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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 잡설 -4/5-
<몽매(蒙昧)의 팡세> (7)
2013년 7월 31일
예정(Predestination)의 교의(敎義)
1.
1987년 2월 어느날 마태복음을 읽던중, 강하게 엄습한 신비주의에 벅차 흐느꼈다.
그때 내게 교회도 신앙적 환경도 없었다.
두루 척박한 직장과 환경에 영혼이 피흘려, 그 즈음 나는 성서만을 읽고 있었다.
그 순간 나는 내 의지(意志)에 의하여 하나님을 믿기로 결신(決信)하였던 것일까.
그런데 그게 아니라고 한다.
한 사람이 신앙을 갖게 되는 것은 하나님이 예정하신바 선택에 의한 것이라고 한다.
그런데 어쩌랴, 갈수록 부박(浮薄)하고 경박해지는 나의 믿음.
하나님께 선택받았다는 것은 나의 착각이었나.
그러니까 나의 믿음이란 애시당초 무망(無望)한 헛된 꿈이었나.
2.
하느님에게서 구원받을 사람은 하나님에 의해서 미리 정해져 있다.
그 누구도 미리 하느님에 의해 정해지지 않으면 하느님의 구원을 받을수 없다.
예정과 선택은 하나님 일방의 뜻이고 하나님의 자유의지에 의한 것이다.
선택 받는 자의 선의지(善意志), 윤리관(倫理觀). 선행(善行), 환경(環境), 조건(條件) 따위는 하등 고려의 대상이 아니다.
그야말로 보끌복(福不福)이다.
3.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이는 너희로 가서 과실을 맺게 하려 함이라 -요한복음 15장>
<우리가 사랑함은 그가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음이라 -요한1서 4장>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에베소서 1장>
<주께서 사랑하시는 형제들아 우리가 항상 너희에 관하여 마땅히 하나님께 감사할 것은 하나님이 처음부터 너희를 택하사 성령의 거룩하게 하심과 진리를 믿음으로 구원을 받게 하심이니 -데살로니가후서 2장>
4.
아브라함, 이삭, 야곱, 모세, 사무엘, 에레미야, 이사야, 호세아, 다니엘, 에스더, 에스겔, 말라기, 세례요한, 예수의 제자들, 특히 바울....하나님께 헌신하는 모든 사람들은 하나님의 예정에 의하여 특별하게 지음을 받은 사람들이다.
5.
<내가 너를 복중에 짓기 전에 너를 알았고 네가 태에서 나오기 전에 너를 구별하였고 너를 열방의 선지자로 세웠노라 하시기로 내가 가로되 슬프도소이다 주 여호와여 보소서 나는 아이라 말할 줄을 알지 못하나이다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너는 아이라 하지 말고 내가 너를 누구에게 보내든지 너는 가며 내가 네게 무엇을 명하든지 너는 말할지니라 너는 그들을 인하여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하여 너를 구원하리라 나 여호와의 말이니라 하시고. -예레미야 1장>
<이제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나니 그는 태에서부터 나를 그의 종으로 지으신 이시요 야곱을 그에게로 돌아오게 하시는 이시니 이스라엘이 그에게로 모이는도다 그러므로 내가 여호와 보시기에 영화롭게 되었으며 나의 하나님은 나의 힘이 되셨도다 그가 이르시되 네가 나의 종이 되어 야곱의 지파들을 일으키며 이스라엘 중에 보전. -이사야서 49장>
<아모스가 아마샤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나는 선지자가 아니며 선지자의 아들도 아니요 나는 목자요 뽕나무를 배양하는 자로서 양떼를 따를 때에 여호와께서 나를 데려다가 내게 이르시기를 가서 내 백성 이스라엘에게 예언하라 하셨나니 -아모스 7장>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내가 전한 복음은 사람의 뜻을 따라 된 것이 아니니라 이는 내가 사람에게서 받은 것도 아니요 배운 것도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로 말미암은 것이라 내가 이전에 유대교에 있을 때에 행한 일을 너희가 들었거니와 하나님의 교회를 심히 박해하여 멸하고 내가 내 동족 중 여러 연갑자보다 유대교를 지나치게 믿어 내 조상의 전통에 대하여 더욱 열심이 있었으나 그러나 내 어머니의 태로부터 나를 택정하시고 그의 은혜로 나를 부르신 이가 그의 아들을 이방에 전하기 위하여 그를 내 속에 나타내시기를 기뻐하셨을 때에 내가 곧 혈육과 의논하지 아니하고 또 나보다 먼저 사도 된 자들을 만나려고 예루살렘으로 가지 아니하고 오직 아라비아로 갔다가 다시 다메섹으로 돌아갔노라 -갈라디아서 1장>
6.
