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디앙에서 황광우씨와 장석준씨의 구좌파/신좌파 논쟁을 읽다가 도무지 무슨 소리를 하고 있는지 무엇이 논쟁의 핵심인지 알 수 없었다. 그러다가 발견한 것이 장석준씨의 87년과의 단절선언이었다. 그 말 자체는 신선하게 다가왔지만, 무엇이 그것인지에 대해서는 그 내용이 아리송했다. 그 말에 자존심 상한 황광우씨였던 것이다.
황광우/ 장석준의 논쟁은 한마디로 내용없는 자존심 싸움에 다름 아니었다.
두 사람이 대학시절에 썼던 [레즈를 위하여]라는 책을 읽어보다가 집어던질 수 밖에 없었다. 내가 레디앙에서의 두 사람의 논쟁에 대해 혀를 찼던거나, 두 사람의 책을 집어 던진거나 같은 의미다.
두 사람을 보면서, 왜 한국의 좌파들이 정신 못차리고 허둥대고 있는지, 또는 무엇이 좌파인지도 모르고 헷갈리고 있는지, 그나마 좌파의 냄새를 풍기고 있는 자들이 무엇을 해야 할 지도 모르는 지에 대해 이제야 알 수 있었다.
우선, 두사람에 대해 결론부터 낸다면, 황광우씨는 아무 곳도 모르는 엉터리라는 거고, 장석준씨는 좌파 냄새를 살짝 풍기지만 좌파로서 역사 인식이 전혀 되어 있지 않다는 거다.
가끔, 글 속에서 나는 독일인 세명을 언급한다. 맑스와 비스마르크와 히틀러다.
맑스의 잘못은 자본주의를 시장이 진화되었다는 것으로 봤다는 것이다. 시장이 진화되어 자본주의가 되고, 자본주의는 스스로의 모순 때문에 몰락해서 공산주의 사회가 된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 시절, 유럽의 철학자들은 유럽을 벗어나지 못했다. 지독한 인종주의자 괴테가 그랬고, 약탈한 사유재산을 국가가 보호해주는 댓가로 국가의 창설에 동의한다는 사회계약론의 존 로크가 그랬고, 유럽이 중심이 된 세계무역이야말로 제국주의를 타파하고 그것을 유지지탱하는 금본위제도를 주장했던 아담 스미스가 그랬다.
그들의 시선은 오로지 유럽에서 떠날 수 없었던 것이다.
콜럼버스가 우연히 신대륙을 발견한 것은 인도의 향신료와 일본의 황금을 위한 것이었다. 그리고 콜럼버스의 신대륙 발견은 유럽인들에 의한 신세계 아메리카의 약탈과 식민지화였다. 아즈택과 잉카의 막대한 금은의 약탈은 유럽의 통화유통량을 비약적으로 증가 시켰다. 맑스가 자본의 원시적 축적이라고 부른 것의 실체가 바로 이 약탈을 말하는 것이었다. 유럽에서는 담배나 설탕 등 아메리카 산물에 대한 새로운 수요가 생기는 한편, 아메리카로 이주한 유럽인은 종래의 생활양식을 유지하기 위한 물자를 필요로 했기 때문에, 대서양을 사이에 두고 무한히 시장이 확대되었다. 시장의 거대한 수요를 생산하기 위해 카리브해 지역의 플랜테이션에서 일하는 흑인들의 노예노동이 필요로 했다.
풍부한 자본, 무한히 확대된 시장, 싼 노동력이라는 자본주의가 성립되기 위한 조건이 이렇게 갖춰졌다. 자본주의는 생산력의 발전에 의해서가 아니라 국제무역의 약탈을 통해서 생겨났고, 그 뒤에 유럽의 강력한 국가들이 존재했었고, 유럽의 국가들이 아메리카와 아프리카의 무한한 자원과 싼 노동력을 약탈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무역은 전통적 생활양식에서 새로운 생활양식을 창조하게 되었는데, 바로 이런 끊임없는 창조적 파괴가 오늘날 세계무역의 원리가 되었다. 이는 세계무역이 상호간의 필요한 물자를 교환하는 것이 아니라 시장의 무한한 확대에 있음을 말해준다. 또한 이는 자본의 유통과정 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의 생산과정(플랜테이션 경영)까지도 지배하기에 이르렀다.
