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인 친구가 내게 "산케이신문은 일본들도 얼마 안보는 신문이라 주위에서 누가 그 신문 본다고 하면
'아, 좀 특이한 사람이구나' 한다"고 했다.
산케이신문이 박근혜 대통령을 명성황후에 빗대며 '민비 암살' 운운하는 칼럼을 인터넷에 실은 뒤였다.
친구는 아마 나한테 위로도 하고, 질문도 하고 싶었던 것 같다.
'원래 그런 신문인데 왜 그렇게 화를 내느냐'고
그 글을 읽고 나는 사실 '민비 암살' 네 글자보다 다른 데 먼저 놀랐다.
중간중간에 음표 모양 이모티콘, 사람 얼굴 모양 이모티콘이 튀어나왔다.
경쾌하게 모욕하고 싶었던 걸까?
논지가 오락가락해서 훈련받은 기자가 쓴 글이라곤 미처 생각지 못했다.
알고 보니 고참이 쓴 글이었다.
가령 그 글을 중국이 6.25전쟁 때 한국을 침략했는데
한국이 자존심없이 그런 나라에 기울고 있다며 '도착(倒錯)이라는 단어를 썼다.
'성도착'이라고 할 때 그 '도착'이다.
이상한 잣대라고 생각했다.
이런 식으로 세상을 재면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일본에 원자폭탄을 투하한 미국 의회에서
"과거의 적이 오늘의 친구'라고 연설한 건 뭐라고 해야할지 모르겠다.
아베 총리는 그때 자기 이름 (Abe)을 링컨 대통령의 애칭(에이브.Abe)에 빗대며
"일본에 있어 미국과의 만남은 민주주의와의 만남이었다"고 했다.
어느 나라나 우익도 있고 좌익도 있다.
우익이냐 좌익이냐 그 자체보다 '어떤 우익이냐' '어떤 좌익이냐'가 더 중요하다.
이를테면 품격이랄까.'한.일 고나계뿐 아니라 이데올로기가 개입된 모든 전선에 적용되는 얘기다.
미국에 제리 팔웰이란 목사가 있다.
이 사람은 성경책을 문자 그대로 선봉한다.
이 세상 온갖 일을 '신이 하지 말라는 일'과 '그렇지 않은 일'로 양분한다.
어린이 프로그램 텔레토비도 이 사람 눈엔 '게이'로 비친다.
9.11 테러 때는 "동성애자와 페미니스트들이 미국을 세속화시켰다.
미국은 이런 공격을 당해도 싸다"고 말했다.
그때 미국 지식인들은 "빈라덴보다 팔웰 당신이 더 협오스럽다"면서
이제 그를 진지하게 대접해주는 서구 언론은 찾기 힘들다.
그날 오후, 두 가지를 고민했다.
첫째 고민은 실무적이었다.
"기사를 써야하나, 말아야 하나.
도쿄에 온 뒤 만난 여러 일본인 학자와 언론인이 "수준 이하의 嫌韓 논객은 묵살하라"고 했다.
미미한 존재에 스포트라이크를 비춰주지 말라는 얘기였다.
痴韓 대처 전문가들도 비슷한 충고를 한다.
'바바리맨'을 만나면 비명을 지르는 대신 투명인간 취급하며 지나치라고 일리 있는 얘기지만
그날 결국 나는 썼다.
둘째 고민은 좀 더 근본적이었다.
이 사람들이 과연 미미한 존재가 맞나, 이번 일의 배경엔 팽창하는 군사 대국 중국과 그에 긴장하는 일본이 있다.
이 구도에선 일본 극우파가 자꾸 목소리를 높일수록 그들의 직접적인 공격 심리는 중국보다 한국을 향할 공산이 크다.
깊은 고민을 하지 않는 비열한 자들일수록 더욱 그럴 것이다.
그때마다 우리 정부가 화를 내며 제2,제3의 산케이에 '기사를 삭제하라"고 요구하는 게 현명한가.
상대가 '언론의 자유'를 들먹이는 호사를 누리는 게 기자인 나는 가장 괴롭다. 김수혜 도쿄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