楚狂接輿歌而過孔子曰 鳳兮 鳳兮 何德之衰 往者不可諫 來者猶可追 已而 已而 今之從政者 殆而 초나라의 미친 사람 접여가 노래를 부르면서 공자의 수레 앞을 지나가며 “봉(鳳)이여 봉(鳳)이여 어찌 덕이 쇠하였는가. 지나간 것은 탓할 수 없겠지만 다가오는 것은 오히려 따를 수 있으니 그만두시오, 그만두시오. 오늘날 정치에 종사하는 자들은 위태롭구나.”라고 하였다.
接輿 楚人 佯狂辟世 夫子時將適楚 故接輿歌而過其車前也 鳳有道則見 無道則隱 接輿以比孔子 而譏其不能隱爲德衰也 來者可追 言及今尙可隱去 已 止也 而 語助辭 殆 危也 接輿蓋知尊孔子而趨不同者也 접여는 초나라 사람이고, 거짓으로 미친 체하며 세상을 회피하였다. 부자께서 마침 초나라로 가고자 하였는데, 접여가 노래를 부르며 그 마차 앞을 지나갔던 것이다. 봉황은 도가 있으면 보이고, 도가 없으면 숨어버린다. 접여가 봉황을 공자에게 비유하여 그가 숨지 못한 것이 덕이 쇠하였기 때문이라고 풍자한 것이다. 다가오는 것이라면 따라갈 수 있다는 말은, 지금에 이르러 오히려 숨어들 수 있다는 것을 말한 것이다. 已는 그만둔다는 것이다. 而는 어조사다. 殆는 위험하다는 말이다. 접여는 아마도 공자를 존경할 줄은 알되 가는 길이 같지 않았던 사람이었던 것 같다.
邢氏曰 接輿姓陸名通 昭王時佯狂不仕 時人謂之楚狂 형씨가 말하길, “접여는 성이 육이고 이름은 통이다. 소왕 시절에 거짓으로 미친 체하면서 벼슬에 나가지 않았는데, 당시 사람들은 그를 일컬어 초나라 미치광이라고 하였다.”고 하였다.
慶源輔氏曰 鳳 靈物也 有道則見 無道則隱 鳳固然也 至於無道而不隱 則鳳之德衰矣 然以此論君子守身之常法 則可 至於聖人體道之大權 則又不可以此例論也 경원보씨가 말하길, “봉은 영물이라, 도가 있으면 나타나고, 도가 없으면 숨는다. 봉이 본래 그러한데, 도가 없는데도 숨지 않는 지경에 이른다면, 봉의 덕이 쇠미해진 것이다. 그러나 이로써 군자가 몸을 지키는 일상의 법을 논한다면 그것은 가능하지만, 성인이 도를 체행하는 큰 권도에 이르러서는, 곧 또한 이로써 예를 들어 논할 수는 없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雙峯饒氏曰 鳳世治則生 亂則不生 卽是有道則見 無道則隱之義 蓋麟鳳皆不是有種之物 惟聖王在上 天地泰和 所以元氣之會鍾爲麟鳳 如鸛生鶴馬生龍駒之類 쌍봉요씨가 말하길, “봉은 치세에서는 생겨나고 난세에서는 생겨나지 않는 것이니, 이는 곧 도가 있으면 나타나고 도가 없으면 숨는다는 뜻이다. 대체로 기린과 봉황은 모두 종자가 있는 사물이 아닌 것이니, 오직 성스런 왕께서 위에 계시고 천지가 泰和하면, 원기가 모이고 모여서 기린과 봉황이 되는 것이다. 마치 황새가 학을 낳고 말이 龍駒를 낳는다는 것과 같은 부류다.”라고 하였다.
