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견리사의(見利思義)
눈앞에 이익을 보거든 먼저 그것을 취함이 의리(義理)에 합당(合當)한 지를 생각하라는 말이다.
見 : 볼 견(見/0)
利 : 이할 리(刂/5)
思 : 생각 사(心/5)
義 : 옳을 의(羊/7)
(상대어)
견리망의(見利忘義)
원말 : 견리사의 견위수명(見利思義, 見危授命)
출전 : 논어(論語) 헌문편(憲問篇)
이 성어는 논어(論語) 헌문편(憲問篇)에서 연유한다.
子路問成人。
자로가 어떠해야 완전한 사람(成人)이냐고 물었다.
子曰; 若臧武仲之知, 公綽之不欲, 卞莊子之勇, 冉求之藝, 文之以禮樂, 亦可以為成人矣.
공자가 말했다. “장무중처럼 총명하고, 맹공작처럼 욕심이 없고, 변장자처럼 용감하고, 염유처럼 재주가 있는데다가 예악으로 문채를 내게 한다면 완전한 사람이 될 수 있다.”
曰; 今之成人者, 何必然? 見利思義, 見危授命, 久要不忘平生之言, 亦可為成人矣.
또 말했다. “오늘날의 완전한 사람이 어찌 반드시 그렇겠는가? 이익을 보면 의로움을 생각하고, 위험을 보면 생명을 기꺼이 버리고, 오랫동안 가난하더라도 평생의 말을 잊지 않는다면 완전한 사람이 될 수 있다.”
바꾸어 말하면 이 글귀는 '정당하게 얻은 부귀가 아니면 취하지 않는다', '의를 보고 행하지 않는 것은 용감함이 아니다' 는 뜻을 담고 있다.
안중근(安重根) 의사가 나라의 앞날을 걱정하며 뤼순 감옥에서 쓴 글귀로 유명한 말이다.
견위수명(見危授命)을 따로 떼어 소개했을 때 나온 대로 눈앞에 이익을 보고(見利) 먼저 의리에 합당한지를 생각하라(思義)는 이 성어가 앞에 나온다.
공자의 말이라 유명하기도 하지만 그보다 먼저 떠올리는 사람이 안중근(安重根) 의사다. 북간도와 상하이(上海) 등지에서 단지회(斷指會)라는 비밀 결사조직을 결성하고 항일 독립운동을 펼치던 안중근 의사가 침략의 원흉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 이등박문)를 사살했다.
순국할 때까지 뤼순(旅順/여순) 감옥에서 남긴 유묵(遺墨) 중에 보물 제569-6호로 지정된 것이 바로 이 글이다. 동아대 박물관에 소장돼 있다.
논어(論語) 헌문(憲問)편에서 제자 자로(子路)가 완성된 인간에 대해 여쭙자 공자(孔子)가 답한 이야기에서 나온다.
완전한 인격자가 되려면 모두 노(魯)나라의 대부인 장무중(臧武仲)의 지혜, 맹공작(孟公綽)의 무욕, 변장자(卞蔣子)의 용기, 제자 염구(冉求)의 재주를 갖고 예악을 겸비해야 한다고 했다.
그렇지 못할 때엔 '이익 될 일을 보면 의로운가를 생각하고, 나라가 위태로운 것을 보면 목숨을 바치며, 오래된 약속일지라도 평소에 한 그 말들을 잊지 않는다면 완성된 인간이라'고 덧붙였다.
見利思義 見危授命, 久要不忘 平生之言, 亦可以爲成人矣.
기준을 낮춘 것에 목숨을 바치는 것이 들어 있으니 완성된 인간의 어려움을 알겠다.
견리사의(見利思義)와 비슷한 말에 이름을 돌아보고 뜻을 생각한다는 고명사의(顧名思義)가 있고 이익 앞에서 의리를 잊어버린다는 견리망의(見利忘義)는 정반대의 뜻이다.
한고조(漢高祖) 유방(劉邦)을 도와 천하를 차지하는데 도움을 줬던 역상(酈商)이 유방 사후 여태후(呂太后) 일족을 친분을 이용하여 제거한 것을 두고 후세 사람들이 이익에 어두워 의를 잊은 짓이라 손가락질한 데서 나왔다.