가장 확신있게 예정론을 설파한 사람은 바울이다.
하나님의 예정사역에 의한 구원은 신명기적 율법(律法)이나 도덕 그 이상이다.
특히 로마서는 예정의 교의는 구속(救贖)이나 의인(義認)과 함께 그리스도 복음의 토대임을 여러 면에서 논구(論究)한 책이다.
인간이 구원받는 것은 그 사람의 율법적 행위에 있지 아니하고 순전히 하느님의 뜻에서 비롯된 은혜에 의한다는 것이다.
7.
<예수 그리스도의 종 바울은 사도로 부르심을 받아 하나님의 복음을 위하여 선택함을 입었으니 -로마서 1장>
<우리가 아직 죄인이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로마서 5장>
8.
로마 교부 아우구스티누스도, 중세 최대 신학자 토마스 아퀴나스도, 종교개혁자 칼뱅도, 무교회주의자(無敎會主義者) 우찌무라 간죠도 분명하게 말한다.
<예정(豫定)은 속죄(贖罪) 부활(復活)과 함께 피할수 없는 필연적인 기독교 정신의 결론이다. 실존 속에서 하나님의 은총이 가장 강력하게 작용하는 것이 바로 예정신앙(豫定信仰)이다.>
9.
예정신앙을 신학의 하나의 중요한 제목으로 삼은 신학자는 어거스틴이었다.
인간의 자유의지에 관한 논쟁에서 그는 이렇게 말했다
"자유의지는 신이 주신 은사(恩賜)이다"
인간의 구원은 신의 은사다라는 대전제(大前提)아래, 이러한 견지에서 인간의 자유의지를 강조한 것이다.
그는 고린도 전서에서 예정에 관한 깊은 감명을 받았다고 한다.
<누가 너를 구별하였느뇨 네게 있는 것중 받지 아니한 것이 무엇이뇨. 네가 받았은즉 어찌하여 받지 아니함같이 자랑하느뇨. -고린도전서 4장>
그는 말한다.
"인간이 죄를 범했기 때문에 그 죄에 대한 대책으로 은총을 결정한게 아니다. 신은 시간 이전과 시간 밖에서 자유롭게 이 일을 결정한 것이다. 이것이 바로 그의 자비이다. 이 자비는 막연하게 인류 전체에 주어진게 아니라, 개개인에게 주어진다. 신의 영원한 목적은 각 개인에 대한 구원이었다."
"사람은 복음을 듣고 회개하고 믿는다. 이 복음을 듣는 사람은 두 종류가 있다, 즉 믿는 사람과 믿지 않는 사람의.
그 이유는 어떤 사람은 주가 준비해 주셨고, 다른 어떤 사람은 주가 준비해 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주의 자비와 심판에 의해서 구분하셨다."
"인류는 영원 전부터 두 가지 종류로 나누어진 것이다, 택함을 받은 자와 받지 못한 자로."
10.
중세의 대표적 신학자 토마스 아퀴나스도 예정신앙을 중요시 하였다.
그는 예정의 원인은 바로 하나님의 사랑이라고 하였다.
사람은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자와 받지 못하는 자, 두 종류로 나뉜다.
11.
아, 편애하시는 하나님.
어떤 사람이 그에게 물었다.
"성서는 기도를 권장하면서도 예정은 불변한다고 하는데, 그렇다면 기도가 무슨 필요가 있단 말인가."
그가 답하였다.
"예정은 기도에 의해서 촉진되지 않는다. 예정은 기도의 결과가 아니다. .그러나 예정은 제2의 원인과 자연적 원인을 통해서 이루어진다. 즉 무엇이든지 그 사람을 구원으로 이끌어 가는 일이라면 그것은 예정의 질서에 속한다. 기도는 다른 선행과 함께 이 부류에 속한다. 기도는 그 사람에게 예정을 가장 분명하게 인식케 하여 주는 것이다."
그러니까 기도는 일종의 신앙촉진제로서, 심리적인 확신에 기여할 뿐인지.
12.
칼빈이야 말로 예정론의 신봉자였다.
그는 말한다.
"복음이 모든 사람에게 선포된 게 아니다. 그것은 설교의 대상에 있어서 벌써 구별된다."
"또 하나는 선포된 설교가 받아 들여지는 면에 있어서도 다르다. 설교가 통하는 자와 통하지 않는 자가 있다. 그 이유는 복음을 받아들이는 것이 사람의 마음 속에 있는게 아니라 신의 뜻에 있기 때문이다."
