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몽(吉夢)
김정자
꿈은 수면 중에 일어나는 일련의 시각적 심상이라고 단정 짓는다. 현실과 관련이 있으면서도 비현실적이라는 양면성이 있기에 허구의 세계를 통해 현실의 문제를 다루는 문학 창작으로도 관련을 맺어왔다. 예를 들어 몽유록은 조선 시대 중엽에 크게 유행했다고 문헌에 적혀 있다.
꿈을 소재로 한 가사 작품도 많이 창작되었다. 송강 정철(鄭澈)의 <속미인곡 續美人曲>에 “정성이 지극하야 꿈의 님을 보니, 옥 같은 얼굴이 반이나마 늘거세라.”라고 한 것은 그리운 사람을 꿈에 만났다는 내용으로서, 시문학에 등장하는 꿈의 전형이 아닐까?
오래전 타계하신 시어머님을 꿈속에서 만나면 살아계실 때처럼 그냥 방안에 생시처럼 앉아 계신다. 만져보지도 못하고 말 한마디도 해보지 못한 채 눈을 뜨면 아쉽기만 할 때가 많다.
어젯밤 어머님을 꿈에서 뵈었다고 하니 남편은 입맛을 쩝쩝 다시며, 한 번이라도 어머니를 꿈에서라도 만났으면 좋겠다며 나를 부러워한다. 정작 아들에겐 선몽을 않으시고 며느리에게만 오신다며, 어머니를 원망하며 투정을 부린다.
“당신은 어머니가 꿈에 보이면 좋은 일만 있잖아.”라면서 복권을 사란다. 그러나 평생을 공돈이 생겨본 적이 없는 나는 딱 잘랐다. 그날 오후였다. 외출해 있는데 남편에게서 일보고 빨리 들어오라는 흥분한 전화 목소리다. 웬일인가 싶어 서둘러 집에 와보니 이럴 수가…….
우리 부부는 만난 지 올해로 45주년을 맞이했다. 결혼 예물로 남편에게 만년필과 시계를, 나는 황금 쌍가락지와 목걸이를 받았다. 그 시절 평범한 신혼부부들의 결혼예물은 그러했다. 부잣집 신혼부부들은 그때도 다이아몬드 보석 반지를 주고받았다.
다이아몬드의 상징이 영원한 사랑, 불변, 행복이라니 언제든 선물하리라 마음먹었었다. 결혼 10주년이 되던 해 푼푼이 모은 돈으로 작은 다이아몬드보석을 박아 예쁜 반지를 만들어 남편 손가락에 끼워주었다. 남편은 그 반지를 소중하게 간직하고 손가락에서 빼지 않았다.
어느 날 인가 그 보석이 감쪽같이 빠져 알 빠진 가락지만 남아 있는 걸 발견하고 우리는 몇 날 며칠을 온 집안을 샅샅이 뒤지고, 침대까지 들어내는 등 난리를 피었다. 길을 가도 땅바닥만 주시하였으나 영영 찾지 못하여 애를 태웠다. 결국, 아깝지만 포기하고 말았다. 남편은 손가락이 허전하다며 불편해 하였다. 알 빠진 반지를 금방으로 가져가 같은 보석을 사서 넣어 주었더니 그제야 까맣게 잊고 산지가 몇 년이 되었다.
우리 집에는 수십 년을 두고 쓰고 있는 앙증맞은 손톱깎이 통이 있다. 그날도 남편은 손톱 손질을 위하여 그 통 뚜껑을 열어 손톱을 깎고 손톱 갈 개로 손톱을 부드럽게 하려고 하는데 오랜 세월에 반 동강이 된 얇은 손톱 갈 개가 조각이 나서 홈이 파인 스펀지 속으로 쏙 들어가 있어 빠지지 않았단다. 손톱깎이 통을 거꾸로 탁탁 쳤는데 그 조각은 나오지 않고 달그락 소리와 함께 무엇인가 또르르 굴러떨어졌다. 자세히 보니 수년 전에 잃어버렸던 다이아몬드 알 같아, 눈을 의심하고 돋보기를 쓰고 들여다보니 확실한 그 보석이 반짝거림에 틀림이 없었다고 한다.
오래전에 잃어버렸던 보석을 되찾았으니 이 또한 어머님의 꿈 덕이 아닌가. 어머님은 살아서도, 천상에서도 내 편에서 기쁨만 주시는 분이시다. 보통 사람들은 꿈에서 조상을 보면 그날을 조심하는 마음으로 살아가는 것이 예사인데, 나는 그렇지 않다. 시어머님은 이따금 그렇게 길몽으로 기쁨을 주신다. 신앙생활을 하는 내가 꿈에 의존하는 마음은 종교 교리상 맞지 않는 일이나 어쩔 수가 없다.
중국 전설에 화서지몽 [華胥之夢]이란 말이 고사 (故事)로 유명하다. 이는 임금인 황제(黃帝)가 화서라는 나라에 갔던 꿈으로 좋은 꿈을 꾸었다고 이르는 말인데, 화서는 자연 무위(自然無爲)의 태평한 나라로, 즉 이상향을 뜻한다. 황제는 천하가 뜻대로 다스려지지 않음을 걱정하다가 정치를 단념하고 있었다. 하루는 낮잠을 자고 있는데, 만사가 자연 무위로 잘 다스려지는 화서라는 나라에서 노니는 꿈을 꾸었다. 꿈에서 깨어나자 크게 깨달은 바가 있어 나라가 잘 다스려졌다고 한다. 그 후 기분 좋게 낮잠 자는 것을 ‘화서의 나라에서 노닌다.’라고 한단다.
