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의 인격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에 대해 성경적으로 완벽하게 묘사하기 위해서는 다음의 네 가지 진술을 이해하고 단언해야 한다.
그리스도는 충분히 또한 완전히 신적이시다. 그리스도는 충분히 또한 완전히 인간적이시다. 그리스도의 신적 본성과 인간적 본성은 별개다. 그리스도의 신적 본성과 인간적 본성은 한 인격 안에서 완전히 연합되어 있다.
그리스도의 신성 요 1:1, 14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요 1:18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아버지 품 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이 나타내셨느니라” 빌 2:5~7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히 1:3 “이는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시요 그 본체의 형상이시라 그의 능력의 말씀으로 만물을 붙드시며 죄를 정결하게 하는 일을 하시고 높은 곳에 계신 지극히 크신 이의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히 1:8, 10 “아들에 관하여는 하나님이여 주의 보좌는 영영하며 주의 나라의 규는 공평한 규이니이다 … 또 주여 태초에 주께서 땅의 기초를 두셨으며 하늘도 주의 손으로 지으신 바라”
자신의 신성에 대한 예수님의 이해 예수님은 신적 권위를 가지고 가르치셨다. 마 7:28~29 “예수께서 이 말씀을 마치시매 무리들이 그의 가르치심에 놀라니 이는 그 가르치시는 것이 권위있는 자와 같고 그들의 서기관들과 같지 아니함일러라”
서기관들 : 자신의 권위가 아닌 이전의 권위를 사용했다. 모세와 선지자들 : 자신의 권위로 말하지 않고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니라”로 말했다. 예수님 : “ …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마 5:22, 28, 32, 34, 39, 44) 예수님은 율법의 영원한 권위를 인정하셨으며 자신의 말씀을 율법과 대등한 입장에 놓았다.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일획도 결코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마 5:18) “천지는 없어질지언정 내 말은 결코 없어지지 아니하리라”(마 24:35).
2. 예수님은 성부 하나님과 독특한 관계를 지니고 있었다.
눅 2:49 “어찌하여 나를 찾으셨나이까 내가 내 아버지 집에 있어야 할 줄을 알지 못하셨나이까”
예수님이 하나님을 “내 아버지”라고 언급한 것은 하나님과의 독특하고, 친밀한 관계를 나타내는 급진적인 말이었다.
3. 예수님이 좋아하는 자신에 대한 호칭은 인자라는 칭호다. 단 7:13~14 “내가 또 밤 환상 중에 보니 인자 같은 이가 하늘 구름을 타고 와서 옛적부터 항상 계신이에게 나아가 그 앞으로 인도되매 그에게 권세와 영광과 나라를 주고 모든 백성과 나라들과 다른 언어를 말하는 모든 이들이 그를 섬기게 하였으니 그의 권세는 소멸하지 아니하는 영원한 권세요 그의 나라는 멸망하지 아니할 것이니라”
‘인자’(a son of man)라는 문구는 단지 ‘인간’을 의미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예수님은 자신을 ‘인자’(the Son of Man)라고 부르셨다. 이 점은 예수님 자신이 자신을 단 7장에 나오는 메시아적 인자, 영원무궁토록 온 세상을 다스릴 분으로 보신다는 것을 나타낸다.
막 2;10~11 “그러나 인자가 땅에서 죄를 사하는 권세가 있는 줄을 너희로 알게 하려 하노라 하시고 중풍병자에게 말씀하시되 내가 네게 이르노니 일어나 네 상을 가지고 집으로 가라 하시니” 막 2:27~28 “또 이르시되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있는 것이요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있는 것이 아니니 이러므로 인자는 안식일에도 주인이니라”
예수님이 자신이 죄를 사할 권세가 있으며 안식일의 주인이라고 선포하심으로 자신이 영광스러운 메시아적 인자로서 신적 권위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확증하신다.
4. 예수님의 가르침은 예수님 자신의 정체성을 강조하셨다.