칼뱅은 성서적 입장에서 예정에 관한 교리를 다음과 같이 정의하였다.
"신의 영원한 칙령을 예정이라고 부른다. 신은 그것으로써 각 사람이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할 것인가를 원하시는데 따라서 스스로 결정하셨다. 모든 사람이 다 같은 상태로 창조된 것은 아니다. 영생을 받은 자와 영벌을 받을자로 창조된 것이다. 어떤 사람은 생명으로 어떤 사람은 죽음으로.
사람들이 칼뱅에게 반박하였다.
그렇다면 설교의 필요가 무엇이며 전도의 의미가 어디 있는가.
칼뱅의 답.
"신의 예정의지는 너무나도 오묘해서 이해하기가 매우 어렵다. 인간으로서는 무의미한 질문이며 인간적인 언어로서는 대답이 불가한 질문이다."
13.
예정론은 현대 신학자들에게도 큰 짐이라고 한다
대다수 자유주의신학자는 부정하는 쪽이지만 , 대다수 보수주의 신학자는 그것이 변경할수 없는 성서적 교훈이므로 무조건 믿어라한다
예정론에 대한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준 사람이 바르트였다.
그는 예정론을 4부분으로 나누어 다루었다.
그 요지(要旨)는 그리스도의 의미를 숙고하자는 것이다.
"과거 예정론의 결정적 흠결은 막연하게 신의 권능에 의해서라고 하지만, 그리스도 안에서 선택으로써 이루어진 점을 간과하였다."
예수 그리스도의 선택에 대하여 바르트가 말한다.
"예수는 성육신 사건을 통하여 神인 동시에 사람이라는 것이 분명하게 되었다. 신의 입장에서 보면 예수는 야훼신과 동일한 분이요 인간의 측면에서 보면 그는 사람과 동일하신 분이다. 즉 신의 선택에 있어서 그는 선택하시는 신인 동시에 선택된 사람이다."
바르트에 의해서 아우구스티누스, 아퀴나스와 칼빈이 강조한 하나님의 절대적 칙령(勅令)이라던가 알수없는 비의(秘意)의 예정이라는 사상에서 벗어났다.
"영원 전에 피조 세계와 관계없이 일방적으로 예정되었다면 그것은 다만 운명론이라는 비난을 어떻게 피할수 있을까. 그렇다면 예수 그리스도는 무엇이란 말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계시되지 않은 신은 허황된 우상에 지나지 않는다."
"신과 사람인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선택받은 것이기 때문에 예정 역사는 매우 구체적인 사건이다."
공동체의 선택이란 제목으로 바르트는 신의백성을 계약의 대상으로 삼은 사건에 언급한다
"이 공동체 선택이 어떤 필요성에 의하거나 강요에 의해서 된 것이 아니라 신의 자유로운 뜻에서 하신 일이다.
이 선택은 장차 그의 창조사역 안에 인간이 있을 것을 예측하시고 그의 아들 그리스도 안에서 택하신 일이다."
개인의 선택이란 제목으로 그는 세가지 특이한 선택론을 말한다.
"첫째, 그리스도가 자기의 어떤 공로로 성부로부터 택함을 받은 것이 아니라 순전히 은총으로써 택함을 받은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도 각자가 공로로써가 아니라 은총으로써 택함을 받았다. 둘째, 그리스도는 고난과 죽음을 위하여 택함을 받았다. 예수는 고난과 죽음의 이유가 없었으나 그것을 감당했다. 그러나 십자가 위에서 신의 영원한 뜻을 성취함으로써 그에게 씌어졌던 고난과 죽음을 벗어 버렸다. 따라서 그리스도 안에서 택함을 받은 사람들에게는 정죄함이 없다. 즉 생명으로 택함을 받은 것이다. 세째, 성부와 성자는 서로 신뢰하고 있었다. 예수는 성부를 끝까지 믿음으로써 죽음을 수용한 것이다. 그리고 그의 부활로 성부로부터 버림받지 않았다는 사실은 증명되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끝까지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우리의 선택은 확실해 진다.
바르트는 그렇게 말함으로서 예정의교의가 복음의 총화라고 하였다
왜냐하면 선포되고 들을수 있는 모든 말은 신이 사람을 택하신다는 것과 그 분이 또한 자유롭게 사람을 사랑한다는 말이기 때문이다.
바르트가 강조한 바는 바로 그리스도 안에서의 선택이라는 점, 그것이다.
"그리스도와 다른 차원에서나 시간 안에서나 관계 안에서 예정된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의 존재에 동참함으로써, 그리스도의 선택 안에서 우리가 택함을 받은 것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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