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swers
From "Elegy for My Father"
( Mark Strand )
Why did you travel?
Because the house was cold.
Why did you travel?
Because it is what I have always done between sunset and sunrise.
What did you wear?
I wore a blue shirt, a white shirt, yellow tie, and yellow socks.
What did you wear?
I wore nothing. A scarf of pain kept me warm.
Who did you sleep with?
I slept with a different woman each night.
Who did you sleep with?
I slept alone. I have always slept alone.
Why did you lie to me?
I always thought I told the truth.
Why did you lie to me?
Because the truth lies like nothing else and I love the truth.
Why are you going?
Because nothing means much to me anymore.
Why are you going?
I don't know. I have never known.
How long shall I wait for you?
Do not wait for me. I am tired and I want to lie down.
Are you tired and do you want to lie down?
Yes, I am tired and I want to lie down.
답변
"아버지를 위한 엘레지" 중에서
( 손현숙 역 )
왜 방랑하였습니까?
집이 추웠기 때문입니다.
왜 방랑하였습니까?
해가 져서 해가 뜰 때까지 늘 해오던 일이었으니까요.
무엇을 입었죠?
푸른 셔츠와 흰 셔츠, 노란 타이와 노란 양말을 신었습니다.
무엇을 입었죠?
아무 것도 입지 않았습니다. 고통의 스카프를 매니 따뜻했어요.
누구와 잤습니까?
날마다 다른 여자와 잤습니다.
누구와 잤습니까?
혼자 잤습니다. 늘 혼자 잤지요.
왜 내게 거짓말을 했습니까?
항상 진실을 말한다고 생각했죠.
왜 내게 거짓말을 했습니까?
진실의 거짓말은 딴 거짓말과는 다릅니다. 난 진실을 사랑해요.
왜 떠나려고 합니까?
이제 내겐 아무 것도 큰 의미가 없으니까요.
왜 떠나려고 합니까?
모르겠어요. 한번도 그 이유를 알았던 적이 없어요.
당신을 얼마나 기다려야 할까요?
기다리지 마세요. 지쳐서 이젠 눕고 싶습니다.
지쳐서 눕고 싶다고요?
네. 이제 지쳐서 눕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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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제가 문화센터 영시반에서 배운 시입니다. 별로 어려운 단어가 없어 쉽게 읽히지만,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이런 저런 얘깃거리가 담겨 있는 듯해 올려 봅니다. (선생님의 설명을 중심으로 여러 사람들의 감상도 곁들여 올리니, 시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기 바랍니다.)
이 시는 시인이 돌아가신 아버지를 애도하는 형식의 시이지만, 어쩌면 우리들 모두에게 해당되는 시입니다. 시인은 문답의 형식을 빌려 썼지만, 애당초 질문자나 답변자의 정체는 알 필요가 없었는지도 모릅니다. 나그네가 술집에 앉아 주인과 나누는 얘기일 수도 있고, 방랑의 여행길에서 석양이 비치는 큰 바위에 앉아 스스로와 나누는 얘기일 수도 있습니다.
시인은 아버지(아니, 우리)에게 두 번씩 묻습니다. 거듭 두 번씩 묻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요?
우리는 무엇을 다시 확실하게 확인할 때나 또는 미심쩍을 때에 한 번 더 묻습니다. 역시 다시 질문하니 답변이 달라집니다. 첫 번째 대답도 거짓은 아니지만, 두 번째 대답이 더 깊이 있고 진지합니다. 말하자면 삶의 본질에 더 다가간다고 할까요?
집이 추워 방랑했다는 대답은 생활이 몹시 빈곤했거나 또는 사랑이 많이 부족한 가정이었음을 의미합니다. 그렇지만 굳이 고통스런 환경이 아니라 해도 모든 인간들은 현재에 만족하지 못하고 방랑하는 습성이 있음을 우리는 두 번째 대답에서 이해하게 됩니다.
우리는 돈이나 명성, 지식이나 지위를 걸치고(wear) 자신을 치장하지만, 실은 고통의 스카프를 두른 적이 있는 자(scarf of pain)만이 훈훈해지고 진정한 행복을 알게 됩니다.