서민의 꿈에는 먹고 입는 생활과 관련된 내용이 많다. 돼지꿈을 꾸면 먹을 것이 생기고, 청소하는 꿈을 꾸면 손님이 온다는 것 등이 그것이다. 그 외 병이 들어 누워 있으면 높은 벼슬에 오른다. 발가벗은 채 있으면 좋은 일이 생긴다. 몸에 날개가 생기면 대길하다. 목욕 하면 직장을 옮기게 되며, 질병이 없어진다. 땀이 솟으면 길하지 못하다. 똥이나 오줌을 뒤집어쓰면 큰 행운이 온다. 상여를 보면 재물을 얻는다. 이는 민속신앙에서 꿈을 풀이하는 해몽비법으로 생활과 관련이 있으면서 예시 기능이 두드러지게 등장하게 된 것이리라.
살아가는 동안 꿈에 의존하여 살 필요는 없지만, 이 또한 내 마음대로 되는것이아니니 꿈을 꿀 때마다 잠에서 깨면 한참을 뒤척이며 생각하는 것은 누구나 마찬가지가 아닌지. 그러기에 요즘 밤 인사는 보통 “좋은 꿈 꿔!”라며 밤새 안녕을 기원하기도 한다.
첫댓글 '살아가는 동안 꿈에 의존하여 살 필요는 없지만, 이 또한 내 마음대로 되는것이아니니
꿈을 꿀 때마다 잠에서 깨면 한참을 뒤척이며 생각하는 것은 누구나 마찬가지가 아닌지.
그러기에 요즘 밤 인사는 보통 “좋은 꿈 꿔!”라며 밤새 안녕을 기원하기도 한다. ..'
선생님 귀한글 대하니 감사 합니다. 감상 잘 하고 갑니다.
제월님. 고맙습니다
오래전에 잃어버렸던 보석을 되찾았으니 이 또한 어머님의 꿈 덕이 아닌가. 어머님은 살아서도, 천상에서도 내 편에서 기쁨만 주시는 분이시다. 보통 사람들은 꿈에서 조상을 보면 그날을 조심하는 마음으로 살아가는 것이 예사인데, 나는 그렇지 않다. 시어머님은 이따금 그렇게 길몽으로 기쁨을 주신다. 신앙생활을 하는 내가 꿈에 의존하는 마음은 종교 교리상 맞지 않는 일이나 어쩔 수가 없다." 꿈에 대한 좋은 글 감상 잘하고 갑니다. 건강하시고 행복하십시요.^^
강태공님. 참 오랜만이네요. 얼굴 잃어버리겠어요. 구경좀 시켜주세요. ㅎㅎ 보고싶네요
지금도 길몽으로 찾아오시는 시어머님의 사랑이 부럽습니다.
어머님은 아들보다 며느리를 더 귀애하신 현명하시고 덕 있으신 분인듯 합니다.
어머님의 뒤를 이어 며느리를 보듬으시는 선생님을 존경합니다.
좋은글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좋은집 선생님. 난 선생님처럼 사색에 잠기는 글을 못써서참 부럽답니다. 그저 단조롭게 밖게 글이
써지질 않아요. 나이를 먹어 더욱그런듯합니다. 선생님을 저도 많이 사랑하고 존경합니다.
선생님께서는 상식이 유별나신 듯합니다. 글을 읽고 많은 것을 배우고 느끼는 바가 큽니다. 꿈 속에서 찾는 행복 그리고 선몽을 하시는 선생님.
글이 재미있고 좋습니다. 저를 위한 선몽 하나 부탁드려도 될런지요. ㅎㅎㅎ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송강 선생님. 감사합니다. 한번도 뵙질 못하여 참 궁금하신 선생님. 그래도 왠지 잘 통할것 같은 선생님이신것 같아
만나 뵈올날을 기다려봅니다. 글 읽으시고 댓글까지 달아주시니 행복합니다. 건강하세요
"알 빠진 반지를 금방으로 가져가 같은 보석을 사서 넣어 주었더니 그제야 까맣게 잊고 산지가 몇 년이 되었다."
축하 드려요... 좋은 글, 잘 감상 했습니다.
솔잎향 선생님 푸른솔을 위해 동분서주하시는 모습에 고개가 숙여진답니다. 읽으시고 댓글 달아주시니 감사하네요. 늘 변함없는 애정 부탁드립니다. 사랑합니다.
좋은 길몽의 글을 잘 감상하였습니다 선생님 고맙습니다. 효부의 참뜻이 아닐까요 시어머님의 꿈이.
홍재석 선생님 고맙습니다. 제곁을 떠나신후에 생각하니 잘 해드린것이 한가지도 없었던것 같답니다. 그냥 보고싶기만 합니다요. 요즘 바쁘시지요? 전시작품 준비하시느라 고생하셔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