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 12: 30 성령의 은사 - 고전 12: 31 큰 은사를 사모하라.
고전 12: 30 성령의 은사 - 다 병 고치는 은사를 가진 자이겠느냐? 다 방언을 말하는 자이겠느냐? 다 통역하는 자이겠느냐? ( 다 병 고치는 은사를 가진 자겠느냐? 다 방언을 말하는 자겠느냐? 다 통역하는 자겠느냐? )
1] 다 병 고치는 은사를 가진 자이겠느냐? 다 방언을 말하는 자이겠느냐? 다 통역하는 자이겠느냐?
(1) 병 고치는 은사
9절 강해 참조
(2) 방언을 말하는 자
10절 강해 참조
(3) 통역하는 자
10절 강해 참조
고전 12: 31 큰 은사를 사모하라 - 너희는 더욱 큰 은사를 사모하라. 내가 또한 가장 좋은 길을 너희에게 보이리라. ( 너희는 더욱 큰 은사를 사모하라. 내가 또한 제일 좋은 길을 너희에게 보이리라. )
사도 바울은 끝으로 더 유익한 은사를 사모하라고 말한다. 더 유익한 은사란 다른 사람에게 유익을 주는 은사를 말하는 것 같다.
또 ‘제일 좋은 길’이란 다음 장에 말한 사랑을 가리킨다고 본다. 이것은 더 유익한 은사를 사모하되 사랑의 원리를 따라 하라는 교훈이다.
1] 너희는 더욱 큰 은사를 사모하라.
'더욱 큰 은사'에 해당하는 헬라어 '타 카리스마타 타 메이조나'(*)는 '더욱 탁월한 은사'라는 의미로 이는 은사들이 서로 상대적임을 시사한다.
그러므로 바울이 모든 은사들이 교회에 필수적인 요소들이라고 언급한 것과(21절ff.) 약간의 모순이 있는 듯 보일 수 있다.
그러나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이 잘못된 표준을 가지고 '탁월한 것'을 생각하고 있으므로 이를 수정해 주려는 의도를 가지고 이렇게 말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성령의 은사(恩賜)
성령의 은사가 무엇인지 잘 알지 못해서 초대 교회 때부터 여러 가지 문제들이 발생하여 교회가 어지러웠다. 그러한 현상은 2천여 년이 지난 지금도 마찬가지다. 성령의 은사가 무엇인지 바르게 알고 행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 일이다.
(1) 성령의 은사 의미
신약 성경에서 '은사'라는 말을 뜻하는 「카리스마」는 카리조마이(선물하다)라는 동사에서 파생된 말로 「하나님께서 값없이 주시는 은혜의 선물」이라는 뜻이다. 그래서 우리 말로는 「恩惠의 膳物」을 줄여 「恩賜」라고 부른다.
성령의 은사를 정의하면 다음과 같다. 성령의 은사는
① 성령의 기쁘신 뜻대로 성도들에게 나누어주시는 선물이다.
성령께서 마음대로 주시는 것이다.
② 모든 사람에게 골고루 나누어주는 보편적 선물이다.
③ 개개인에게 나누어주시는 것이기는 하지만, 교회 안에서 하나님을 위하여 특정한 봉사를 하도록 주시는 사명이다.
④ 특별한 경우, 특별한 목적으로, 특별한 사람에게, 특별한 기능을 부여하시는 경우도 있다.
⑤ 모든 은사는 사랑의 은사와 함께 주어지며, 사랑으로 결실되는 것이다.
(2) 은사의 종류
일반적으로 9가지 은사를 말한다. (고전 12: 5-10)
그것은 은사의 전부가 아니고 일부에 불과하다. 넓은 의미에서 은사는 하나님께서 인류를 위하여 지어주신 모든 것이나, 좁은 의미에서는 특별한 일을 수행하는 데 필요한 능력을 의미한다. 성령의 은사를 크게 나누면 일반 은사와 특별 은사가 있겠지만 여기서는 합해서 다섯 가지로 분류한다.
① 일반적인 은사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이 햇빛과 비를 은사로 생각하지 않고 감사하지 않고 있다. 그러나 이것들은 분명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값없이 주시는 선물이다.
② 일반종교에서도 찾아 볼 수 있는 은사
기적, 환상, 치병 등은 무당들도 할 수 있는 수준의 것들이다. 성령께서 주시는 은사 중에도 이상과 같은 것이 있다.
③ 한시적(限時的)인 은사
「예언도 폐하고, 방언도 그치고 지식도 폐하리라」(고전 13: 8)는 말씀과 같이 시간이 흐름에 따라 변하기도 하고 없어지기도 하는 성격의 은사도 있다.