안중근 의사는 마음속에 나라를 생각하고 의리를 생각하는 것이 체화되었기에 목숨까지 바쳐 당일의 거사를 완수할 수 있었다.
이익 앞에서는 모두 작아지는 것이 사람의 속성이라 하더라도 기득권을 놓치지 않으려고 바둥거리는 정치권이나 많은 것을 쌓아두고 더 이익을 탐하는 부유층의 행위에 대조되어 너무나 부끄럽다.
견리사의(見利思義)
눈앞에 이익을 보거든 먼저 그것을 취함이 의리에 합당한 지를 생각하라는 말이다.
견리사의(見利思義)는 이로움을 보면 의로운가를 먼저 생각하라는 말로, 자기에게 이익이 되는 일이 있을 때, 그 일이 올바른 것인가를 먼저 생각해야 한다는 뜻을 나타낼 떄 쓰인다.
즉, 눈앞에 이익(利益)이 보일 때 의리(義理)를 생각한다는 뜻이다. 논어(論語) 헌문편(憲問篇)에 나온다. 이와 반대(反對)되는 말은 견리망의(見利忘義)이다.
견리사의(見利思義)이는 논어(論語) 헌문편(憲問篇)에 나오는 글귀로서, 이익을 보거든 정의(正義)를 생각하라는 뜻이다.
이 말은 자로(子路)가 공자(孔子)에게 인간 완성에 대해 묻자 공자(孔子)가 “지혜(知慧), 청렴(淸廉), 무욕(無慾), 용감(勇敢), 예능(藝能)을 두루 갖추고 예악(禮樂)으로 교양(敎養)을 높여야 한다” 고 답한 구절에서 나온 말로써 정당하게 얻은 부귀가 아니면 취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다시 말하자면 어떠한 사건이나 사물 앞에 놓여 있을 때 당장 눈앞에 이익보다는 대의(大義)를 먼저 생각하라는 뜻이다.
논어(論語)의 현문편(憲問篇)에 기록하길 인간이 이익만을 쫓아 움직일 때 나타날 수 있는 폐혜들도 적지 않다면서 그런 현상을 제어(制御)할 수 있는 덕목이 필요하다 하였다.
자기의 눈앞에 이익이 있을 때 가장 먼저 그것이 의(義)로운 것인가 생각하는 자라면 그가 완성된 인간이라고 말하며 이익과 의로움을 견주어 말했다.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에는 고려(高麗) 공민왕(恭愍王) 때, 형제간의 의리를 위해 황금을 강물에 던진 형제 이야기, 즉 형제투금(兄弟投金)이 전해진다. 내용은 다음과 같다.
어떤 형제가 함께 길을 가다가 아우가 황금 두 덩이를 주웠고 그 형제는 두 개의 황금 덩어리를 의좋게 하나씩 나누어 가졌다. 그런데 공암진에 이르러 배를 타고 강을 건너던 중 아우가 갑자기 금덩이를 강물에 던졌다.
깜짝 놀란 형이 그 까닭을 물으니 동생이 “나는 평소 형을 무척 좋아하였지요. 그런데 오늘 금덩이를 나누어 갖자 문득 형을 시기(猜忌)하는 마음이 생겼어요. 그럴 바에 차라리 황금을 강물에 던져 잊어버리는 편이 나을 것이라 여겼지요.” 라고 답했다. 형도 동생의 말에 공감하여 금덩이를 강물 속에 집어 던졌다
사유재산과 개인의 권리를 가장 존중하는 자본주의의 메카이자 기부의 나라는 미국이다. 미국에서 몇 년 전부터 억만장자 개인의 재산 절반을 자선사업에 내놓자는 운동이 전개 되고 있어서 사회적으로 큰 주목을 받고 있다.
세계 기부문화의 역사를 바꿀지도 모를 가히 혁명적이라고 할 수 있는 이 기부운동은 미국의 대표적인 갑부인 워런 버핏 회장과 빌 게이츠 회장 두 사람이 오마하의 허름한 식당에서 점심식사 도중 대화하는 과정에서 제시 되었다고 한다.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 귀족의 의무를 뜻하는 프랑스어로 부와 권력 명성은 사회에 대한 책임과 함께 해야 한다는 의미로 쓰이고 있다.
