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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良い文句] "スティーブ ザブス スタンフォード 大学 演説中"
그는 “(せ-かい)世界 최고의 だい-がく [大学] 중 한 곳의 졸업식에 さん-か [参加]해 こう-え [公営]이다”며
“내じん-せい [人生] 의 세 가지 이야기를
들려주겠다”며 えん-ぜつ [演説 · 演舌]을 시작했다. 입양, 대학 ちゅう-たい[中退], 새로운 인생.. 약 14분간의 연설은 스티브 잡
스가 대학을 중퇴한 り-ゆう [理由]를 설명하면서 시작됐다.
スティーブ ザブス 에 따르면 그의 せい-ぼ [生母]는 미혼모에 대학원생. スティーブ ザブス는 태어나자마자 대학을 나오
지 않은 へい-ぼん [平凡]한 노동자 ふう-ふ [夫婦]에게 입양됐다. 17년 후 대학에 しん-がく [進学]했지만 마음 편히 학교를 다닐 수
없었다. よう-ふぼ [養父母]가 평생 모은 돈이 고스란히がく-ひ [学費 로 지출됐던 것. 그는 대학을 중퇴하기로 けっ-しん [決心]했다.
그는 “はじめ [初め · 始め엔 무서웠지만 되돌아보면 대학을 관둔 것은 내가 いっ-しょう [一生] 했던 결정 가운데
さい-こう [最高]의 せん-たく [洗濯]
이었다”고 こく-はく [告白]했다.
학교를 그만 둔 스티브 잡스는 친구집을 てん-てん [点点]하며 そこ [底]에서 잤고, 5센트짜리 빈 コーラ [cola]병을 모아 끼
니를 かい-けつ [解決]하기도 했다. 힘들었지만 그에겐 き-ちょう [貴重]한 시간이 됐다. 학교 내에 머물며 흥미있는 과목만
수강했던 것. 특히 누구도 눈여겨보지 않았던 서체 강의에 큰み-りょく [魅力] 을 느꼈다.
“정말 아름답고 역사적이며 예술적인 み-りょく [魅力]이 있었고 그것은 か-がく [科学]이 발견하지 못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けい-けん [経験]은 10년 후 ひかり [光]을 발했다. 첫 매킨토시 コンピュータ를 디자인할 때 다양한 서체를 활용했던 것. 그는
“대학을 그만두지 않았다면 매킨토시는 결코 그렇게 다양한 しょ-たい [所帯 · 世帯]를 가지지 못했고 きん-こう잡힌 폰트를 얻
지 못했을 것이다”며 “ウィンドウズ는 매킨토시를 베꼈기 때문에 PC가 그런 서체를 가지지 못했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이 경험담을 전하며 그는 이렇게 덧붙였다.
“み-らい를 내다보며 てん [点]들을 이을 수는 없습니다. 오로지 ご [後]를 보며 てん [点]들을 이을 수 있을 뿐입니다...뭔가
확
신을 가져야 합니다. みな-さん [皆さん]의 肝っ玉, 運命, 人生...뭐든지 말이죠. 이런 사고방식은 한 번도 나를失望 시키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내 人生을 変化시켜왔습니다.”
“失敗...쓰디 쓰지만 필요한 薬”
スティーブ ザブス는 두 번째로 ‘사랑과 상실’에 대한 けいけん [経験]을 전했다. 스무 살 때 차고에서
同業どうぎょう者しゃ 워즈와 시
작 한 애플은 10년 후 20억 매출에 4000천명의しょくいん [職員] 을 거느리는 会社로 성장했다. 그때 전문경영인을
고용 했지만 의견이 갈렸다. 이사회가 전문 경영인 편을 들며 스티브는 해고 됐다. ‘こうとう [荒唐] 했고 拾然自失
’했다. 몇 달간 ほうこう彷徨의 세월을 거쳤다. 실리콘 밸리에서 도망치고 싶은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그는 다시
시작했다. 일에 대한 ねつじょう [熱情] 때문이었다.