마 16:15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5. 예수님은 예배를 받으셨다.
아마 자신이 하나님이라는 예수님의 믿음을 가장 잘 나타내는 것은 예수님이, 때로 그러신 것처럼, 예배의 대상이 되셨을 때 그 예배를 받으셨다는 것이다(마 14:33, 28:9, 17, 요 9:38, 20:28).
6. 예수님은 자신을 성부 하나님과 동일시하셨으며, 그 결과 유대인 지도자들은 예수님을 신성 모독의 죄로 고발했다.
요 5:17~18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내 아버지께서 이제까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 하시매 유대인들이 이로 말미암아 더욱 예수를 죽이고자 하니 이는 안식일을 범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자기의 친아버지라 하여 자기를 하나님과 동등으로 삼으심이러라” 요 8:58~59 “예수께서 이르시되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브라함이 나기 전부터 내가 있느니라(I am, 이것은 여호와의 신성한 신적 이름을 분명하게 암시한다. 참고 출 3:14) 그들이 돌을 들어 치려 하거늘” 요 10:30~33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니라 하신대 유대인들이 다시 돌을 들어 치려 하거늘 … 유대인들이 대답하되 선한 일로 말미암아 우리가 너를 돌로 치려는 것이 아니라 신성모독으로 인함이니 네가 사람이 되어 자칭 하나님이라 함이로라” 막 14:61~64 “침묵하고 아무 대답도 아니하시거늘 대제사장이 다시 물어 이르되 네가 찬송받을 이의 아들 그리스도냐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그니라 인자가 권능자의 우편에 앉은 것과 하늘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너희가 보리라 하시니(단 7장에 대한 언급) 대제사장이 자기 옷을 찢으며 이르되 우리가 어찌 더 증인을 요구하리요 그 신성 모독하는 말을 너희가 들었도다 너희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하니 그들이 다 예수를 사형에 해당한 자로 정죄하고”
그리스도의 신성이 함축하는 점 하나님은 그리스도 안에서 명확하게 그리고 인격적으로 알려질 수 있다.
요 1:18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독생하신 하나님이 나타내셨느니라” 요 14:9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2. 그리스도 안에서 구속이 가능하며 성취되었다.
딤전 2:5 “하나님은 한 분이시요 또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보자도 한 분이시니 곧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라”
3. 부활하시고, 승천하시고, 보좌에 앉으신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는 우리의 필요를 채울 수 있는 전능하신 능력을 갖고 계시는 우리에게 공감하는 대제사장을 갖고 있다.
히 4:15~16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하실 이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신 이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그러므로 우리는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
4. 그리스도를 예배하고 순종하는 것은 적절하고 필요하다.
그리스도의 신성에 대한 오해 ① 에비온주의 혹은 양자론(1세기) 그들은 하나님의 권능이 예수라는 사람에게 임하여 그가 메시아적 역할을 수행할 수 있도록 했으나, 그 그리스도는 하나님이 아니었다고 믿었다. ② 아리우스주의(4세기) 그들은 그리스도의 영원하고, 완전한 신성을 부인했다. 아리우스(약 256~336년)는 예수가 “피조물 중 최초이며 가장 위대한 존재”라고 믿었다. 아리우스가 예수님의 완전한 신성을 부인한 것은 325년에 니케아 공의회에서 거부되었다. 이 공의회에서 아타나시우스는 성경에 따르면 예수님은 완전한 하나님으로, 성부 하나님과 동일 본질을 가진 존재임을 보여 주었다.
그리스도의 인성 동정녀 마리아가 예수님을 잉태한 순간부터, 예수님의 신적 본성은 동일한 인물, 곧 이제는 성육신하신 하나님의 아들 안에 있는 인간적 본성과 영구적으로 연합되었다. 예수님의 인성에 대한 성경적 증거는 강력하며, 그것은 예수님이 인간의 몸과 인간의 마음을 가졌고 인간이 받는 시험을 경험하셨다는 것을 보여 준다.