유럽의 세계무역은 식민주의 폭력의 모태로 태어났고, 이에 종사하는 자의 막대한 이익은, 아메리카 아프리카 지역의 식민지화나 흑인노예의 결과이다. 이는 곧 지역 간의 대등한 교역으로 발전한 것이 아니라 대등한 교환을 위장한 항시적 약탈이었다. 그리고 이 시기가 곧 유럽의 자유 평등을 기반으로 한 근대국가가 형성되는 시기와 같은 때였다. 따라서 유럽 근대 국가는 아메리카나 아프리카의 자원수탈과 노예노동을 기반으로 생겨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전통적인 무역은 국가가 개입하는 것이 아니라 상인이 중심이 되었고, 그것이 상대국의 생산까지 지배하는 경우는 없었다. 게다가 무역을 통한 식민지화는 어림도 없는 소리였다. 또 전통적인 무역에서의 서민들은 변함없이 지역적인 자급에 기초하여 생활 할 수 있었다.
유럽에서는 근대국가가 이런 이유로 탄생이 되고, 신세계로 이주한 이주자들 역시 토지와 생산 수단을 원하는 만큼 가질 수 있었다. 존 로크의 ‘시민정부론’의 사회계약은 바로 새로운 이주자들이 약탈한 사유재산을 보호하는 대가로 국가의 창설에 동의한다는 것이다.
이렇듯 신세계의 약탈 무역을 기반으로 해서 유럽과 신대륙에 근대국가가 탄생되는 것이다.
근대국가의 탄생은 이토록 불손한 것이었다. 그리고 근대국가의 정치시스템인 대의민주주의로 대변되는 의회정치 역시 그것에서 벗어날 수 없다.
그런, 의미에서 히틀러는 맑스에 비해 머리가 좋은 인물이엇다. 그는, 자본주의를 금세공업자였던 유대인 사채업자들이 주도가 되어 국제금융의 마피아들의 음모라고 간파했고, 유럽의 민주주의는 그것을 유지하기 위한 시스템이라고 생각해서, 이른 바 자본주의와 민주주의 두 가지 전부를 때려부셨던 것이다. 그 시절의 그것이 이른 바 파시즘으로 대표되었던 유럽의 경향이었다. 스탈린은 자본주의를 잘못 이해해서 국가의 틀 속으로 밀어넣어 인민들을 노예로 만들었고, 무솔리니는 공산주의를 잘못 이해해서 국가 통제 자본주의로 만들어 버리고 말았다.
오늘 날, 근대 복지국가의 기초를 마련했다는 비스마르크의 복지국가는, 오로지 그의 독재를 위한 것이었다. 노동자들의 정치세력화를 잠재우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노동자들에게 당근을 던져주었던 것이다.
맑스는 역사를 계급투쟁이라고 생각했다. 한때, 나도 그의 생각에 동조한 적이 있었지만, 그것은 국가라는 것을 인정하고 나서의 문제였다. 맑스는 국가라는 틀 속에서 모든 것을 이해하려고 했던 것이다.
맑스의 잘못은 국가를 바라보는 시선과 자본주의를 잘못 이해 한 것이다.
19 세기 까지 전 세계 인구는 15억에서 20억 사이로 추측이 된다. 그 인구는 거의 이천년 동안 변하지 않았다. 20 세기 들어와서 인류의 생활과 성문화가 극도로 발달하여 지금은 70 억 가까운 인구가 되었지만, 과거 농경사회에서는 인구가 그렇게 급작스럽게 늘어야 할 이유가 없었다.
얼마전, 방송에서 인기리 방영되어진 주몽의 이야기는 비록 무협지 같은 헛소리지만 그래서 봐 줄 만하다는 것이다. 어차피 역사라는 것은 그네들의 영웅 무협지에 다름 아니기 때문이다.
발해를 한국사에 편입시킨 것이 얼마 되지 않는다. 대조영이 고구려인인가 말갈인인가 대해서는 논쟁이 많지만, 대체적으로 학계에서는 말갈인으로서 고구려의 신하였다는데 동의를 하는 편이다. 대조영이 고구려의 신하였기 때문에 발해의 상층부는 고구려인이고 하층부는 말갈인이라는 논리는 기가 막히다. 우리의 위대한 한국사는 당연히 그래야 하기 때문이다. 위대한 민족 한족은 만주 벌판을 장악하고 호령해야 하기 때문이다. 지금은 잠시 강대국에 움추려 숨을 죽이고 있는 민족이지만 언젠가는 우리의 영토 만주 벌판을 되찾아야 하기 때문이다. 중국의 동북공정과 일본의 독도에 대한 역사 왜곡과 무엇이 다른가.
물 건너 일본 사기 역시 19 세기가 한참을 지나서 극우파 일본 정치인들이 어디선가 발굴해낸 것이다. 아니, 그 전에는 거의 신경도 쓰지 않았던 것을 명치유신 이후로 세상에 등장을 시킨 것이다. 중국 서점에 가 보면 수없이 돌아다니는 통감절요 역시 그렇다.
