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나단 B. 와이트의 <애덤 스미스 구하기>
한국에서 애덤 스미스라는 이름은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한 ‘시장 자유화’의 상징으로 통한다. 사회교과서에 케인즈의 큰 정부론과 대비되는 작은 정부론의 대표 학자로 등장하는 애덤스미스는 최근 교과서뿐만 아니라 신자유주의 바람을 타고 ‘경제특구’, ‘FTA(자유무역협정) 협약’에서 곧잘 등장하곤 한다. “사업가는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자본을 투입하고 공공의 이익은 자본가들이 증진시키려고 애쓸 때에 좀 더 효과적으로 증진 된다”는 <국부론>으로 애덤 스미스는 현대경제학의 아버지로 자유무역의 강력한 토대를 마련했다고 알려져 있다.
그런데 리치먼드 대학의 경제학 및 국제학 교수인 조나단 B. 와이트가 지은 <애덤 스미스 구하기>는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이러한 사실을 ‘엉터리’라고 지적하고 있다. <애덤 스미스 구하기>는 <국부론>보다 더 애덤 스미스가 아낀다는 그의 작품<도덕감정론>을 통해 지금 사람들이 애덤스미스를 인용하는 것은 마치 구약성서는 읽지 않고 신약성서만 읽고 인용하는 것이라고 풍자하고 있다. 이것은 지금의 신자유주의를 만들어내기까지 애덤 스미스의 제자를 자처하던 경제학자들의 심기를 불쾌하게 만드는 일이 아닐 수 없다. 물론 2004년 한국의 경제학자들까지 불편하게 만들기는 매한가지다.
애덤 스미스가 부활했다면?
<애덤 스미스 구하기>는 애덤 스미스가 헤럴드라는 인물로 부활해 현대 경제학의 전형적인 학자인 ‘나(번스)’와 이야기를 주고 받는 형식으로 진행된다. 소설의 플롯만 보자면 ‘말도 안 되는’ 소설로 치부할 수 있지만 이 책의 내용은 전혀 엉뚱하지 않다. 애덤 스미스가 했던 말들과 그의 사상을 토대로 복원된 만큼 헤럴드로 부활한 애덤 스미스는 외모만 다를 뿐 우리가 알고 있는 애덤 스미스라고 할 수 있다.
‘안정화’, ‘자유화’, ‘민영화’를 외치는 경제학자 라티머 박사 밑에서 민영화에 관한 논문으로 이른바 대박을 터뜨릴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잡은 ‘나’에게 헤럴드를 통해 애덤 스미스와 영적 대화를 하게 되는 만화 같은 일이 발생한다. 처음에는 당연히 믿지 않던 ‘나’지만 ‘나’는 애덤 스미스의 제자인 만큼 결국 그가 애덤 스미스라고 인정하게 된다. 그리하여 이들은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생명의 위협을 느끼는 가운데 동고동락의 여행을 떠난다.
<애덤 스미스 구하기>의 백미는 이들이 여행을 떠나면서 나누는 대화에 있다. <국부론>만을 인용하는 ‘나’와 ‘진짜’ 애덤 스미스의 대화는 애덤 스미스가 ‘나’를 설득하는 과정으로 진행되는데 그것이 애덤 스미스가 부활한 이유이자 이 책의 최종목적지이다. 그가 ‘나’로 상징되는 현대 경제학자들과 정부를 설득하는 이유는 단순하다. 만인의 부를 축적하겠다는 현대 자본주의가 자신의 사상을 왜곡하면서 몇몇 기득권의 이윤추구에만 급급하기 때문이다.
“요즘 세상 돌아가는 걸 보면, 사람들이 내 사상 전부를 이해하지는 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부의 창출은 단순히 시장이 돌아가게 유지하는 걸 넘어서는, 훨씬 복합적인 과정이라네. 무역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도 사회가 개개인의 권리를 인정하고 확실하게 보장해 줘야 해.” (-애덤 스미스 구하기 中-)
‘보이지 않는 손’은 무조건적인 경쟁을 의미하지 않는다
<애덤 스미스 구하기>는 일종의 경제이론소설이다. 그러나 난해하지는 않다. 인용되는 <국부론>의 인용문들은 우리가 이미 오해하고 있는 유명한 내용들을 토대로 다루고 있고 다소 생소하게 들리는 <도덕감정론>의 인용문들도 실상은 데이비드 흄과 계몽주의자들을 통해 우리에게 익히 알고 있는 ‘인간 우선의 사상’이기 때문이다.
그런 탓에 이 책의 최종 목적지는 낯설지 않다. 조나단 B. 와이트가 의도했듯이 왜곡되어 인용되는 애덤 스미스의 본래의 사상을 알리려는 이유도 있거니와 애덤 스미스가 말하는 시장 경제는 ‘무조건적인 경쟁’과 ‘타인과 약자를 무시한 채 이윤을 추구하는 행위’가 아니라 ‘정의의 법’에 의해 ‘국민들이 정의를 보장받고 신뢰를 토대로 자신의 근면성과 자본을 기반으로 경쟁을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소란스러운 FTA 체결 과정이나 다국적기업들의 횡포, 강대국의 무역 압력 등으로 얼룩진 요즘에 <애덤 스미스 구하기>는 뻔한 이야기를 하는 것 같지만 그 빛을 발하고 있다. 애덤 스미스를 운운하고 애덤 스미스의 사상으로 자신들을 합리화하는 이들에게 애덤 스미스가 웃음을 보내주지는 않을 테니 말이다.
“그들은 당신이 유럽에서 머무는 동안 철이 들었으며 <국부론>에서 개인의 이익을 강조한 것을 보면 그 사실을 알 수 있다고 말들 하죠.”
“말도 안돼. <국부론>이 출간된 지 14년이 지난 뒤에도 <도덕감정론>의 여섯 번째 발행본이 나왔어! 인간 본성에 어긋나고 상업에 관한 다른 저서와 모순 되는 책을 재발행할 만큼 내가 너절한 인간일 줄 아나?”
(-애덤 스미스 구하기 中-)
첫댓글 저한테 매우 멋진 책이었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