갈 4:4~5 “때가 차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 여자에게서 나게하시고 율법 아래에 나게 하신 것은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을 속량하시고 우리로 아들의 명분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예수님은 인간의 태생과 인간의 활동을 가지셨다. 예수님은 성장을 경험하고(눅 2:40, 52) 또한 굶주림(마 4:2), 목마름(요 19:28), 피곤함(요 4:6), 죽음(눅 23:46) 등과 같은 육체적 감정들을 경험한 인간의 몸을 지니셨다.
눅 24:39 “내 손과 발을 보고 나인 줄 알라 또 나를 만져보라 영은 살과 뼈가 없으되 너희 보는 바와 같이 나는 있느니라”
예수님은 부활한 상태에서도 여전히 육체적 몸을 지니고 계시며, 자기 제자들이 이것을 분명히 깨닫도록 하기 위해 온갖 노력을 하신다.
막 13:32 “그러나 그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에 있는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아버지만 아시느니라”
예수님은 하나님의 뜻에 따라, 지식이 제한된 인간적 마음을 가지고 계셨다. 예수님의 인간적 마음은 자라고 지혜가 커졌으며(눅 2:52), 예수님은 심지어 “순종함을 배워서”(히 5:8~9)라고 나온다. 예수님이 “순종함을 배워서”라는 것은 불순종에서 순종으로 바뀌었다는 말이 아니라, 고난을 견디면서 순종하는 능력에서 자랐다는 말이다.
히 4:15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하실 이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신 이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예수님은 인간적 시험을 경험하셨다. 예수님은 영적인 훈련을 하셨다. 예수님은 정기적으로 열심히 기도하셨고(막 14:36, 눅 10:21, 히 5:7), 성경을 읽고 암송하셨으며(마 4:4~10), 고독을 훈련하셨고(막 1:35, 6:46), 안식일을 지키셨으며(눅 4:16), 구약 의식법을 순종하셨고(요 8:29, 46, 15:10, 고후 5:21, 히 4:15), 성령의 충만을 받으셨다(눅 3:22, 4:1). 이러한 종교적 활동들은 참된 인간적 영적 성장 과정의 수단으로, 진지하게(히 5:7) 습관적으로(눅 4:16) 이루어졌다.
예수님의 신적 본성을 생각해 볼 때, 예수님의 지상 생활 대부분이 지극히 평범했다는 것은 엄청난 일이다. 예수님은 삶의 30년간을 육체 노동을 하고, 자기 가족을 돌보고, 하나님 아버지가 하라고 명하시는 모든 일에 충실하면서, 상대적으로 무명의 상태에서 보낸 듯하다. 공적 사역에서 예수님은 기적적인 표적들을 수행하셨으며 오직 하나님으로부터만 올 수 있는 권위적 가르침을 베푸셨다. 이것은 예수님의 고향 사람들에게 충격적일 정도로 불쾌한 일이었다. 그들은 예수님의 소박함과 겸손이 예수님의 메시아적 지혜 및 권능과 조화되지 않는다고 보았다. (마 13:54~57)
예수님은 부활 후에도 완전히 인간적인 본성을 유지하셨다. 예수님은 영원무궁토록 구속된 인류를 대표하시면서 영원히 인간이 될 것이다(행 1:11, 9:5, 고전 9:1, 15:8, 딤전 2:5, 히 7:25, 계 1:13).
그리스도의 인성이 함축하는 점 예수님은 사람이 되셨다는 사실은 참된 인성의 본질을 나타낸다. 예수님의 인성은 우리의 인성이 죄로 물들지 않았다면 어떤 모습일지 살짝 엿보게 해준다. 예수님은 인성에 있어 문제는 우리가 인간이라는 것이 아니라 타락했다는 것임을 보여 준다. 예수님의 인간적 본성은 하나님이 의도하신 인성의 잠재 가능성을 보여준다. 이렇게 죄 없는 인간을 보여 주는 것은 인간을 포함해서 원래의 차원(물질적 영적)에서 피조 세계가 하나님이 정의하신 바에 의하면 매우 좋았더라(창 1:31)는 것을 단언해 준다.
