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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2월 6일
NASA, 태양 앞·뒷면 360도 촬영 성공
태양의 앞·뒷면. / NASA
2006년 발사된 미 항공우주국(NASA)의 태양 관측 위성 ‘스테레오(STEREO) A’와 ‘스테레오 B’가 6일 처음으로 태양의 360
도 모습을 촬영하는 데 성공했다.
사진은 4일 전인 2일 두 위성이 찍은 태양의 앞·뒷면을 합성한 것으로, 가운데 검은 줄은 스테레오 A와 B가 아직 완전한 180도를 이루지 않은 상태여서 생긴 공백
을 보여준다.
이 위성들은 발사된 후 지구로부터 각각 반대쪽으로 멀어져 갔으며, 6일 처음으로 태양을 중심으로 직선상에 놓이는 위치에 도달했다. 두 위성은 앞으로도 계속 진행 방향으로 움직이면서 태양 반대쪽을 촬영
할 예정이다.
▶2011년세계적인 기타리스트 게리 무어 별세
▶2010년북한 무단입국한 인권운동가 로버트 박, 석방
▶2010년이영덕 전 국무총리 별세
▶2007년열린우리당 의원 23명 집단 탈당
2007년 2월 6일 오전 열린우리당 23명 의원이 집단탈당을 하고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했다.
2007년 2월 6일 열린우리당 의원 23명이 집단 탈당을 결행하면서 원내 교섭단체를 만들겠다고 밝혀 국회에 ‘2여(與) 1야(野)’ 체제가 등장했다.
열린우리당의 김한길 전 원내대표와 강봉균 전 정책위의장 등 의원 23명은 이날 기자회견을 갖고 “국민통합 신당을 만들기 위해 열린우리당을 떠난다” 고 밝혔다. 그러나 이들은 신당 창당 말고는 다른 뚜렷한 명분을 내놓지 못한 채 탈당선언문에서 “노무현 대통령이 남은 임기 동안 책임 있게 국정을 수행할 수 있도록 협조하겠다” 고 말해, 정치권 안팎에서 ‘열린우리당 2중대’ 라는 비판을 받았다.
이날 탈당으로 열린우리당 의석수는 110석으로 줄어 원내(院內) 2당이 됐고, 한나라당(127석)이 1당이 됐다. 2004년 4월 17대 총선 이후 2년10개월 만에 ‘의회 권력’ 이 바뀐 것이다.
▶2003년`생명윤리 및 안전에 관한 법률안`확정
▶2001년중국 여객선, 사상 첫 대만 직항
▶2001년아리엘 샤론, 이스라엘 총리에 당선
▶2001년북한-캐나다 국교 수립
▶1998년워싱턴 공항, 로널드 레이건 공항으로 개명
▶1996년내무부, 모든 재난신고 `119`로 일원화
▶1996년민자당, 신한국당으로 출범
▶ 1993년 미국의 전설적 테니스 챔피언 애쉬(Ashe, Arthur) 사망
아서 애쉬(Arthur Ashe:1943 – 1993)는 메이저 테니스 대회에서 최초로 우승한 흑인 남성입니다. 1960년대 당시 미국의 버지니아 주에서는 흑인은 테니스를 칠 수 없다고 법으로 정해 놓았습니다. 그런 환경에서 경비원의 아들로 태어난 흑인이 챔피언이 되었다는 사실이 놀랍습니다.
그는 1968년 US오픈, 1970년 호주 오픈에서 우승했고, 1968년과 1975년엔 세계 랭킹 1위를 차지하여 전설적인 테니스 선수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1979년 심장질환으로 테니스 선수에서 은퇴한 후 테니스 코치, 방송해설자, 그리고 흑인들과 빈곤층 어린이를 위한 인권운동가, 자선사업가로 더 활발하게 일했습니다. 1990년 그는 1983년 심장수술 때 받은 수혈로 자신이 에이즈에 감염되어 그로 인해 자신이 죽어간다는 사실을 안 뒤에 이전보다 더 정력적으로 사회활동에 나섰습니다. 집에 앉아 죽음을 생각하기보단 불우한 이들을 위해 활동하는 게 낫다면서.