로마 이야기에서 로마 제국의 2,000년 역사를 지탱해 준 힘이 노블레스 오블리주 철학이라 했듯이 옛날 그리스와 로마 귀족들은 전쟁이 나면 솔선수범하여 참전, 나라를 위해 싸웠다. 그리고 국민을 위해 앞장서서 봉사하였고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자신의 재산을 기부하는 것을 귀족의 의무이자 명예로 여겼다.
옛말에 ‘개처럼 벌어 정승처럼 써라’는 말도 있기는 하다. 복잡한 돈의 윤리를 한 마디로 줄인 말이다.
돈을 어떻게 벌었든 간에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그 사람의 품위가 달라진다는 말이니 돈이 많은 사람은 한번 생각해 볼 일이다. 많이 가진 사람들이 자신이 가진 것을 조금씩만 나누어주어도 모든 이들이 행복해지는 세상이 된다.
한국 사회의 가장 큰 문제는 성공한 기업인들이 부의 사회 환원을 이행치 않아 부자는 도둑놈이라는 말을 공공연히 인정되어졌고 아마 지금은 많이 달라진 것 같기도 하다. 그런 의미에서 미국 최고의 갑부들이 펼치고 있는 책임 있는 부자 운동에 찬사를 보낸다.
빌 게이츠 회장의 아버지 빌 게이츠 시니어나 조지 소로스 퀀텀펀드 회장 테드 터너, 투자가 워런 버핏, 미국의 재벌 록펠러, 루즈벨트 등 한국인에게도 익히 알려진 세계 갑부 약 140여명이 이 운동을 펼치는 주요 인물들이다.
이들의 주장은 상속세 납부는 부자의 의무이며 이를 폐지하면 부의 불균형이 더욱 심화된다는 것이다. 한국에서도 요즘 해마다 각종 기부가 는다고 한다. 유산은 물론 주식과 보험에 이어 재능까지 기부하며 부동산과 문화와 예술까지 기부하고 있다. 기부는 나 자신을 위한 것이라 생각한다.
지금 우리 사회는 빈부 차이로 사회 양극화로 고통이 심화되고 있다며 연일 언론을 통해서 보도가 된다. 가진 자들의 기부문화를 통해 이웃사랑을 나눌 수 있고 양극화를 줄 일 수도 있고 통합도 가능하다.
사람이 이 세상에 태어날 때 알몸으로 태어나 빈손으로 돌아간다. 인간이 이 세상에 태어나 사람들과 더불어 삶을 누리게 되는 그것 하나만으로도 행운이고 행복이라 할 수 있다. 거기에 재산까지 모았다면 그것은 주변 사람들의 덕택으로 얻은 것이라 할 수 있다. 그 재산은 이웃과 사회를 위해 환원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라 할 수 있다.
견리사의(見利思義)
이익을 보면 의리를 생각하라
희망을 잃은 젊은이 몇몇이 최근 마구잡이 살인극을 벌였다. 많은 사람들이 개탄하고 있다. 이보다 더 심각한 일은 사회지도층 인사들의 간교(奸巧)한 부정행위이다.
대법원 판사가 재판을 두고 돈거래를 하고, 역사상 가장 성공했다고 평가받던 특별검사가 탄핵당한 대통령과 그 측근들을 수사할 때 이미 검은돈을 먹은 범법자였다.
역대 대통령들이 정의(正義), 평등(平等), 공정(公正), 자유(自由) 등을 부르짖었지만 우리 사회에서 정의, 평등, 공정, 자유는 점점 멀어지고 부정부패, 내로남불 등만 더 확산되어 가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대통령, 국회의원 등을 심하게 비난하지만 비난당해야 할 단체나 사람은 대통령, 국회의원뿐만이 아니다. 대법원장을 위시한 사법부, 지방자치단체장, 공무원, 언론인, 군인, 공기업 임직원, 교육자 등등 한 군데도 정상적으로 되어가는 곳이 없다.
사람은 누구나 살아가기 위해서 반드시 밥을 먹어야 하고 옷을 입어야 하고 집이 있어야 하고 생활하는 데 필요한 돈이 있어야 한다. 그러다 보니 생존을 위해서 본능적으로 물질적인 욕구가 있게 마련이다.
그래서 근본적으로 무소유(無所有)는 불가능하다. 무소유를 주장하는 스님이나 도사들도 다 후원해 주는 사람이 있기에 그런 주장을 하는 것이지 일반인들은 무소유가 불가능하다.
