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증과 화장실 - 집을 떠나 밖에서 돌아다닐 때는 좀 귀찮은 욕구다.
한국은 인심이 참 좋은 나라다.
식당에 가면 앉자마자 인사로 냉수 한 잔을 받고, 서점, 백화점, 은행, 빌딩 등등... 어디를 가나 내 '지정해우소'가 있어 그 보시의 고마움을 잘 몰랐는데 여기와서야 느꼈다.
유럽에서는 식당에서 물도 음료수로 주문해야 하고 화장실요금을 내는 것은 거의 비슷하다. 물이 보통 콜라, 쥬스, 맥주와 가격이 비슷하다 보니 기왕이면 물보다는 (갈증해소에는 도움이 덜 되나) 맛과 색깔이 있는 음료수를 택하는 게 사람의 심리인 것 같다.
화장실은 공공화장실, 고객전용화장실이 한국보다 훨씬 드물다. 서점, 빌딩, 미장원, 은행에는 고객전용화장실이 아예 없고 찾는 사람도 없다. 백화점도 층층마다 화장실이 있는 우리나라 백화점에 비교할 수가 없다. 식당가에 하나 또 그 중간에 하나 정도가 보통이니...
일반식당에는 화장실이 있지만 붐비는 큰 식당에는 화장실을 지키며 수시로 청소해 주는 사람이 입구에 앉아 있어 25센트 팁을 주는 것이 (꼭 의무는 아니지만) 필수이고 상례다. 그리고 고속도로휴게소, 기차역이나 지하철역 등등의 공공화장실에서는 50센트 유료다. (공항은 무료)
적응을 하면 좋은 점도 있다!
손님이 화장실을 사용하고 나올 때마다 일일이 청소해 주는 걸 보면 고마워서 뭔가(팁)라도 보답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고, 단 몇 분이라도 쾌적함을 느껴서 좋고, 서로에게 즐거운 보시문화로 볼 수도 있다. 신경을 써야할 것은 그 잔돈(25센트/ 약 320원)을 미리미리 꼭 챙겨 가지고 다녀야 하는데 간혹 없을 때는 난처하다.
다른 면에서도 유럽 나라들이 <손님이 왕이다>라는 생각을 하는 미국, 일본, 한국 등에 비해 손님들에게 불친절한 <서비스의 황무지>란 생각은 드는데, 왜 이렇게 화장실문화가 인색한가는 잘 모르겠으나 특히 관광객들에게는 당황스럽고 불편한 일이다.
요즘은 또 화장실이 지하철역 개표구같은 곳도 생겼다. 사람이 하루종일 화장실을 지키는 것이 비효율적이라 그런지 화장실입구 구조가 지하철 자동개찰기에 승차권을 투입하면 쇠바퀴같은 것(?)이 돌아가면서 한 사람씩 통과할 수 있게 하는 것과 똑같다. 그런데 문제는 동전이 있어도 딱 맞는 동전(50 센트)이 없으면 소용이 없다. 50센트을 투입해야 입장표가 나오면서 바퀴가 돌아간다.
사람이 좀 뜸한 날 이웃나라 국경 근처에 있는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생긴 일이다.
여자화장실에는 나 혼자뿐이고, 50센트 동전은 없고, 참고 계속 가기에는 좀... 뭐 아무도 없고 급한데 높이 1 미터도 안 되는 그 개찰구 쇠바퀴를 뛰어넘을까? 아니면 바퀴 사이의 공간으로 기어들어갈까??하는 우아하지 못한 생각을 하고 있던 중... 반갑게도 금발의 한 우아한 부인이 들어왔다. 그 부인은 외국인인지 전혀 모르는 나라 말을 했다. 말이 안 통해도 통할 수 있게 해 주는 그 마음!
부인이 지갑을 열고 뭔가 말할 때, 자기 혼자 들어갈 동전 50센트 하나밖에 없다는 뜻인 줄 직감으로 알았고, 그러면 자기가 동전을 넣어 쇠바퀴가 돌아갈 때 자기 뒤에 붙어서 함께 들어가면 된다는 말도 표정, 몸짓만 보고 알아 들었다.
다행히 그 부인이 무척 날씬해서 문제없이 개찰구를 통과했다.
문득 잡보장경의 돈을 들이지 않고도 남에게 베풀 수 있는 일곱가지 보시, 무재칠시(無財七施)가 생각났다. 돈은 안 들어도 마음이 없으면 도저히 할 수 없는 일들이니 제일 어려운 보시일 수도 있다. 유럽 나라들이 그 무재칠시는 그만두고 '너무나도 인간적이고 고마운 일' <해우소사용 보시>만이라도 실천한다면 참 인정 있는 나라로 보일 거란 생각이 들었다.
오늘은 화장실 인심마저도 야박해 싫다는 생각이 들며 남의 나라 관습을 괜히 시비거는 마음이 생기는데, 지금 밖에 비도 오고 바람 불고 춥고 음산한 11월 날씨탓일런지...

문제의 화장실
첫댓글 말이 안 통해도 마음만 통하면 문제의 화장실도 통과가 가능하네요. 하하하... 작은 것이 아름답다는 말처럼 아주 작은 동전이 꼭 필요할 때가 자주 있더라구요. 10원이나 50원 혹은 100원이 없어서 만원짜리를 내고 9,900원을 거슬러 받는 식으로 말입니다. 한국도 겨울에 접어들어 찬 바람이 부는데 멀리 독일에서 11월을 보내고 계시려면 더 추울 것 같습니다. 따뜻한 마음을 인터넷 따라 불어 보내오니 잠시라도 훈훈하소서!
제 소생이 이달 초에 폴란드에 5년 근무하러 갔습니다. 인공위성 프로그램으로 그의 숙소 상공을 클로즈업해서 주변을 두리번거리기도 한답니다.
이것 참 불안하겠습니다^^ 화장실에 대한 에피소드가 필름처럼 막 돌아가는걸요? 가장 인공적으로 세련된 것과 가장 자연스러운 것이 공동 1위 쾌적한 화장실이네요~~
본능인데........
해우(解憂)의 댓가라 생각 하소서............................ 날마다 좋은 날 !!! ()
어떤 경우에도 장 단점이 있기 마련인 일상사에서 깨달음을 얻는가 봅니다. 우리나라가 참 좋은 나라구나 싶습니다. 공중도덕만 잘 지키면 금상첨화겠는데 인심이 너무 후하다 보니 아쉬운 줄 몰라 안타깝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