애쉬가 불치의 병 에이즈와 싸울 때 누군가가 그에게 물었습니다. "애쉬, 왜 하나님은 당신에게 그렇게 무서운 질병을 주었을까요. 하늘이 원망스럽지 않습니까?" 하고 말하자 그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내가 메이저 대회 우승컵을 들었을 때 '왜 나지?'라고 절대 묻지 않았습니다. 마찬가지로 내 죽음에 대해서도 '왜 나지?' 라고 묻지 않겠습니다. 내 고통에 대해서 '왜 나야?' 라고 묻는다면 내가 받은 은총에 대해서도 '왜 나야' 라고 물어야 할 것입니다"
1993년 그가 50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자 뉴스 앵커조차 그의 죽음을 전하면서 눈물을 흘렸습니다. 빌 클린턴 대통령은 '진정한 미국인의 영웅을 잃었다'고 그를 애도했고 그의 고향인 버지니아 주지사도 '정다운 친구이자 우리가 본받을 거인'을 잃어 참으로 슬프다 말했습니다.
그에 대한 미국사회의 존경은 그의 경기력 때문이 아니라 가장 인간적인 인물로 평가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동등한 권리와 기회를 제공받지 못하는 이들을 위해 싸운 행동가였습니다. 그는 죽기 얼마 전 에 “에이즈보다 흑인 됨이 더 고통스럽다. 에이즈는 나의 몸을 죽이지만 인종차별은 정신(soul)을 죽인다"고 토로하기도 했습니다. 다음은 그가 한 유명한 말입니다.
위대함을 성취하기 위해 당신이 있는 그곳에서 시작하십시오. 당신이 가진 그것을 사용하십시오. 당신이 할 수 있는 그것을 하십시오. (To Achieve Greatness, Start where you are. Use what you have. Do what you can)
애쉬가 테니스의 전설적인 존재가 되었다고 그것으로 만족해했다면 그는 존경을 한 몸에 지닌 정다운 친구이자 본받을 거인이 되지는 못했을 것입니다. 그가 자신에게서 눈을 돌려 남을 도우려는 자세를 가질 때 그가 참으로 해야 할 일들이 많은 것을 깨닫고 그 일들을 위해 헌신하였을 때 그는 진정한 영웅이 되었다 생각합니다.
▶1986년중요무형문화재 제5화 판소리`심청가` 예능보유자 정권진 사망
▶1983년한국-쿠웨이트, 문화협정 체결
▶1981년한국-루마니아, 문화협정 체결
▶1981년미국, 소련이 킬러위성 우주발사실험에 성공했다고 발표
▶1980년남북총리회담을 위한 남북실무대표 판문점에서 첫 대좌
▶1979년파키스탄 최고재판소, 부토 전 수상의 사형판결 확정
▶1974년그레나다, 영국으로부터 독립
중남미 카리브해상의 작은 섬 그레나다가 1974년 2월 6일 영국으로부터 독립했다. 1498년 콜럼버스가 처음 발견한 그레나다는 1655년 프랑스 식민지였다가 1783년 영국령으로 편입됐다. 1958년 서인도제도 연방에 가입하였으나 1962년 연방의 해체로 다시 영국령 윈드워드 제도에 편입됐다. 1967년 자치정부가 수립돼 마침내 이날 영국연방의 일원으로 독립하게 됐다.
독립헌법에는 영국 국왕이 임명하는 그레나다의 총독과 양원제 국회에 관한 조항이 마련됐다. 1983년 친소련파에 의한 군사쿠데타가 일어났으나 미국은 그레나다에 건설중인 비행장이 소련의 기지로 이용될 것을 우려해 카리브 해안 6개국과 연합하여 그레나다를 무력 침공, 정권을 무너뜨리고 신국민당의 블레이즈가 이끄는 친미 정권을 탄생시킨 후 1985년 철수했다.
▶1974년74억원 부정융자한 박영복 등 구속
▶1971년한미, 주한미군감축과 한국군 현대화계획에 합의
▶1971년아폴로 14호 승무원 달 표면에서 골프 스윙 연습
아폴로 14호 선장, 1971년 달에서 인류 최초의 샷~
971년 우주선 아폴로 14호의 선장 앨런 셰퍼드는 달 표면에서 6번 아이언으로 두 차례 샷을 했다. 첫 샷은 200야드(약 183m) 넘게 날아갔고 두 번째 샷은 생크가 났다. 한편 당시 영국골프협회(R&A)는 셰퍼드가 지구에 무사 귀환한 직후 보낸 축하전보에서 애교 섞인 문구를 넣어 눈길. “플레이어는 벙커에서 나오기 전에 자신이 만든 움푹 팬 곳이나 발자국을 평평하게 매만져 놓아야 한다(골프룰 에티켓 1장)”며 셰퍼드의 역사적인 달 표면 골프샷의 옥에 티를 지적.
