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 유엔용사, 한국에 사후안장 19명… 콜롬비아 4명도 추진
[정전 70주년]
“전우와 싸운 한국에 묻히고 싶어”… 유언따라 부산 유엔기념공원 안장
자유 지키고 번영 기여 자부심
보훈부 “유엔공원을 보훈 성지로”
정전협정 70주년을 맞아 국가보훈부가 콜롬비아 6·25전쟁 참전용사 유해를 국내로 봉환해 부산 유엔기념공원에 안장하는 방안을 추진 중인 것으로 확인됐다. 1953년 정전 이후 콜롬비아 참전용사의 한국 사후 안장은 처음이다.
사후 안장이 최종 확정되면 11월경 호세 세르히오 로메로 씨 등 참전용사 4명의 유해가 본국에서 1만5000km 떨어진 한국으로 옮겨져 부산 유엔기념공원에 안장될 예정이다. 이들 참전용사들은 생전 “70여 년 전 목숨을 걸고 싸운 한국 땅에 묻히고 싶다”는 의사를 밝혔다고 보훈부는 전했다.
● 뇌졸중으로 쓰러진 뒤 “韓에 묻히길”
박민식 보훈부 장관은 24일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콜롬비아 참전용사들의 사후 안장을 위해 (유엔기념공원 국제관리위원회를 구성하는) 11개국의 동의를 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콜롬비아는 중남미 국가 중 유일하게 전투부대를 파병했다. 1951년 6월 1개 보병대대를 시작으로 3차례에 걸쳐 연인원 5100여 명이 참전해 213명이 전사하고 448명이 부상을 입었다.
부산 유엔기념공원은 1974년부터 한국을 포함해 호주와 캐나다, 프랑스, 네덜란드, 뉴질랜드, 노르웨이, 남아프리카공화국, 튀르키예, 영국, 미국 등 전사자가 안장된 11개국으로 구성된 국제관리위원회가 관리를 맡고 있다. 이들 나라를 제외한 참전국 용사들의 사후 안장을 위해선 11개국의 동의가 필요하다.
유엔 참전용사의 1호 사후 안장은 2015년 프랑스 참전용사 레몽 베르나르 씨(1928∼2015)다. 이후 지금까지 19명의 참전용사가 뒤를 이었다. 이들은 생전 한국에 각별한 애정을 표하며 한국 땅에 묻어 달라는 유언을 남겼다. 2010년 6·25전쟁 60주년을 맞아 본격화된 유엔 참전용사 재방한 사업으로 한국을 다녀간 뒤 사후 안장 요청이 잇따랐다고 한다. “전쟁 폐허에서 경제대국으로 도약한 한국의 발전상에 큰 감명을 받았다”며 “부산에 잠든 전우들 곁에 잠들고 싶다”는 의사를 밝혔다는 것.
지난해 6월 사후 안장된 캐나다 참전용사 존 로버트 코미어 씨(1932∼2021)는 임종 전 뇌졸중을 앓아 의사소통이 힘든 상태에서도 동생을 통해 “한국에 묻히고 싶다”는 굳은 의지를 피력했다고 한다. 보훈부 관계자는 “자신의 참전이 옳았다는 확신과 함께 희생과 헌신에 대한 자긍심을 갖게 된 것이 사후 안장을 결심하는 계기”라고 말했다. 사후 안장을 신청하는 노병들은 “한국이 제2의 고향”이라는 심경을 빼놓지 않는다는 것.
● “남편, 동지들과 함께 韓에 잠들고 싶어 해”
“남편은 한국에서 (같이 싸운) 동지들과 함께 잠들고 싶다고 자주 말했습니다. 한국에 묻히는 게 그의 꿈이었죠.”
지난해 11월 남편 로베르 피크나르 씨(1934∼2020) 유해의 사후 안장을 위해 한국을 찾았던 엘리안 피크나르 씨는 24일 본보와의 통화에서 “남편이 프랑스에 묻혔다면 좋았겠지만 남편이 원하던 바여서 만족한다”며 “남편의 사후 안장은 훌륭한 의식이었다. 남편이 너무 자랑스럽다. 앞으로도 남편을 만나러 한국을 찾아갈 것”이라고도 했다.
2019년 사후 안장된 영국 참전용사 윌리엄 스피크먼 씨(1927∼2018)는 한국(태극무공훈장)과 영국 정부(빅토리아 십자훈장)로부터 모두 최고 무공훈장을 받았다. 그는 2015년 방한 당시 자신의 빅토리아 십자훈장을 한국 정부에 기증하며 “죽어서도 한국을 수호하겠다”, “영국 사람들에게 늘 한국의 발전상을 전하며 ‘내가 그곳에서 싸웠다’고 자랑스럽게 말한다”며 한국에 대한 남다른 애정을 드러냈다.
‘잊혀진 전쟁’의 ‘잊혀진 영웅’이 아니라 오늘날 대한민국의 평화 번영을 일궈낸 주역이라는 자긍심을 재발견하면서 유엔 참전용사들의 사후 안장은 더 늘어날 것으로 보훈부는 예상하고 있다. 박 장관은 “유엔기념공원을 세계적 ‘보훈성지’로 가꾸려면 사후 안장 대상국을 더 확대하고 보훈부가 실질적으로 관리·관장해야 한다”며 “이를 위해 외교부에 여러 차례 관련 요청을 한 상태”라고 말했다.
윤상호 군사전문기자, 손효주 기자, 파리=조은아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