공자(孔子)께서는 "이익 되는 것을 보면 의리를 생각하라(見利思義)"라고 말씀하셨다. 이 말씀의 뜻은 '이익되는 것은 다 나쁜 것이니 물리쳐라'가 아니고 '이익 되는 것을 보면 먼저 의리에 맞는지를 따져 의리에 맞는 것은 취하라'는 뜻이다.
원칙없이 이익만 취하면 무슨 짓이든 못 할 짓이 없게 된다. 이익을 최우선에 두면 사람이 아니라 짐승과 다를 바 없게 된다. 불의한 재물을 탐내다가 자신을 망치고, 집안을 망친 사람이 한둘이 아니다. 최근 재산 때문에 부모를 살해한 자식이 여럿 있었다. 재산 때문에 형제간에 소송하는 사람은 부지기수다. 그 결말이 좋은 경우가 있었던가?
그러나 의리를 생각하며 바르게 처신한 사람은 영원히 존경을 받는다. '황금을 보기를 돌같이 하였던(黃金如石)' 고려 말 최영(崔瑩) 장군은 영원히 후세 사람들의 존경을 받는다. 동시대의 큰 부자들은 이름도 모르지 않는가?
왜 이렇게 우리 사회의 지도층 인사들이 눈앞의 이익만 챙기고 의리는 생각하지 않을까? 교육이 잘못되었기 때문이다. 학교에서 도덕(道德) 윤리(倫理) 교육은 아예 안 시키고 입시와 취업 교육만 시키기 때문이다.
도덕, 윤리 과목 등은 군사문화라 하여 다 제거해 버렸다. 지금은 유치원부터 돈 많이 버는 직업을 얻는 대학에 가기 위해서 경쟁적으로 준비하고 있다니 부정부패를 저지르고 예의염치(禮義廉恥) 없는 사람이 더 늘어나는 것은 당연한 귀결이다. 경제 발전도 중요하지만 인성교육(人性敎育)이 더 중요하다.
▶️ 見(볼 견, 뵈올 현)은 ❶회의문자로 见(견)은 간자(簡字)이다. 안석궤(几; 책상)部는 사람을, 目(목)은 눈을 뜻한다. 見(견)은 눈의 기능으로, 보는 일을 말하는데, 이쪽으로 부터 보는 것을 視(시), 저쪽으로 부터 나타나 보이는 것을 見(견)으로 나누어 썼다. ❷회의문자로 見자는 ‘보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見자는 目(눈 목)자와 儿(어진사람 인)자가 결합한 것이다. 見자의 갑골문을 보면 人(사람 인)자에 큰 눈이 그려져 있었다. 이것은 사물을 보는 눈을 강조해 그린 것으로 ‘보다’라는 뜻을 표현한 것이다. 다만 한자에서는 目자가 주로 ‘눈’과 관련된 뜻으로 쓰이고 있다면 見자는 ‘보다’와 같이 보는 행위에 주로 쓰이고 있으니 차이점을 알아두는 것도 좋다. 또 예전에는 見자가 現(나타날 현)자 대신 쓰인 적이 있기에 ‘나타나다’나 ‘보이다’와 같은 의미도 있다. 이때는 ‘현’으로 발음한다. 다만 見자의 기본 의미는 ‘보다’이기 때문에 부수로 쓰일 때는 ‘보는 것’이나 ‘보이는 것’과 관련된 뜻을 전달한다. 그래서 見(견, 현)은 ①보다 ②보이다 ③당하다 ④견해 그리고 ⓐ뵙다(현) ⓑ나타나다(현) ⓒ드러나다(현) ⓓ보이다(현) ⓔ소개하다(현) ⓕ만나다(현) ⓖ현재(현) ⓗ지금(현) 등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나타날 현(現), 볼 시(視), 뵐 근(覲), 볼 관(觀), 뵐 알(謁), 나타날 현(顯),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숨을 은(隱)이다. 용례로는 보고서 깨달아 앎을 견해(見解), 듣거나 보거나 하여 깨달아 얻은 지식을 견문(見聞), 남에게 거절을 당함을 견각(見却), 실지로 보고 학식을 넓힘을 견학(見學), 남의 일을 보고 배워서 실지로 연습하는 것을 견습(見習), 사물을 관찰하는 입장을 견지(見地), 남에게 미움을 받음을 견오(見忤), 얼른 스쳐 봄을 별견(瞥見), 분실이나 유실을 당함을 견실(見失), 책망을 당함을 견책(見責), 마음에 생각하는 점을 의견(意見), 미처 찾아내지 못하였거나 알려지지 아니한 것을 찾아냄을 발견(發見), 공정하지 못하고 한쪽으로 치우친 생각을 편견(偏見), 서로 다른 의견을 이견(異見), 남의 일에 간섭함을 참견(參見), 사물을 식별하고 관찰하는 능력을 식견(識見), 무슨 일이 있기 전에 미리 짐작함을 예견(豫見), 보고 헤아리는 생각이나 올바로 인식하거나 