ㆍ비거리 짧았지만 ‘굿샷’
2006년 11월23일. 러시아 우주비행사 미하일 튜린은 북서태평양 220마일 상공 국제우주정거장에서 6번 아이언으로 티샷을 날렸다. 그는 우주복 냉각장치 때문에 예정된 티오프 시간에 무려 77분이나 늦었다.
또 우주선 밖 사다리에 발을 걸친 채 한 손으로 샷을 날렸으니 ‘생크’가 날 수밖에…. 여하튼 튜린은 역사상 최장타 기록의 주인공이 되었다. 미 항공우주국(NASA)이 무중력 상태를 훨훨 난 공은 대기권에 진입해 타 버릴 때까지 지구를 48바퀴(약 200만㎞)를 돈다고 전망했으니 말이다. 하지만 러시아 측은 2년간 16억㎞를 날 것이라고 분석했다. 물론 튜린이 첫번째 우주골퍼는 아니다.
1971년 2월6일 사상 두번째로 달표면에 착륙한 아폴로 14호 선장인 앨런 셰퍼드가 첫번째였다. ‘핸디캡 12’였던 셰퍼드는 손수레 손잡이에 6번 아이언 헤드를 연결했다. 가져간 골프공은 2개. 그는 흙을 쌓아 티를 만들고 힘껏 티샷을 날렸다. 지구 중력의 6분의 1밖에 되지 않는 달 표면이기에 비거리에 대한 셰퍼드 선장의 기대는 컸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인류 최초의 ‘월상(月上) 티샷’의 비거리는 고작 200야드였다. 지구였다면 35야드도 채 안되는 거리였다. 설상가상으로 두번째 샷은 생크가 나서 고작 50야드를 날아갔다. 지구였다면 8야드 정도? 하기야 엄청난 부피의 우주복과 두꺼운 장갑 때문에 제대로 된 샷을 날릴 수 없었을 터다. ‘월상 골프’ 소식이 전해지자 셰퍼드에게는 축하 메시지가 쇄도했다. 그중 영국왕립골프협회(Royal & Ancient Golf Club)가 보냈다는 메시지 한 통은 요절복통이다.
“당신의 위대한 업적을 축하드리지만 당신의 골프 에티켓은 유감입니다. 당신은 ‘골프매너룰 6’을 봐주시기 바랍니다. 벙커를 떠날 때에는 샷한 자국을 깨끗이 정리해야 한다는 룰 말입니다.”
“아무도 2등은 기억해주지 않는다”는 말이 있다. 61년 “지구는 푸르다”는 유명한 말을 남긴 최초의 우주비행사 유리 가가린이나 69년 달 표면에 처음으로 착륙한 닐 암스트롱에 비한다면 셰퍼드라는 이름은 아무래도 미미한 편이다. 하지만 셰퍼드는 인류 최초의 ‘월상골퍼’로 오래오래 기억될 것이다
▶1967년미군, 베트남전에서 대량의 고엽제 살포 개시
1967년 2월 6일 미국 공군기가 남북베트남 경계지점 비무장지대 삼림지역에 대량의 고엽제(枯葉劑)를 살포했다. ‘오렌지작전’ 또는 ‘고엽작전’ 이라 불리우는 이 작전은 비행기와 헬리콥터에서 대량의 화학약품을 투하해 남베트남 정글을 벌거숭이로 만들어 이들 삼림지대를 거점으로 하는 남베트남 민족해방전선부대 발견을 쉽게 하기 위한 것이었다.
미군 비행기가 남북베트남 경계지점 비무장지대에 대량의 고엽제를 살포하고 있다
원래, 고엽제란 농약의 용도상 분류에서 낙엽제(落葉劑)에 해당하는 것을 말하는데, 이날 사용된 고엽제는 2ㆍ4ㆍ5-T계 제초제였다. ‘고엽작전’ 은 이미 1962년부터 일부에서 행해졌지만 이것은 주로 해방전선의 식량공급을 차단하기 위해 논밭을 말라죽게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이날처럼 대량의 고엽제가 살포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 후 1969년 동물실험 결과 이 고엽제에서 발견된 초미량의 불순물인 디옥신이 기형과 암 발생의 원인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이 밝혀지자 미국을 비난하는 세계의 여론이 들끓었고, 결국 미국은 같은 해 고엽제 사용을 중지했다. 그러나, 이미 이 ‘고엽작전’ 으로 베트남 산림의 20%가 파괴된 상태였고, 장애아 출산도 잇달았다. 또한 ‘고엽작전’ 에 참가했던 미군 병사들마저도 후유증으로 고생해야 했다.
