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 미용실의 사람들
異邦人 정상진
도시 변두리 구시가지에 있는 작은 동네 미용실 안에는 늘 서너 명의 나이 든 여인들이 모여있다. 설핏 보면 파마를 하러 온 아줌마들이겠거니 하지만 그들의 머리에는 파마를 하기 위한 롯드를 동여맨 모습도 또 염색을 하기 위한 어깨보를 걸치거나 머리에 캡을 쓰고 있는 모습도 아닌 멀쩡한 모습으로 있는 것이 결코 그들은 머리를 매만지기 위해 미용실에 앉아있는 게 아니다.
언제나처럼 머리를 깎으려 들어가면 그들은 흡사 전기줄에 나란히 앉아있는 참새들 마냥 폭 좁은 소파에서 접혀있던 허리를 곧추세우고는 미용실 안으로 들어오는 사람을 위아래로 휭하니 훑어보기 시작하고는 이내 열을 올리고 있던 대화로 되돌아가 참으로 수다스럽게도 떠들어 대기 시작한다.
미용실 의자에 앉아있자면 들으려 하지 않아도 자연스레 그들의 대화를 듣게 되니 어느 댁 며느리는 참 고약하고 또 어느 댁 남편은 지지리도 궁상맞은 사람이란걸 알게 된다. 그러나 그들의 대화를 듣고 있자면 누구도 자신의 며느리나 남편에 대한 이야기가 아닌 주변 누군가의 친구 내지는 누군가의 친척이 그렇다 하는 것인데 참으로 용하기도 하지 어찌 자신의 일도 아닌 일을 그리도 상세하게 알고 있는지 또 왜 그리 감정에 매몰되어 열변을 토하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매번 이야기하는 대상은 다른 사람인 것 같은데 화자가 표현하는 감정은 언제나 들어도 똑같다.
머리를 매만지는 미용실 주인의 손길이 자주자주 끊긴다. 가끔은 머리칼을 커트하던 가위를 바닥에 떨어뜨리기도 한다. 소파에 앉아 소위 다른 집 사건에 대해 서로 열변을 토하면서 손님의 머리칼을 다듬고 있는 미용실 주인에게도 자신들의 열변에 응답하기를 또 동의 해주기를 요구하기에 미용실 주인의 손과 귀 그리고 눈이 따로 놀기 때문이다. 하여 손님은 자신의 머리가 제대로 되어가는지 늘 좌불안석일 수밖에 없고 결과는 생각 했던대로 여기저기 쥐 파먹은 머리가 되고는 한다.
어스름 저녁때 시간이 되어가면 그들은 하나둘 앉아있던 소파에서 일어나며 집에 아들네가 오기로 한 시간이 됐다든가 또는 남편이 올 시간이 되어 저녁 준비를 해야 된다든가 하는 사유를 대면서 미용실 주인에게 오늘 하루의 작별 인사를 하고는 미용실을 나선다. 그들이 모두 나간 미용실 안은 갑자기 절간이 되어 가위소리만 재깍재깍 날 뿐이다.
“이제 좀 조용해졌네요. 늘 보면 아줌마들이 미용실에 와서는 있는데 원래 그런 건가요?”
“나이 먹은 여자들이 딱히 할 것도 없으니 갈 곳이 없는 게 당연하지요.”
그 말을 듣고 있자니 통유리창 건너로 보이는 커피자판기 앞의 나이들은 남자들에게 괜히 시선이 향한다.
미용실 앞 이웃건물 추녀 아래에는 찌그러지고 녹슨 양철판자를 머리에 이고 있는 커피자판기가 물고기 비늘처럼 군데군데 들떠 일어난 회색스타코 건물벽에 비스듬하게 서 있다.
그곳에는 몇몇의 나이든 늙은 남자들이 다 식어진 종이커피잔을 들고는 두어 명은 다리 짧은 나무의자에 걸터앉고 또 두어 명은 짝다리를 집고는 돌아가는 시국에 대해 나름의 토론에 진심이다.
보는 사람들은 그들이 왜 맨날 저러고 있을까 싶지만 그들이라고 저리하고 싶어 그러겠는가. 나이들어 오갈데도 없고 또 수중에 돈도 없으니 딱히 할 일도 없을 것이고 그러니 저렇게라도 해서 하루를 보내는 것일게다. 그리고 저 사람들 살았던 시절은 다 똑같아서 소싯적에는 누구라도 할 것 없이 못 먹고 살던 시기였고 젊어서는 죽어라 일만 할 줄 알았지 지금처럼 노후준비라는 생각이나 하고 살 수 있던 세대가 아니었다.
설령 어지간히 노후준비라 해놓았다 해도 자식새끼들이 손 벌리면 또 그것을 못 본채 넘길 수도 없으니 그나마 가지고 있던 재산 죄다 주고 나서는 늙어 빈털터리가 되는 거 아니었겠나 싶은데, 가만히 생각해 보니 괜히 씁슬해지는 마음이다.
“그나저나 요즘 자판기 커피값은 얼마인가? 예전에는 한 잔에 백 원으로 먹었는데 지금은 오백 원쯤 하려나?”
“글쎄요 저도 한 번도 뽑아 먹은 적이 없어서, 궁금하시면 한번 뽑아 드셔보세요.”
미용실 주인과 손님의 대화가 매번 말의 토씨만 조금 다를 뿐 늘 같은 말을 주고받는 사이 머리손질이 끝나자 손님은 단지 커피값이 궁금하다며 자판기 앞으로 걸어가서는 둘러서 있는 노인들 사이로 들어가고 그 모습을 미용실 안의 주인이 옅은 미소를 지으며 바라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