④ 항상 있는 은사
「믿음과 소망과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고전 13: 13) 성령께서 주시는 그리스도교의 은사 중에서 항구적이고, 본질적인 은사는 「믿음과 소망과 사랑」이 세 가지이다.
⑤ 제일 중요한 은사
「그중에 제일은 사랑이라」(고전 13: 13) 고린도전서 12장에 나오는 여러 가지 은사가 있다. 그러나 그 모든 은사가 사랑 위에서 행해져야 한다. 예언이든 병 고치는 일이든 지혜와 지식이든 하나님을 사랑하고, 사람을 사랑하는 정신으로 행하지 아니하면 유익이 없다.
어떤 은사이든지 자기 유익을 위해서 사용하면 안 된다. 방언, 천사의 말, 모든 비밀을 다 아는 지식, 산을 옮길만한 믿음, 모든 것을 희생하는 구제, 몸을 불사르는 순교와 같은 행위도 하나님을 사랑하고, 사람을 사랑하는 기초 위에서 행하여지지 아니하면, 아무 유익이 없다는 것이다. (고전 13: 1-3).
(3) 은사의 목적
첫째, 그리스도에 대한 올바른 신앙을 확립하며 그리스도가 주님이심을 증거하고, 사람을 구원하는 데 그 목적이 있다.
둘째, 다른 사람을 유익하게 하도록 주신 선물이다.
이 은사는 사적인 것이 아니다. 공적인 것으로 형제를 위한 것이다.
셋째, 공동체의 유익을 위해서 주신 것이다.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세우고, 튼튼하게 자라도록 하기 위해서 주신 것이다. 교회의 화평과 일치를 이루는데 목적이 있다. 특별히 사랑의 은사를 통해서 세계의 평화와 일치를 통해서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어 나가는 것을 궁극적인 목적으로 한다.
2] 내가 또한 가장 좋은 길을 너희에게 보이리라.
고린도 교회 교인들은 특별히 방언 은사에 대한 각별한 관심이 있었다.
이에 반해 바울이 언급하고자 하는 은사는 교회 전체에 유익을 주기에 제일 효율적이고 광범위한 힘을 지닌 것이었다. 다시 말해 고린도 교회는 은사의 효율성보다는 매력적이고 대중적인 것에 관심을 가졌으나 바울은 모든 은사보다 뛰어난 은사를 새로운 관점에서 제시하고자 한다.
바람직한 성령 운동
(1) 성령 운동이란?
성령 운동이란 사도행전 2장에 나타난 성령의 강한 역사와 같은 성령의 능력을 통해서 교회를 부흥시키고, 선교를 열심히 하자는 것이다. 그런데 20세기 초에 일어난 오순절 성령 운동은 특수한 경향을 띄고 있어서 "오순절 성령 운동파"라고 부르게 되었다. 그 뿌리를 찾아 올라가면 웨슬리의 성령 운동과 피니, 무디, 토레이의 부흥 운동과 관계가 있다.
오순절 운동을 시작한 사람들이 대체로 감리교 출신들인데, 감리교회의 제도와 교리에 얽매이기 싫은 사람들이 나와서 군소 교파를 만들었다. 그들 중에 미국 켄사스주의 토페카 성서대학의 파르함(C. F. Parham)과 로스엔젤레스의 아주사에 있는 감리교회의 세이모어 목사가 중요 인물이었다.
1900년 12월 31일 송년 집회에서 파르함이 오즈만이라는 여학생에게 안수 기도했을 때, 오즈만이 중국어로 방언하는 것을 보고 그 집회에 참석한 모든 사람이 그것을 오순절 성령강림과 같은 성령의 역사라고 믿었다.
파르함의 제자인 목사 세이모어가 1900년부터 아주사 312번지 감리교회에서 성령세례를 주장하면서 집회를 계속하는 가운데 엄청난 역사가 일어났다. 그리하여 파르함과 세이모어를 오순절파의 창설자로 본다.
(2) 성령 운동이 일어나는 배경
첫째, 기성교회가 침체한 때에 일깨우기 위해서 일어나는 부흥 운동이다.
둘째, 제도적인 교회 안에서 답답함과 컬컬한 성도들이 시원한 탈출구를 찾을 때 그것을 충족시키는 성령의 역사이다.
셋째, 현재의 물질문명과 정치적 사상적인 압박감에서 탈출하고자 하는 대중들이 영적인 자유를 갈망할 때 역사하시는 성령의 사역이다.