▶1966년진주 중앙시장에 큰불, 570점포 화실
▶1964년키프로스의 그리스, 터키계 주민 충돌
▶1963년동서독 올림픽 단일팀문제에 완전합의
▶1963년최고의 정치정화법 해당자 268명 2차 해금
▶ 1958년 2월 6일.
뮌헨 비행기 참사가 일어나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멈춰 버린 시간...'뮌헨 비행기 참사'
활주로의 녹은 눈 때문에 이륙을
하지 못하여 일어난 보기 드문
비행기 사고이며, 이 사고로
44명 가운데 23명이 사망했다.
뮌헨 비행기 참사
당시 잉글랜드 축구 협회는 자국 리그 우승 팀의 유로피언컵(현재의 챔피언스리그)의 출전을 막아온 상황이었다. 이전 리그 우승 팀인 첼시 FC도
축구 협회의 의견을 받아들여 출전하지 않는다.
하지만 당시 맨유의 감독이었던 맷 버스비는 세계적인 팀과 겨루어야 한다는 신념으로 축구 협회의 말을 무시하고 유로피언컵에 참가한다.
당시에 유로피언컵 원정은 리그와 일정이 촉박해 맷 버스비는 축구 협회에
리그 일정을 미뤄 줄 것을 부탁하지만 축구 협회는 자신들을 무시했다는 것에 양심을 품어 "일정에 맞춰 돌아오지 못하면 승점 삭감을 하겠다"라는 엄포를 내놓는다. 결국에 어쩔 수 없이 비행기를 타고 떠났다..
그런 후 츠르베나 즈베즈다와의 유로피언 컵 8강 원정경기를 치르고 선수단 비행기로 귀국하는 중에 사건이 터지게 된다..
소련에서 잉글랜드로 돌아오던 영국 유러피언 항공 609편 비행기가
경우지 뮌헨 공황에서 이륙하던 도중에 기체가 전복되는 사고가 발생한다.
당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맷 버스비 감독 체제 아래에서 구단 첫 우승을 달성하면서 당시 최강이라는 레알 마드리드에 전혀 부족하지 않다는 평을 듣고 있던 맨유의 절정기였다..
그 사건으로 맨유는 팀의 주축 멤버들은 한순간에 잃어버렸고 맨유의 전력은 바닥으로 떨어지게 되었으며, 간신히 살아남은 선수들도 역시 회복을 위해 시간이 필요했으므로 맨유는 암흑기로 빠지게 되었다..
당시의 전력을 회복하는데 10년이라는 시간이 걸리게 된다..
붉게 칠해진 선수들이 뮌헨 참사의 희생자입니다..
제프 벤트 (DF)
로저 바인 (DF)
에디 콜먼 (MF)
마크 존슨 (MF)
데이비드 펙 (MF)
던컨 에드워즈 (MF)
토미 테일러 (FW)
빌리 휄란 (FW)
사고의 원인
원인은 활주로에 쌓인 슬러시였다..
슬러시는 따듯한 기온이나 화학적 처리로 인해 눈의 성질이 변한 혼합물로 당시 눈이 적당히 녹아서 질퍽해진 점성을 띈 상태의 슬러시가 된 상태였다
막 이륙속도에 도달한 항공기가 이 슬러시를 통과하면서 속도가 느려져
이륙을 중단하기에 빠르고 이륙하기에는 너무 느린 속도에서 기수를 들게 되었다..
결국 이륙에 충분한 속도를 받지 못하고 이륙한 항공기는 인근 민가에 추락
주차된 트럭과 충돌하며 대폭발을 일으켰다..
