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하마비의 기원
태종13년(1413) 최초로 종묘와 대궐문 앞에 일정한 거리를 두고 標木을 세웠는데 이것이 하마비의 기원이다. 이 비석이 세워진 곳부터 신분의 高下를 막론하고 누구나 타고 가던 말에서 내려 걸어서 들어가야 하는데 말에서 내릴때마다 고개를 숙이며 자연스레 경의를 표시하라는 뜻을 새긴 石碑이다.
태종실록에는 말에서 내리는 거리가 나와있다.
1品이하는 궐문으로부터 10步 ,3品 이하는 20步, 7品 이하는 30步 거리에서 말에서 내려야 한다.
◈ 하마비의 內容
下馬碑(하마비)
대소관리과차개하마(大小官吏過此皆下馬)
대소인원개하마(大小人員皆下馬)
라고 적혀있다 .
大小人 이란 당하관인 종3품 이하의 관리들을 뜻하고, 員이란 당상관인 정3품 이상을 뜻한다.
皆는 "모두 다" 라는 뜻이니 결국은 누구를 막론하고 모두 말에서 내려라는 의미다.
◈ 하마비의 위치
궁궐ㆍ종묘ㆍ왕릉ㆍ향교ㆍ서원ㆍ어전(御典. 왕의 영정을 모신곳)ㆍ관아등에 설치
되었으나 나중엔 사찰 앞에도 세워지게 된다.
◈ 사찰에 세워진 이유
유교의 나라 조선 이지만 왕실과 백성들은 암암리에 불교를 믿는 사람들이 많았고,
특히 왕비를 비롯한 왕실 여성들에게서는
불교 신앙이 많았는데 , 특히 세조의 비 정희왕후 와 중종계비이며 명종의 어머니 문정왕후가 불교에 공을 들였다.
조선중기 불교의 中興은 문정왕후에서 시작되었다.
막강한 권력으로 佛敎를 陽地로 끌어내고
보우(普雨) 대사를 지금의 강남 奉恩寺 주지로 임명하고, 불교 중흥의 깃발을 들었다.
문정왕후는 그동안 폐지 되었던 승과(僧科)를 부활 시키고 봉은사에 선종(禪宗)을, 남양주 奉先寺에 교종(敎宗)을 두고 양종(兩宗)을 부활 시켰다.
탄압받는 불교 사찰에서 유생들이 많은 횡포를 부리고 유람할때 승려들을 불러 말을 끌게 하는가 하면 사찰에서 기생들을 불러 놀기도 하였다.
그러다 어느날 명종시대 왕의 능침(陵寢)을 지키는 양주 회암사에서 유생들이 술을마시고 기물을 부수고 ,보물을 훔치는 사건이 발생하였고, 이 소식을 들은 문정왕후는 대노(大怒)하여 두 사찰에 유생들의 출입을 금지시켰고 난동을 벌인 주동자들을 투옥 시켰다.
이에 유생들의 반발은 거셌고, 문정왕후를 보좌하던 보우대사의 목을 베라고 상소가 올라오자, 열받은 문정왕후는 더욱 열을 받아
결국은 전국의 큰 사찰과 능침사찰 입구에 하마비를 세우도록 명령을 내리게 된다.
이런 과정을 거쳐 下馬碑가 사찰까지 들어오게 된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