예수님의 인성은 우리를 위한 예수님 자신의 대리적 순종을 가능하게 한다.
롬 5:18~19 “그런즉 한 범죄로 많은 사람이 정죄에 이른 것 같이 한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받아 생명에 이르렀느니라 한 사람이 순종하지 아니함으로 많은 사람이 죄인 된 것 같이 한 사람이 순종하심으로 많은 사람이 의인이 되리라”
예수님은 자신의 인성 때문에 참으로 인류를 위한 대속적 희생이 되실 수 있었다.
히 2:17 “그러므로 그가 범사에 형제들과 같이 되심이 마땅하도다 이는 하나님의 일에 자비하고 신실한 대제사장이 되어 백성의 죄를 속량하려 하심이라”
예수님은 인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하나님과 사람 간의 유일한 효과적 중보자가 되실 수 있다.
딤전 2:5 “하나님은 한 분이시요 또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보자도 한 분이시니 곧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라”
예수님의 인성은 예수님이 타락한 세상에서 인간이 처한 곤경을 경험적으로 이해하는 공감적 대제사장이 될 수 있게 해 주었다.
히 4:15~16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하실 이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신 이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그러므로 우리는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
예수님의 인성은 예수님이 인간 성품과 행동의 참된 본보기이며 유형이라는 의미다.
벧전 2:21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받았으니 그리스도도 너희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사 너희에게 본을 끼쳐 그 자취를 따라 오게 하려 하셨느니라”
그리스도의 인성에 대한 역사적 오해 가현설(2세기)이라는 이단은 그리스도의 참된 인성을 부인했다. 가현설은 영지주의 전제들에 기초하고 있었는데, 영지주의는 육체적 영역과 영역 간의 철저한 이원론을 주장했으며 육체적 질서는 쓸모없는 것이라는 대단히 부정적인 견해를 가지고 있었다.
요한은 예수 그리스도의 온전하고 육체적인 인성을 부인하는 모든 견해를 강력히 정죄한다.
요일 4:2~3 “이로써 너희가 하나님의 영을 알지니 곧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신 것을 시인하는 영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요 예수를 시인하지 아니하는 영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 아니니 이것이 곧 적그리스도의 영이니라 오리라 한 말을 너희가 들었거니와 지금 벌써 세상에 있느니라”
아폴리나리우스주의는(4세기) 그리스도의 완전한 인성을 부인한 또 하나의 초대 이단이었다. 아폴리나리우스는 인간은 몸, 동물의 영혼, 그리고 이성적 영혼을 가지고 있다고 믿었다. 아폴리나리우스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신적 ‘로고스’가 인간의 이성적 영혼의 자리를 대신 차지한다고 생각했다. 이 견해는 나지안주스의 그레고리우스와 아타나시우스가 잘 반박했으며, 381년 콘스탄티노플 공의회에서 거부했다.
그리스도의 두 본성의 구별됨과 하나됨 성경적 기독론에서 세 번째와 네 번째로 필요한 주장은 신적 본성과 인간적 본성은 서로 구별된 채 있으며, 그 본성들은 한 인격 안에서 완전히 하나가 되었다는 것이다.
사 9:6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의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의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니라” 눅 2:11 “오늘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 요 1:14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롬 1:3~4 “그의 아들에 관하여 말하면 육신으로는 다윗의 혈통에서 나셨고 성결의 영으로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하사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선포되셨으니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시니라” 고전 2:8 “이 지혜는 이 세대의 통치자들이 한 사람도 알지 못하였나니 만일 알았더라면 영광의 주를 십자가에 못 박지 아니하였으리라” 갈 4:4~5 “때가 차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 율법 아래에 나게 하신 것은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을 속량하시고 우리로 아들의 명분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이 구절들은 영원하시고 무한하신 하나님의 아들이 시공간으로 발을 내딛으시고 인간 본성을 입으셨다는 심오한 비밀을 제시한다. 이보다 깊이 생각해 볼 만한 위대한 생각은 없다.