넷째, 선교의 열정이 식어가고 현상에 안주할 때 세계교회를 향하여 선교의 뜨거운 영을 부어주시는 삼위일체 하나님의 강력한 자기 계시이다.
다섯째, 성령의 실제와 사역을 등한시하는 자유주의 신학에 대한 정면 도전으로 성령 운동이 일어난 것이다.
(3) 오순절파의 잘못된 성령 운동
첫째, 「완전한 복음」이란, 마음과 생활의 성결, 육체의 치유, 방언의 증거가 나타나는 성령세례라고 주장하는 그들의 신조 5항이 문제이다.
성령세례란, 성령의 확실한 체험을 뜻하는 것인데, 반드시 방언을 해야만 성령세례의 유일 증거가 된다는 것은 큰 잘못이다. 성령의 수많은 중요한 은사 중에 가장 작은 방언을 구원의 근거처럼 주장하는 것을 용납할 수 없다.
그들의 교리대로 하면 방언 받지 못하면 성령 받지 못한 것이요, 엄격히 말하면 구원받지 못한 것으로 간주하게 된다. 바울은 방언을 인정은 했지만 장려하지는 않았다.
* 고전 14: 19 - 그러나 교회에서 내가 남을 가르치기 위하여 깨달은 마음으로 다섯마디 말을 하는 것이 일만 마디 방언으로 말하는 것보다 나으니라.
둘째, 신비주의로 치우치는 점을 주의해야 한다.
기독교 신앙에서 초월적인 체험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성령의 역사를 환상, 기적, 치병, 축귀, 방언 등 초자연적인 것에 치우치는 것은 위험하다. 신비적인 체험을 강조하고 그것에 치우치면 주관주의에 빠지게 된다. 성령의 역사는 포괄적이고 광범위하다.
셋째, 지나친 영적인 생활을 강조한 나머지 현실 도피적 염세주의에 빠지게 되고, 현실에 대하여 무책임하게 되며, 자유 방만한 생활을 하게 된다.
넷째, 교회의 제도나 조직을 경시하고, 성경을 체험보다 경시하며, 성령 체험을 극대화하는 교만으로 배타와 분열을 조장하는 경향이 많다. 이상의 잘못을 시정하지 않으면 이단에 빠질 위험이 있다.
(4) 바람직한 성령 운동
첫째, 성령을 독립적인 신으로 생각하지 말고 하나님의 영, 그리스도의 영으로 모셔야 한다.
둘째, 모든 교회는 성령의 역사를 강조하고 성령의 능력을 받도록 해야 한다. 성령 충만은 주님의 지상명령이기 때문이다.
* 행 1: 8 -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셋째, 성령 운동과 신비체험은 반드시 성경에 근거를 두어야 한다.
넷째, 성령의 은사 중에서 근본이 되고 가장 크고 무거운 것은 「사랑」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성령 충만은 믿음과 소망과 사랑으로 충만케 하는 것이다.
다섯째, 성령 운동은 개인 구원과 사회 구원, 세계 구원을 동시적으로 지속적으로 일으키는 운동이어야 한다.
본 장의 교훈을 정리해 보자.
첫째, 성령께서는 사람들로 예수님을 구주와 주님으로 바로 깨닫고 고백하게 하신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음으로 구원을 얻은 것은 성령의 활동으로 된 것이다.
성령의 활동이 아니라면 사람은 창조자와 섭리자 하나님도, 자신이 멸망 받을 죄인임도, 예수께서 우리의 구주이심도 알 수 없고 믿을 수 없었을 것이다.
둘째, 은사들은 여러 가지나 그것들을 주신 성령께서는 한 분이시다.
교회 직분들도 여러 가지나 그것들을 주신 주님께서는 한 분이시고, 각 사람 속에 활동하시는 활동은 여러 가지나 그것들을 행하시는 이는 한 분 하나님이시다.
교회에 주신 여러 직분들은 한 몸의 여러 지체들과 같다.
우리에게 주신 직분들이 다를지라도 우리는 각 지체의 역할을 인정하고 서로 귀하게 여기고 우리가 한 몸임을 기억해야 한다.
우리는 교회의 한 지체가 고통을 당하면 같이 고통을 당하게 되고 한 지체가 영광을 얻으면 같이 영광을 나누고 기뻐함을 알아야 한다.
셋째, 우리는 더 유익한 은사를 사모해야 한다.
신약성경이 완성된 후, 우리는 하나님의 가장 유익한 선물인 성경을 소유하게 되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경을 열심히 읽고 묵상함으로 하나님의 풍성한 교훈을 받고 그 내용인 사랑을 실천함으로써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