올바로 처리할 수 있는 능력을 소견(所見), 신분이 높은 사람이 공식적으로 손님을 만남을 접견(接見), 지체 높은 사람을 찾아 뵙는 일을 알현(謁見), 임금께 나아가 뵈옴을 진현(進見), 황금 보기를 돌같이 한다는 뜻에서 지나친 욕심을 절제함 또는 대의를 위해서 부귀영화를 돌보지 않는다는 의미의 견금여석(見金如石), 눈앞에 이익을 보거든 먼저 그것을 취함이 의리에 합당한 지를 생각하라는 견리사의(見利思義), 모기를 보고 칼을 뺀다는 뜻으로 보잘것없는 작은 일에 지나치게 큰 대책을 세운다는 견문발검(見蚊拔劍), 위험을 보면 목숨을 바친다는 견위수명(見危授命), 항상 잊지 않음을 이르는 견요어장(見堯於墻), 물건을 보면 욕심이 생긴다는 견물생심(見物生心), 나라의 위급함을 보고 몸을 바친다는 견위치명(見危致命) 등에 쓰인다.
▶️ 利(이로울 리/이)는 ❶회의문자로 勿(물)은 여기에서는 쟁기와 흙을 나타내는 모양이며 논을 갈아 엎는 모양이다. 禾(화)는 벼라는 곡식을, 利(리)는 곡식을 만드는 밭을 가는 쟁기로, 쟁기날이 날카롭다, 나중에 날카롭다는 것과의 관계로 부터 勿(물)을 刀(도)로 쓰게 되고, 또 刀(도)는 돈과 관계가 있으므로 이익의 뜻으로도 쓰여지게 된 듯하다. ❷회의문자로 利자는 ‘이롭다’나 ‘유익하다’, ‘날카롭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利자는 禾(벼 화)자와 刀(칼 도)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벼와 칼을 함께 그린 것이니 利자는 벼를 베는 모습을 표현한 것이라 할 수 있다. 利자는 본래 칼이 벼를 벨 수 있을 정도로 ‘날카롭다’라는 뜻을 위해 만든 글자였다. 利자에 아직도 ‘날카롭다’나 ‘예리(銳利)하다’라는 뜻이 있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利자는 후에 ‘이익’이나 ‘이롭다’라는 뜻이 파생되었는데, 벼를 베어 추수하는 것은 농부들에게 수익을 가져다주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利(리)는 ①이롭다, 이하다(이익이나 이득이 되다) ②이롭게 하다 ③유익하다 ④편리하다 ⑤통하다 ⑥날카롭다 ⑦이기다 ⑧날래다 ⑨탐하다 ⑩이자 ⑪이익(利益) ⑫승전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더할 가(加), 더할 증(增), 더할 첨(沾), 더할 첨(添), 더할 익(益),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해할 해(害)이다. 용례로는 편리하게 씀을 이용(利用), 물질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보탬이 된 것을 이익(利益), 이익을 얻음을 이득(利得), 남에게 돈을 빌어 쓴 값으로 무는 일정한 비례의 돈을 이자(利子), 돈벌이를 하는 동안에 남는 돈을 이윤(利潤), 적을 이롭게 함을 이적(利敵), 자기 이익만 꾀함을 이기(利己), 이익을 탐내는 욕심을 이욕(利欲), 다른 이에게 이익을 주는 일을 이타(利他), 겨루어 이김을 승리(勝利), 이익이 있음을 유리(有利), 편하고 이로우며 이용하기 쉬움을 편리(便利), 빌려 준 돈의 이자를 금리(金利), 조건이나 입장 따위가 이롭지 못함을 불리(不利), 날이 서 있거나 끝이 뾰족함을 예리(銳利), 부당한 방법으로 얻은 이익을 폭리(暴利), 이익을 얻음을 득리(得利), 실지로 얻은 이익을 실리(實利), 이해 관계를 이모저모 따져 헤아리는 일을 이해타산(利害打算), 기구를 편리하게 쓰고 먹을 것 입을 것을 넉넉하게 하여 백성의 생활을 나아지게 함을 이용후생(利用厚生), 이로움과 해로움, 얻음과 잃음을 이해득실(利害得失), 이익과 손해가 반반으로 맞섬을 이해상반(利害相半), 이욕은 사람의 밝은 지혜를 어둡게 만듦을 이령지혼(利令智昏), 이해에 관하여 지극히 작은 것이라도 따진다는 이석추호(利析秋毫) 등에 쓰인다.