매일 다른 여자와 잤다는 것은 방랑하는 자의 전형적인 퇴폐 행각 같지만, 결국 매일 혼자 잠이 들었다는 두 번째 대답과 맥을 같이 합니다. 세상에서 우리는 누구하고나 잘 어울리는 것 같아도, 어쩌면 같은 침대에 누운 두 사람도 진정한 사랑을 나누기가 쉽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거짓 아닌 진실도 그것이 상대적인 것이기에 때로는 거짓처럼 여겨질 수도 있지만, 내면의 본질에 충실하다는 점에서 진실은 다른 거짓말과는 다르다는 것을 시인은 잘 알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많은 사람들은 자기가 듣고 싶지 않은 답을 들었을 경우에 거짓이라고 생각합니다. 삶에 있어서 언어 소통은 그래서 중요한 것이지요.
떠나는 삶은 피곤한 것인데, 왜 자꾸 떠나려 하는지 물으니, 이곳에서는 삶이 더 이상 아무 의미가 없다고 대답합니다. 그래서 그 의미가 무엇인지를 생각하며 다시 한 번 물으니, 솔직하게 잘 모르겠다고 실토를 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왜 사는지 모르면서도 그저 무언가를 찾으며 살아갑니다. 잘 모르겠다는 것이 정답입니다.
얼마나 당신을 기다려야 하느냐고 묻는 마지막 질문에서만 두 답이 동일합니다. 기다리지 말라고… 피곤해서 눕고 싶다고… 그저 몸을 누이고 편히 쉬는 것이 아닙니다. 휴식이 아닌 심신의 영원한 안식을 말하는 것이고, 결국 죽음을 원하는 것입니다.
죽음이 나그네를 어디선가 기다리듯이, 어느 낯선 곳에서 우리가 어떻게 죽을지 모르지만 결국 우리는 우리 자신이 왔던 곳으로 다시 되돌아갈 뿐인 것이지요. 우리 인생은 결국은 지쳐서 가는 것입니다. 김삿갓이나 ‘노인과 바다’의 이미지를 떠올려 보는 것도 이 시의 감상에 도움이 될 것입니다.
첫댓글 Jane 님의 따끈따끈(?)한 글을 보게 되어서 너무 기분이 좋습니다.^^ 글을 잘 읽었습니다. 전 개인적으로 우리 삶의 대부분은 수많은 과제를 해결해 나가는 과정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과제 하나가 끝났다고 해서 편안히 쉴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그 이후엔 더 painstaking 한 과제가 기다리고 있지요. 평생 고생만 하다가 끝나는 게 우리 인생이기에, 삶은 고달픈 것이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리어왕이 글로스터를 만났을 때 한 대사가 생각나네요. 'When we are born, we cry that we are come To this great stage of fools.' '아기가 태어날 때 우는 것은, 이 커다란 바보들 무대에 서는게 슬퍼서 우는거야.'
죽은 아버지와의 가상 대화로 볼 수 있지 않을까요? 그러면서 인생을 성찰하고 있는 듯합니다. 만일 그렇다면 번역에서 대답은 경어체가 아닌 평어체로 하는 것이 자연스러웠을 겁니다. 어려운 말을 쓰고 복잡한 이미지를 그리지 않아도 좋은 시가 될 수 있음을 느낄 수 있는 시입니다.
Jude님 말씀처럼, 우리 삶은 계속 수고로운 어떤 과제의 수행으로 점철되는 것 같습니다. 저는 연극 무대에 서면 밀도 있게 제 역할을 잘 해 내는 배우가 될 것 같아요. 연기 못하는 배우를 보는 것은 정말 괴로웠거든요. 그런데 인생 무대는 너무 길고 역할도 다양하다 보니 좋은 배우가 못 되는 것 같습니다. 배우의 자존심과 지켜보는 관객을 위해 더 노력해야겠지요. 그리고 류선생님 말씀이 상당히 일리가 있네요. 아들의 질문에 '~란다' , '~구나'식으로 대답하는 편이 훨씬 자연스럽다는 생각이 듭니다.
어떤분이 제게 질문하기를 삶을 단계로 보세요? 시간으로 보세요? 그분이 그러길 삶은 단계인 것 같다고 그냥 시간으로 볼 때 변한 것은 없는데 나이먹은 것 말고는 단계를 그치면 자신도 자기의변화를 알지만 주변 사람들도 달라졌음을 알더라고 하더라구요. 저도 삶은 단계 단계 수행해야 할 과제가 있고 그 과제를 하나완수하면 어느새 뭔가 제안에서 자랐음을 알 수 있거든요, 생각을 하게 하는 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