도대체 역사란 무엇인가. 게다가 우리가 배우는 한국사라는 것은. 그리고 민족이라는 것에 대해서는. 난 도무지 이런 것들이 도대체 왜 존재해야 하는 지 모르겠다. 그것은 내가 양아치 들 중에서 누군가를 찍어야 하고 그래야만 민주 시민의 권리와 의무를 다해야 ㅎ하는 것이고. 그것이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길이라는 개소리와 같은 것이다.
인민들의 삶과는 아무 상관도 없는 국가라는 존재에 이토록 목을 메는 역사관이 문제인 것이다. 과거의 국가는 인민들의 삶을 통제할 수 없었다. 극히 일부만이 국가의 틀속에서 착취를 당했다. 모든 인민들의 삶이 되어버린 근대국가의 기원은 대단히 불손한 것이다.
19세기는 인류 역사에서 커다란 전쟁이 없었던 가장 조용하던 시기였다. 그런데, 그 시기가 유럽의 제국주의가 제 3 세계를 침략하던 자본주의의 완성의 시기였다. 그것이 위기로 나타났던 것이 1,2 차 세계대전이었다. 그 후, 세계는 자본주의 국가와 사회주의 국가 두 세력을 나뉘어졌으나, 시실은 그 뿌리는 같았다. 자본주의를 이해하는 수준의 차이였던 것이다. 한쪽은 자본주의를 국가가 도와주어야 한다고 생각햇고, 한쪽은 자본주의를 국가가 통제해야 한다고 생각햇던 것이다. 두 세력은 자본주의가 음모였다는 것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그것 역시 맑스의 잘못이었던 것이다.
유럽의 진보된 역사관이라고 믿어왔던 자본주의와 사회주의는 이토록 우리를 괴롭혔던 악마엿던 것이다.
국가와 아무런 상관도 없이 살아왔던 인민들의 삶을 공동체에서 송두리채 추방시켜, 오로지 국가의 틀 속에 가두어놓고, 제국주의 전쟁의 희생자로, 국가의 노예로 만들엇던 것이다.
근대 이전의 인민들의 삶을 기록한 명문화된 역사라는 것은 전혀 인민들의 삶과는 무관했다. 명문화되지 못한 역사는 지금도 존해한다. 과거에도 존해했고 현재에도 존재해야 한다.
맑스의 잘못은 국가라는 강박관념에서 벗어날 수 없엇던 것도 있지만, 사회를 바라보는 눈도 잘못되었다는 것이다. 그의 계급에 대한 오해야 말고, 오늘 날 좌파들의 가장 큰 실수가 되고 말았다.
사회변화의 단서를 사회전체로 바라보지 못하고, 오로지 계급의 시선으로만 보는 협소함이다. 그곳에서 자본주의를 넘어서지 못하는 좌파들의 딜레마가 존재하는 것이다. 자본주의를 넘어서는 길은, 자본가와의 투쟁만으로는 어림도 없다. 그것은 오히려 그들의 품 속으로 들어가는 지름길 일 수 있다.
희망버스를 기획한 송경동 시인의, '한진이 이번에 선박수주를 햇는데, 왜 노동자를 해고 시키냐고' 한 말을 읽고 씁스레 한 기분을 떨쳐버릴 수 없었다. 그 말은 니들이 돈을 벌어왔는데 왜 돈을 안 주냐 라는 말과 같은 말이다. 그 돈을 어떻게 벌어왔느냐에는 관심도 없는 것이다.
좌파들의 수준은 여기에 머믈러 있는 것이다. 돈을 어떻게 버는가에는 관심이 없다. 오로지 돈을 벌어서 자본가와 똑 같이 나누면 그만인 것이다. 더구나, 돈을 많이 벌어서 더 많이 나누면 그만인 것이다.
우리가 서있는 이자리가 어디인가를 알아야 한다. 우리가 살아가는 방법이 어떤 것인가를 알아야 한다.
이 근본적 것에 의문을 가지면서 진정 그 답이 무엇인지 찾아가야 하는 것이다.
내가 보기에는 신좌파나 구좌파나 같다. 황광우나 장석준이나 같다.
진정 인민들의 삶은 국가의 것도 아니고 계급의 것도 아니고 우리들의 것이다.
우리라는 말이 무엇인지 우선 알아야 한다.
좌/우의 갈림길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신좌파/구좌파의 갈림길은 87년이 아니라 ,좌/우가 무엇인지 정확히 아는 것과 좌파의 역사인식과 역할을 알고 모르고의 차이다.