慶源輔氏曰 觀接輿之言 旣比之以鳳而又疑其衰 旣幸其或止而又慮其殆 語意慇懃諄復 是誠知尊聖人者矣 然其所趨則在於絶人逃世以遠害全身而已 其與聖人之心 蓋不啻如氷炭白黑之不同也 경원보씨가 말하길, “접여의 말을 살펴보면, 이미 공자님을 봉황으로 비유하였으면서도 다시 그 쇠미해짐을 의심하였고, 이미 혹여 그침을 다행으로 여기면서도 또한 그 위태로움을 염려하였으니, 그 말뜻이 은근하고 정성스러운 것이다. 그러니 성인을 진실로 높일 줄 아는 사람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가 나아가는 바는 사람을 끊어내고 세상을 도피함으로써 해를 멀리하고 자기 몸을 온전하게 하는 것일 따름이다. 그는 성인의 마음과 더불어, 대체로 단지 숯과 얼음이나 흑과 백이 서로 다른 것과 같을 뿐만이 아니다.”라고 하였다.
胡氏曰 趨不同者 接輿有避世之心 而無救世之志 有堅持之操 而無變通之學也 호씨가 말하길, “나아가는 방향이 다르다는 것은 접여에게 세상을 피하려는 마음이 있지만 세상을 구하려는 뜻이 없고, 견지할 절조는 있지만 變通할 수 있는 학문은 없었다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孔子下 欲與之言 趨而辟之 不得與之言 공자께서 수레에서 내려 그와 더불어 말씀을 하려 하셨는데, 빨리 걸어 피하니 함께 말씀하시지 못하였다.
○ 孔子下車 蓋欲告之以出處之意 接輿自以爲是 故不欲聞而避之也 공자께서 수레에서 내린 것은 아마도 그에게 벼슬살이에 들고 나는 뜻을 알려주고자 했던 것 같다. 접여는 스스로 옳다고 여겼기 때문에 듣고자 하지 않고서 공자님을 피한 것이다.
問楚狂接輿等 伊川謂荷蓧稍高 朱子曰 以其尙可告語 若接輿 則全不可曉 問當亂世 必如孔子之才 可以救世而後可以出 其他亦何必出 曰 亦不必如此執定 君子之仕 行其義也 亦不可一向滅跡山林 然仕而道不行 則當去耳 누군가 묻기를, “초나라 미치광이 접여 등에 대하여, 정이천 선생은 삼태기를 멘 사람이 조금 수준이 높다고 말하였습니다.”라고 하였다. 주자가 말하길, “하조는 그래도 말해서 알려줄 수는 있었기 때문이다. 접여 같은 경우는 일깨워주는 것이 전혀 불가능했다.”라고 하였다. 누군가 묻기를, “난세에 당하여, 반드시 공자와 같은 재주를 가진 사람이 세상을 구제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이후에 벼슬길에 나갈 수 있다면, 그 밖의 다른 사람들은 또한 어찌 반드시 나갈 필요가 있겠습니까?”라고 하였다. 주자가 말하길, “또한 반드시 이처럼 고집스레 단정할 필요는 없다. 군자가 벼슬을 함에 있어서 그 합당한 것을 행하는 것이니, 또한 줄곧 산림에서 자취를 없애버리기만 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벼슬을 하다가 도가 행해지지 않는다면, 마땅히 떠나야 할 따름이다.”라고 하였다.
南軒張氏曰 接輿之意 蓋欲夫子隱居以避世耳 觀其知鳳德之衰 且辭氣舒暢不迫 其爲人 天資亦高矣 故夫子意其可以告語而欲與之言 其趨而避 蓋匿其聲跡而已 남헌장씨가 말하길, “접여의 뜻은 대체로 공자가 은거하여 세상을 회피하기를 바라는 것일 따름이다. 그가 봉황의 덕이 쇠한 것을 알고, 또한 말하는 기운이 편안하고 유창하며 급박하지 아니한 것을 살펴보면, 그 사람됨과 천부적 자질 역시 높은 것이다. 그래서 공자께서는 그에게 충분히 말하여 알려줄 수 있다고 생각하고서, 그와 더불어 말하고자 하셨던 것이다. 그가 총총히 가버려 공자를 피한 것은 대체로 자기의 소리와 자취를 감춘 것일 따름이다.”라고 하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