“그땐 몰랐지만 애플에서 해고된 것은 지금껏 내게 일어난 일 중에서 さいこう [最高]의 일이었습니다. 그로 인해
せいこう [成功]이라는 무거움은 다시 시작한다는 가벼움으로 대체됐습니다. 물론 모든 것에 대해 확신도 적었죠.
그것은 나를 내 인생 최고의 そうぞう [創造]적인 시기로 밀어넣었습니다.”
はいぼく [敗北]와 そうしつ [喪失]을 극복한 댓가는 달콤했다. 그 후 픽사를 설립해 세계 최고의 애니매이션 스튜디오로 만들
었고, 지금의さい [妻','아내 처','女(3획)','サイ','つま')" [안내]태그제한으로등록되지않습니다-xxonmouseout=cnTextLayerHide()>妻] 를 만났다. 다시 애플을 인수해 CEO의 せき [席','자리 석','巾(3획)','セキ','―')" [안내]태그제한으로등록되지않습니다-xxonmouseout=cnTextLayerHide()>席]를 되찾았다. 그는 말했다.
“그건 정말 쓰디쓴 약이었지만 かんじゃ [患者]였던 내게는 정말 필요한 약이었던 것입니다. 때로 인생은 당신의
뒤통 수를 벽돌로 때립니다.しんらい [信頼] 을 잃지 마세요...여러분들도 사랑하는 것을 찾으세요. 연인을 찾을 때
しんじつ [真実]하듯 일도 마찬가지입니다.”
“ひもじい 과 함께, ぐどん [愚鈍]함과 함께”
세 번째는 し [死','죽을 사','歹(4획)','シ','しぬ')" [안내]태그제한으로등록되지않습니다-xxonmouseout=cnTextLayerHide()>死]이었다.
그는 2004년 췌장암 はんてい [判定]을 받았다. 의사가 판단한 수명은 길어야 6개월. 췌장이 뭔지도 모르는 그에
게 청천벽력 같은 せんこく [宣告]였다. 주치의는 집에 가서 주변을 정리하라고 말했다. 그의 말대로 “가족들에게
완전한 작별을 고하라”는 いみ [意味]이었다.
그 날 저녁 스티브는 조직 けんじ [検事','일 사','亅(1획)','ジ·ズ','こと')" [안내]태그제한으로등록되지않습니다-xxonmouseout=cnTextLayerHide()>事]
를 받았다. 기적같은 일이 일어났다. 아주 드물게도 치료가 かのう [可能]한 췌장
がん [×癌','암 암','疒(5획)','ガン','―')" [안내]태그제한으로등록되지않습니다-xxonmouseout=cnTextLayerHide()>癌]이라는 것.
록 놔두지 마세요.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의 가슴과 ちょっかん [直観]을 따르는 ゆうき [勇気]를 가지라는 것입니다.
가슴과 직관은 여러분이 しんじつ [真実]로 무엇이 되고 싶은지를 이미 알고 있습니다. 나머지 모든 것은 부차적입
니다.”
그는 어렸을 때 읽었던ひゃっかじてん [―事典] 얘기를 들려줬다. 1960년 대 스튜어트 브랜드라는 사람이 쓴 그 책은
타자기와 가위 폴라로이드 しゃしんき[―機','틀 기','木(4획)','キ','はた')" [안내]태그제한으로등록되지않습니다-xxonmouseout=cnTextLayerHide()>機]로 만든 책이었다. 스티브 잡스의 표현에 따르면 ‘책으로 만든 구글’이
었다. 스튜어트는 그 책을 여러 판에 걸쳐 펴냈고, 70년 대 중반 최종판을 내놓았다. 최종판 뒷표지에
ちょしゃ[著者]는 이렇게 썼다.
‘Stay Hungry. Stay Foolish(배고픔과 함께, 미련함과 함께)’
그는 다시 이말을 되뇌었다.