▶️ 思(생각 사, 수염이 많을 새)는 ❶회의문자로 田(전; 뇌)와 心(심; 마음)의 합자(合字)이다. 思(사)는 '생각하다'의 뜻이다. 옛날 사람은 머리나 가슴으로 사물을 생각한다고 여겼다. ❷회의문자로 思자는 '생각'이나 '심정', '정서'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思자는 田(밭 전)자와 心(마음 심)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그런데 소전에서는 囟(정수리 신)자가 들어간 恖(생각할 사)자가 '생각'이라는 뜻으로 쓰였었다. 囟자는 사람의 '정수리'를 그린 것이다. 옛사람들은 사람의 정수리에는 기가 통하는 숨구멍이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囟자는 그러한 모습으로 그려졌었다. 그러니 恖자는 머리(囟)와 마음(心)으로 생각한다는 의미에서 깊게 생각한다는 뜻으로 만들어진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해서에서부터는 囟자가 田자로 바뀌면서 본래의 의미를 유추하기 어렵게 되었다. 그래서 思(사, 새)는 성(姓)의 하나로 ①생각, 심정(心情), 정서(情緖) ②의사(意思), 의지(意志), 사상(思想) ③뜻 ④마음 ⑤시호(諡號) ⑥성(姓)의 하나 ⑦어조사(語助辭) ⑧생각하다, 사색하다 ⑨그리워하다 ⑩슬퍼하다, 시름 겨워하다 그리고 ⓐ수염이 많다(새) ⓑ수염이 많은 모양(새)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생각할 륜(侖)이다. 용례로는 돌이키어 생각함을 사고(思顧), 생각하고 궁리함을 사고(思考), 사유를 통하여 생겨나는 생각을 사상(思想), 정을 들이고 애틋하게 생각하며 그리워함을 사모(思慕), 마음으로 생각함을 사유(思惟), 여러 가지 일에 관한 깊은 생각과 근심을 사려(思慮), 생각하여 헤아림을 사료(思料), 생각하여 그리워함을 사련(思戀), 늘 생각하여 잊지 아니하고 마음속에 간직함을 사복(思服), 생각하고 바람을 사망(思望), 사물의 이치를 파고들어 깊이 생각함을 사색(思索), 서로 엉킨 많은 생각이나 생각의 실마리를 사서(思緖), 정의의 길을 그려 생각함을 사의(思義), 한 시대의 사상의 일반적인 경향을 사조(思潮), 마음 먹은 생각을 의사(意思), 생각하는 바를 소사(所思), 눈을 감고 말없이 마음속으로 생각함을 묵사(默思), 고통스러운 생각을 고사(苦思), 깊이 생각함 또는 그런 생각을 심사(深思), 묘한 생각을 묘사(妙思), 객지에서 갖는 생각을 객사(客思), 지나간 뒤에 그 사람을 사모함을 거사(去思), 곰곰이 잘 생각함을 숙사(熟思), 생각이나 느낌이 많음을 다사(多思), 저녁 때의 슬픈 생각을 모사(暮思), 생각이 바르므로 사악함이 없음을 일컫는 말을 사무사(思無邪), 어떠한 문제를 생각하여 해석이나 구명하는 방식을 일컫는 말을 사고방식(思考方式), 사모해 잊지 않음을 일컫는 말을 사모불망(思慕不忘), 여러 가지 일에 대한 생각과 사물을 제 분수대로 각각 나누어서 가름을 일컫는 말을 사려분별(思慮分別), 처지를 서로 바꾸어 생각함이란 뜻으로 상대방의 처지에서 생각해 봄을 이르는 말을 역지사지(易地思之), 평안할 때에도 위험과 곤란이 닥칠 것을 생각하며 