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속의음악다방
🎧
🖋..백마강에 스스로
몸 던진 백제
궁녀들 한(恨) 담아
예로부터 강과 노래는
떨어질 수 없는 관계였다.
우리 민족은 강에서 벌어지는
이별의 정한이나 강에서
느끼는 흥과 즐거움을
노래하기도 하면서
강과 함께 살아왔다.
특히 대중가요에서
강은 노랫말의 배경이
되거나 한 시대를
증언하기도 한다.
1954년 손로원이
작사하고 한복남이
곡을 붙여 허민이 부른
‘백마강’이 바로 그런 노래다.
백마강에 고요한 달밤아
고란사의 종소리가
들리어오면
구곡간장 찢어지는
백제 꿈이 그립구나
아~ 달빛 어린 낙화암의
그늘 속에서
불러보자 삼천궁녀를
(허민 ‘백마강’ 1절)
백마강은 충남 부여를 지나는
금강 하류를 일컫는 강이다.
사자하·백강·마강이라고도 한다.
범위는 정확하지 않지만,
충남 청양군 장평면과
부여군 규암면의 경계를 따라
흐르는 금강천이 금강에
합류하는 지점에서부터
부여군 석성면 위쪽까지를
백마강이라 부른다.
부소산을 끼고 북동쪽에서 남서쪽으로 곡류하는
사행하천(蛇行河川)이다.
이 강은 부소산 북쪽
사면(斜面)을 침식해
절벽을 만들었고,
부여 남부 일대에 넓은
퇴적사면(堆積斜面)을
발달시켰다.
부소산에는 침식작용으로
형성된 낙화암(花巖)이 있으며
상류 쪽으로 500m 정도
떨어진 강 가운데
조룡대(釣龍臺)라는
커다란 바위가 있다.
전설에 의하면 당나라 장군
소정방이 백제군을 쫓아
금강을 건너려고 할 때
강물 속에서 교룡(蛟龍)이
나타나 방해했다.
이때 교룡이 좋아하는
흰말을 미끼로 소정방이
교룡을 잡아 올렸다고 해
강 이름을 백마강, 낚시했던
바위를 조룡대라고
이름 붙였다.
그동안 대중가요계에서
허민의 본명과 생몰연대는
분명치 않았다.
그러다 2010년 대중음악
연구가 김종욱이
부산 금정구 구서동에
거주하는 허민의 외동딸
허경자로부터 본명이
허한태라는 사실과 1929년
김해에서 출생해 1974년
폐렴으로 작고했다는
것을 확인했다.
허민은 1950년대초
남조선콩쿠르에서
2등을 한 뒤 6·25전쟁 후
‘백마강’ ‘페르시아 왕자’
‘마음의 부산 항구’ 등을 발표했다.
1960년 이규환 감독은
백마강을 소재로 한 영화
<낙화암과 삼천궁녀>를 개봉했다.
신라가 삼국통일을 노리고
있을 때 백제 의자왕은
국운이 기울었다는 것을
알았지만 술과 가무로
흥청거렸다.
660년 신라군이
쳐들어오자 계백 장군은
전투에 임했다.
그러나 당시 백제의
도읍이었던 부여성은
결국 함락되고 말았다.
이에 백제의 궁녀들은
살아서 욕을 당하느니 스스로
목숨을 끊겠다고 결심해
낙화암에서 백마강으로
몸을 던졌다.
허민*백마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