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석남 시인의 띄운 배를 한번 타 보시지 않으실래요.
**배를 밀며
장석남
배를 민다
배를 밀어보는 것은 아주 드문 경험
희번덕이는 잔잔한 가을 바닷물 위에
배를 밀어넣고는
온몸이 아주 추락하지 않을 순간의 한 허공에서
밀던 힘을 한껏 더해 밀어 주고는
아슬아슬히 배에서 떨어진 손,
순간 환해지는 손을
허공으로부터 거둔다.
사랑은 참 부드럽게도 떠나지
뵈지도 않는 길을 부드럽게도
배를 한껏 세게 밀어내듯이
슬픔도 그렇게 밀어내는 것이지
배가 나가고 남은 빈 물위의 흉터
잠시 머물다 가라앉고
그런데 오, 내 안으로 들어오는 배여
아무 소리 없이 밀려들어오는 배여.
**배를 매며
아무 소리도 없이 말도 없이
등 뒤로 털썩
밧줄이 날아와 나는
뛰어가 밧줄을 잡아다 배를 맨다
아주 천천히 그리고 조용히
배는 멀리서부터 닿는다
사랑은,
호젓한 부둣가에 우연히,
별 그럴 일도 없으면서 넋놓고 앉았다가
배가 들어와
던져지는 밧줄을 받는 것
그래서 어찌할 수 없이
배를 매게 되는 것
잔잔한 바닷물 위에
구름과 빛과 시간과 함께
떠 있는 배
배를 매면 구름과 빛과 시간이 함께
매어진다는 것도 처음 알았다.
사랑이란 그런 것을 처음 아는 것
빛 가운데 배는 울렁이며
온종일을 떠있다.
**마당에 배를 매다.
마당에
綠陰 가득한
배를 매다
마당 밖으로 나가는 징검다리
끝에
몇 포기 저녁별
연필 깎는 소리처럼
떠서
이 世上에 온 모든 生들
측은히 내려보는 그 노래를
마당가의 풀들과 나와는 지금
가슴 속에 쌓고 있는가
밧줄 당겼다 놓았다 하는
영혼
혹은
갈증
배를 풀어
쏟아지는 푸른 눈발 속을 떠갈 날이
곧 오리라
오, 사랑해야 하리
이 세상의 모든 뒷모습들
뒷 모습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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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좋은/생각
배를 한번 타보시지 않으실래요!!
푸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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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97
03.04.29 16:07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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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너무 좋아서 퍼갑니다^^
안녕 하세요. 늘푸른 강님..요새 어떻게 지내세요? 궁금ㅎㅎ 저도 이시를 처음 접했을때 너무 좋아서 자꾸 들여다 보곤 했는데..지금 읽으니까 또 좋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