잊지말고 미리 대비해야 함을 이르는 말을 거안사위(居安思危), 편안한 때일수록 위험이 닥칠 때를 생각하여 미리 대비해야 함을 이르는 말을 안거위사(安居危思), 눈앞에 이익을 보거든 먼저 그것을 취함이 의리에 합당한 지를 생각하라는 말을 견리사의(見利思義), 사람의 생각으로는 미루어 헤아릴 수도 없다는 뜻으로 사람의 힘이 미치지 못하고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오묘한 것을 이르는 말을 불가사의(不可思議), 마음을 수고롭게 하고 생각을 너무 깊게 함 또는 애쓰면서 속을 태움을 일컫는 말을 노심초사(勞心焦思), 깊이 생각하고 깊이 고찰함 또는 신중을 기하여 곰곰이 생각함을 이르는 말을 심사숙고(深思熟考), 능히 보고도 생각하기 어렵다는 뜻으로 보통의 이치로는 추측할 수 없는 일을 이르는 말을 능견난사(能見難思), 타향의 생활이 즐거워 고향 생각을 하지 못함을 이르는 말 또는 눈앞의 즐거움에 겨워 근본을 잊게 될 때를 비유하여 이르는 말을 낙이사촉(樂而思蜀), 몹시 뒤섞이고 착잡하여 어수선하게 생각함 또는 그 생각을 일컫는 말을 호사난상(胡思亂想), 즐거움에 젖어 촉 땅을 생각하지 않는다는 뜻으로 쾌락 또는 향락에 빠져 자신의 본분을 망각하는 어리석음을 비유하여 이르는 말을 낙불사촉(樂不思蜀), 보통 사람으로서는 헤아리지 못할 생각이나 평범하지 않는 생각을 일컫는 말을 비이소사(匪夷所思), 낮에 생각하고 밤에 헤아린다는 뜻으로 밤낮을 가리지 않고 깊이 생각함을 이르는 말을 주사야탁(晝思夜度), 물을 마실 때 수원을 생각한다는 뜻으로 근본을 잊지 않음을 일컫는 말을 음수사원(飮水思源), 일을 하면 좋은 생각을 지니고 안일한 생활을 하면 방탕해 진다는 것을 이르는 말을 노사일음(勞思逸淫) 등에 쓰인다.
▶️ 義(옳을 의)는 ❶회의문자이나 형성문자로 보는 견해도 있다. 义(의)는 통자(通字), 义(의)는 간자(簡字)이다. 나(我)의 마음 씀을 양(羊)처럼 착하고 의리있게 가진다는 뜻을 합(合)하여 옳다를 뜻한다. 羊(양)은 신에게 바치는 희생의 양으로 양을 바쳐 신에게 비는 의식(儀式)이 나중에 바르다, 의로운 일의 뜻이 되었다. ❷회의문자로 義자는 ‘옳다’나 ‘의롭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義자는 羊(양 양)자와 我(나 아)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我자는 삼지창을 그린 것이다. 義자의 갑골문을 보면 창 위에 양 머리를 매달아 놓은 모습이 그려져 있었다. 이것은 양 머리를 장식으로 한 의장용 창을 그린 것이다. 이러한 창은 권위나 권력을 상징했다. 상서로움을 뜻하는 양 머리를 창에 꽂아 권위의 상징으로 삼은 것이다. 義자는 종족 내부를 결속하기 위한 권력자들의 역할을 표현한 것이기 때문에 ‘옳다’나 ‘의롭다’, ‘바르다’라는 뜻을 갖게 되었다. 그래서 義(의)는 (1)사람으로서 지켜야 할 떳떳하고 정당한 도리(道理). 오상(五常)의 하나임 (2)남과 골육(骨肉)과 같은 관계를 맺음 (3)글이나 글자의 뜻. 