“Stay Hungry, Stay Foolish. 그리고 나는 내 자신에게 늘 그렇게 소원했습니다. 이제 새 しゅっぱつ [出発]을 위해
졸업하는 여러분들께 이 말씀을 해드리겠습니다.”
애플사 CEO 스티브 잡스는 84년 매킨토시를かいはつ [開発] 했고, 픽사를 세계 최고의 애니메이션 스튜디오로 만
들었다. 또한 애플사 복귀 1년 만에 쓰러져가던 애플사를 흑자로 돌려놓은 しんわ [神話] 의 주인공. 무엇보다 그
는 수많은 실패를 넘는 かてい [過程]을 통해 성공을 이뤄 많은 벤처기업인들의 ぐうぞう [偶像]으로 자리 잡고 있다.
스티브잡스 '스탠포드 연설중에서'
彼は “世界(せ-かい) 最高の 大学 中 たいてい 所の 卒業式に 参加して 光栄だ”と “内 人生の 歳 枝 話を 聞かせる”と 演説を 始めた. 入養, 大学 中退, 新しい 人生.. 薬 14見分けの 演説は スティーブ 雑 スが 大学を 中退した 理由を 説明しながら 始まった.
スティーブ 雑須恵 よれば 彼の 生母は 未婚母に 大学院生. スティーブ ザブスは 生まれるやいなや 大学を 出ます 地 ない 平凡な 労動者 夫婦に 入養された. 17年 後 大学に 進学したが 心 楽に 学校を 通う 数 なかった. 養父母が 一生 集めた お金が そっくりそのまま 学費で 出費された の. 彼は 大学を 中退することに 決心した. 引き継いだ”故 告白した. お前を 解決したり した. 大変だったが 彼には 貴重な 時間が いい. 学校 内に とどまって 興味ある 科目だけ 受講した の. 特に 誰も 目を注いで見るの なかった 書体 講義に 大きい 魅力を 感じた. “本当 美しくて 歴史的で 芸術的な 魅力が あったし それは 科学が 見つけるの できない のでした.” “大学を やめるの なかったら マキントッシュは 決して そうに 多様な 書体を 持つの できなかったし 均衡取れた フォントを オッ 地 できなかった のだ”と “ウィンドウズは マキントッシュを 引き写した だから PC街 そんな 書体を 持つの できなかった 首都 イッだ”と 言った. これ 経験話を 伝えて 彼は こんなに 付け加えた. ぱっとはく 持つと します. 皆さんの 肝っ玉, 運命, 人生...なんでも ですね. こういう 考え方は たいてい 番(回)も 私を 失望 シキ地 なかったです. そして 内 人生を 変化させて来ました.” 作 たいてい アップルは 10年 後 20億 売上げに 4000千名の 職員を 従える 会社で 成長した. あの時 専門経営人を 雇用 したが 意見が 変わった. 取締役会が 専門 経営人 便を 入って スティーブは くびになった. ‘荒唐だったし 拾然自失 ’した. 何 ヶ月間 彷徨の 歳月を 経った. シリコーン バレーで 逃げて たい 考えも 入った. するが 彼は 再び 始めた. 仕事に 大韓 熱情 だからだった. 成功という 重いことは 再び 始めるという 軽いことで 取り替えられました. 勿論 あらゆる のに 大海 確信も 少なかったんです. それは 私を 内 人生 最高の 創造的な 酸っぱいことに 押し入れました.” オッゴ, 地錦衣 妻を 会った. 再び アップルを 引き受けて CEO義 席を 取り戻した. 彼は 言った. ドイトング 数を 煙瓦で 殴ります. 信頼を 失うの 巻いてください...みなさんも 愛する のを 捜してください. 恋人を 捜す 時 真実そうに 一刀 同じです.” 歳 番目は 死だった. 蟹 青天家歌 ような 宣告だった. 主治医は 家に 行って 周辺を 整理しなさいと 言った. 