그리스도의 두 본성이 함축하는 점 예수님이 신적 본성과 인간적 본성을 둘 다 지니신 한 인격이시라는 믿음은 하나님과 관계를 맺게 된 타락한 인간의 가능성들에 큰 의미를 지닌다. 그리스도는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보자가 되고, 죄를 위해 속죄하고, 공감하는 대제사장이 되려면, 하나님이자 사람이 되셔야만 한다.
골 1:19~20 “아버지께서는 모든 충만으로 예수 안에 거하게 하시고 그의 십자가의 피로 화평을 이루사 만물 곧 땅에 있는 것들이나 하늘에 있는 것들이 그로 말미암아 자기와 화목하게 되기를 기뻐하심이라” 딤전 2:5 “하나님은 한 분이시오 또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보자도 한 분이시니 곧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라” 히 2:17 “그러므로 그가 범사에 형제들과 같이 되심이 마땅하도다 이는 하나님의 일에 자비하고 신실한 대제사장이 되어 백성의 죄를 속량하려 하심이라”
켄터베리의 안셀무스(1033~1109)는 [왜 하나님은 인간이 되셨는가]라는 독창적인 글에서 다음과 같은 말로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을 위해 그리스도의 두 본성이 중요하다는 것을 요약했다.
“[인간의 죄를 위한] 이 배상을 한 바로 그리스도가 완벽한 하나님이고 완벽한 사람일 필요가 있다. 그리스도가 정말로 하나님이 아니라면 그것을 할 수가 없고, 정말로 사람이 아니라면 그것을 해서는 안되기 때문이다”(2권 7장)
그리스도의 본성 간의 통일성에 대한 역사적 오해들
451년에 교회 지도자들은 칼케돈(고대 콘스탄니노플의 바깥)에 모여 예수의 완전한 인성과 완전한 신성을 단언한 신경을 썼다.
“ … 우리는 유일하시며 동일하신 그리스도, 아들, 주님, 독생자를 두 본성이 혼합되지 않고, 변화되지 않고, 분할되지 않고 분리되지 않는 존재로 인정한다. 두 본성의 차이가 연합으로 인해 결코 없어지지 않으며 각 본성의 고유한 속성은 한 위격과 한 본체 안에 다 같이 보전되고 동시에 존재한다.
칼케돈 기독론이 함축하는 점 그리스도의 한 본성은 때로 다른 본성이 공유하지 못하는 일을 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둘 중 한 본성이 하는 어떤 것이든 그리스도의 인격은 행하신다. 성육신하신 성자 하나님은 매번 적극적인 행위자이시다. 성육신은 그리스도가 신적 속성들을 포기하신 것이 아니라 인간적 속성들을 얻으신 것이다. 그리스도는 신적 삶의 영광을 포기하셨으나(고후 8:9, 빌 2:6) 신적 권능의 소유를 포기한 것은 아니다. 우리는 성육신이 실현되는 것을 보기 위해 잘못된 인간적 가정들에 의해 형성된 공상에 잠긴 추측들을 따르기보다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에 대한 복음서 기사들을 보아야 한다. 성육신의 주도권은 사람으로부터 온 것이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왔다.
이것은 역사 전체에 걸쳐 카톨릭, 정교회, 개신교 교회들에게 받아들여져 왔으며, 어떤 중대한 변경도 필요없었다. 그것은 한 인격에 완전히 연합된 그리스도의 두 본성들의 성경적 긴장을 효과적으로 표현하기 때문이다.
※ 그리스도의 인격에 대한 이단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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