의미(意味) (4)경서의 뜻을 해석시키던, 과거(科擧)를 보일 때의 문제 종류의 한 가지 등의 뜻으로 ①옳다, 의롭다 ②바르다 ③선량하다, 착하다 ④순응하다 ⑤맺다 ⑥해 넣다 ⑦섞다, 혼합하다 ⑧간사하다(마음이 바르지 않다), 옳지 않다 ⑨의(義), 정의(正義), 올바른 도리(道理) ⑩의리(義理), 우의(友誼) ⑪뜻, 의미(意味), 의의(意義) ⑫거둥(擧動: 임금의 나들이), 예절(禮節), 의식(儀式) ⑬정의에 합당한 행동, 의로운 일 ⑭명분(名分) ⑮법도(法道) ⑯용모(容貌), 행동거지(行動擧止: 몸을 움직여 하는 모든 짓) ⑰의로 맺은 친족 관계, 의리(義理)의 관계 ⑱공적인 것, 공익을 위한 것 ⑲인공적인 것 ⑳가짜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옳을 가(可), 옳을 시(是)이다. 용례로는 의로운 사람을 의인(義人), 義로 맺은 형제를 의형제(義兄弟), 반드시 실행해야 하는 일을 의무(義務), 정의를 위하여 거사함을 의거(義擧), 수양 아버지를 의부(義父), 글이나 학설의 뜻을 설명하여 가르침을 강의(講義), 굳게 지키는 일정한 방침을 주의(主義), 진리에 맞는 올바른 도리를 정의(正義), 믿음과 의리를 신의(信義), 표의 문자에서 글자의 뜻을 자의(字義), 같은 뜻나 같은 의미를 동의(同義), 사람이 마땅히 행해야 할 도덕 상의 의리를 도의(道義), 갚아야 할 의리와 은혜를 은의(恩義), 의리나 정의에 어긋나는 일을 불의(不義), 어진 것과 의로운 것을 인의(仁義), 아버지가 아들에게 하는 교훈을 이르는 말을 의방지훈(義方之訓), 의기에 불타 일어나는 용맹을 일컫는 말을 의기지용(義氣之勇), 사람으로서 지켜야 할 도리에 당연함을 이르는 말을 의리당연(義理當然), 의가 있는 사람은 어버이를 거역하지 않음을 일컫는 말을 의불배친(義不背親), 의로써 이利의 근본을 삼음을 이르는 말을 의이건리(義以建利), 의는 바다와 같고 은혜는 산과 같다는 뜻으로 은의恩義가 대단히 크고 깊음을 이르는 말을 의해은산(義海恩山), 목숨을 버리고 의리를 좇음의 뜻으로 비록 목숨을 버릴지언정 옳은 일을 함을 일컫는 말을 사생취의(捨生取義), 눈앞에 이익을 보거든 먼저 그것을 취함이 의리에 합당한 지를 생각하라는 말을 견리사의(見利思義), 도원에서 의형제를 맺다는 뜻으로 의형제를 맺음 또는 서로 다른 사람들이 사욕을 버리고 목적을 향해 합심할 것을 결의함을 이르는 말을 도원결의(桃園結義), 봉건시대 여자가 지켜야 할 세 가지 도리 곧 어려서는 아버지를 좇고 시집가서는 남편을 좇고 남편이 죽은 뒤에는 아들을 좇음을 이르는 말을 삼종지의(三從之義), 남남끼리 의리로써 형제 관계를 맺음 또는 그런 형제를 일컫는 말을 결의형제(結義兄弟), 사람으로서 갖추어야 할 네 가지 마음가짐 곧 어짊과 의로움과 예의와 지혜를 이르는 말을 인의예지(仁義禮智), 큰 의리를 위해서는 혈육의 친함도 저버린다는 뜻으로 큰 의리를 위해서는 사사로운 정의를 버림을 일컫는 말을 대의멸친(大義滅親), 임금과 신하 사이에 의리가 있어야 함을 일컫는 말을 군신유의(君臣有義), 눈앞의 이익을 보면 탐내어 의리를 저버림을 일컫는 말을 견리망의(見利忘義), 남의 시문 중에서 전체의 뜻과는 관계없이 자기가 필요한 부분만을 따서 마음대로 해석하여 씀을 일컫는 말을 단장취의(斷章取義), 예절과 의리와 청렴한 마음과 부끄러워하는 태도를 일컫는 말을 예의염치(禮義廉恥) 등에 쓰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