彼の 言葉通り “家族たちに 完全な お別れを 告げなさい”と言う 意味だった. 癌という の. 手術を 受けたし 回復した. 彼 経験は 内面の 声に もっと 耳を 傾けるように 作った. ロック 差し置くの 巻いてください. そして 仮装(家長) 重要な のは, 自分の 胸と 直観を よる 勇気を 持ちなさいという のです. 胸と 直観は 皆さんが 真実で 何が なって たなのかを もう 分かって あります. 残り あらゆる のは 副次的口 お前だ.” タイプライターと はさみ ポラロイド 写真機で 作った 本だった. スティーブ ザブスの 表現に よれば ‘本で 作った グーグル’が オッダ. スチュアートは 彼 本を 色々 版に かけて 発行したし, 70年 台 中盤 最終版を 出した. 最終版 後表紙に 著者は こんなに 使った. 卒業する みなさんに これ お話を して上げます.” 入った. また アップル社 復帰 1年 万に スロジョがドン アップル社を 黒字で 回しておいた 神話の 主人公. 何より 彼 増えた 数多い 失敗を 過ぎる 過程を 通じて 成功を 成して 多い ベンチャー企業人たちの 偶像で 席 取って ある. |
スティブザブス 'スタンフォード 演説の中で'
그는 “せ-かい [世界] さい-こう [最高]의 대학 중 한 곳의 졸업식에 さん-か [参加]해 영광이다”며
“내 じん-せい [人生]의 세 가지 이야기를
들려주겠다”며 えん-ぜつ [演説 · 演舌]을 시작했다. 입양, 대학 중퇴, 새로운 인생.. 약 14분간의 연설은 스티브 잡
스가 대학을 중퇴한 이유를 설명하면서 시작됐다.
스티브 잡스에 따르면 그의 생모는 미혼모에 대학원생. 스티브 잡스는 태어나자마자 대학을 나오
지 않은 평범한 노동자 부부에게 입양됐다. 17년 후 대학에 진학했지만 마음 편히 학교를 다닐 수
없었다. 양부모가 평생 모은 돈이 고스란히 학비로 지출됐던 것. 그는 대학을 중퇴하기로 결심했다.
그는 “처음엔 무서웠지만 되돌아보면 대학을 관둔 것은 내가 평생 했던 결정 가운데 최고의 선택
이었다”고 고백했다.
학교를 그만 둔 스티브 잡스는 친구집을 전전하며 바닥에서 잤고, 5센트짜리 빈 콜라병을 모아 끼
니를 해결하기도 했다. 힘들었지만 그에겐 귀중한 시간이 됐다. 학교 내에 머물며 흥미있는 과목만
수강했던 것. 특히 누구도 눈여겨보지 않았던 서체 강의에 큰 매력을 느꼈다.
“정말 아름답고 역사적이며 예술적인 매력이 있었고 그것은 과학이 발견하지 못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경험은 10년 후 빛을 발했다. 첫 매킨토시 컴퓨터를 디자인할 때 다양한 서체를 활용했던 것. 그는
“대학을 그만두지 않았다면 매킨토시는 결코 그렇게 다양한 서체를 가지지 못했고 균형잡힌 폰트를 얻
지 못했을 것이다”며 “윈도우즈는 매킨토시를 베꼈기 때문에 PC가 그런 서체를 가지지 못했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이 경험담을 전하며 그는 이렇게 덧붙였다.
“미래를 내다보며 점들을 이을 수는 없습니다. 오로지 뒤를 보며 점들을 이을 수 있을 뿐입니다...뭔가
확신을 가져야 합니다. 여러분의 배짱, 운명, 인생...뭐든지 말이죠. 이런 사고방식은 한 번도 나를 실망
시키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내 인생을 변화시켜왔습니다.”
