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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낭여행(옥천으로 가는 길에 만난 사람들)
또 떠났어. (어딜 떠나?) 앗따! 지구를 떠날 때는 아직 아니잖여. (2월달에도 인도 다녀 왔잖아~)
그랬었지. 근데 울 산적이 오디 따느라 한달 동안 고생했다고 또 떠나자네~ 하여, 배낭 걸머진 방랑자가 되어 씩씩하게 집을 나섰지 뭐.
그래 첫날 옥천까지 갔지 뭐. (우와~ 걸어서 하루 만에 옥천까지?) 내가 미쳤냐~ 어떠케 걸어서 옥천까지 가~ (누가 그렇게 태워줘???)
낄낄~ 이 친구, 우릴 몰라도 한참 모르누먼~ 우리 스스로 지존이라 칭한 게 아니고, 우릴 지켜보던 타인들이 공식 인정해준 지존이여~
2012, 2013, 2014년 매년 한차례씩 땡전 한푼 없이 출발한 알거지들이 동에 번쩍, 하루 이틀도 아니고 첫해는 꼬박 한달간, 둘째해는 딱 3주간, 세째해는 18일간이나
그뿐이게~
그래 이번엔 첫날, 차를 6번이나 얻어타고 옥천까지 갔지 뭐.
그리고 무엇보다 바다의 부유물처럼 떠다니면서 만나는 사람들과의 첫날, 옥천까지의 여정에서 만난 분들 이야기여~ 들어봐~
얏호! 하며 무겁고 크고 높은 차에 올라타 목적지를 향해 이동하는데, 운전하다가 울음을 터트리는 경우가 드물잖아~
사연인즉슨,
나는 그 기사님의 이야기를 듣고 나도 모르게 마음 속으로 기원했어.
근데, 정읍 휴게소에서 옥천까지 5번째로 태워주신 분의 사연을 듣고보니, 4번째 얻어 탔던, 고창에서 소 100두를 기르시는 분의,
5번째 분 또한 이야기 하다 그만 울음보를 터트렸는데, 사연인즉슨, 결혼을 일찍하여 25살짜리 딸 하나를 두고 있다는데 아직 50줄도 안된 나이,
그러니, 그 이별의 슬픔이 오죽하겠냐고~ 겨우겨우 억지로 울음을 참아내는데 차마 무슨 말을 못 하겠더라고.
울음이 진정되자 나는 그분에게 말했어.
그러면서 나도 모르게 또 기원했어. 사실, 나는 작년까지만 해도 버릇처럼 관세음 보살님께 우리 가족의 안녕 만을
헌데 인도 여행 때, 리시케시에서 만났던 분과 이야기 도중 깨우친 바가 있었거든.
그분 말씀을 듣고보니 사실 그렇더라고.
그렇게 살아왔다는 내 말을 듣고 리시케시에서의 그분이 일깨워주시던 거였어. 그런 경험을 해서인지, 나도 모르게 그 기사분을 위해 우주의 충만한 기운들에게
그러면서 문득 관음보살님께 고맙다는 말이 절로 나오더라고. 나는 여태 관음보살께 무언가를 끝없이 바라기만 했지 고맙다는 말 한번
아무튼 묘한 느낌에 사로잡혀 있는 사이, 아내와 사별했다던 그 기사분은
하여, 옥천에 도착한 우린 옥천의 최종 목적지인 군북면 소태골까지 무사히 도착했지. 어느날 우연히 TV에 나오는 울 산적을 보고 연락이 닿아, 이번 여행 때 우리를
그날 저녁은 안 봐도 훤할껴~ 잠 자는데 그 집 애완견이 내 옆에서 어찌나 우렁차게 코를 곯던지,
그대도 여행 떠나봐~ 무슨 생각이 드는지...
2015.07.17. 아낙네
이번 여행은 무전 여행이 아니다. 배낭 여행이다. 무슨 차이냐고~? 무전 여행시에는 텐트며 매트까지 다니고 다녀서 체력 소모가 심하다. 그래서 우릴 재워줄 숙박지를 미리 확보하고 텐트를 가지고 가지 않는거다.
또한 무전 여행에서는 길거리 연주를 통해 여행비를 벌었지만 배낭여행에서는 모금은 하되 그 돈을 모두 인도의 카주라호에 있는 free school 에 기증할것이다.
앞서서 뒷걸음질 하며 우릴 찍던 피디는 힘들었는지 승용차 트렁크에 앉아 촬영
광주 인근의 주남 마을에서 히치하이킹 카메라가 주변에서 설치는 바람에 히치하이킹이 좀 힘들었다.
정읍 휴게소에 도착하여 모금 활동
저는 부지런히 연주하고 울각시는 모금액을 모으고 그날 정읍 휴게소에서 8,000 원을 모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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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산적소굴 원문보기 글쓴이: 산적
첫댓글 기억에 남은 여행이 되시길.....
멋져부러요. . .
파주쪽오시면 먹여주고 재워주고 해드리수있는데. . 코스가 안맞지요.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