 뒷받침이 되어야 하는 운동이다 보니 늦게 입문을 하게 된 것이다. 시작이 반이랄까? 다시 상당기간 세월이 흘렀고, 집에 아이들에게 권유를 했다. 경험상 사회성을 키우기에 좋은 운동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아빠의 권유에 엉겁결에 조기 입문(?) 하게 된 아이들. 그들 스스로의 직장에 충실하면서, 틈새 필드를 찾는 것 같고, 스크린을 들락거리는 모습이다.
7~8년 사이에 녀석의 실력은 일취월장, 어느 새 싱글 수준이 되었고, 무척 고마워하고 있다. 장녀 역시 타수에 연연하지 않으면서, 백돌이 수준으로 가끔 즐기는 듯하다. 인성을 키워 주기 위해 입문을 권유 할 당시, 나는 세 가지의 원칙을 강조했다. 평범하지만 평생 내가 지켜온 신념이기도 했다. 먼저 자신의 능력으로만 쳐야 한다. 남의 부정한 도움을 받으면서까지 운동을 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다음으로 캐디는 물론, 동반자를 항상 존중하라고 했다. 마지막으로 내기 골프를 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상처를 받아서도 안 되고, 상대에게 상처를 줘서도 안 되는 이유 때문이었다.
물론 입문하는 과정에서, 아이들의 표정은 알쏭달쏭했지만 이해하는 듯 했다. 지금까지 지켜지는 것으로 알고 있고, 앞으로도 지켜야 할 부모 자식 간의 약속이기도 하다. 사실 이 운동을 처음 접하고, 경험하게 되면서 나름의 느낌과 기준이 있었다. 아이들에게 기왕 해야 할 운동이라면 하루라도 빨리, 가급적 젊은 시절이 좋겠다고 했다. 허리가 잘 돌아 갈 때(?) 시작해야 효과가 배가되는 운동. 시작이 늦었던 설움을 알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나는 소박한 골프를 좋아한다. 퍼블릭은 물론 정규 홀을 가리지 않는다. 캐디는 있어도 좋고, 노 캐디 플레이도 좋다. 필드에서는 카트를 타지 않을 때가 편하고 가능한 걷고자 한다. 한 때 잘 나갈 때는 투(Two) 오버 트로피를 받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은 꿈같은 얘기다. 거리도 많이 줄었고, 보기플레이가 편하다. 기회가 주어져서 나갈 수 있을 때면 그냥 좋다. 좋은 동반자와 함께 훈훈한 분위기를 느낄 때면 엔돌핀도 솟는 듯하다.
타수에 얽매이지 않으니 홀가분한 지금. 이상도 이하도 아닌 취미로 즐기니까 그저 좋다. 누가 "골프는 용사(勇士)처럼“ 플레이하고, 신사(紳士)처럼 행동하는 게임”이라 했던가? 앞으로도 걷는데 불편이 없다면 가끔 하게 될 것 같다. 오늘 따라 새삼 생각나는 그 골프장. 아득한 학창시절, 그 때 그 광경이 그립기만 하다. 마침 그 날은 유달리 아지랑이가 피어오르고 있었는데... *
2020. 6. 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