초기 독일의 조사에 의하면 날개 위에 쌓인 눈에 대하여 방빙 조치를 하지 않아 사고가 난 것으로 지목되었다. (영국 조종사 과실). 하지만 기장 제임스 테인은 어마어마한 비난을 감당하면서 11년간 끈질기게 결백을 주장한 끝에 영국에서는 재조사가 2차례 이루어졌고, 여러 실험을 통한 입증 끝에 활주로에 5cm 이상 쌓인 슬러시가 원인인 것으로 발표되었다. (독일 비행장 과실). 결정적으로, 사고 직후 공항에서 항공기로 달려온 독일인 파일럿이 날개를 확인했을 때 날개 위에 눈은 없었다는 증언을 독일 조사 위원회에서 누락한 것이 밝혀졌으며, 이에 대하여 독일 조사 위원장은 제대로 해명하지 못하였다. 그러나 독일은 공식적으로 조종사가 방빙 조치를 하지 않아 사고가 났다는 기존의 입장을 끝까지 철회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공항들은 609편에 대한 영국의 발표에 따라 활주로 슬러시에 조치를 취하여 사고를 예방하고 있다.
최강의 인기 선수단을 사망하게 했다는 누명을 쓰고도 11년간 포기하지 않고 끝내 자신의 결백을 증명한 테인 기장은 "굳은 의지만 있다면 무엇이든 가능하다"이라는 말을 남겼다..
▶1957년미국 매사추세츠 공과대학 더들리 알렌 벅 교수, ‘크라이오트론
(cryotron)’ 이라는 초전도성 논리소자 개발을 발표-컴퓨터의 소형화에 기여
▶1952년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 즉위
▶1952년영국왕 조지6세 사망
▶1948년서독, 미국, 영국 점령지구 통합헌장 조인
▶1946년미소 공동위원회 설치
▶ 1945년 2월 6일.
자메이카의 싱어송라이터 밥 말리 (Robert Nesta "Bob" Marley) 출생.1981년 5월 11일 사망.
레게 음악의 가장 대표적인 가수이자 작곡가로 꼽히는
인물로, "더 웨일런스"라는 그룹을 결성하여 초반에는
기타리스트와 보컬리스트로 활약을 했던 가수이다.
▶1932년프랑스 영화감독 트뤼포 출생
▶1923년천체사진술의 선구자인 미국의 천문학자 에드워드 에머슨 바너드 사망
▶1922년워싱턴 해군 군축조약 조인
▶1922년조선교육령 개정 공포
▶1911년미국 제40대 대통령 로널드 레이건 출생
▶1904년일본, 러시아 국교단교
▶1895년미국 야구선수 베이브 루스 출생
▶1886년노비 폐지
1886년(고종 23) 노비의 세습을 법으로 금한 일.
조선시대의 노비는 천인이라 하여 공천(公賤)·사천(私賤)이 있었으며, 공천은 시노비(寺奴婢)·내노비(內奴婢)·관노비(官奴婢)·역노비(驛奴婢) 등이며, 사천은 사노비(私奴婢) 또는 반노비(班奴婢)·원노비(院奴婢)·교노비(校奴婢) 등이 있었다. 조선사회에는 노비의 수가 많아지고, 또한 노비 내에 분화가 생겨 노비 중에도 우열의 층이 생겼다. 공천은 사천보다 우월하여 노비로서 노비를 소유하는 경우가 있었고, 양민보다 우세한 노비도 있었다. 또 관노비는 전부 독립하여 생활하면서 입역(立役) 또는 공포(貢布)를 임무로 했다. 노비는 일종의 재산으로서, 상속·매매·기증·공출(供出)의 대상이 되었고, 종모법(從母法)에 의해 상속되었다.
정조 때는 도망자에 대한 처벌법인 노비추쇄법(奴婢推刷法)을 폐지했고, 1801년(순조 1) 내수사(內需司)와 각 관방(官房)의 노비원부(奴婢原簿)를 불태우고 공노비 5만을 해방시켰다. 86년(고종 23)에는 노비세습을 법으로 금하여 부분적인 개혁이 진행되었으며, 94년(고종 31)에는 공사노비제를 법제상으로 완전히 폐지하고 인신매매를 금함으로써 형식상 노비제는 소멸되었고, 일제강점기를 지나면서 남아 있던 유습마저 완전히 사라졌다.
▶1840년뉴질랜드, 영국의 식민지화
▶1611년중국 명나라 마지막 황제 숭정제 출생
▶885년일본 제60대 천황 다이고 출생
https://youtu.be/dqpLUdv04Fo
출처 네이버지식백과,반가운의hi스토리,솦트리종려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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