“실패...쓰디 쓰지만 필요한 약”
스티브 잡스는 두 번째로 ‘사랑과 상실’에 대한 경험을 전했다. 스무 살 때 차고에서 동업자 워즈와 시
작 한 애플은 10년 후 20억 매출에 4000천명의 직원을 거느리는 회사로 성장했다. 그때 전문경영인을
고용 했지만 의견이 갈렸다. 이사회가 전문 경영인 편을 들며 스티브는 해고됐다. ‘황당했고 망연자실
’했다. 몇 달간 방황의 세월을 거쳤다. 실리콘 밸리에서 도망치고 싶은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그는 다시
시작했다. 일에 대한 열정 때문이었다.
“그땐 몰랐지만 애플에서 해고된 것은 지금껏 내게 일어난 일 중에서 최고의 일이었습니다. 그로 인해
성공이라는 무거움은 다시 시작한다는 가벼움으로 대체됐습니다. 물론 모든 것에 대해 확신도 적었죠.
그것은 나를 내 인생 최고의 창조적인 시기로 밀어넣었습니다.”
패배와 상실을 극복한 댓가는 달콤했다. 그 후 픽사를 설립해 세계 최고의 애니매이션 스튜디오로 만들
었고, 지금의 아내를 만났다. 다시 애플을 인수해 CEO의 자리를 되찾았다. 그는 말했다.
“그건 정말 쓰디쓴 약이었지만 환자였던 내게는 정말 필요한 약이었던 것입니다. 때로 인생은 당신의
뒤통 수를 벽돌로 때립니다. 믿음을 잃지 마세요...여러분들도 사랑하는 것을 찾으세요. 연인을 찾을 때
진실하듯 일도 마찬가지입니다.”
“배고픔과 함께, 미련함과 함께”
세 번째는 죽음이었다.
그는 2004년 췌장암 판정을 받았다. 의사가 판단한 수명은 길어야 6개월. 췌장이 뭔지도 모르는 그에
게 청천벽력 같은 선고였다. 주치의는 집에 가서 주변을 정리하라고 말했다. 그의 말대로 “가족들에게
완전한 작별을 고하라”는 뜻이었다.
그 날 저녁 스티브는 조직 검사를 받았다. 기적같은 일이 일어났다. 아주 드물게도 치료가 가능한 췌장
암이라는 것. 수술을 받았고 회복됐다. 그 경험은 내면의 목소리에 더욱 귀를 기울이도록 만들었다.
“남의 인생을 사느라 삶을 낭비하지 마십시오...다른 사람의 의견이 여러분 내부의 목소리를 잠식하도
록 놔두지 마세요.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의 가슴과 직관을 따르는 용기를 가지라는 것입니다.
가슴과 직관은 여러분이 진실로 무엇이 되고 싶은지를 이미 알고 있습니다. 나머지 모든 것은 부차적입
니다.”
그는 어렸을 때 읽었던 백과사전 얘기를 들려줬다. 1960년 대 스튜어트 브랜드라는 사람이 쓴 그 책은
타자기와 가위 폴라로이드 사진기로 만든 책이었다. 스티브 잡스의 표현에 따르면 ‘책으로 만든 구글’이
었다. 스튜어트는 그 책을 여러 판에 걸쳐 펴냈고, 70년 대 중반 최종판을 내놓았다. 최종판 뒷표지에
저자는 이렇게 썼다.
‘Stay Hungry. Stay Foolish(배고픔과 함께, 미련함과 함께)’
그는 다시 이말을 되뇌었다.
“Stay Hungry, Stay Foolish. 그리고 나는 내 자신에게 늘 그렇게 소원했습니다. 이제 새 출발을 위해
졸업하는 여러분들께 이 말씀을 해드리겠습니다.”
애플사 CEO 스티브 잡스는 84년 매킨토시를 개발했고, 픽사를 세계 최고의 애니메이션 스튜디오로 만
들었다. 또한 애플사 복귀 1년 만에 쓰러져가던 애플사를 흑자로 돌려놓은 신화의 주인공. 무엇보다 그
는 수많은 실패를 넘는 과정을 통해 성공을 이뤄 많은 벤처기업인들의 우상으로 자리 잡고 있다.
스티브잡스 '스탠포드 연설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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